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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506화 (506/858)

제506화

주묘서가 출가한 날, 조앵기가 떠난 후 엽연채와 주묘화 등도 태자부를 떠날 준비를 했다.

그들은 마차와 말을 세워 둔 태자부의 정원으로 향하다가 강심설과 주비양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

엽연채는 자신도 모르게 그들 부부를 한 번 쳐다봤다. 강심설은 변함없이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오늘은 싸늘한 분위기도 조금 느껴졌고, 주비양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셋째야, 너희 부부는 바로 진서후부로 돌아갈 거지?”

주비양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주운환이 대답을 하려는 찰나, 엽연채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할머님을 뵌 지 오래되어 나온 김에 할머님을 뵙고 가려고 합니다.”

주비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에 올랐고 강심설은 주학해를 안고 주묘화와 함께 마차에 올랐다.

엽연채가 본인들의 마차를 타려고 하자 추길은 얼른 등받이가 없는 걸상을 내려놨고, 엽연채는 걸상을 밟고 마차에 올랐다. 주운환도 따라 마차에 오르려 하는데 추길이 말했다.

“셋째 나리께서는 말을 타지 않으시나요?”

“안 탄다.”

주운환은 냉담한 눈빛과 함께 그리 대꾸하고는 마차에 올라 엽연채 옆에 앉았다.

추길은 입을 살짝 오므렸다. 이 상황에 자신까지 마차에 오르기는 곤란하니 하는 수 없이 경인과 함께 마부석에 앉았다. 경인이 말채찍을 가볍게 내리치자 마차는 천천히 태자부 밖으로 나갔다.

마차 안, 주운환이 먼저 운을 뗐다.

“부인, 도성 북쪽엔 왜 가려 합니까?”

“방금 전에 할머님을 뵈러 간다고 말했잖아요. 그뿐만 아니라… 큰아주버님 일도 여쭤보고 싶어서요.”

“큰형님 일이라니요?”

주운환이 어리둥절해하며 다시 묻자 엽연채는 강심설과 갈란 군주 사이의 일을 이야기해 줬다. 그러자 주운환이 날카로운 눈썹을 살짝 추켜세웠다.

“그 갈란 군주는 전에 큰형님과 함께 금동옥녀金童玉女(도가에서 선인을 시중드는 동남·동녀를 뜻하기도 하나 여기서는 금실이 좋은 부부를 일컫는 말임)라고 불렸습니다. 그런데 주씨 가문이 몰락하자 군주가 바로 형님을 버렸습니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 너무 우스운일이군요.”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엽연채가 코웃음을 치며 동조하자 주운환이 말했다.

“내가 큰형님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마차는 한참이 지나서야 마침내 도성 북쪽으로 돌아왔다. 마차는 주씨 가문 동쪽 측문으로 들어가 멈춰 섰다.

사람들은 각자 마차에서 내렸고 주비양은 말고삐를 잡고 말을 멈춰 세운 후 곧장 수화문을 지나 자신의 처소로 향했다. 그에 반해 엽연채 등은 일상원으로 향했다.

그 시각 일상원.

진씨는 사람들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나절을 기다리자 마침내 녹엽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마님, 큰마님 일행이 돌아오셨습니다. 지금 수화문에서 마차에서 내리고 계세요! 아 참, 셋째 나리와 셋째 마님 내외도 돌아오셨어요.”

진씨는 버들눈썹을 추켜세우며 의아해했다.

“음? 진서후부도 정륭가 쪽에 있는데 어째서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 먼 곳까지 돌아왔다는 말이냐?”

옆에 서 있던 정 마마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야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제 큰아가씨께서 태자 측비가 되셨으니 당연히 잘 보이고 싶어 오신 겁니다!”

그 말에 진씨의 입꼬리가 쓱 올라갔다.

잠시 후,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어 발이 걷히더니 엽연채, 강심설, 주묘화가 잇달아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들은 진씨를 향해 함께 예를 올렸다.

“어머님.”

