제550화
“동우산이요?”
점원은 웃음을 짓더니 이렇게 말했다.
“동우산은 재미있는 게 별로 없어요. 남쪽에 있는 수동산水洞山으로 가시는 게 더 나을 거예요.”
“우리도 놀려고 가는 것만은 아니오. 들어 보니 그곳이 좀 특별하다고 하던데.”
“하하. 정말 특별한 게 있긴 하죠. 뱀과 곤충, 쥐와 개미가 유독 많으니까요.”
엽연채의 말에 점원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리고 지형도 험준한 편이에요. 오르기는 쉬운데 내려가기는 어렵거든요. 대신 사냥감도 많은 편이에요. 사냥을 하러 가시는 거라면 그쪽에 들러 볼 만하죠. 하지만 그쪽은 독뱀이 우글우글해요. 방심했다가는 독사한테 물려 봉변을 당하실 테니 거긴 가지 마세요. 그럼 맛있게 드세요.”
말을 마친 점원은 미소를 지어 보이곤 그 자리를 떠났다.
엽연채가 유용한 정보를 알아내지 못해 조금 침울해지자 청유가 얼른 그녀를 다독였다.
“이건 좋은 일입니다. 그쪽은 위험하지 않다는 거죠. 무엇보다도 나리께서 마님이 전달한 정보를 받으시면 분명 산에 오르지 않으실 거예요! 어쩌면 오늘 밤에 돌아오실지도 모르고요.”
“그래.”
엽연채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마님, 보세요. 이 송서백절계松鼠白切鷄는 이 일대의 특산 요리예요. 저도 어렸을 때 들어는 봤는데 먹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마님 덕분에 드디어 소원 성취할 수 있게 됐네요.”
청유는 얼른 닭다리를 집어 엽연채의 밥그릇에 놓아 줬다.
엽연채는 닭다리를 집어 한입 베어 물었다. 청유와 소전은 닭다리를 먹으며 감탄사를 연발했지만, 그녀는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엽연채는 일행과 함께 처소로 돌아갔다.
관아 뒤편의 처소는 잠시 이곳에 머무르는 상관이나 귀인들만 특별히 접대하는 곳이라 아주 넓고 정교하게 꾸며져 있었다.
주원主院. 엽연채는 창틀에 기대어 바깥의 정원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주운환이 돌아오기를 기다렸고, 그를 볼 생각을 하니 조금 긴장이 되면서도 기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렸는데도 주운환은 돌아오지 않았다.
엽연채는 마음이 불안해 의기소침한 모습이었다. 혜연과 청유가 옆에서 그녀를 계속 달랬지만, 그들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엽연채는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이러고 있지 말고, 우리 산보나 하자.”
보다 못한 제민이 앞으로 다가섰다.
그녀는 엽연채가 지금 어떤 심정인지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다. 할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셨을 때, 작황이 좋지 않을 때마다 할아버지는 한겨울에 산으로 올라가 산나물을 땄다. 어렸던 제민은 날마다 대문에 앉아서 할아버지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는데, 아무리 애써도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래.”
엽연채도 더는 자리에 가만 앉아 있을 수가 없던 참이었다.
두 사람은 뜰을 거닐며 구조를 파악했다. 관아는 넓어서 뒤편이 둘로 나뉘어 있었다. 서쪽의 삼진원三進院 뜰은 지부가 거주하는 곳이었고, 동쪽의 삼진원 뜰은 귀한 손님들이 임시로 지내는 곳이었다.
두 여인이 동쪽 뜰의 대문을 나서니 서쪽 뜰의 대문이 눈에 들어왔다.
“저쪽이 지부가 지내는 곳이지?”
“응, 그렇대.”
엽연채의 물음에 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엽연채가 주위를 둘러보니 서쪽 뜰과 동문 사이에 길이 나 있었다. 따라 걸어가면 관아의 후문으로 들어갈 수 있을 듯했다.
