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8화
잠시 후, 그녀는 방으로 돌아왔고 매화는 안으로 들어오는 엽연채를 보더니 얼른 다가가 환복을 도와줬다.
엽연채는 탑상에 엎드리더니 선반에서 한 무더기의 지지를 꺼냈다.
혜연은 그 비둘기를 작은 주방에 가져다준 후 손을 깨끗이 씻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엽연채의 진지한 모습을 보더니 함께 서책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렇게 반나절을 열심히 살펴봤지만 ‘동우산’이라는 곳은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때, 청유가 쟁반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쟁반 위에는 비둘기탕이 올려져 있었다.
“마님께서 몸소 잡은 사냥감으로 만든 요리가 완성됐습니다. 절반은 양념을 발라서 굽고 있어요!”
그녀는 미소를 띤 채 한쪽에 놓인 찻상에 탕을 올려놓았다.
물론 비둘기 같은 건 보기 드문 식재료가 아니었다. 하지만 엽연채가 잡았다는 점이 대단히 특별했다. 그들은 바로 이 즐거움을 맛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엽연채는 무덤덤한 눈으로 청유를 힐끗 볼 따름이었다.
“우선 거기 두거라.”
청유는 그녀의 무심한 표정을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마님, 뭘 그렇게 열심히 보시는 거예요?”
“난 지금…….”
엽연채는 말을 잇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자신이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건가 싶기도 했다.
“며칠 전에 서책에서 동우산이라고 불리는 곳을 봤던 것 같아. 아주 재미있는 곳처럼 보였는데 어디에 있는 곳인지 고새 까먹었단다.”
“에?”
청유는 시원하게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마님께서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건가 했는데, 바깥나들이를 하시고 싶었던 거군요! 하지만 지금은 날씨도 너무 춥고 또 곧 있으면 새해를 맞이해 산적들이 출몰하는 시기잖아요. 나들이를 가시려거든 나중에 나리께서 돌아오시면 함께 가세요.”
“그냥 일단 찾아 놓으려는 거야.”
엽연채는 대꾸하며 검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찾을 게 뭐가 있으세요? 놀기 좋은 곳이 얼마나 많은데요. 굳이 먼 동우산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요? 게다가 그곳은 깊은 산이고 숲이 울창해서 산짐승과 독사도 많은걸요.”
청유의 말에 엽연채는 깜짝 놀랐다.
“동우산에 대해 알고 있니?”
“그럼요. 저희 고향에도 동우산이 있어요.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산이 아니라면 말이죠.”
청유와 소월, 매화는 엽씨 집안 종복이 낳은 자식이 아니라 그들이 여덟 살쯤 됐을 때 집에서 사들인 여종들이었다.
“그래?”
엽연채는 얼굴에 기쁜 빛을 띠었다.
“그러고 보니 네 고향이 어디인지 물어본 적이 없었구나.”
“수주須州의 흑합촌黑合村입니다.”
청유는 답하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사람에게 노비로 팔려 온 사람들은 비인간적이고 비참한 어린 시절을 보내기 마련이었다. 청유 역시 본인의 과거를 언급하는 걸 극도로 꺼렸었다.
“수주?”
엽연채는 동우산은 모르지만 수주가 어딘지는 알고 있었다.
“수주는 명주와 인접한 곳이 아니더냐?”
“맞아요!”
청유가 고개를 끄덕이자 엽연채는 마음이 조금 불안해졌다.
“어제 대복이가 비적들이 명주에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부군도 그쪽에 계시고.”
혜연은 멍한 얼굴을 했다가 이리 대꾸했다.
“마님, 너무 깊이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엽연채는 서신이 주운환과 관계가 있다고 의심하는 것이었다.
정말로 주운환과 관계가 있다면 이 서신은 누구에게 보낸 것이란 말인가?
