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501화 (501/858)

제501화

“부적절하다니?”

진씨가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하자 오 주사가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위로 태자비 마마가 계시지 않습니까? 규율을 어기시면 안 됩니다. 규율에 따른 태자비 마마의 혼수가 삼백스물여덟 가지였으니 측비 마마는 이보다 단계를 낮춰야 하므로 이백스물여덟 가지여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혼수의 총액 또한 태자비 마마보다 많아서는 안 됩니다! 당시 태자비 마마는 삼만팔천 냥을 가져오셨습니다.”

진씨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 말은 설령 측비라고 해도 결국 첩실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 주사는 떨떠름한 진씨의 표정을 보고서도 제 할 말을 잘만 이었다.

“그리고… 위에 달린 비단 꽃도 붉은색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분홍색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진씨는 싸늘한 눈빛으로 오 주사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건 황제 폐하께서 맺어 주신 혼사이네!”

“태자비 마마의 혼사 또한 황제 폐하께서 맺어 주셨습니다.”

오 주사는 어이없단 표정을 지었고 이미 속으로는 진씨를 수백 번도 넘게 욕했다.

“셋째야, 네가 오 주사와 잘 이야기해 보거라. 그래도 안 되면 예부와 이야기해 보거라.”

진씨는 주운환을 쳐다봤다.

“황제 폐하와 상의해 볼 수도 있지 않으냐.”

주운환은 냉담하게 그녀를 쓱 쳐다보고는 웃음기 어린 얼굴로 면박을 주었다.

“어머니, 소란 좀 피우지 마세요. 규율에 따라야 하면 따르면 되지, 왜 기어이 유별난 행동을 하시려고 합니까?”

진씨는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녀도 물론 태자 측비가 따라야 할 규율을 알고 있었다. 측비이기는 하나 어쨌든 첩실이니 태자비보다는 아래였다. 고로 혼수를 실어 가는 마차의 수나 혼수의 양이 태자비를 넘어서는 안 되며 비단 꽃도 붉은색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진씨는 자신의 딸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이는 황제가 정해 준 혼사이며, 태자도 그녀를 아끼고 중요시했다. 게다가 얼마 전에 주운환이 불세지공不世之功(세상에 보기 드문 큰 공로)을 세웠으니 황제는 주운환과 주씨 가문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따라서 자신들이 규율을 어긴다고 해도 사람들은 보고도 못 본 체할 것이고, 태자비의 기세도 누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 주사인가 뭔가 하는 6품밖에 안 되는 소관이 감히 이렇게 대놓고 지적을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진씨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주운환도 편을 들어 주지 않을 줄은 몰랐다.

진씨는 체면이 상했다는 생각에 주 백야를 쳐다보며 말했다.

“나리, 셋째 좀 보세요. 절 어머니로 생각하는 게 맞습니까? 묘서를 누이동생으로 생각하는 게 맞느냐고요?”

“어…….”

주 백야는 순간 할 말을 잃었고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도 물론 주묘서가 떵떵거리며 시집가기를 바랐지만 주운환이 몹시 난처해하는 것 같았다.

“어머니 말씀은 저보고 권력으로 상대를 억누르라는 겁니까?”

주운환은 냉소를 지었다.

“고작 측비가 아닙니까. 첩실이 태자비 마마를 누르려는 겁니까? 그럼 어머니는 왜 비 이낭과 백 이낭이 붉은색 옷을 입는 걸 허락하지 않으셨습니까?”

진씨는 말문이 막혔고 울컥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첩실들에게 붉은 옷을 입으라고 허락해 주는 게 말이 되는가.

하지만 주묘서 또한 첩실인 셈이니, 그녀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한쪽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오 주사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는 이렇게 뻔뻔한 사람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진씨는 부끄럽고 분한 나머지 괜히 강심설을 노려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네게 맡겨 놨더니 일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냐?”

