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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538화 (538/858)

제538화

온씨는 진서후부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튿날 아침식사를 한 뒤 엽연채와 함께 마차를 타고 추씨 가문 저택으로 돌아갔다.

진시쯤이 되자 매파 고씨가 미소를 지으며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엽연채를 보더니 놀랍고도 기쁘단 듯 눈을 빛냈다.

“어유! 진서후 부인이 아니십니까? 오랜만에 뵈옵니다.”

“그렇게 예의 차릴 것 없네. 앉게.”

엽연채가 인사를 받자 매파 고씨는 하좌에 놓인 의자 끝머리에 걸터앉았다.

“좋은 혼처를 좀 찾아 왔는가?”

“예, 그럼요.”

온씨의 질문에 매파 고씨는 웃으며 자신했다.

“많습니다! 엽 공자는 인물이 빼어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지 모릅니다.”

온씨는 허허 웃었다. 사실 전에 주운환이 출정하면서 앞날을 점칠 수 없게 됐을 때도 매파 고씨를 불러 엽균의 혼처를 찾아달라고 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대부분 엽균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엽씨 가문은 몰락했고 엽균은 불구가 된 절름발이이며 머리도 정상이 아니라고 했다. 외실을 위해 친어머니를 곤경에 빠뜨린 전적이 있으니 말이다.

만약 외실이 그를 해하지 않았다면 그는 그 외실과 여전히 한통속일 테니, 한마디로 엽균은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하는 천치인 셈이었다. 그런 자에게 딸을 시집보내는 건 그야말로 불구덩이로 밀어 넣는 것과 다름없는 일인데, 누가 그를 원했겠는가?

그래서 그를 원하는 사람들은 전부 입이 삐뚤어지거나 사시인 사람들이었다.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는 혼처를 구할 수 있었지만 일반 백성들 중에서도 좋은 집안의 여식들은 그다지 원치 않았다. 아무래도 엽균은 다리가 심하게 망가져 걸을 때 몹시 흉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씨는 할 수 없이 엽균의 혼사는 제쳐 두고 다리부터 제대로 치료받게 했다. 완치는 무리더라도 적어도 걸을 때 흉해 보이지 않는 정도가 되도록 말이다.

치료는 꽤 성공적이어서 엽균은 여전히 절뚝거리지만 그래도 예전만큼 흉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온씨는 그가 크게 환영받지는 못하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지금 매파 고씨가 원하는 상대가 많다고 말한 것이었다. 엽균이 주운환의 손위 처남이란 사실이 크게 작용한 게 틀림없었다.

“병부시랑兵部侍郞의 서녀인 셋째 따님이 있고요. 오성병마사五城兵馬司 부지휘관의 여덟째 따님도 있습니다.”

고씨는 많은 소저들을 소개해 줬지만 엽연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고 온씨도 난처한 표정을 지을 따름이었다.

주운환이 지금 대세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수많은 사람들이 주운환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만 방법을 찾지 못했는데 지금 엽균이 그 돌파구가 되어 준 것이었다.

이런 혼사는 엽균을 마음에 들어 했다기보다 주운환을 마음에 들어 한 것이었다. 온씨와 사돈을 맺게 되면 주운환의 친척이 되는 것이니 목적성이 다분했고 나중에 주운환에게 이런저런 일들을 도와달라고 요구할 게 분명했다.

온씨는 이런 생각을 하자 매파가 가져온 혼처들을 반길 수 없었고 주운환에게 폐를 끼칠까 봐 걱정스러웠다. 하여 온씨는 그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만 말했다.

“일단 놔둬 보게. 한 번에 너무 소개를 많이 받았으니 꼼꼼히 살펴봐야겠네.”

“물론 그리하셔야죠.”

고씨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혼인은 대사大事인데 어찌 어린애 장난처럼 하겠습니까? 찬찬히 살펴보신다고 하니 그럼 소인은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부인께서 마음에 드시는 소저가 있으면 소인에게 알려 주십시오.”

