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505화 (505/858)

제505화

하지만 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조앵기가 어디 이런 일을 해 봤겠는가? 밥을 하다가 데어 조그만 손에는 물집이 잡혔고 잠시 후에는 또 옷을 빨다가 물집이 터졌다. 뼛속까지 스미는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있으니 그녀는 고통스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

점심이 되자 할멈은 조앵기에게 딱딱하고 차가운, 소도 안 든 찐빵 하나를 줬다. 조앵기는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지만 배가 너무도 고파 하는 수 없이 꾸역꾸역 찐빵을 씹어 삼켰다.

저녁이 되자 조앵기는 다시 그 조그만 집으로 쫓겨나 그곳에서 잠을 청해야 했다. 그녀가 입고 있던 좋은 옷은 이미 할멈이 가져간 후였다. 지금 그녀가 입고 있는 건 올이 굵은 삼베옷이라 옷이 살갗에 닿을 때마다 가려웠다. 또 벼룩까지 달려들었으나 그녀는 너무 피곤해서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대문이 또 ‘쾅’ 소리를 내며 열리더니 할멈이 새카맣고 조그만 대바구니를 들고 들어왔다. 바구니 안에는 실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이 실을 전부 낙자로 만들어 놓거라.”

할멈이 싸늘한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았다.

“공으로 먹고 마실 생각은 하지도 말거라! 다 못 만들어 놓으면 내일 밥은 없을 줄 알아.”

그녀는 그리 말하며 밖으로 나가더니 문을 걸어 잠갔다.

조앵기는 별수 없이 실을 들고 낙자를 떴다. 하지만 너무도 고단했던 탓에 겨우 몇 개를 만들고는 잠이 들어 버렸다.

이튿날 이른 아침, 할멈이 안으로 들어오더니 조앵기가 겨우 낙자 세 개를 만들어 놓은 걸 보고는 싸늘한 목소리로 욕을 해 댔다.

“이 쓸모없는 것! 이렇게 간단한 것조차 끝내지 못했다니!”

조앵기는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할멈이 작은 대나무 장대를 들더니 자신의 종아리를 쿡쿡 찔러 대자 그녀는 아파서 눈물을 흘리며 빌었다.

“때리지 마세요! 제, 제대로 해 놓을게요.”

그녀는 그리 말하며 얼른 침상 위에 앉더니 낙자를 만들려고 했다.

“낙자를 만든다는 핑계로 게으름을 피우려고! 어서 일어나 집안일을 하거라. 낙자는 저녁에 다시 만들고.”

할멈은 호통을 치며 조앵기를 잡아 일으켰다.

조앵기는 어제 했던 일을 반복해야만 했다. 빨래를 하고 밥을 짓고 청소를 해야 했고, 할멈이 신발도 주지 않아 그녀는 잔돌에 발이 긁혀 살갗이 찢어져서 말도 못 하게 아팠다.

점심에는 먹을 것도 주지 않았다. 저녁이 되자 조앵기는 밤을 새워서 낙자를 만들었고, 겨우 쟁반 하나가 가득 차게 다 만들어 놓으니 또 아침이 밝았다.

눈도 붙이지 못한 채 조앵기는 또 일을 해야 했다. 조앵기는 무너져 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더는 이곳에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망가야 했다.

조앵기는 모자가 식사를 하는 때를 노려 나무 쟁반을 어깨에 메고 옷을 세탁하려는 척하다가 그들이 방심한 틈을 타 문밖으로 뛰어나갔다. 밖으로 뛰어나오자마자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훅 내쉬었다.

‘아아, 도망 나왔다!’

하지만 몇 걸음 못 가서 돌부리에 걸려 ‘쿵’ 소리를 내며 넘어지는 바람에 무릎이 다 까져 버렸다.

“아이고, 괜찮아요?”

이때, 누군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앵기가 고개를 들어 보니 하늘색 무명옷을 입은, 잘생긴 편인 이십 대 농촌 사내가 있었다.

“흑흑… 저 좀 도와주세요.”

조앵기는 울음을 터뜨렸다.

“제가 인신매매를 당했어요. 웬 할멈이 절 육십 먹은 자기 아들의 아내로 삼으려고 했어요……. 흑흑…….”

