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496화 (496/858)

제496화

“오. 완성됐다.”

조앵기가 손에 들고 있던 나비 모양의 낙자가 마침내 완성되었다. 그녀는 귀중한 보물을 바치는 양, 손을 펼쳐 엽연채에게 낙자를 보여 줬다.

“봐 봐. 예쁘지?”

그녀는 두 눈을 반짝이며 엽연채를 쳐다봤다. 어서 자신을 칭찬해 달라는 모습이었다. 엽연채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조앵기를 추켜세워 주었다.

“와. 진짜 예쁘다!”

조앵기는 생글생글 웃으며 신나했다.

“그치, 그치! 이거 하나 팔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이런 낙자 하나는 실 값을 빼고 나면 2문文 정도 벌 수 있을 거야.”

“와. 대단한데!”

조앵기는 그 말을 듣고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엽연채는 입꼬리를 삐죽거리더니 조앵기를 쓱 훑어봤다. 그녀는 구름 문양이 들어간 비단으로 만든 제흉유군을 입고, 머리에는 홍옥으로 장식되고 술이 달린 토끼 모양의 금잠을 꽂았다. 목에는 팔보영락八寶瓔珞 목걸이를 차고 있어 굉장히 부귀한 차림이었다. 탑상 아래에 놓인 자수 신발에조차 동해진주東海珍珠가 달려 있었다.

엽연채는 이런 낙자를 만 개 만들어도 그녀의 신발 한 짝조차 살 수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조앵기가 충격을 받을까 봐 계속 칭찬을 해 주었다.

“정말 대단한걸! 계속 노력하자.”

조앵기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거 봐. 낙자 만드는 법을 배우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 열심히 배워야 돼.”

엽연채는 끊임없이 조앵기의 기운을 북돋아 줬다.

“우선 이런 간단한 것부터 배우고 다른 것들도 천천히 배우자.”

“응응, 배워서 연채 너에게 다 만들어 줄게.”

조앵기는 엽연채의 팔을 끌어안고 조그만 머리를 그녀의 어깨에 기대었다. 그 채로 예의 그 닭살 돋는 말을 꺼냈다.

“나한테 제일 잘해 주는 사람은 연채 너야!”

엽연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날 위해서가 아니라 너 자신을 위해서 만들어야 돼.”

“응!”

조앵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 덧붙였다.

“민이가 말한 것처럼 자기 앞가림은 해야지!”

이 말에 엽연채는 피식 웃어 버렸다.

“어, 그런데 민이가 보이지 않네.”

그래도 양심은 있었는지 조앵기는 제민을 떠올렸다.

엽연채는 입꼬리를 삐죽거렸다. 그녀도 제민을 까맣게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조앵기는 낙자를 만들며 엽연채와 조잘조잘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즐거웠다.

한참을 머무르던 엽연채는 날이 어두워지는 걸 보더니 화제를 바꾸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육 측비가 이곳에서 상을 차리고 손님들을 대접한다고 했어. 너도 같이 가자.”

조앵기가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복숭아꽃이 그려진 커다란 병풍 뒤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 됩니다. 이따 전하께서 이곳으로 돌아오셔서 식사하실 겁니다.”

그 소리에 조앵기는 표정이 굳어지더니 그저 고개를 숙였다.

엽연채가 병풍 쪽을 쳐다봤지만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았다. 바로 조앵기를 항상 따라다니는 위 마마였다.

지난번 어계루에서 봤을 때도 양양은 그녀를 데려와 자신의 머리를 손질하게 했다. 보아하니 그녀는 양왕이 아주 신임하는 사람인 듯했다.

“진서후 부인, 육 측비 마마께서 사람을 보내 부인을 불러오라고 하셨습니다.”

“알겠네.”

위 마마의 말에 엽연채는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돌려 조앵기에게 작별을 고했다.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조앵기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인사했다.

“다음에 또 놀러 와요!”