서쪽 뜰과 관아의 공당公堂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고 동쪽 뜰과 포졸들의 당직실도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두 여인은 이곳을 잠시 돌아다녔지만 특별히 신기하거나 새로운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 게다가 주씨 가문 병사들도 이곳저곳 함부로 돌아다니면 안 된다며 엽연채더러 처소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러는 사이, 날은 점점 어두워졌다. 소전은 저녁거리를 가져왔고 혜연과 청유는 그를 도와 음식을 차렸다.
엽연채는 경직된 얼굴로 소전을 쳐다보며 물었다.
“나리 쪽에서 소식이 왔느냐?”
“아직 안 왔습니다.”
“여양은?”
엽연채는 미간을 살짝 구기며 다시 물었다.
“여양 형님은 마 지부 대인과 함께 병졸들을 이끌고 동우산으로 갔습니다.”
“그건 나도 안다!”
소전이 뻔한 이야기를 반복하자 엽연채는 조금 화가 났다.
“내가 여양에게 소식을 전달하라고 했으니, 임무를 완수했든 안 했든 간에 내게 회신은 줘야 할 것 아니냐? 장소가 동우산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사람을 보내 알아보면 될 것 아니냐?”
소전은 몸을 푸르르 떨더니 얼른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예.”
소전이 밖으로 뛰어나갔지만, 엽연채는 여전히 초조한 마음에 밥조차 먹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제민과 혜연이 계속해서 밥부터 먹으라고 권하는 바람에 억지로 두 숟갈을 밀어 넣었다.
먹는 둥 마는 둥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엽연채는 안절부절못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런 채로 반 시진이 더 지나자 날은 한층 어둑어둑해졌다.
엽연채는 좌불안석이었다. 서신 때문에 동우산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알았고, 그에 주운환에게 정보를 전달했지만 그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그 정보를 전해 주러 간 사람도 깜깜무소식이었다.
‘도대체 어찌 된 걸까? 동우산으로 간 지 꽤 됐는데. 설마 이미 흉계에 빠진 걸까?’
이때, 밖에서 눈송이가 흩날리자 그녀의 마음도 눈서리가 내린 듯 무겁게 가라앉았다. 엽연채는 초조한 나머지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이윽고 해시亥時(밤 9시~11시)의 절반이 지났을 때쯤, 소전이 찬 기운을 풍기며 황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부군은 어떠시냐? 입산하셨느냐? 어떻게 됐느냐?”
엽연채가 질문을 왁 쏟아내자 소전은 머리를 긁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게… 후야께서는 비적들을 따라 동우산으로 가셨습니다. 한데 동우산은 규모가 크고 숲도 울창해서 숨을 곳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나리께서는 우선 사람들에게 산 전체를 포위하라고 하셨는데, 산을 포위하고 나니 병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여양 형님과 마 지부께 군사들을 이동시키라고 하신 겁니다.
원래는 입산해서 비적들을 붙잡을 계획이었는데… 마님께서 주의를 주셨기 때문에 나리께서는 입산하지 않고 아직 밖에 계십니다……. 지금 총병總兵(군대를 통솔하고 지방을 다스리는 벼슬)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게 다인 것이냐?”
엽연채는 간략한 내용만 전달받자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예…….”
소전은 이리 말씀을 올린 후 서둘러 밖으로 물러갔다.
창가에 앉아 있는 엽연채는 턱을 괸 채 눈이 내려 살짝 반짝거리는 정원을 바라봤다.
“마님, 입산하지 않으셨다고 하니 어쩌면 내일 돌아오실지도 몰라요. 늦었으니 어서 쉬세요.”
혜연이 엽연채에게 잠자리에 들기를 권하는데 밖에서 작지 않은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엽연채는 그 소리를 듣더니 주씨 가문 병사들 대부분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자 그들이 마치 자신의 마음을 밟고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엽연채는 고개를 숙였다.
“배고프다. 삼을 곤 탕이라도 먹어야겠어.”
엽연채가 요깃거리를 찾자 혜연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바로 가서 준비하겠습니다. 혼돈餛飩도 만들어 드릴까요?”
“그래. 만들거라!”