강심설은 당연히 얼굴빛이 말이 아니었다.

‘이런 빌어먹을!’

자신에게 일 처리를 하라고 해 놓고 실제로는 진씨 본인이 하더니 이젠 또 자신이 처리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어찌 할 도리가 없으니 강심설은 순순히 장단을 맞추었다.

“지금 가서 꽃을 떼겠습니다.”

“똑바로 하거라!”

진씨가 무슨 낯으로 이곳에 더 머물러 있겠는가? 그녀는 돌아서서 황급히 자리를 떴다.

진씨가 떠난 후, 강심설은 여종들에게 붉은색 비단을 떼어 내고 전부 분홍색으로 바꾸라고 했다. 그런 다음에는 오 주사와 함께 어떤 것은 남겨도 되고 어떤 것은 남기면 안 되는지 상의를 했다. 벅적거리며 바쁜 와중에도 어색함이 느껴졌다.

이때, 안쪽에 있는 방의 창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주묘서였다.

주묘서는 내일 출가하기 때문에 밖으로 나오지 않고 여종 둘과 함께 방 안에서 수를 놓고 있었다.

그때 진씨와 사람들이 밖에서 그녀의 혼수를 옮기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득의양양해진 주묘서는 창문을 살짝 열고 몰래 밖을 쳐다보며 귀를 쫑긋 세우고 바깥 상황을 엿듣고 있었다.

더없이 우쭐해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오 주사가 튀어나와 차질이 생길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오 주사는 자신이 그저 첩실에 불과하며, 그 위에는 태자비가 있다고까지 말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주묘서의 조그만 얼굴이 단박에 새파랗게 질렸다.

물론 그녀도 태자 측비의 지위가 아무리 높다 해도 결국은 첩실이며 붉은색을 입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안 입으면 그만이지. 붉은색 말고도 예쁜 색깔이 얼마나 많은데. 태자 전하께 시집갈 수 있다면 그걸로 됐어.’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젠 자신의 뜻이 이뤄졌는데도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붉은색이 입고 싶었다. 태자비에게 꿀리고 싶지 않았다. 요씨 가문이 어디 주씨 가문에 비교나 되겠는가? 자신이 왜 태자비에게 꿀려야 한단 말인가?

주묘서 곁에서 함께 수를 놓고 있던 춘산은 주묘서의 표정이 좋지 않자 얼른 다독이는 말을 꺼내 놓았다.

“태자 측비도 고귀한 신분입니다. 황실 족보에도 오르고요.”

“맞습니다!”

녹지가 그 말에 동의했다.

“군주는 군주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행동해야 하며, 황실에선 아버지와 아들도 군신 관계가 먼저이고, 부자간의 정은 그다음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이제 아가씨께서 황실의 일원이 되시면 누군들 아가씨를 뵈면 머리를 조아리고 예를 올려야 합니다. 그야말로 체면이 서는 거죠.”

주묘서는 이 달래는 말에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혼수 일이 얼추 마무리 지어지니 이미 미시의 절반이 흐른 후였다.

강심설은 여종들에게 집 안을 꾸미라고 했다. 아침에 진씨가 묶어 놓으라고 했던 붉은색 비단 꽃도 분홍색으로 바꿨고 곳곳에 붙여 놓은 장식들도 전부 분홍색으로 바꿨다.

* * *

이튿날 이른 아침, 주씨 가문 정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손님들은 오늘 분명 주운환이 올 거라고 생각하여 서둘러 주씨 가문을 방문했다. 요즘은 누구 할 것 없이 주운환과 교분을 맺으려고 기를 썼다.

주운환과 주 백야를 비롯한 남식솔들은 남손님들을 대접했고 강심설, 엽연채, 주묘화는 여손님들을 대접했다.

사실 딱히 대접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딸을 시집보내는 친정에서는 연회를 베풀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저 마실 것을 준비하고 탁자에 과일과 간식거리를 좀 준비해 놓은 다음 손님들을 백로원으로 안내하면 되었다.

