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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487화 (487/858)

제487화

엽승덕은 떠나가는 온씨의 모습을 쳐다보며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이때, 분홍색 덮개가 달린 조그만 마차 한 대가 다가오더니 엽승덕 앞에 멈춰 섰다. 이어 발이 걷히더니 살짝 말라 보이는 얼굴이 창밖으로 나와 입꼬리를 올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백부, 힘내세요. 어쨌든 부부이니 재결합할 수 있을 겁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른 게 여인의 마음이거든요. 게다가 두 분 사이에는 아들딸도 있으니 다시 합치실 수 있을 거예요.”

“이채야.”

엽승덕은 그 말을 듣더니 감동스러운 얼굴로 마차 안에 있는 사람을 쳐다봤다. 그녀는 바로 엽이채였다.

장박원 그 빌어먹을 놈은 배은망덕하기 짝이 없었다. 전에 자신이 그를 얼마나 많이 도와줬는데 장박원은 제게 고작 은화 몇 냥만 주었고, 그러면서도 눈썹을 추켜세우고 눈을 부라렸다.

지금 가장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저를 도와주는 사람은 엽이채밖에 없었다. 역시 친조카가 최고였다.

“백부, 어려운 일 있으시면 얼마든지 절 찾아오세요. 제가 힘닿는 데까지 도와 드릴게요.”

엽이채는 그를 쳐다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백부께서 전에 작은 잘못을 저지르기는 하셨지만 자신의 잘못을 알고 고치려 하시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도 백부께서 집으로 돌아오시는 걸 보고 싶습니다. 백부와 백모가 화목하게 지내시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이채야, 고맙다.”

엽승덕은 그녀의 지지에 투지가 더욱 불타올랐다.

“백부께서 꿋꿋이 버티신다면 분명 얻는 게 있으실 겁니다.”

말을 마친 엽이채는 천천히 발을 내렸고 잠시 후 마차는 그곳을 떠났다.

엽승덕은 숨을 들이마시며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갈 거다! 반드시 돌아갈 거다! 이런 빈곤한 생활은 참을 만큼 참았어!’

분홍색 덮개가 달린 작은 마차는 금세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엽이채는 흔들리는 마차에 앉아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독기 어린 눈빛을 번득였다.

‘빌어먹을 계집애!’

자신에게 큰일을 벌일 능력은 없다 하더라도, 엽연채 이 빌어먹을 계집애의 속이라도 뒤집어 놓고 말 것이다.

지난번에 주운환이 엽연채는 남편을 성공시키는 여인이라고 말한 뒤로 자신의 생활은 한층 고달파졌다. 맹씨와 장박원은 그 당시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집으로 돌아온 뒤 저를 쳐다보는 눈빛이 어딘가 모르게 이상해졌고, 마치 이쪽이 역신疫神이라도 된 듯 사람을 몹시 불쾌하게 대했다.

엽연채가 점점 더 성공하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는데, 갑자기 엽승덕 이 역겨운 인간이 엽연채에게 들러붙으려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엽이채는 뛸 듯이 기뻐했다. 다만 그 기쁨을 흠뻑 느끼기도 전에 엽승덕이 쫓겨나 버렸지 말이다.

그래서 엽이채는 몰래 엽승덕에게 돈을 찔러주며 좋은 옷을 한 벌 사 입고 온씨를 유혹해 재결합하라고 부추겼다.

“마님, 앞으로 어떻게 나리를 도와 드려야 할까요?”

맞은편에 앉아 있던 류아가 물었다.

“어떻게 돕냐고?”

엽이채는 버들잎 모양의 눈썹을 추켜세우더니 냉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절개가 굳은 여인은 사내가 치근덕거리는 걸 두려워하는 법이다! 몇 번 더 치근대면 두 사람 사이에는 자식도 있으니 재결합하는 건 시간문제일 게다. 정말로 안 되겠으면…….”

엽이채는 그리 말하며 악랄한 눈빛을 번득였다.

“두 분이 붙을 수 있게 우리가 잘 도와 드리면 되지. 그리되면 평판 때문에라도 재결합하지 않고는 못 배길걸.”

류아는 미소를 지으며 동조했다.

