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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471화 (471/858)

제471화

주묘서는 순간 괴로운 표정을 짓더니 손수건으로 눈가를 지그시 누르며 애잔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공자… 저도 원래 공자께 시집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하지만 황명이 있으니 참 곤란하게 됐어요…….

그날 제가… 사람들이 태자 전하를 비난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도저히 보고 넘길 수가 없어 전하 편에 서서 몇 마디 했어요. 그 뒤 황제 폐하의 부름을 받고 궁에 들어갔는데 폐하께서 저보고 좋은 아이라고, 태자부로 시집와야 한다고 하셨고요. 그렇게 태자 전하와 저의 혼사를 맺어 주신 거예요! 그러니 그저… 그저… 저희의 인연이 여기까지인 걸 탓해야죠!”

그녀는 그리 말하고는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더니 대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서 공자는 그녀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아 넋 나간 얼굴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주묘서가 가난한 자를 싫어하고 부유한 자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었다면 자신은 눈이 삐었음을 인정해야 했는데, 뜻밖에도 그녀도 강요를 당한 것이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두 사람은 분명 서로를 사랑하고 있고 함께해야만 했다. 그런데 황제와 하늘이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보다 더 잔인한 일이 어디 있는가?

어쨌든 이젠 서로를 연모한다고 해도 함께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황명을 거스를 수는 없으니 말이다.

서 공자도 학문을 익힌 사람이기에 군신의 도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황제가 그녀를 태자의 배필로 정해 줬으니 그녀는 이제 태자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더 고통스럽고 괴로웠다.

굳게 닫힌 문을 쳐다보던 서 공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비통하고 절망적인 기색을 감추지 못하던 그는 결국 눈물 콧물을 흘렸다.

그러나 다른 수가 있으랴. 그는 눈물을 닦으며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주묘서는 대문 앞으로 몸을 기울여 문틈을 통해 슬프고 절망적인 얼굴로 떠나가는 서 공자를 지켜보며 대단히 득의양양했다. 그러더니 또 옅은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경국지색의 아름다운 외모와 무한한 매력을 가졌기 때문에 사내들이 자신에게 미친 듯이 빠져드는 거라며 스스로를 탓했다.

주묘서도 이젠 더 거리를 돌아다닐 마음이 들지 않아 일상원으로 달려가 진씨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전부 이야기해 줬다.

“그런 별 볼 일 없는 집안의 사내도 제 짝이 되고 싶어 하더라고요.”

진씨는 미소를 지으며 씨앗을 까먹었다. 그녀는 자신들과 인척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우쭐거렸다.

‘이게 대체 얼마 만인지. 아주 오랫동안 이렇게 남을 내려다보지를 못했는데 말이야.’

진씨는 우월감에 빠진 채 가볍게 미소를 짓더니 주묘서의 볼을 꼬집었다.

“으이구!”

“마님…….”

그런데 한쪽에 있던 춘산이 조금 초조해하며 말했다.

“이제… 아가씨께서는 곧 태자부로 시집을 가시니 외간 사내와는 너무 엮이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그자와 엮였다고?”

주묘서는 그녀에게 눈을 흘겼다.

“내가 그자와 뭐 별다른 말이라도 했느냐?”

춘산은 입꼬리를 삐죽거렸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확실히 주묘서와 서 공자가 나누었던 말에는 지나친 부분이 없었다. 하지만 거기에 주묘서의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 더해지자 서 공자에게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은 서 공자인데 강요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태자에게 시집가게 됐다는 암시를 주게 된 것이다.

그리하면 서 공자는 어떻게 단념하라는 말인가?

“됐다!”

진씨도 춘산을 쓱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서씨 가문은 지금 메추라기처럼 겁을 먹고 있는데 감히 뭘 어쩔 수 있겠느냐?”

“맞아요! 지금 미련을 갖고 헛된 망상을 하는 건 서 공자이지 제가 아니에요.”

주묘서는 그리 말하며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쪽이 잘못하는 거죠. 감히 태자 측비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잖아요! 그리고 그 가족들은 저희 사이에 있었던 일을 덮으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그런데 감히 밖에서 소란을 피우겠어요? 정말로 일을 키우려고 해도 꿀리는 입장인데, 뭘 어쩔 수 있겠어요?”

춘산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확실히 지금 상황으로는 황제가 혼사를 맺어 준 것이니 신하인 서씨 가문은 꼬리를 내리며 재수 옴 붙었다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주묘서는 전에 서 공자와 함께 호수를 유람했던 일을 언급하며 서 공자는 정말 어리석다고 말했다. 자신은 한 번도 그를 마음에 들어 한 적이 없는데 그는 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고 말이다.

주묘서는 자신의 생각보다 서 공자가 훨씬 어리석다는 걸 아직은 모르고 있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진씨 모녀가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녹엽이 황급히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가씨, 마님……! 큰일 났습니다. 서씨 가문 공자가 목을 매어 자결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주묘서와 진씨는 깜짝 놀랐고 진씨는 낯빛이 확 변했다.

“뭐라고 했느냐?”

“서씨 가문 공자가 목을 매어 자결하셨어요!”

녹엽은 창백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지금 서씨 가문 사람들은 대성통곡하고 있습니다. 들어 보니 서씨 가문 공자가 어제 집으로 돌아온 후로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고 합니다. 한 번도 나오질 않아 오늘 아침에 여종이 문을 열어 보니 대들보에 목을 매달고 죽어 있었다고 해요!”