현재 상황은 비적 떼의 두목이 주운환에게 쫓겨 이리저리 도망을 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서신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거짓으로 도망침. 동우산東牛山으로 유인하면 지원군이 있음.」
도주해야 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비적일 것이다. 그럼 유인되는 사람이 주운환이란 말인가? 이 서신은 비적들이 저희끼리 보낸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면 비적이 도망치는 척 주운환을 동우산으로 유인하면, 매복하고 있던 지원군이 합세해 반격을 가할 것이라는 내용으로 읽혔다.
혜연도 조금은 걱정이 됐다. 하지만 엽연채가 억지로 관련을 짓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아무래도 너무 딱 맞아떨어지니 말이다.
“보러 가야겠다.”
엽연채는 도저히 침착하게 있을 수가 없었다. 이 내용이 거짓이고 자신이 부질없는 짓을 하는 것이라면 그건 얼마든지 괜찮았다. 그러나 만약 사실이어서 이 일로 인해 주운환에게 무슨 변고가 생긴다면 어찌한단 말인가?
혜연은 깜짝 놀라며 만류했다.
“마님, 어떻게 보러 가시겠다는 거예요? 차라리… 이 일을 태자 전하께 넘기세요!”
지금 주운환은 태자와 적이기는 하나 태자는 그 사실을 모르며 주운환의 도움을 받고 있으니, 분명 주운환을 보호하려고 할 것이다.
“그건 안 된다.”
엽연채는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
“난 태자의 머리를 믿지 않아…….”
혜연은 입꼬리를 실쭉거렸다. 확실히 태자는 큰 지혜를 갖춘 사람은 아니었다.
더구나 지금 태자는 의기양양해하고 있었다. 대세와 대권을 손에 다 틀어쥐었기에, 황제가 붕어하기만 하면 바로 제위에 오를 수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게다가 태자는 전에 주운환을 암살하려고도 했었다. 그러니 주운환을 중용하려는 마음보다 질투심이 그의 속내에서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미루어 알 수 있었다.
만약 태자가 지나치게 자만한다면 주운환이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지금 서노의 금도 대장군은 이미 죽었고 남쪽 오랑캐들도 항복했으니 주운환이 꼭 필요치 않다고, 장수야 천천히 육성하면 그만이라고 말이다.
그 김에 주운환의 아내인 자신까지 차지하려 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겠는가.
“마님, 지금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 거예요?”
청유가 놀라서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엽연채는 조금 새파란 얼굴로 청유를 쳐다보며 말했다.
“바깥나들이를 가고 싶구나.”
“아…….”
청유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렸다.
“마님,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곧 있으면 새해잖아요.”
“아니, 반드시 가야 한다.”
엽연채는 이미 결정을 내렸다.
“동우산에 갈 것이다. 청유 너는 혜연이와 함께 나를 따라오거라. 음… 그리하는 걸로 하
자꾸나.”
“저희 단둘만요? 사람들을 더 많이 데려가시지요…….”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서는 안 된다.”
엽연채는 손가락을 입술 위에 댄 채 당부했다.
“남들에게는 별장에 놀러 간다고 말하자꾸나.”
엽연채가 고집을 부리자 청유는 화들짝 놀랐지만, 상전에게 감히 더 뭐라고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어째서인지 혜연 또한 엽연채를 말리지 않았다.
사실 혜연은 엽연채를 뜯어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엽연채가 괜한 걱정을 한 게 아니라면, 만약 이 일이 사실이라면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혜연은 감히 그 결과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엽연채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한 명을 더 떠올렸다.
“제민에게도 물어보자꾸나.”
혜연은 두 눈을 반짝이며 동조했다.
“오, 좋아요! 정말 가실 생각이라면 제민 소저와 동행하시면 좋을 겁니다.”
제민은 어릴 때부터 세상을 떠돌며 먹고살았다. 노점을 펴고 장사도 해 봤고 안 해 본 게 없었으니 그녀보다 더 적합한 동행자는 없을 것이다.
“어서 말을 전하러 가 보렴.”
엽연채는 한시가 급해 혜연을 재촉했고 혜연은 서둘러 문밖으로 나갔다.
“마님, 비둘기탕 좀 맛보세요.”