“아유, 가여워라. 그런 일이 있었다니. 일단 우리 집으로 갑시다.”

그 사내가 얼른 말했다.

조앵기는 몸을 일으켜 그를 따라나섰다. 한참을 걸어가니 마침내 작고 허름한 마당으로 들어가게 됐고, 사내는 그녀를 집 안으로 들인 다음 물 한 사발과 소 없는 찐빵 두 개를 가져다주었다.

“그쪽은 어디 사람이에요?”

사내가 물었다.

“전…….”

조앵기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 사내는 좋은 사람 같아 보이니 사정을 이야기하면 저를 집으로 돌려보내 줄 성싶었다. 하지만… 자신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조앵기는 그런 생각을 하며 눈앞의 사내를 한 번 살펴봤다. 그는 인상도 온화했고 이야기할 때도 상냥한 투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녀는 그와 지내면 지냈지 양왕과 함께 살고 싶지는 않았다.

조앵기는 소 없는 찐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그 할멈 집에서 먹었던 것보다는 나았지만 그래도 목에서 까끌거리는 느낌이 났다. 그녀는 집에서 먹던 토자포가 그리웠지만 양왕의 차갑고 어두운 얼굴이 떠오르자 토자포 생각은 접기로 했다.

“왜 그래요? 집이 어디예요? 가족은 있어요?”

“제… 제 부군이 세상을 떠나 전 갈 곳이 없어요. 흑흑흑…….”

조앵기는 그리 말하며 눈물을 닦았다.

그러자 하늘색 옷의 사내는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죽었구나! 죽었어!’

“그럼 우선 좀 쉬어요. 이쪽으로 와요.”

사내는 그리 말하며 조앵기를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간 다음 그녀보고 푹 쉬라고 했다. 조앵기는 사내에게 아주 고마워했다. 그는 외모도 준수하고 자신에게 잘해 주며 태도도 온후했다.

조앵기는 침상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잤을까. 갑자기 뭔가가 그녀를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파서 잠이 깬 그녀는 낯선 곳을 보자 납치당했던 일이 떠올라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 하지만 그녀는 금세 마음을 가라앉혔다. 자신은 이미 그 모자 곁을 떠났고 안전했다.

조앵기는 침상에서 내려와 밖으로 나가 응접실로 걸어갔다. 그런데 주방에서 칼 가는 소리가 들려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어 주방에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그녀를 구해 이 집으로 데려온 그 사내의 목소리였다.

“흐흐흐. 이게 얼마 만에 먹어보는 인육이냐!”

“네가 이렇게 야들야들한 걸 데리고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푹 삶으면 분명 맛있을 거야.”

또 다른 사내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조앵기의 머릿속에서 ‘쾅’ 하고 굉음이 울렸다.

‘인육이라고? 날 먹겠다는 거야?’

“삶아 먹으면 냄새가 날 거야. 구운 다음 자연孜然(양고기와 닭고기 요리에 많이 사용되는 향신료)을 뿌려 먹어야 맛있지.”

“아니야! 일단 토막을 내야 돼. 그런 다음 계란물과 밀가루를 입혀 솥에 넣어 지글지글 기름에 튀기는 거지. 다 익으면 이웃집 애도 그 냄새를 맡고 먹고 싶다고 울어 댈걸.”

“그래, 크기도 작지 않으니 여러 가지 요리로 만들자고. 다양한 맛을 즐기게 말이야.”

조앵기는 저를 어떻게 썰고 어떻게 삶고 하겠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더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확 끼쳤다.

조앵기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으아앙’ 울면서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내달렸다. 그렇게 얼마쯤 달려왔을까. 그녀는 양쪽 종아리에서 뻐근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감히 뜀박질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후 길에서 사내와 여인, 노인과 어린아이 등 많은 사람들과 마주쳤지만 하나같이 흉악하고 끔찍하게 느껴졌다.

작은 길을 달려나오자 저 멀리 인마人馬 무리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선두의 사내는 화려하고 귀한 망포 차림이었는데, 싸늘함이 느껴지는 수려한 외양의 젊은이였다. 그의 꼬리가 살짝 올라간 가늘고 긴 눈에선 날카로우면서도 다정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다름 아닌 양왕이었다.