“알겠네.”

엽연채는 미소를 지으며 온씨 대신 대답했다.

“어머니, 배웅해 주고 올게요.”

온씨는 그리하라고 대답했고 엽연채는 매파 고씨와 함께 문을 나섰다. 수화문을 나서면서 엽연채는 소매 안쪽에서 그림 한 장을 꺼냈다.

“이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매파 고씨는 어리둥절해하더니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조금 낯이 익기는 한데… 잘 모르겠습니다. 너무 흔한 얼굴이라서요.”

“아, 알겠네. 고맙네.”

엽연채는 그리 말하며 작은 은덩이를 꺼내더니 매파 고씨의 손에 쥐여 줬다. 고씨는 얼른 미소를 지으며 은덩이를 받았고, 이에 엽연채는 안심했다. 고씨는 입이 무거운 사람이기에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할 리가 없었다.

‘마당발인 고씨도 오 마마의 신원은 모른다 이거지…….’

엽연채는 적잖이 실망했다.

태자비의 일을 마음에 품고 있는 그녀는 온씨의 거처에서 하룻밤만 보냈다.

이튿날 정오. 엽연채는 점심을 먹고 바로 그곳을 떠났다. 가는 길에 경인에게도 소식을 물어봤지만 그쪽도 아무런 수확이 없다 하니 엽연채는 깊은 수심에 잠겼다.

마차는 덜덜덜 소리를 내며 추씨 가문을 나와 장명가를 지나가고 있었다.

엽연채 맞은편에 앉은 추길이 먼저 입을 뗐다.

“마님께서 쓸데없는 걱정을 하시는 겁니다. 오 마마는 그저 마님의 생김새에 관심을 좀 가졌던 거겠죠. 오 마마의 아래턱에 있는 점도 나고 싶어서 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걸로 사람을 의심한다면 얼굴에 상처 또는 반점이 있거나 입이 삐뚤어지거나 뻐드렁니가 난 사람은 더욱 의심스럽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혜연이 이렇게 말했다.

“얼굴이 사내 같기는 했잖아. 물론 사내처럼 생긴 여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만. 전 마마의 딸처럼 말이야.”

“사내라면 왜 아직도 못 찾은 건데? 어쩌면 오 마마는 처음부터 태자부를 나가지 않았는지도 몰라. 진짜 태자비를 모시는 마마인 거지.”

추길의 반박에 엽연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육감은 이 일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단번에 단서를 찾아내지 못했으니 난처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한다면 도리어 곤란에 처할 위험도 있었다.

근래 날씨는 점점 더 추워졌고 눈도 자주 와 큰길에는 눈얼음이 살짝 쌓여 있었다. 길이 미끄러워 경인은 마차를 천천히 몰았고, 그에 주위를 구경하던 추길은 책방을 하나 발견했다.

“마님, 저쪽에 책방이 있습니다. 들러서 서책을 고르실래요?”

추길의 제안에 엽연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경인에게 마차를 멈추라고 했다.

그녀는 서점에 들어가 대략 이각 정도 서책을 고른 후 화본을 서너 권 들고 문을 나섰다. 그런데 멀리서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진서후 부인! 진서후 부인!”

엽연채가 고개를 돌려 보니 사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부인이 그녀 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다름 아닌 매파 고씨였다.

“어머, 어머. 그러잖아도 부인을 찾아뵈려는 참이었는데 어떻게 또 이렇게 마주쳤습니다!”

고씨는 엽연채를 급히 끌어당겨 책방과 주루 사이에 난 작은 골목으로 끌고 가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본론을 꺼냈다.

“진서후 부인, 어제 소인에게 초상화 한 장을 보여 주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엽연채는 두 눈을 반짝이더니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인가? 설마 어떤 정보라도 얻은 겐가?”

“그럼요!”

고씨는 그리 말하며 이상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부인께서 그자를 찾으시려는 걸 보니 분명 중요한 일이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상이 머릿속에 좀 남아 있는 것도 같은데, 어제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침상에 누우니까 갑자기 뒤늦게 생각이 난 겁니다. 전에 그자를 본 적이 있습니다. 소인이 아는 사람이에요.”

