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479화 (479/858)

제479화

유원柔院은 육 측비의 처소로, 조앵기가 안으로 들어오자 시녀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조앵기는 평소 이곳에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앵기는 평정소축에 있거나 양왕부 안에서 혼자 놀았고, 양왕부의 측비와 희첩姬妾부터 시녀들까지 모두 그런 그녀를 상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 또한 다른 사람들을 상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떴단 말인가? 조앵기가 육 측비의 처소로 달려오다니.

“왕비 마마.”

측비의 처소에 있던 시녀가 냉담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조앵기가 안으로 들어가 보니 육 측비가 시녀를 엄하게 꾸짖고 있었다. 육 측비는 갑자기 조앵기가 안으로 들어오자 깜짝 놀라더니 얼른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왕비 마마 아니십니까?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그게…….”

조앵기는 그녀를 곁눈질로 힐끗 쳐다봤다.

“며칠 뒤에 제민 현주가 이사를 하여 연회를 여는데 첩자를 받았는가?”

육 측비는 두 눈을 살짝 깜빡이더니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니요.”

조앵기는 멍한 표정을 짓더니 실망한 듯 고개를 숙이고는 돌아서서 그곳을 떠났다.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육 측비는 순간 싸늘한 눈빛을 보였다. 최근 이 왕비는 외출하는 날이 많아졌는데 들어 보니 엽연채와도 사이가 좋다고 했다. 이렇게 몇 번 더 외출을 하게 되면 양왕비가 명실상부한 왕비가 되는 게 아니겠는가?

육 측비는 절대로 그런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야말로 이 왕부의 진정한 여주인이었다. 황제조차도 자신이 정비라는 지위만 없지 정비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육 측비는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씁쓸함을 느꼈고 질투심이 일었다. 그랬다. 육 측비는 조앵기를 업신여기면서도 저도 모르게 그녀를 질투했다.

한편, 육 측비의 처소에서 나온 조앵기는 혼자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녀는 걸으면 걸을수록 마음이 더욱 아팠다.

예전이었다면 자신도 밖에 나가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딜 가든 누구를 만나든 간에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나쁘게 말했기 때문에 오히려 집에 있는 편이 더 자유로웠다. 밖에 나가 봤자 태자비나 노왕비 등에게 비웃음이나 당할 뿐이니 말이다.

하지만 엽연채를 만난 후로는 밖에 나가는 걸 고대하게 됐고, 엽연채와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조앵기는 지난번에 주씨 가문에서 연회를 준비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중에 시녀의 입을 통해서야 주씨 가문에서 연회를 베풀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양왕은 그곳에 육 측비를 데리고 갔다. 그 생각을 하자 조앵기는 좀 우울하면서도 너무도 억울했다.

이번 제민의 집들이에는 정말로 참석하고 싶었다. 양왕이 저를 못 가게 할 테지만 어떻게든 반드시 가고 싶었다.

조앵기는 뭔가를 이토록 간절히 바랐던 적이 없었다. 그녀는 무조건 제민의 집에 갈 거라고 굳게 다짐했다. 양왕에게 욕을 먹고 얻어맞더라도, 떼를 쓰며 뒹굴어서라도 가고 말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조앵기는 계획을 잘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어릴 때부터 양왕과 함께 자랐기 때문에 그녀는 그를 잘 알고 있었고 그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조앵기는 곧장 양왕의 서재로 달려갔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언동이 그녀가 오는 모습을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왕비 마마, 이곳에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조앵기는 그를 보고는 양왕이 분명 안에 있음을 눈치챘다.

“전하를 뵈러 왔네.”

“아니 됩니다.”

언동은 여전히 미간에 주름을 잡은 채 단박에 거절했다.

“왕비 마마, 무슨 일이 있으시다면 소인에게 알려 주시면 됩니다. 소인이 전하께 전달하겠습니다.”

“그건 안 되네.”

조앵기는 고개를 숙인 채 그를 힐끗 곁눈질했다. 대신 전달하면 양왕은 일언지하에 거절할 게 분명했다.

“그럼 저녁에 이야기하시지요! 저녁 식사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습니다.”

언동의 이 말에 조앵기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조금 겁을 먹은 참인데, 저녁까지 기다리게 된다면 아마 감히 이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것이다. 용기를 짜낸 지금, 단숨에 해치워야만 했다.

조앵기가 막무가내로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언동은 깜짝 놀라 얼른 손을 뻗어 그녀를 막았다. 그러자 조앵기가 그를 밀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전하, 전하!”

언동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녀를 저지하고 싶었지만 그녀를 밀쳐 바닥에 넘어뜨릴까 봐 걱정이 됐고 또 감히 그녀의 몸에 손을 댈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양왕이 저를 베어 버릴 것이다. 그래서 그는 칼을 들고 그녀의 앞을 막아설 수밖에 없었다.

언동이 꼭 작은 산처럼 지키고 선 탓에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게 되자 조앵기는 초조한 마음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결국에는 흑흑대며 양왕을 애타게 찾았다.

“전하! 흑… 전하……! 훌쩍, 훌쩍…….”

상주서를 보고 있던 양왕은 밖에서 그녀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싸늘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뭐 하는 것이냐? 썩 돌아가거라!”

“안 갈 겁니다!”

조앵기가 빽 소리를 치자 언동의 표정이 한층 굳었다. 그런데 그의 경계가 느슨해진 사이, 틈을 찾고 있던 조앵기가 그의 팔 밑으로 파고들었다.

“전하!”

조앵기는 치마를 들고 그의 앞으로 달려갔다.

양왕이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쓱 쳐다봤다.

“무슨 일이냐?”