둘만 남자 청유가 다시 이리 권했다. 엽연채는 마음이 조급했지만 딱히 뭔가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 일단은 탕을 마셨다.
제민이 진서후부에 왔을 때 시간은 이미 정오가 되어 있었다. 엽연채는 먼저 그녀와 식사부터 하고 하인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냈다.
“아, 먼 곳으로 가려는 거야?”
사정을 들은 제민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별것 아냐. 밖은 상상하는 것만큼 그렇게 무서운 곳이 아니거든. 열두세 살쯤에 장신구를 전매轉賣(산 물건을 다시 되팖)도 했는걸. 한 주州에서 다른 주로 자주 넘어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 혼자 달구지를 몰고 오가곤 했어.”
“그래?”
엽연채는 그 말에 두 눈을 반짝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밖에는 불순한 마음을 품은 사람들도 꽤 있어. 그래도 변장만 잘하면 별문제 없을 거야.”
제민은 위험을 피할 방법도 제시했다.
두 사람은 방 안에서 한나절 이상 속닥거렸고, 어느덧 저녁밥을 먹을 시간이 되자 석식도 같이 했다. 그런 뒤 엽연채는 집안의 여종들을 전부 불러 모았다.
“내일 민이와 향불을 피우러 외출할 것이다. 혜연과 청유를… 데리고 갈 거고 보름 동안 사찰에서 지낼 것이다! 추길아, 넌 여기서 집을 잘 보고 있거라.”
“예.”
추길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그녀는 외출하는 게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엽연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고, 제민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진서후부에서 밤을 보냈다.
* * *
이튿날 아침. 엽연채는 경인에게 마차를 몰게 했고, 청유와 혜연을 데리고 제민과 함께 마차에 올랐다. 이 외에도 진서후부를 지키는 호위병 중 여섯을 동행해 문을 나섰다.
그런데 도성을 나와 법화사를 지나치는데도 마차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앞을 향해 나아갔다.
말을 타고 뒤에서 쫓아가던 호위병들은 어리둥절해서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호위병들을 인솔하는 평해가 말에게 채찍질을 하며 얼른 마차에 따라붙었다.
“마님?”
엽연채는 발을 걷어 올리고 대꾸했다.
“왜 그러느냐?”
“법화사에 가서 향불을 피울 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법화사는 이미 지나쳤습니다.”
“수주에 가서 부군에게 겨울옷을 전달할 것이다.”
“예?”
평해는 아연실색했다.
“아니 됩니다! 밖이 얼마나 어수선한데요. 귀한 몸으로 어찌 그곳까지 가신다는 겁니까? 위험한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합니까?”
“가기 귀찮아서 그러는 게냐?”
엽연채는 검은 눈썹을 추켜세우더니 아름다운 두 눈동자를 무섭게 번뜩였다.
“진서후부에서 뭐 하려고 너희들을 거둔 것 같으냐? 온종일 집안에서 어슬렁거리고 하는 일 없이 농땡이만 부리며 술이나 마시고, 그러다 보면 하루가 다 가지 않느냐?”
평해는 깜짝 놀라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닙니다. 마님께서 오해하신 거세요.”
“너희들의 임무는 바로 주인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깥의 위험을 두려워하는 것이냐? 위험하다면 너희들의 능력으로 그 위험을 제거하고 주인을 빈틈없이 보호하면 된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냐?”
엽연채는 매서운 목소리로 그들의 역할을 일깨웠다.
“예!”
평해는 몸을 떨더니 얼른 대답했고, 엽연채는 그제야 만족스러워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평해는 과거에 화물 호송원이었기 때문에 지리 등에 꽤 박식한 편이었다.
“수주에 가신다고 하니, 그럼 속도를 더 내겠습니다. 우선 가까운 곳에 있는 주 두 개를 지날 겁니다. 그리고 명주 부근에 도착하면 아무래도 어수선할 테니 그곳에서는 변장을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더욱 안전할 겁니다.”
“알겠네.”
엽연채는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가자꾸나.”
“그럼 여정이 고되어도 좀 참으셔야 합니다.”
평해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