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504화 (504/858)

제504화

조앵기와 위 마마가 함께 마차에 오르자 마부는 말채찍을 가볍게 내리쳤다. 마차는 덜덜덜 소리를 내며 문을 나섰다.

조앵기는 창문에 기대어 사람들이 오가는 대로를 쳐다보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칠팔월께의 일을 떠올려 보니 엽연채, 제민과 함께 거리를 거닐며 얼마나 즐겁게 놀았는지 모른다. 언제 또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고 언제쯤 양왕부라는 새장을 떠날 수 있게 될지는 더더욱 알 수 없었다. 벗어날 수만 있다면 여종으로 팔리게 된다 하더라도 좋을 것이다.

“왕비 마마, 창에 기대지 마십시오!”

위 마마가 냉랭한 목소리로 주의를 주었다. 몸을 돌린 조앵기는 정색한 그녀의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이때, 마차가 갑자기 흔들리더니 자리에 멈춰 섰다. 위 마마는 미간을 찌푸리며 밖에 대고 소리쳤다.

“무슨 일인가?”

“마마, 끌채가 부러져서… 더는 움직일 수 없습니다.”

마부의 목소리에는 죄송스러움이 잔뜩 묻어났다.

“무리해서 가게 되면 말을 통제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긴담.”

위 마마는 콧방귀를 뀌더니 창문에 달린 발을 홱 뿌리치고는 마차에서 내렸다.

조앵기가 창문에 달린 발을 걷어 올려 보니 위 마마와 마부 그리고 마차를 따라 걸어오던 네 명의 시녀가 마차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다들 투덜투덜했다.

“왕비 마마, 발을 걷지 마세요!”

위 마마가 고개를 돌려 희고 보드라운 그녀의 얼굴을 보더니 표정이 조금 싸늘해졌다.

“전하께서 화내실 겁니다.”

조앵기는 입을 삐죽거렸다.

“답답해서 그래……. 위 마마, 내려서 서 있게 해 줘.”

그녀는 위 마마가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위 마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려오세요. 하지만 그 자리에 가만히 계셔야 합니다.”

조앵기는 기뻐하며 얼른 마차의 뒷부분으로 갔다.

시녀가 작은 걸상을 바닥에 내려놓자 조앵기의 동해 진주가 달린 자수 신발이 살포시 그 위를 밟았다. 조앵기는 소완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조앵기는 소완과 함께 마차 주변의 요릿집 옆에 서 있었다. 위 마마와 마부는 뭐라고 시끄럽게 떠들어 대며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조앵기는 눈알을 굴려 사방을 힐끗힐끗 쳐다봤고, 일행이 이곳에 멈춰 서서 움직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들이 조금 더 길게 떠들어댔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시간이 늦었으니 잠시 후면 어둠이 깔릴 테고 그럼 이 거리 곳곳에 등롱이 가득 달리고 사람들로 북적거려 근사한 전경이 펼쳐질 것이다.

넋 놓고 거리를 구경하던 조앵기가 정신을 차려 보니 위 마마와 마차가 보이지 않았다.

“어? 다들 어디 갔어?”

조앵기는 어리둥절했다.

“마차를 수리하러 근처 점포에 갔어요.”

소완이 미소를 지으며 알려 주었다.

“왕비 마마, 저희는 이곳에서 기다리면 됩니다.”

“아, 그래.”

조앵기는 더욱 기뻐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보니 주위에는 조그만 상점이 가득했고 온갖 물건을 팔고 있어 시끌벅적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앞쪽 노점상에선 맛있는 냄새가 풍겨 와 조앵기는 입에서 침이 흐를 지경이었다.

“저쪽에선 무슨 음식을 파니?”

조앵기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앞쪽의 한 노점상을 가리켰다. 그러자 소완은 입을 가리며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저기서 군고구마를 팔고 있네요.”

“나 저거 먹고 싶어! 군고구마! 군고구마!”

조앵기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켰고 군침이 확 돌았다.

“안 됩니다.”

“가까이에 있으니 가서 볼래.”

소완이 말리는데도 조앵기는 그리 말하고는 치마를 들고 그쪽으로 뛰어갔다.