조앵기는 그를 보더니 눈물을 뚝뚝 흘렸다. 양왕은 말을 탄 채 그녀의 옆을 지나가며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숙여 그녀를 한 번 쳐다봤다. 그는 의아한 눈빛을 보이더니 이어 고개를 돌렸고 그녀를 못 본 척하고는 고삐를 잡고선 말을 급히 몰고 떠나려고 했다.

가슴이 철렁한 조앵기는 황급히 그를 쫓아갔다.

“전하……! 흑, 허엉…….”

그녀는 얼른 말 옆으로 걸어갔고 말의 안장을 잡아당기며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양왕은 고개를 숙여 그녀를 쳐다보더니 ‘하’ 하고 비웃음을 흘렸다.

“조앵기?”

“네.”

조앵기는 흐느껴 울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를 갔었느냐?”

“인신매매를 당해… 흑, 팔렸어요…….”

그녀는 목이 메어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양왕은 날카로운 눈썹을 추켜세우더니 이렇게 대꾸했다.

“팔렸다고 했느냐? 네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느냐? 팔려 가서 여종이 되거나 다른 사내의 아내가 되고 싶다고 하지 않았느냐?”

조앵기는 입술을 꽉 깨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싫어요…….”

“하하. 또 도망가려고 할 것이냐?”

“도망가지 않을 거예요…….”

그녀는 그리 말하며 덜덜 떨었다.

“전하, 절 버리지 마세요…….”

양왕은 손을 뻗더니 그녀를 들어 올려 자기 앞에 앉혔다. 그러자 조앵기는 그의 품으로 파고들어 스스로를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

양왕은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꽉 잡고 들어 올리더니 빈정거렸다.

“조앵기. 내가 없으면 넌 죽은 목숨이다.”

“네.”

조앵기는 코를 훌쩍이며 그의 품에 기대어 눈물을 흘렸다. 그러고는 마치 새끼 고양이처럼 아양을 떨었다.

“전하… 절 버리지 마세요……. 흑흑…….”

양왕은 비웃음 섞인 냉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말채찍을 힘껏 내리치자 말은 쏜살같이 앞으로 질주했다. 조앵기는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고 피곤했는지 이미 잠들어 있었다.

양왕부로 돌아오자 양왕은 조앵기를 목간통으로 던졌고, 그녀는 깨끗이 씻은 후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침상 위에 엎드린 조앵기는 그제야 자신이 다시 살아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부드러운 침상 위에 엎드려 있던 조앵기는 갑자기 기운이 쑥 빠졌다. 그래서 한참을 그 자세로 있던 그녀는 문득 바닥으로 뛰어내리더니 침상 아래에서 뭔가를 끌어내려 했고, 잠시 후 조그만 백자 접시를 안쪽에서 빼냈다. 접시 위에는 작은 대바구니가 놓여 있었고 그 안에 그녀의 남생이가 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 남생이는 팔다리와 머리가 전부 밖으로 나와 있었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죽은 것이었다.

조앵기는 남생이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선 얼빠진 표정을 짓더니 결국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아! 내 남생이가…….”

그때, 침실과 소청 사이의 칸막이벽 쪽으로 걸어온 양왕이 두 손에 남생이를 든 채 흐느끼는 그녀를 보더니 빈정거렸다.

“굶어 죽었나 보구나.”

그 말에 조앵기는 말문이 막혔고 더욱더 마음이 아팠다. 자신이 납치를 당한 며칠 동안 남생이가 아무것도 먹지 못해 그만 굶어 죽고 만 것이었다.

밖에 서 있던 언서와 언동은 입꼬리를 삐죽거렸다.

‘전하, 이 이상 더 악랄할 수는 없습니다…….’

남생이는 며칠 굶는다고 죽는 동물이 아니었다. 다른 이유 때문인 게 분명한데 양왕은 기어이 굶어 죽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산산조각 난 왕비의 여린 마음을 또다시 짓뭉개는 짓과 다름없었다.

조앵기는 기운이 쭉 빠지고 풀이 죽었다. 이번에는 더할 나위 없이 의기소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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