“어머니.”

“그래.”

진씨는 먼저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손에 든 찻잔을 내려놓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셋째 내외는 어쩐 일로 온 것이냐? 너희는 정륭가 쪽에서 살고 있지 않느냐? 굳이 한 바퀴를 빙 둘러서 올 필요가 있느냐?”

엽연채는 검은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왕 돌아온 김에 할머님 곁에 좀 있어 드리려고요.”

진씨는 입을 살짝 오므리며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고는 강심설과 주묘화에게 시선을 향했는데 강심설은 오늘도 역시나 누리끼리한 얼굴에 우중충한 모습을 하고 있어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진씨는 주묘화를 쳐다보며 물었다.

“태자부 쪽은 어땠느냐?”

주묘화는 그녀가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알기에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답했다.

“아주 떠들썩했습니다. 참석한 분들도 전부 권세가였고요. 태자부 전체가 아주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고, 또 들어 보니 지금 큰언니가 지내는 처소 이름도 태자 전하께서 직접 지어 주신 거라고 합니다.”

진씨는 자신의 여식이 총애를 듬뿍 받고 있다는 소리에 웃음꽃을 활짝 피웠다.

“참, 친정으로 인사를 하러 올 테니 준비를 해야겠구나. 넌 어서 가서 준비를 하거라.”

그녀는 그리 말하며 강심설을 쳐다봤고, 이에 강심설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머님… 측비는 친정으로 인사를 오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설령 인사를 드리러 오신다 하더라도 7일 후에나 오실 겁니다.”

진씨의 낯빛이 단박에 어두워졌다. 주묘서의 지위가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결국 첩실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말을 또다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진씨는 부끄럽고 분한 나머지 화를 냈다.

“그걸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느냐? 내가 그걸 모를 것 같으냐? 내가 너보고 준비하라고 한 건 당연히 7일 후에 있을 친정 방문이었다!”

강심설은 새파란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진씨는 방금까지만 해도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는데 다 죽어 가는 강심설의 표정을 보자 기분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녀는 성이 난 목소리로 주비양을 찾았다.

“참, 비양이는?”

강심설은 미간을 구기며 답했다.

“처소로 돌아갔습니다.”

“비양이가 처소로 돌아가는 걸 그냥 보고 있었다는 말이냐? 불러서 함께 오지 않고?”

진씨는 언짢아하며 다그쳤다. 이제 주묘서가 태자 측비가 되어 앞날이 창창하니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바로 주비양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었다. 주비양에게 고위 관직을 주어 천천히 주운환을 뭉개 버리면 가장 좋을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주묘서라는 든든한 조력자가 저를 데리고 함께 날아오르려고 하는데 주비양은 전과 마찬가지로 거들떠보지도 않고 답답하게 굴고만 있었다. 진씨는 아들이 훌륭한 사람으로 거듭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따름이었다.

강심설은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전에도 이랬어요…….”

“전에도? 전이라고 했느냐! 이제 묘서는 측비가 되었고 비양이는 태자 전하의 손위 처남이다. 그런데도 전과 같단 말이냐?”

성화를 부리는 진씨를 한쪽에서 가만 지켜보던 엽연채는 입꼬리를 삐죽거렸다.

‘태자의 손위 처남이라고? 태자비의 형제는 다 죽었나 보지? 그저 측비에 불과한데 태자의 처갓집인 양 굴다니. 그럼 황제 폐하는 비빈들이 그렇게나 많으니 처남들로 도성이 미어터지겠네?’

한편, 진씨는 또다시 강심설을 쓱 훑어봤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지 않는 며느리였다. 전에 주비양과 정혼했던 사람은 정선제의 친손녀인 갈란 군주였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주비양은 몰락한 가문의 여식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그녀는 이런 생각을 하며 다시 엽연채를 떠올렸다. 어떻게 같은 주씨 가문 사내이고 똑같이 아내를 맞이했는데, 셋째 이 빌어먹을 놈은 아내를 맞이한 뒤 하늘 위로 날아오르려 하고 첫째는 아내를 맞이한 후 점점 더 의기소침해지느냐는 말이다.