엽연채는 그녀를 쳐다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너도 저녁 식사를 할 때 별로 안 먹던데, 만드는 김에 많이 만들어 함께 먹자꾸나.”
“예.”
혜연은 대답을 하고선 바로 문을 나섰다.
잠시 후, 혜연은 청유와 함께 혼돈이 담긴 커다란 국그릇을 들고 왔다. 그런 후 밥그릇와 젓가락도 챙겨 오더니 먼저 엽연채의 그릇에 혼돈을 담아 줬다.
엽연채는 맛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싱거운데.”
“싱겁습니까? 그럼 소금을 가져오겠습니다.”
혜연이 소금을 가지러 밖으로 나가자 엽연채가 이번에는 청유를 쳐다보며 물었다.
“민이는?”
“방금 전에 곁채로 돌아가시는 걸 봤습니다. 가서 드실 건지 여쭤보고 오겠습니다.”
말을 마친 청유는 밖으로 나가 제민이 쓰는 왼쪽 곁채로 향했다.
청유가 다가가 문을 두드려도 말이 돌아오지 않자 그녀는 문을 열었다. 보니 제민은 이미 침상에 누워 단잠을 자고 있었다.
요 며칠 강행군이었으니 일찍 잠이 들 법도 했다.
청유는 그녀를 깨우기 뭐해 그대로 엽연채의 방으로 돌아왔고, 이미 소금을 들고 방으로 돌아온 혜연은 혼돈에 소금을 조금 쳤다.
청유는 국물을 한입 먹더니 너무 짜 구역질을 할 뻔했지만, 감히 소리를 크게 낼 수는 없었다.
‘이렇게 짠데, 대체 어디가 싱겁다는 거지?’
하지만 요 며칠 뭘 먹어도 시큰둥했던 엽연채의 모습을 떠올리자 심란한 탓에 입맛이 없으니 짜게 먹고 싶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엽연채는 먼저 떠 준 혼돈을 먹고 있었다. 혼돈 그릇에 소금을 조금 더 쳤지만 입 안에 들어가니 여전히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청유와 혜연이 새로 뜬 탕은 조금 짰지만 맛은 좋아 두 사람은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반 그릇 정도 먹었을 때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둘은 머리가 어지럽다 싶더니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면서 그대로 탁자 위에 엎어졌다. 그 바람에 두 사람 앞에 놓여 있던 밥그릇도 함께 엎어졌다.
엽연채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엎어진 밥그릇을 원상태로 뒤집어 놓았고 마른 천으로 탁자 위에 쏟아진 국물을 닦았다. 국물이 흘러 두 사람 몸에 묻으면 감기에 걸릴 테니까.
엽연채는 침상 쪽으로 달려가 이불 두 채를 가져오더니 두 사람 몸에 덮어 줬다. 그러곤 미리 준비해 둔 작은 보따리를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방금 전 소전이 와서 보고를 올렸을 때 빈틈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모두 입산한 게 아니라면 어째서 여양이 정보를 전달했으니 안심하라는 내용의 서신을 인편에 보내지 않았단 말인가?
그러니 분명 여양은 어떠한 이유에서 동우산에 도착하지 못했고, 주운환은 이미 입산했을 것이다.
여기에 방금 전 허겁지겁 떠나던 주씨 가문 군사들의 발걸음 소리까지 들었으니, 엽연채는 주운환에게 일이 생겼다는 직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분명 자신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을 것이고 혜연과 청유도 마찬가지이리라.
하지만 자신은 가야만 했다. 머릿속에는 오로지 주운환을 만나고 주운환을 찾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혜연과 청유를 기절시킬 수밖에 없었다. 엽연채에겐 마취약이 있었다. 이 마취약은 그들이 집을 떠날 때 제민이 구입하라고 했던 약으로, 한 사람당 한 개씩 가지고 있었다. 제민은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다면 마취약이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쓰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지만.’
하여튼 얼른 나가야 하는데, 밖은 나머지 주씨 가문 군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정문으로 나갈 수 없으면 담을 오를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