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477화 (477/858)

제477화

정 황후의 시선은 저도 모르게 주묘서에게 향했다. 그녀는 이미 주묘서의 초상화를 보았는데 실제 만나 보니 실물이 더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엽연채의 압도적인 아름다움에는 못 미치지만 분명 미인이었다.

정 황후는 그런 생각을 하며 시선을 주묘화에게로 옮겼다. 어쩐지 태자가 측비를 고를 때 과거가 깨끗한 주묘화를 고르지 않고 기어이 이미 정혼을 한 주묘서를 고르더라니, 적녀와 서녀의 차이뿐만 아니라 확실히 주묘서가 주묘화보다 훨씬 예뻤다.

정 황후는 이런 생각을 하자 주묘서가 좀 탐탁지 않았다. 예쁜 외모를 무기로 서 공자를 가지고 놀다가 결국 그런 일이 터졌을 것이었다.

“그렇게 예의 차릴 것 없네. 일어나게.”

정 황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자리에 앉게.”

“황송하옵니다. 마마.”

엽연채 등은 일어서더니 궁녀를 따라가 한쪽에 놓인 권의에 앉았다.

“지난번에 내가 진서후 부인에게 시간이 있으면 궁에 들어와 내 말벗이 되어 주라고 했었지.”

“이사 일로 바빠서 짬이 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정 황후가 웃는 낯으로 말을 건네자 엽연채도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태자 전하께서 지금 측비의 혼례식을 준비하고 계시니 마마께서 전하에게 신경을 많이 쓰고 계실 겁니다. 분명 예부 쪽을 주시하고 계실 테니 마마께 폐를 끼칠 수가 없었습니다.”

“하하. 그렇네! 확실히 좀 바쁘긴 했지.”

정 황후는 온화한 얼굴로 수긍한 다음 주묘서를 쳐다봤다.

“주씨 가문 첫째 소저는 곧 태자부로 시집을 오니 당분간은 외출하지 말고 집에서 법도를 열심히 익히는 편이 가장 좋겠구나.”

주묘서는 표정이 굳었으나 그리하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예.”

“후부는 준비가 어떻게 되어 가는가?”

정 황후가 또다시 화제를 자신 쪽으로 돌리자 엽연채는 하나하나 대답해 줄 수밖에 없었다.

하좌에 앉아 있는 주묘서와 주묘화는 거의 대화에 끼지 못했다.

주묘화는 그래도 개의치 않았지만 주묘서는 낯빛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자신의 처지가 구차하면서도 엽연채에게 질투가 나고 그녀가 미웠다.

분명 자신이 태자 측비이고 황후의 예비 며느리인데, 황후는 자신을 냉대하고 엽연채하고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건 자신의 체면을 깎는 행동이 아닌가?

주묘서는 불만스럽고 수치심과 분노를 느꼈지만 감히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정 황후가 주묘서를 힐끗 쳐다보았다. 주묘서는 스스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 황후는 주묘서의 표정에서 불만을 읽었다. 난처한 일이었다. 그녀는 그저 주묘서가 서씨 가문의 일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으리라고만 생각했지, 주묘서가 감히 엽연채와 반목하려는 줄은 당연히 생각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지금 주씨 가문은 주운환 덕분에 잘나가게 된 것이고 주묘서도 그 덕분에 태자 측비가 된 것이니까.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때에는 주운환에게 아첨하려고 안달일 거고, 끊임없이 그의 비위를 맞추며 자기 편으로 만들려고 할 것이었다.

그러니 지금 자신이 엽연채를 추켜세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엽연채에게 들러붙은 주묘서는 감히 불만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진서후 부인.”

이때, 월안 공주가 나지막이 그녀를 불렀다.

“최근에 내가 제민 현주에게 바둑을 배우고 있는데 몇 번 이해가 가지 않은 적이 있네. 좀 가르쳐 줄 수 있겠는가?”

엽연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럼 내 궁으로 함께 가세!”