“네!”

엽연채가 고개를 끄덕이자 조앵기는 두 눈을 번쩍이며 말했다.

“기다릴 거예요! 우리 손가락 걸고 약속해요!”

“왕비 마마!”

밖에 있던 위 마마가 냉랭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양왕부는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 걸 꺼려합니다. 진서후 부인께서는 자신의 신분을 잘 새겨 두십시오.”

그 말에 엽연채는 눈동자를 굴렸다. 아직 형세가 정해지지 않았고 주운환은 표면적으로는 태자 쪽으로 넘어간 상태이니 자신은 양왕부에 자주 오면 안 되었다. 한두 번 오는 거야 일반적인 왕래로 볼 수 있지만, 횟수가 늘어나면 이상하게 보일 것이고 사람들도 의심할 터였다.

엽연채는 옅은 한숨을 쉬었다. 일단은 조앵기에게 이렇게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저도 집안에 일이 많아서 자주 올 수는 없습니다.”

그러자 조앵기의 총총하게 빛나던 눈동자가 확 어두워졌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마마께서는 그동안 열심히 배우고 계세요.”

“그래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조앵기의 눈에는 실망과 아쉬움이 가득했다.

엽연채가 일어선 다음 병풍을 돌자 평소와 마찬가지로 검은 옷을 입고 정색하고 있는 위 마마의 모습이 보였다.

“참, 위 마마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네.”

“소인은 선황후先皇后께서 혼인하실 때 함께 궁에 들어온 몸종입니다. 하지만 마마와 공주 마마께서 동주로 가실 때 종은 단 한 명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소인은 세의국洗衣局로 갔고 전하께서 궁으로 돌아오신 후에야 전하의 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위 마마는 여전히 딱딱한 얼굴로 자신을 소개했다.

“그렇군.”

엽연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옅은 한숨을 쉬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소 황후의 심복이었다. 그래서 양왕이 그렇게나 그녀를 신임하는 것이었다.

엽연채가 밖으로 나오자 시녀 한 명이 그녀에게 길을 안내해 줬고 근처에 있는 정자에 제민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연채야.”

엽연채가 미소를 지으며 한 발짝 내딛자 제민이 밖으로 뛰어나왔고 두 사람은 함께 어호 쪽으로 걸어갔다.

“만났어?”

“응.”

제민의 말에 엽연채는 옅은 한숨을 쉬었다.

“지난번에 만들어 달라고 했던 낙자를 양왕 전하께서 불태워 버리셨다고 하더라.”

제민은 자업자득이라는 식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머리가 비었으니 양왕 전하도 업신여기는 거지.”

“그건 아니지. 앵기는 네 살도 되기 전에 궁으로 시집을 왔잖아. 그러니 앵기가 어떤 성격과 습성을 가졌든 간에 그건 양왕 전하가 만들어 낸 거야. 본인이 그렇게 만들었으면서 사사건건 업신여긴다고?”

엽연채의 반박에 제민은 순간 멍해지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앵기는 원래 미천한 신분이었고 정 황후가 양왕에게 붙여 준 사람이었다. 그러니 양왕이 그녀를 싫어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또한 정선제는 아들을 사랑하기에 양왕이 조앵기를 괴롭혀도 관여하지 않고 그저 내버려 두었다. 궁 안 사람들도 하나같이 세상 물정에 훤한 사람들이라 당연히 간섭하려 하지 않았다.

다른 집안의 아이가 괴롭힘을 당한다면 부모와 친척들이 도와주고 보호해 줄 것이다. 하나 조앵기는 괴롭힘을 당해도 벗어날 방법이 없었고, 심지어 주변 사람들도 양왕이 그녀를 괴롭히는 것을 도와줬다.

그러니 조앵기의 인생은 처음부터 양왕의 손바닥 안에 있었던 것이다. 비유하자면 조앵기는 밀가루 반죽이고, 그 반죽을 어떤 모양으로 빚을지는 양왕이 결정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어호로 향했다.