“왕비 마마! 왕비 마마!”

뒤에서 소완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앵기는 북적거리는 행인들을 휙 스치고 지나가더니 군고구마를 파는 그 노점상으로 다가섰다. 노점상 주인은 이십 대로 보이는 젊은 사내였는데 화려하고 귀한 의복을 입은 희고 보드라운 피부를 가진 소녀가 다가오자 단박에 얼굴이 붉어졌다.

“뭘 드릴까요?”

“군고구마요!”

“한 개에 2문文입니다!”

조앵기는 순간 멍해졌다. 그녀에겐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앵기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소매 안쪽에서 자신이 만든 낙자를 꺼냈다.

“이거면 2문은 될 거예요!”

노점상 주인은 어리둥절했다. 그녀의 낙자를 보니 솜씨는 그저 그랬지만 실이 아주 귀한 것이라 2문에 그칠 게 아니었다. 주인은 낙자가 그녀의 해사하고 보들보들한 손바닥에 놓여 있는 걸 보더니 배시시 웃으며 받았다. 그러곤 커다란 군고구마를 무려 세 개나 종이봉투에 넣어 그녀에게 건넸다.

“소저, 천천히 드세요!”

조앵기는 봉투를 받아 들고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군고구마를 베어 물었다. 그렇게 군고구마를 씹으며 맞은편 거리로 걸어가느라 그녀는 주위 상황에 대해선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때, 뒤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의 목을 감더니 순식간에 손수건으로 그녀의 코와 입을 막아 버렸다.

“우웁!”

조앵기는 소스라치며 발버둥을 쳤지만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다시 의식을 찾은 조앵기는 어두컴컴한 곳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마차 안에 있다는 걸 금세 깨달았다.

조앵기는 몸을 일으킨 후 게슴츠레한 눈으로 좌우를 둘러봤다. 자신의 시녀들은 보이지 않았다. 발을 걷어 올린 그녀는 그만 깜짝 놀라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 선계仙界 같은 곳은 대체 어디인 걸까?

바깥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곳곳에는 누렇게 변한 들풀과 야생화가 가득했다. 푸릇푸릇했던 풍경이 가을로 접어들며 노랗게 물들어 가는 모습이 그윽한 운치를 자아냈다. 양쪽으론 길게 자란 들풀이 노란빛을 띠어 가고, 먼 곳에 서 있는 단풍나무 몇 그루는 불타오르는 듯한 붉은빛을 뽐냈으며, 길가의 야생화는 가을바람을 타고 향긋한 꽃내음을 풍겨 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하늘은 높고 구름은 옅었으며 저 멀리 내다보니 탁 트인 밝고 투명한 풍경이 두 눈에 들어왔다.

조앵기는 지금껏 도성에서, 그것도 한정된 범위 내에서만 살아왔으니 언제 이런 경치를 본 적이 있겠는가? 그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때, 앞에서 말을 몰고 있는 마부의 말소리가 들렸다.

“이 아가씨는 피부가 보드라우니 꽤 비싼 값에 팔 수 있을 거야.”

조앵기는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팔리게 되다니! 팔리게 되다니! 팔리다니!’

조앵기는 흥분감이 밀려왔다.

‘마침내 양왕부를 떠나게 됐어! 양왕이 없는 곳에 가서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사는 거야! 하하하!’

조앵기는 즐거워하며 창문에 기대어 바깥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봤다. 그녀는 조그만 머리를 흔들며 기쁨에 흠뻑 취해 있었다.

너무 기쁘고 피곤했기 때문인지 조앵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잠이 들었고, 잠시 후 몸이 들려서 옮겨지는 것 같은 느낌이 어렴풋이 들었다. 이어 딱딱한 곳에 눕혀진 그녀는 차갑고 몸이 배기는 느낌에 결국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거슴츠레 떠 보니 앞쪽의 높다란 곳에 위치한 창문에서 한 줄기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주위에는 잡동사니가 가득 쌓여 있으며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났다. 코를 찌르는 곰팡이 냄새에 그녀는 재채기를 했다.