오시에 가까워지자 여종이 안으로 들어와 엽연채와 주묘화에게 고했다.

“꽃가마가 도착했습니다!”

“가요. 우리도 가서 구경해요!”

엽연채는 생글거리며 주묘화를 잡아당겼다. 어쨌든 정실이 아니니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그녀도 궁금했다.

두 사람이 백로원을 나와 한참을 걸어가자 마침내 주묘서의 처소에 도착했다.

들어가 보니 안은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오른쪽 낭하에 놓인 긴 나무 걸상에 앉아 있는 진씨는 귀부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하하호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아주 즐거워 보였다.

잠시 후, 자줏빛이 도는 붉은색 옷을 입은 매파가 사람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방금 전에 도착했다고 했는데 벌써 처소에 도착했네요.”

주묘화가 낮은 목소리로 의아해하자 엽연채가 그 까닭을 알려 주었다.

“이건 정식 혼인이 아니라 첩실을 들이는 거니까요! 그러니 신랑이 못 들어오게 막는 절차는 생략된 거죠.”

주묘화는 이해가 된 듯 고개를 주억였다.

매파는 방 안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 자줏빛이 도는 혼례복과 같은 색깔의 머릿수건을 쓴 사람이 그녀에게 업혀서 나왔다. 바로 주묘서였다.

사람들은 왁자지껄 떠들며 매파를 따라갔고 잠시 후 대청에 도착했다. 주묘서는 부모님에게 작별을 고한 뒤 다시 매파에게 업혀 대문을 나섰고 분홍색 꽃가마에 올라탔다. 꽃가마는 여덟 사람이 아닌 네 사람이 드는 크기였다.

이어 ‘출발’이라는 소리와 함께 주묘서는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마차를 타고 그곳을 떠났다.

하지만 마차 안에 앉아 있는 주묘서는 울적했다. 태자가 자신을 맞이하러 올 거라고 기대했는데 뜻밖에도 그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측비를 들일 때는 태자가 신부를 맞이하러 오지 않는다는 걸 이미 오 주사를 통해 들었다. 그래도 주묘서는 태자가 자신을 위해 규율을 깨 주리라 생각했기에 실망스럽고 우울했다.

주 백야는 주묘서가 떠나자 돌아서서 ‘허허’ 웃으며 손님들에게 공수했다.

“여러분, 태자부로 가서 연회에 참석하시지요.”

손님들은 우르르 문밖으로 몰려나가 주씨 가문을 떠났다.

주 백야와 진씨뿐만 아니라 엽연채, 주묘화 등 가족들도 모두 마차를 타고 태자부로 향했다.

태자부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모두 마차에서 내려 문밖으로 달려갔고, 한참을 기다리니 마침내 꽃가마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태자부는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정문을 열어 놨다. 하지만 매파의 등에 업혀 마차에서 내린 주묘서는 정문이 아닌 오른쪽의 동쪽 측문으로 돌아서 들어갔다. 측비가 아무리 고귀하다 한들 첩실에 불과하니 정문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것이었다.

태자부로 들어간 후에도 주묘서는 천지 신령과 부모님 등 웃어른에게 절을 올리지 않았다. 태자와 함께 이 의식을 치를 자격이 있는 사람은 태자비뿐이었다. 주묘서는 곧장 신방으로 들어가 침상 위에 내려졌고 태자가 와서 머릿수건을 걷어 주기를 기다려야 했다.

한쪽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주묘화는 저도 모르게 탄식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혼례식이 아닌가? 그런데 신랑 신부가 함께 천지 신령과 웃어른들께 절조차 올리지 못하다니. 그녀는 이런 혼례식을 치르고 싶지 않았다.

이때, 시녀가 한 명 다가오더니 엽연채, 주묘화, 강심설을 데리고 태자부에서 여손님들을 대접하는 매괴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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