진씨는 강심설에게 한층 더 불만을 느꼈고 차가운 목소리로 그녀를 힐난했다.

“너같이 재수 없는 걸 아내로 맞이했기 때문에 비양이가 그리된 것이다.”

강심설은 억울해서 눈물이 고였다.

“또 우는 것이냐! 너 때문에 기분만 상했구나. 학해를 데리고 돌아가거라.”

진씨가 성난 목소리로 저를 내쫓자 강심설은 별수 없이 아들을 데리고 그곳을 떠났다.

진씨는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한탄했다. 이제 자신의 딸은 태자 측비가 되었고 집안도 일어섰다. 강심설 따위가 어디 주비양의 짝으로 가당키나 하겠는가?

옆에 있던 정 마마는 좋았던 분위기가 냉랭해지자 얼른 미소를 지으며 주묘화를 쳐다봤다.

“오늘 태자부에서 희곡을 보셨지요?”

“당연히 재미있는 걸 봤죠.”

주묘화는 연회가 얼마나 떠들썩했는지 세세한 부분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해 줬고, 진씨는 그제야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하좌의 권의에 앉아 다소곳이 차를 마시고 있던 엽연채가 입을 열었다.

“어머님, 전 할머님을 뵈러 가 보겠습니다.”

주묘화의 이야기에 흥이 오른 진씨는 엽연채를 상대하고 싶지 않아 손을 가로저으며 나가 보라고 했다.

엽연채가 밖으로 나오자 추길이 얼른 따라붙었고 두 사람은 함께 일상원을 나왔다.

엽연채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청석판이 깔린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는데 추길이 말했다.

“참, 방금 전에 나리와 마님이 함께 마차에서 내리셨는데 나리께서는 어디로 가셨어요?”

“큰아주버님을 찾으러 가셨을 것이다.”

엽연채가 잔잔한 미소와 함께 알려 주자 추길은 옅은 한숨을 쉬었다. 주운환이 큰형을 찾아갔으니 분명 사내들의 일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이따가 바로 집으로 돌아가나요?”

엽연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두 사람은 어느새 공거에 도착했다.

같은 시각, 주운환은 주비양을 찾고 있었다. 주비양은 평소 일이 없으면 백로 정자 쪽에 가서 멍하니 있었기에 주운환은 단번에 그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곳에 앉아 있던 주비양은 저 멀리 주운환이 걸어오는 모습을 보더니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셋째야. 왜 아직도 여기 있느냐?”

“형님, 오늘 태자부에서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었습니다.”

“무슨 이야기?”

주비양은 그다지 흥미는 없었지만 주운환이 이야기를 꺼내니 별생각 없이 반문했다. 그러고는 물가 정자에 놓인 붉은색 의자에 앉은 채 무덤덤한 눈으로 호수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쳐다봤다.

주씨 가문이 일어선 후 주 백야는 돈을 들여 이곳을 제대로 보수했는데, 그 덕에 물이 아주 맑고 깨끗해 유영하는 물고기들도 아주 즐거워 보였다.

주운환은 엽연채가 갈란 군주와 마주쳤던 일을 이야기해 줬다. 주비양은 그 이름을 듣고는 의아해하더니 무덤덤한 목소리로 이렇게만 대꾸했다.

“알겠다.”

주운환은 생각에 잠긴 듯한 그의 모습을 보더니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백로원을 나온 주운환은 곧장 공거로 향했다.

요 며칠 매씨의 몸 상태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다. 엽연채는 그녀가 진씨 등과 얽혀 힘들까 봐 그녀를 후부로 모셔가 함께 지낼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매씨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이곳이야말로 주씨 가문의 뿌리이고 자신은 이곳에서 반평생을 살았는데 어떻게 다른 곳으로 갈 수 있겠는가?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엽연채와 주운환은 함께 진서후부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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