가냘픈 몸 또한 배겼는지 곳곳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조앵기가 허둥대며 자리에서 일어나 보니 누워 있던 곳은 찢어진 멍석이 깔린 작은 침상이었다.

이 침상은 정말 작고 허름했다. 널빤지 몇 장을 두 개의 기다란 걸상 위에 올려 둔 것에 불과해 너무도 초라했다. 그녀가 일어나려고 하자 작은 침상이 휘청거렸고 이에 깜짝 놀란 그녀는 ‘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당장 바닥으로 뛰어내리려 했으나 막상 바닥을 본 그녀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깨끗한 대리석 바닥이 아니라 시커멓고 하도 밟아서 반질반질해 진흙처럼 보이는 바닥이었다. 게다가 신발도 보이지 않았다.

조앵기는 순간 발을 디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때, ‘쾅’ 하고 큰 소리가 울리더니 곧 떨어질 것처럼 흔들리는 나무문이 힘껏 열어젖혀졌다. 이어 칠십 대쯤으로 보이는 깡마르고 시커먼 얼굴의 한 할멈이 그곳에 서서 싸늘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아직도 거기 앉아서 뭐 하는 게냐? 어서 뛰어나와 일하지 않고!”

조앵기는 어리둥절했다. 그녀는 종아리를 침상 밑으로 뻗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신발이 안 보여요.”

“신발 안 신는다고 죽어?”

할멈이 냉랭한 목소리로 다그치자 조앵기는 분홍빛이 도는 입술을 벌리더니 희고 보드라운 작은 발을 바닥 위에 올려놨다. 미끌미끌한 역겨운 느낌이 들었고 또 얼음처럼 차가운 느낌이 전해졌으나 그녀는 이를 악물고는 다른 한쪽 발도 바닥에 내려놓았다.

“따라오거라!”

할멈이 표독스럽게 소리치자 조앵기는 하는 수 없이 그 얼음처럼 차가운 새까만 바닥을 밟고 그녀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 보니 그곳은 웬 다 무너져 가는 허름한 집이었다. 집은 총 세 채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방금 전 자신이 있던 곳은 가장 왼쪽에 있는 제일 작은 집이었고 마당은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었다.

할멈은 조앵기를 데리고 중간에 위치한 집으로 들어갔다. 들어가 보니 안은 더럽고 어수선했으며 육십 가까이 되어 보이는 한 영감이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얼굴은 축 처졌고 한쪽 눈도 먼 그는 음탕한 눈으로 조앵기를 쓱 훑어보고는 흥분에 휩싸였다.

“헤헤헤. 아귀야, 보거라. 네 색시다.”

할멈은 조앵기를 방으로 밀어 넣었다. 조앵기는 의자에 누운 영감을 보더니 낯빛이 하얗게 변했고 놀라서 온몸을 덜덜 떨었다.

“싫어요……. 난 저 사람의 아내가 아니야…….”

“이 망할 계집애가!”

할멈은 그녀를 확 밀쳤다.

“우린 무려 은화 세 냥을 주고 널 사 왔다! 그런데 감히 아내가 되지 않겠다고? 흥. 싫어도 이미 넌 우리 집안사람이다!”

“어머니, 합방은 언제 할 수 있어요?”

“급할 것 없다.”

영감이 안달복달하자 할멈이 이리 말했다.

“보아하니 이 빌어먹을 계집애가 아직 원치 않는 것 같고 너도 움직일 수가 없으니 좀 기다려 보거라. 내가 돈을 모아 약을 사 오면 이 계집애가 알아서 너와 합방을 하겠다 할 거다.”

조앵기는 겁에 질려 몸을 발발댔고 눈물을 짰다.

“뭘 우는 것이냐! 어서 가서 일이나 하거라!”

할멈은 그리 말하며 그녀를 뻥 차 버렸다.

“어머니, 때리지 마세요. 그 앤 제 색시잖아요.”

의자에 누워 있는 영감은 입을 씰쭉거리며 말했다.

“알겠다.”

할멈은 콧방귀를 뀌고는 조앵기를 밀쳤다.

“바닥을 쓸고 밥도 하고 옷도 전부 빨아 놓거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