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486화 (486/858)

제486화

“집안에 일어난 큰일은 마님께서도 들으셨겠죠. 주씨 가문 첫째 아가씨가 태자부로 들어가 측비가 됩니다. 그래서 더욱 기세등등해졌죠. 하지만 나리께서 후야에 봉해졌고 황제 폐하의 총애를 받고 계셔서 공연히 소란을 피우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온씨는 옅은 한숨을 쉬었다.

“적모 노릇도 쉬운 일은 아니지. 너무 과하지만 않다면 그렇다 치지만 사지로 몰아넣는다면…….”

그녀 또한 정실부인이기 때문에 정실부인이 서출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건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씨는 몹시 악독한 사람이라는 게 분명히 드러났다.

“마님, 걱정 마세요. 좀 있으면 어차피 이사 가는걸요.”

추길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걱정을 덜어 주었다. 분가 이야기에 온씨는 안도의 한숨을 훅 내쉬더니 얼굴이 펴졌다.

“천만다행이구나, 이렇게 좋은 일이 있다니! 이제 주씨 가문 첫째 소저도 본인이 바라던 대로 좋은 곳에 시집가게 되었고. 이건 다 운환이 덕분이니 분가를 하더라도 연채 부부가 주씨 가문과 정실부인 가족들에게 떳떳하겠구나! 분가하고 나면 서로 간섭하지 않고 사는 거지!”

추길은 고개를 끄덕였다.

“참, 운환이 몸은… 괜찮은 거지?”

온씨가 관심이 가득한 얼굴로 화제를 바꾸자 추길의 표정이 굳어졌다. 추길은 온씨가 아이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줄 잘 알았다.

“사실…….”

이젠 엽연채와 주운환이 그동안 줄곧 잠자리를 가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꺼내 놓아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일은 당사자가 말하게 해야 했다. 추길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이전에는 나리께서 출정할 계획을 세우고 계셔서 무예를 연마하느라 그 부분에는 소홀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오셨으니… 분명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그러니 마님, 걱정 마세요.”

온씨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만 나가 보거라!”

그런데 추길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추길아, 왜 그러느냐?”

“이 이야기를… 말씀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추길은 운을 떼 놓고도 속으로 고심을 거듭했다.

“말하지 못할 게 뭐가 있느냐?”

온씨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말해 보거라.”

“그게…….”

추길은 잠시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그게 말이죠. 마님과 나리가 너무 붙어 계세요. 서로 보기만 하면 찰싹 달라붙으시죠. 두 분의 처소에서 그러는 거야 별일 아니지만, 밖에서 그러시다가 다른 사람들 눈에 띄기라도 하면… 사람들이 마님이 몸가짐이 바르지 않고 점잖지 못하다고 말할 겁니다.”

주운환과 엽연채는 함께 문을 나서면 번번이 서로를 잡아당기거나 포옹을 했는데, 집안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흉을 봤고, 특히 진씨를 곁에서 모시는 녹지는 엽연채를 여우 같은 여인이라고 욕했다.

온씨는 추길의 말에 깜짝 놀랐고 방금 전 친밀해 보이던 엽연채와 주운환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기 사람들 앞에서 그러는 건 괜찮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랬다간 확실히 입방아에 오를 수 있었다.

게다가 주씨 가문에는 적모와 그 가족들이 있고 두 사람은 서출 내외이니 안 그래도 미움을 받는데, 행동거지가 점잖지 않다면 그들에게 꼬투리 잡을 거리를 주는 게 아니겠는가?

온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말이 맞다. 네가 언질을 주어서 다행이구나. 알겠으니 이만 나가 보거라!”

“예.”

추길은 그제야 돌아서서 그곳을 떠났다.

잠시 후, 엽연채가 분홍빛을 띠는 흰색 복숭아를 들고 생글생글 웃으며 걸어왔다.

“어머니, 옆집 아주머니께서 복숭아를 주시길래 제가 씻어 왔어요.”

온씨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이고, 우리 딸이 착하기도 하지.”