* * *

진서후부의 이사 기념 연회는 진작에 끝났지만 손님들은 여전히 주운환을 붙들고 이야기를 나눴다.

주운환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벼슬살이를 하면서 이런 교류와 왕래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마침내 모든 손님들이 집으로 돌아가니 날도 저물고 있었다.

주운환은 자신의 처소로 향했다. 앞으로 부부가 지낼 본채는 부부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운연거雲蓮居라고 지었다.

곳곳에는 이미 등롱과 원등院燈이 켜져 있어 온 집 안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운연거로 들어가 보니 다섯 칸의 커다란 본채가 있고 양쪽으로 소이방小耳房이 한 칸씩 있었다. 또 오른쪽에는 초수유랑이 있으며 총 여섯 칸의 커다란 곁채가 있었다.

정원의 왼쪽에는 명자나무 두 그루가 심어져 있고 나무 아래에는 대리석 탁자와 그네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집의 뒤편에는 열 칸짜리 커다란 후조방이 자리했다.

주운환이 안으로 들어가자 여종들이 다가왔다.

“셋째 나리, 돌아오셨군요.”

주운환은 이미 자신만의 부府를 갖게 됐지만 집안 하인들은 그를 부를 때 추길과 혜연이 부르던 대로 불렀다. 후야란 호칭이 영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주인나리라고 부르자니 너무 나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냥 나리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단순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다들 통일하여 셋째 나리라고 불렀다.

“그래.”

주운환은 무덤덤하게 대답하고는 정원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추길은 밖에 있는 여종들이 주운환을 부르는 소리를 듣더니 기뻐하며 얼른 밖으로 뛰어나왔다.

“셋째 나리.”

주운환은 무덤덤하게 그녀를 쓱 쳐다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부인은 아직 안 돌아왔느냐?”

“예, 아직이십니다.”

추길은 그의 뒤를 따라가며 고했다.

“마님께서는 점심 식사를 하신 뒤 제민 소저, 신양 공주 마마 등과 함께 양왕부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저녁 식사를 하신다고 하셨어요.”

주운환은 이미 문안으로 들어섰고 소청으로 가더니 녹나무 원탁 옆에 자리했다.

“넌 왜 가지 않았느냐?”

추길은 어리둥절해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혜연이가 따라갔습니다. 전 이곳에 남아 집을 보고 있고요.”

그녀는 말하면서 주운환에게 차를 따라 주었고 그는 무덤덤한 눈빛으로 그녀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이곳에서 시중들 필요 없으니 나가 보거라.”

추길은 나가란 소리에 어리둥절해했다.

“셋째 나리, 세수 안 하세요?”

“괜찮다. 좀 자야겠구나.”

주운환은 냉담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잔뜩 실망한 추길은 돌아서서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단지에 따뜻한 물을 담아 오더니 어린 여종에게 방 안에 두어 따뜻하게 유지하고 또 그 옆에 놋쇠 대야를 두라며 살뜰하게 신경을 썼다. 주운환이 세수를 하고 싶어지면 바로 물을 쓸 수 있게 해 둔 것이었다.

밖으로 나온 추길은 정원의 명자나무 아래에 앉아 턱을 괴고 멍하니 있었다.

이때, 밖에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엽연채의 웃음소리임을 알아챈 추길은 얼른 그녀를 맞이하러 나갔다.

“마님.”

“그래.”

엽연채는 문으로 들어서더니 돌아서서 제민에게 말했다.

“오늘 저녁에는… 옆에 있는 묵옥헌墨玉軒에서 자.”

“응.”

제민은 하품을 하고선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늦었으니 그녀도 도성 북쪽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엽연채의 집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다.

“제민 소저, 이쪽으로 오세요!”

혜연은 제민을 데리고 문을 나서서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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