“그럼 부인과 주씨 가문 둘째 소저는 이만 가 보시게.”

정 황후는 미소를 짓더니 주묘서를 쳐다보며 말했다.

“주씨 가문 첫째 소저는 태자부로 시집을 오게 되니 내 중요하게 할 말이 좀 있네.”

“예, 그럼 저희는 먼저 물러나 보겠습니다.”

엽연채와 주묘화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월안 공주와 함께 그곳을 떠났다.

주묘서는 두 사람이 떠나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자니 심장이 쿵쿵 뛰었다. 긴장이 되면서도 기뻤다. 드디어 자신이 특별대우를 받게 되는 것이다.

역시 태자부로 시집을 가니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가 된 것이었다. 주묘서는 긴장감과 환희가 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정 황후에게로 고개를 돌리니 여태 부드럽고 자애로운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가 갑자기 정색을 하는 게 아닌가.

“주씨 가문 첫째 소저!”

“예…….”

주묘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이어 표정이 굳어졌다.

“최근 일어난 일 말이네. 다들 속으로는 훤히 알고 있네.”

정 황후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나 황제 폐하의 말씀은 천금과 같이 무거운 것이네. 그건 폐하의 뜻이었으니 번복하지 않는 법이지. 앞으로 언행에 신중을 기하게.”

주묘서는 억울해 죽을 것만 같았으나 그래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렇게 말했다.

“예! 저… 저는 그때… 실은 그 서 공자가 제게 푹 빠져 헛된 망상을 품은 것이옵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런…….”

정 황후는 하하 웃더니 냉담한 목소리로 주묘서의 말문을 막아 버렸다.

“됐네. 더 말할 필요 없네. 태자부에 시집오기 전에 집에서 법도나 잘 익히게.”

“예!”

주묘서는 얼른 대답했다.

정 황후가 보니 그녀는 그래도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편 같았다. 또 어쨌든 주운환의 누이동생이라는 생각이 들자 정 황후는 표정을 조금 누그러뜨리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말하다 보니 오래전에 자네 어머니도 궁에 들어오곤 했던 게 생각나는군. 앞으로 시간이 나면 자주 들러 내 말벗이 되어 주라고 전하게.”

그 말에 주묘서는 기뻐했다. 그래도 황후가 자신에게 꽤 만족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예.”

두 사람이 얼마간 더 이야기를 나누자 엽연채와 주묘화, 월안 공주 세 사람이 돌아왔다.

정 황후는 함께 담소를 즐긴 후에 세 사람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엽연채 등이 봉의궁을 나가고 나서야 사 마마가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주씨 가문 첫째 소저는 어떠셨습니까?”

“그냥 평범한 것 같구나. 서씨 가문 일은 아마도 좀 우쭐해서 그랬던 거겠지. 태자 측비가 되는데 어찌 우쭐하지 않겠느냐?”

정 황후는 자부심 섞인 미소를 보였다. 어쨌든 태자는 자신의 아들이다. 그에게 시집오고 싶어서 안달이 나지 않을 소저가 어디 있겠는가? 주묘서도 태자에게 시집오게 되어 우쭐했던 것이니, 자신의 입장에서는 자랑스럽게 생각할 일이었다.

주묘서가 서 공자를 갖고 논 건 사실일 테지만, 그 누구라고 해도 본인이 가난한 자를 싫어하고 부유한 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는 법이었다. 게다가 이 일은 원래 태자가 주묘서를 꼬셔서 벌어진 일이니 크게 나무랄 것도 없었다.

속으로 이렇게 태자를 미화하는 정 황후는 당연히 주묘서를 탓할 수가 없었다.

“청옥아, 가서 태자가 퇴청했는지 보고 오너라.”

정 황후의 명에 밖에 있던 어린 궁녀는 공손히 대답한 뒤 걸음을 재촉했다.

봉의궁을 나온 청옥이 대전으로 가 보니 시위가 밖을 지키고 있어 감히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밖에서 태자를 기다렸다.