엽연채는 온씨 옆에 앉더니 복숭아를 들고 작은 칼로 껍질을 벗겼다.

“어머니, 어서 드세요.”

온씨가 복숭아에 칼집을 내 힘을 줘 비틀자 복숭아가 반으로 쪼개졌다.

엽연채가 반쪽을 들고 한 입 베어 물자 복숭아에서 달콤한 즙이 흘러나왔다.

“와, 달다!”

“연채야, 방금 전에 보니 사위와 함께 밖에서 산책을 할 때 계속 손을 잡고 찰싹 달라붙어 있더구나. 자기 사람 앞에서는 별 상관없다만 밖에서는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안 그러면 사람들이 뒤에서 쑥덕거릴 게다.”

온씨가 옅은 한숨을 내쉬자 엽연채는 조그만 얼굴이 살짝 붉어지더니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알겠어요.”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너희들을 질투하는지 모른다. 게다가 넌 외모도 눈에 띄는 편이니 행동이 조금만 점잖지 않아도 정말로 꼬투리를 잡힐 게다.”

온씨의 염려가 이어지자 엽연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복숭아를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시간도 늦었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 보거라.”

온씨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엽연채는 조금 풀 죽은 목소리로 답했다.

“내일 아침에 또 올게요.”

“그래, 그래.”

엽연채는 밖으로 나가더니 잠시 후 주운환과 추길, 혜연을 데리고 와서 온씨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온씨는 그들을 수화문까지 배웅했고, 그들이 마차에 오른 후 그곳을 떠난 다음에야 왔던 방향으로 다시 되돌아갔다.

* * *

마차에 오른 후 엽연채는 잠시 선잠을 잤고 그사이 마차는 집에 도착했다.

주운환은 마차에서 뛰어내린 후 여느 때처럼 손을 뻗어 엽연채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엽연채가 그를 쏘아보더니 스스로 마차에서 뛰어내리고는 그대로 안으로 걸어갔다.

주운환은 어리둥절했다.

‘평소 찰싹 붙어 있던 부인이 갑자기 왜 나를 본체만체하는 걸까?’

주운환은 얼른 그녀를 쫓아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뭐가요?”

엽연채는 그를 힐끗 쳐다보더니 미소를 짓고는 그대로 앞으로 걸어갔다.

여전히 얼떨떨한 주운환은 다시 쫓아가 그녀를 자신의 품에 가두더니 번쩍 안아 들었다. 엽연채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뭐 하는 거예요?”

“뭐가 말입니까?”

주운환은 고개를 숙여 그녀를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이 대꾸했다.

“부인을 안아 본 지 한참 됐으니, 좀 안아 보려고 합니다.”

“됐거든요!”

엽연채는 화를 냈다.

“거짓말, 내 부인은 내가 안아 주는 걸 제일 좋아하는데 말입니다.”

주운환은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살며시 입맞춤을 했다.

엽연채는 그를 흘겨봤지만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그의 어깨에 기대고는 이렇게 말했다.

“여긴 밖이에요……. 이렇게 항상 찰싹 달라붙어 있으면 사람들에게 점잖지 않다는 소리를 들을 거예요.”

“여기에는 남이 없습니다. 다 우리 사람이지.”

주운환은 수묵으로 그린 것 같은 두 눈동자로 그녀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게다가 난 부인이 점잖지 않은 게 좋습니다.”

엽연채는 멍한 표정을 짓더니 조그만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러더니 뿔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고는 그의 어깨에 기대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방 안으로 들어가 나한상 위에 앉았다.

“제가 부인을 난처하게 할 리 없지 않겠습니까?”

주운환의 말에 엽연채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밖에서는 포옹하면 안 돼요.”

“그럼 집에서는 포옹해도 되겠군요.”

“집에서만 포옹해요.”

“대신 밖에서는 내 손을 놓으면 안 됩니다.”

주운환은 그녀의 손에 입맞춤을 했다. 대제는 민풍民風이 개방적이라 부부가 손을 잡고 다니는 건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 * *

엽연채와 주운환이 떠난 후에도 온씨와 채 마마의 기쁨은 가시지 않았다.