“저… 이틀 후에 민이가 이사 기념으로 연회를 여는데… 저도 참석할래요.”

조앵기는 목소리가 점점 더 작아졌다. 그녀는 고개를 숙였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어 하려던 말을 모두 했다.

양왕의 수려한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

“안 된다! 썩 돌아가거라!”

“연회에 참석하고 싶어요…….”

말을 마친 조앵기는 이를 악물더니 양왕에게 달려가 그의 품에 안겼다.

양왕은 그녀에게 부딪혀 몸이 뒤로 젖혀지자 버럭 화를 냈다.

“이 어리석은 것. 네 남편을 죽일 셈이냐?”

“연회에 갈 거예요!”

조앵기는 그를 꽉 끌어안고 손을 풀지 않았다. 그 채로 그의 품에서 치근대기 시작했다.

“안 된다!”

“전하, 저 연회 갈래요! 갈 거예요! 갈 거예요!”

“안… 된다!”

“갈 거예요! 연회에 가고 싶어요! 가게 해 주세요!”

“안…….”

“연회에 갈 거예요! 갈래요! 갈 거예요!”

“된다…….”

“감사해요, 전하!”

그녀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답례했다.

양왕은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밖에 있던 언동은 말없이 하늘만 쳐다봤다.

* * *

구월 중순이 되자 날씨는 점점 더 쌀쌀해졌다.

복福 자 문양과 수壽 자 문양으로 장식된 화창花窓(문종이나 유리를 대지 않고 각종 누공漏空 도안으로 장식한 창문)으로 옅은 햇살이 들어와 바닥 위로 흩어졌다.

육 측비는 장미 문양의 나전螺鈿으로 상감한 자단목 탑상에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연녹색 쥘부채를 쥔 그녀는 별생각 없이 다른 손의 엄지와 검지 사이를 쥘부채로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측비 마마.”

이때, 소추가 안으로 들어오더니 조금 긴장된 얼굴로 말했다.

“방금 전에 황씨 어멈이 평정소축으로 점심 식사를 전해 주러 갔는데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육 측비는 입술을 오므리더니 냉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알겠다.”

양왕부의 집안일은 모두 육 측비가 관리했고 집안의 시녀들도 그녀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그래서 어제 조앵기가 양왕의 서재로 뛰어가는 걸 누군가가 봤던 것이다.

서재는 무척 중요한 곳으로,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어젯밤에 시녀가 평정소축으로 식사를 전달하러 갔을 때 조앵기가 없었다. 그러자 소추는 찝찝한 기분이 들어 오늘 이른 아침 일부러 다시 찾아가 봤는데, 그때도 조앵기가 없었던 것이다.

“알겠다. 장부를 가져오너라. 항목들을 맞춰 봐야겠구나.”

말을 마친 육 측비는 손에 들고 있던 연한 녹색 쥘부채를 한쪽에 놓인 찻상 위로 내던졌다.

소추는 순간 멍해졌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여전히 기분이 찝찝한 소추는 문밖으로 나오더니 평정소축이 있는 방향을 향해 침을 탁 뱉고는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정실은 정실이구나! 백주 대낮에 서재에서 전하를 유혹하다니! 뻔뻔도 해라! 새로 들어온 지위 낮은 소첩小妾들조차도 그 사람보다는 단정하고 반듯할 거야.”

어찌 됐든 간에 조앵기는 모레 열리는 제민의 이사 기념 연회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 * *

구월 열엿새는 제민이 이사하는 날이었다.

이날 이른 아침, 주운환은 조정에 나갔다.

엽연채는 화장대 앞에 앉아 있었고 추길은 양의 뿔로 만든 빗으로 그녀의 머리를 빗어 주고 있었다.

“작은새언니.”

이때, 누군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져 보니 주묘화가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요. 곧 있으면 끝나요.”

엽연채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오늘 제민의 집을 방문하는 엽연채는 주묘화도 불렀고 그뿐만 아니라 엽영교와 엽미채도 불렀다. 제민이 부른 몇몇 명문가의 여식들도 참석하니 떠들썩한 분위기가 될 것이다. 그야말로 꽃들의 연회였다.

“네.”

주묘화는 대답을 한 뒤 소청의 조그만 탁자 옆에 앉아 기다렸다.

추길은 날렵한 손길로 머리를 만졌고 잠시 후 엽연채의 머리가 완성되었다. 해당화로 장식된 유리 보요를 꽂아 머리 치장을 끝낸 엽연채는 오밀조밀한 해당화 문양이 들어간 붉은색 대금유군으로 갈아입었다. 그러자 꽃다운 나이의 그녀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워 보였다.

엽연채는 고개를 돌려 옅은 미소를 지으며 주묘화를 불렀다.

“가요!”

“네.”

주묘화는 기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올케와 시누이는 차례로 문을 나섰다.

엽연채 뒤를 따라가는 주묘화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주묘서보다 겨우 두 달 늦게 태어난 자신은 올해가 지나면 열일곱 살이 되는데 아직도 혼사가 정해지지 않은 처지였다.

“아가씨, 서쪽 측문의 말구유가 망가져 말과 마차가 동쪽 측문에 있다고 해요. 그러니 그쪽에 가서 마차를 타요.”

두 사람은 월공문을 넘어가 정자와 누각들 사이를 지나갔다.

주묘서는 백로원의 정자에서 수를 놓고 있었고, 녹지와 춘산이 그 옆에 시립하고 있었다.

저 멀리 엽연채와 주묘화가 지나가는 모습을 본 주묘서는 눈썹을 살짝 추켜세우며 물었다.

“저 둘은 어디 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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