“마님, 좋은 생각이세요.”

엽이채는 옅은 미소를 짓더니 이렇게 말했다.

“전에는 내가 손을 쓴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이젠 알겠어……. 어떤 일들은 손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말이지.”

* * *

한편, 장명가로 돌아온 온씨와 채 마마는 낯빛이 어두워져 있었다.

두 사람은 수화문에 도착한 마차에서 내렸고 채 마마는 머뭇거리며 온씨를 쳐다보다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마님… 재결합 같은 걸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세요?”

그 말에 온씨는 낯빛이 확 변하더니 냉소를 지었다.

“내가 왜 그자와 재결합을 한단 말인가? 내 딸은 훌륭한 사위에게 시집을 갔고 내 아들도 말을 잘 듣고 있네. 내가 왜 엽씨 가문으로 돌아가 아버님에게 이용을 당하고 연채까지 끌어들여야 한단 말인가?”

채 마마는 안도의 한숨을 훅 내쉬더니 이렇게 말했다.

“맞습니다, 마님. 그렇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주인나리는 이기적인 분이십니다. 모든 일들을 자기중심적으로만 보시지요. 둘째 나리 내외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소인배들이죠! 온종일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해칠 궁리만 합니다. 저희가 왜 그런 사람들과 엮여야 한단 말입니까!

정말로 재결합하게 되면 엽승덕이 또 무슨 고약한 짓을 벌이지는 않을까 걱정해야 하고 주인나리와 둘째 나리 내외도 상대해야 합니다. 그 사람들에게 이용당할까 봐 전전긍긍해야 하죠.

지금 저희는 정말로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주인마님과 셋째 마님 등과도 관계를 끊지 않고 가깝게 지내고 있죠. 하지만 그 빌어먹을 인간들하고는 멀리 떨어져야 합니다. 저희에게서 조금의 이익도 취하지 못하게 해야 하고요.”

온씨는 옅은 미소를 짓고는 이렇게 말을 받았다.

“여기서 지내니 아주 홀가분하네. 엽승덕 일은 내가 대응할 수 있으니 연채를 곤란하게 할 필요 없네.”

“예.”

채 마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아가씨가 잘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서자의 아내이니 일이 있을 때마다 아가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되죠.”

그런데 그들이 엽연채를 대신해 자구책을 세우는 사이, 오늘 엽승덕이 벌인 뻔뻔한 일은 이미 엽연채의 귀로 들어갔다.

* * *

궁명헌.

엽연채는 파초나무 아래에 앉아 밤을 까고 있었다. 그녀는 경인의 보고를 듣더니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쯧쯧. 어머니께 오늘 갑자기 일이 생겨 못 간다고 서신을 보내거라.”

“네?”

옆에 있던 혜연과 추길은 깜짝 놀랐다.

추길이 말했다.

“왜 이런 때에 안 가시려고요? 오늘 엽승덕이 마님에게 폐를 끼쳤으니 저희가 가서 마님의 경각심을 일깨워 드려야죠. 조심하시게 말이에요. 안 그러면 엽승덕이 이용해 먹으려고 할 거예요.”

“조심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니?”

엽연채는 코웃음을 쳤다.

“방어만 하는 덴 한계가 있는 법이다! 우린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 손을 써야 할 땐 손을 써야지!”

우연히도 그녀의 생각은 엽이채의 생각과 일치했다.

엽연채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님, 어디 가시려고요?”

추길이 놀라서 물었다.

“장씨 가문에 갈 거다! 가자!”

엽연채는 콧방귀를 뀌고는 밖으로 걸어갔다.

혜연과 추길은 깜짝 놀라더니 어리둥절해서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러다 일단 결국 엽연채 뒤를 졸졸 따라나섰다.

* * *

분홍색 덮개가 달린 조그만 마차가 장씨 가문 저택 안으로 들어와 수화문에서 멈춰 섰다. 곧 엽이채가 류아의 부축을 받으며 마차에서 내렸다.

장씨 가문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답답한 분위기가 섞여 있는 고요함이 느껴졌다. 숨이 턱 막힌 엽이채는 류아의 손을 잡고 서둘러 자신의 처소로 향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대문을 넘어서자마자 크고 화려한 마차 한 대가 안으로 들어와 수화문에서 멈춰 선 것은 모르고 있었다.