“연채가 내일도 온다고 했네. 밤떡을 만든 지 오래됐으니 내일 거리로 나가서 좀 사야겠어.”

온씨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 그리고 올해 가을옷도 아직 안 만들었으니 큰도련님께서 입으실 옷도 몇 벌 사 가지고 돌아와야 합니다.”

이리 대꾸한 채 마마가 엽균의 혼사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큰도련님도 나이가 적지 않으니 서둘러 혼처를 알아봐서 장가를 드셔야 안정이 될 겁니다.”

“자네 말이 맞네.”

온씨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튿날 이른 아침, 온씨와 채 마마는 채비를 마친 후 문을 나섰다.

거리는 아주 시끌벅적했고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온씨는 기성복을 파는 상점으로 들어가 반 시진 동안 꼼꼼히 옷을 살펴보고 나서야 서너 벌을 골랐다. 채 마마가 상점 주인이 포장해 준 옷을 품에 안고 온씨의 뒤를 쫓았다.

그런데 상점을 나서자마자 낯익은 사람과 부딪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온씨는 낯빛이 확 변했다.

온씨가 갑자기 멈춰 서자 채 마마는 그만 온씨의 등에 부딪쳤다.

“마님……!”

채 마마는 부딪친 코에서 쿡쿡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녀가 코를 감싸 쥐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고개를 들어 보니 비쩍 마른 중년 사내가 그곳에 서 있었다.

중년 사내는 좀 마르기는 했지만 그래도 품위 있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둥근 깃이 달리고 복문蝠紋(‘복’을 상징하는 박쥐 무늬)이 들어간 연한 남색 금포 차림에 머리를 묶고 소박한 은관을 쓰고 있어 준수하고 고상해 보였다.

채 마마는 그를 보더니 낯빛이 확 변했다. 그는 다름 아닌 엽승덕이었다.

두 사람이 갑자기 마주치게 되자 엽승덕도 놀란 눈치였다. 이어 그는 눈시울이 조금 붉어지더니 감정이 북받치는 얼굴로 나지막이 온씨를 불렀다.

“부인…….”

온씨는 가슴이 철렁했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격한 감정이 휘몰아쳤다. 그녀는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대꾸했다.

“누가 그쪽 부인입니까?”

그녀는 냉소를 짓고는 얼른 떠나가려고 했다.

“사우…….”

그러나 엽승덕이 옆으로 두 걸음 움직여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나… 난 일부러 당신 앞에 나타난 것이 아니오. 지금 이렇게 만나게 됐으니… 당신에게 사과를 하고 싶소. 그간의 일은 정말 미안하오. 다 그 빌어먹을 여편네 때문에… 그 여인에게 홀렸던 것이오. 이제 정신을 차렸소.”

“할 말 다 했죠?”

온씨는 그저 냉담한 눈빛으로 그를 쓱 쳐다봤다. 그에 엽승덕은 낯빛이 변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하룻밤 부부라도 만리장성을 쌓는 법인데…….”

“그래서 날 첩실로 만들고 내 자식들을 죽이려고 했어?”

온씨는 냉소를 지으며 반문했다. 참다못한 채 마마가 앞으로 나와 싸늘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썩 꺼져, 이 인간말짜야!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하면 뭐 해?”

“나… 난 뭘 하려는 게 아니다.”

엽승덕은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난 그저 사과하고 싶을 뿐이야.”

“사과는 이미 했으니 썩 꺼져 버려!”

채 마마는 냉랭한 목소리로 욕하고는 온씨를 보호하며 그곳을 떠나려고 했다.

“부인…….”

엽승덕은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옅은 한숨을 쉬었고 그의 표정은 후회와 실망으로 점철돼 있었다.

온씨와 채 마마는 그가 또 ‘부인’이라고 부르자 낯빛이 어두워졌다. 사내와 여인이 길거리에서 싸우면 평판에 흠집이 가고 손해를 보는 건 항상 여인이었다. 온씨와 채 마마는 얼른 인파 속으로 피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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