“누군가?”

엽연채는 흥분했다.

“그 사람은… 그림을 그리는 화공입니다!”

매파 고씨는 그리 말하며 버들잎 모양의 가늘고 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화공? 초상화를 그리는 사람인가?”

엽연채는 되물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뭐 별일이라고.’

가장 흔한 사람들이 바로 그림을 그리는 화공들이었다. 하다못해 자신조차도 그림을 곧잘 그리지 않는가. 태자비가 굳이 화공에게 여장까지 시켜 이편을 주시하게 할 필요가 무어 있단 말인가?

“그렇게도 볼 수 있습니다만…….”

고씨는 또다시 이상한 표정을 짓더니 엽연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자가 그리는 그림은 평범한 초상화가 아니라… 춘화도입니다!”

엽연채는 순간 멍해졌고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뭐라 했는가? 춘화도?”

이어 그녀의 조그만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표정이 매우 어두워졌다.

“네에?!”

곁에 있던 추길은 기함을 했다.

‘추잡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어!’

오 마마가 실은 춘화도를 그리는 사람이었다는 말인가? 그럼 일부러 집에 찾아와 엽연채를 뚫어지게 쳐다본 게 대체 어떤 의도에서였겠는가?

생각을 하던 엽연채는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전후 사정을 살펴보니 태자비가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정말로 태자비다웠다. 전과 마찬가지로 음흉하고 비열했다.

전에는 태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자신을 태자의 침상으로 보내려고 했고, 이제는 거슬리는 사람을 제거하기 위해 자신을 모해하려고 했다.

과연. 태자비는 역시 얌전히 앉아만 있을 인물이 아니었다.

태자비는 주묘서를 제거하는 데 성공해도 엽미채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적을 힘겹게 물리쳐 놓고 뭣 하러 또 다른 적을 자신 앞에 데려다 놓겠는가?

태자비는 성동격서의 전술을 쓰고 있는 것이었다. 입으로는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우리 모두 좋은 거라며 협력하자고 했지만, 사실은 영원히 후환을 제거하려는 생각이었다.

“부인… 괜찮으십니까?”

고씨는 엽연채의 음랭한 얼굴을 보더니 몸을 떨었다.

‘방금 이야기한 게 어떤 큰 문제랑 관련이라도 된 걸까?’

“괜찮네.”

엽연채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더니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가볍게 예를 표했다.

“알려 줘서 고맙네.”

고씨는 엽연채의 과분한 대우에 놀랍고도 기뻐하며 얼른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

“아유, 어찌 이러십니까? 다른 사람의 일이면 저도 관여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주 장군님은 저희 대제의 영웅이시고 부인도 너그럽고 인정이 많은 분이시잖습니까.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면 당연히 손 놓고 보고만 있으면 안 되죠.”

고씨는 그리 말하며 크게 탄식했다. 엽연채가 춘화도를 그리는 사람을 찾고 있다니, 속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여인이 이런 사람과 엮이는 건 아무튼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이 떠오르자마자 얼른 이 사실을 알리러 온 길이었다.

“제가 비록 매파라고는 하나 귀족분들을 대상으로 일을 해서 그런 사람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들은 이야기는 조금 있습니다.”

고씨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보탰다.

“실명이 뭔지는 잘 모르지만, 그쪽 사람들은 그자를 오춘이라고 부릅니다. 돈 몇 푼이면 무슨 짓이든 하는 불량배랍니다.

암암리에 그런 그림을 그리는 자들이 많은데 그 오춘이라는 자가 특히 유명합니다. 그림이… 음… 사람들 모두 그자가 그림을 생생하게 그린다며 칭찬을 합디다. 보고 나면 또 보고 싶게 그린다고 하더군요. 여하간 그쪽에서 이름이 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자 엽연채의 표정이 더욱 차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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