대전 안의 사람들은 떠돌이 비적에 관해 상의를 하고 있었다.

요 몇 년 동안 대제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우선 서북에서 3년 동안 전쟁을 치렀고 서남에서도 1년 가까이 전쟁을 치렀다. 그러느라 백성들을 혹사시키고 물자를 낭비하게 됐으며, 전쟁 때문에 살 곳을 잃고 떠돌아다니는 유민들이 비적 떼를 조직해 곳곳에서 사람들을 해치고 다녔다.

전쟁은 이미 끝이 났지만 떠돌이 비적들은 해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되레 갈수록 활개를 쳤다.

“무려 일 년이나 쫓았는데도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상석의 정선제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압을 하면 얼마 못 가 또다시 고개를 들고!”

하좌에 있는 관리들은 전부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다들 훤히 알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

양왕이 검은 눈썹을 추켜세우더니 매력적인 눈동자에 조롱기를 내비쳤다.

“봄 가뭄에 이어 누리의 충해가 생기는 바람에 백성들의 수확물이 순식간에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반기에는 남쪽에서 대규모의 홍수가 일어나는 바람에 수만 명의 백성들이 살 곳을 잃고 떠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떠돌이 비적들이 그 이재민들까지 끌어들여 세력을 점점 더 키우고 있는 것이옵니다.”

그 말에 정선제의 미간이 툭툭 불거졌다.

“관리들이 대체 일을 어떻게 하길래 이재민들의 마음조차 위로하지 못하는 것이냐! 구휼금은 보낸 것이냐?”

“이미 보냈사옵니다.”

전지신이 얼른 한 발짝 앞으로 나와 답했다.

“이 문제의 핵심은 떠돌이 비적들이 민심을 현혹하는 데 도가 텄다는 것이옵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국면에 이른 것이옵니다. 다행히 오 장군이 이미 그 떠돌이 비적들을 공격하여 합주合州 쪽으로 도망가게 만들었으니, 합주의 지부知府와 연합하면 금방 일망타진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정선제는 희끗희끗한 눈썹을 찡그리며 냉담한 어조로 명했다.

“일단 오일의를 도성으로 부르거라. 상관수!”

“소신, 여기 있사옵니다.”

상관수가 앞으로 한 걸음 나왔다.

“당분간 군대를 더 파견해 성문을 단단히 수비하거라.”

“예.”

최근 들어 떠돌이 비적들이 기승을 부렸다. 대부분 자연재해 때문에 살 곳을 잃고 떠돌아다니게 된 이재민들이었고 이들 이재민들은 도성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니 도성을 지키는 병사들을 늘려 이재민들이 도성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했다.

“조회는 이것으로 마치겠다!”

정선제는 옅은 한숨을 쉬었고, 말을 마친 후 채결의 부축을 받으며 대전을 떠났다.

주운환이 조정의 다른 모든 신하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는데, 태자가 다가오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을 붙였다.

“진서후.”

“전하.”

주운환은 고개를 돌리고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난번에 좋은 말을 고를 생각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태자가 말했다.

“내가 교외에서 한혈마汗血馬들을 기르고 있네. 마침 날씨도 좋으니 이따가 도성 밖으로 나가 함께 골라 보는 건 어떠한가?”

“전하의 호의에 황송할 따름이옵니다.”

주운환은 공수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요즘 떠돌이 비적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고 이재민들이 몰려들고 있으니 도성 밖으로 가급적 나가지 않는 편이 좋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시간이 좀 지난 후에 소신이 전하께 말을 주십사 부탁을 드리고 싶사오니, 그때 가서 소신을 미워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태자는 그가 거절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미소를 입꼬리에 걸었다.

“그리하게!”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대전 문을 나서자 파란색 옷을 입은 궁녀 한 명이 그곳에서 태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 황후를 곁에서 모시는 청옥이었다.

“전하, 황후 마마께서 부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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