그 마차에서 곱고 아리따운 자태를 뽐내는 한 여인이 내렸는데, 다름 아닌 엽연채였다.

“아이고, 후 부인이 아니십니까?”

누군가의 깜짝 놀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장씨 가문 하인이 얼른 다가가 그녀를 맞이했다.

“후 부인, 어서 이쪽으로 오시지요.”

이렇게 엽연채를 안내하는 동안, 눈치 빠른 한 어린 여종이 맹씨의 처소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맹씨는 자신의 방에 앉아서 장만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님, 마님. 진서후 부인께서 오셨습니다.”

“무슨 부인이 왔다고?”

맹씨는 어리둥절해하더니 이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전에는 엽연채를 엽씨 가문 큰아가씨나 주씨 가문 셋째 부인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이 새로운 호칭에 순간 반응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어머니, 연채가 왔군요.”

장만만은 간신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전과 마찬가지로 그늘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엽연채가 왔다는 이야기에 맹씨는 표정이 굳었다. 그녀는 꺼림칙하고 마음이 괴로웠지만 겉으로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어린 여종에게 명했다.

“아, 연채를 말하는 거였구나! 어서 안으로 들라 하렴!”

어린 여종은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재빨리 밖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함박웃음을 띤 엽연채가 여종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오밀조밀한 복사꽃 꽃잎 문양이 들어간 앞섶이 교차하는 수홍색 유군을 입은 엽연채는 대모玳瑁(거북이 등딱지 또는 배딱지)로 장식된 머리 장신구를 꽂고 있었다.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는 아름답고 총명해 보였고, 주위를 둘러보는 그녀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며 생기가 넘쳤다. 보는 것만으로도 득의만면한 모습이란 무엇인지 딱 설명해 주는 느낌을 받았다.

엽연채가 득의양양해할수록 맹씨는 더욱더 심란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경직된 얼굴로 겨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연채야!”

장만만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엽연채를 데리고 하좌의 권의로 가서 그녀를 앉혔다.

“오랜만이야.”

“그러게 말이에요!”

엽연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만만 언니가 안 왔더라고요.”

그녀가 말한 저번이란 주운환의 축하연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하……. 요즘 내가 불경을 보고 있어 조용한 게 좋거든. 그래서 시끌벅적한 자리는 좀 꺼려지더라.”

장만만은 차분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하지만 가지 않은 실제 이유는 연초에 집안에서 베푼 만월연에서 백여언에게 조롱을 당한 데 있었다. 당시 큰 충격을 받았기에 장만만은 더 이상 그런 자리에 참석하고 싶지 않았다. 또 백여언과 마주칠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녀는 아직까지도 그 일을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게다가 이제 주묘서가 태자 측비가 되었으니 장만만은 더더욱 주씨 가문에 가고 싶지 않았다. 주씨 가문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도 않았다.

장만만은 맹씨 옆으로 돌아가 그곳에 앉았다.

“후 부인, 오늘 시간이 났나 봐요.”

맹씨는 하하 웃으며 인사말을 건넸지만 엽연채를 보니 속이 몹시 쓰렸다.

엽연채는 원래 자신의 며느리여야 했다. 엽이채보다 얼굴도 예쁘고 자태도 고울 뿐만 아니라 신분마저 좋았다. 무엇보다 그녀는 ‘남편을 성공하게 만드는 여인’이었으니 말이다.

엽연채는 장씨 가문의 며느리여야 했고 장박원의 아내였어야 했다. 장씨 가문으로 시집와서 장박원을 잘되게 만들어 줬어야 했다. 그럼 장박원이 그녀의 운을 빌려 장원 급제를 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주운환처럼 후야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녀는 다른 집안에 시집갔고 장씨 가문은 엽이채 이 망할 것을 며느리로 들였다.

맹씨는 이 일을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더 마음이 괴로웠다. 그녀는 얼굴에 띤 선웃음조차 유지하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빈말은 해야 했으니, 그 애쓰는 모습이 퍽 이상야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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