“으아악!”

주묘서는 낯빛이 창백해졌고 몸을 움츠리다가 그만 ‘쿵’ 소리를 내며 의자에 앉은 채로 뒤로 나자빠졌다.

“묘서야!”

진씨는 아연실색하며 얼른 주묘서에게 달려가 그녀를 부축했다.

주묘서는 창백한 얼굴로 목소리를 조금 떨며 녹엽에게 재차 확인했다.

“죽었다고?”

“예. 목을 매어 자결하셨어요.”

녹엽은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주묘서는 두려움이 밀려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제 서 공자가 자신을 찾아왔을 때 자신이 한 말이 그의 감정이 깊어지게 만들 줄 당연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묘서는 목매 죽은 귀신 이야기를 떠올리더니 공포에 질려 몸을 달달 떨기 시작했다.

‘내가 죽인 게 아니야. 아니라고!’

하지만 그녀와는 달리 진씨는 단지 한 사람의 목숨을 잃게 만들었다는 두려움만 느낀 게 아니었다. 서 공자가 하필 이런 때에 자결했으니 주묘서의 명예와 절조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를 더욱 두려워했다.

“녹지야, 녹지야!”

진씨가 창백한 얼굴로 소리를 쳤다.

“네, 마님.”

녹지가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밖에 나가서, 사람들이 뭐라고 떠드는지 알아보거라……!”

진씨의 분부에 녹지는 알겠다고 대답한 뒤 곧장 밖으로 나갔다.

대략 반 시진쯤 지나자 녹지는 황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서 공자가 목숨을 끊었다는 충격적인 사건이 터지자 도성 사람들은 전부 어안이 벙벙했다.

근자에 주묘서와 태자의 혼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서씨 가문 사람들이 곳곳을 다니며 두 집안이 실은 정혼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사람들도 바보가 아니니 고작 해명 몇 마디를 믿지는 않았다.

주묘서와 서씨 가문이 혼사를 맺은 건 사실인데, 태자가 주운환을 포섭하려고 하고 황제도 태자를 도와주고 싶으니 가차 없이 남의 혼인 상대를 가로채 태자와 혼사를 맺어 준 게 분명했다.

그러나 서씨 가문은 신하이니 손해를 보고도 뭐라고 하소연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서 공자는 이 같은 상황에 불응해 목을 매고 자진했을 게 분명했다.

서씨 가문은 대성통곡했고 백성들은 그 집안 대문 앞에 모여들어 탄식했다.

“아이고, 가여워라. 서 공자는 집안의 외아들이자 오대독자인데! 이렇게 죽어 버리다니! 서 부인과 서 대인이 너무 안됐어. 어렵게 얻은 늦둥이가 이렇게…….”

“어제… 서 공자가 주씨 가문으로 그 댁 첫째 소저를 만나러 간 걸 봤어.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서 공자가 집으로 돌아오더니 자진한 거야.”

“그럼 서 공자가 치정 때문에 어리석게 군 거구먼.”

“거기 두 사람, 자리 좀 비켜 주시오.”

이때, 오십 대로 보이는 격식 있는 차림의 한 부인이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왔다. 새하얀 옷차림을 보아하니 부고를 듣고 급히 달려온 서씨 가문 친척임이 분명했다.

사람들은 얼른 길을 내주었다.

하얀 옷의 부인이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여종들은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부인이 서둘러 동쪽 곁채로 향했더니 서 부인과 서 대인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서 공자의 시신을 끌어안고 있었다.

노부부 한 쌍도 방 안에 앉아 있었는데 바로 서 공자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였다. 그들도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에휴…….”

하얀 옷의 부인은 옅은 한숨을 쉬었다. 이 광경을 보고 있으니 순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그저 이렇게 말했다.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우리… 어서 아이를 안장하여 편히 쉬게 해 줍시다.”

서 부인은 머리를 산발하고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가득했지만, 이미 눈물은 한 방울도 더 나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자신들이 대체 무슨 죄를 졌단 말인가. 어렵게 낳은 아들을 이만큼 키워 놨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죽어 버리다니!

아들이 왜 죽었는지 반드시 밝혀 낼 것이다. 다 주묘서 그 빌어먹을 계집애 때문이리라. 어리석은 아들이 자신의 진심을 전부 주묘서 그 요망한 계집애에게 바쳤는데 그 결과가 이랬다.

그 사람들이 그리 높은 지위에 오르고 싶다고 하니 그러라고 했고, 약자는 강자를 당해 낼 수 없으니 이쪽은 스스로 물러섰다. 그런데 어째서 자신의 아들까지 죽음으로 내몰려야 했단 말인가?

서 부인과 서 대인은 비통하고 절망했으며 주묘서를 산 채로 껍질을 벗겨 잘근잘근 씹어 먹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주묘서에게서 어떠한 잘못도 잡아내지 못했다. 게다가 그 혼사는 정선제가 맺어 준 것이었다. 대제에서 가장 힘이 센 황제가 말이다.

부고를 듣고 온 부인은 완전히 무너져 내린 부부의 모습을 보더니 할 수 없이 자신이 나섰다. 하인들에게 얼른 가서 장례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 오고 빈소를 차리라고 지시했다.

서 공자의 일은 떠들썩하게 퍼져 곧 도성 사람들이 전부 알게 되었고, 모두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황제 폐하께서 강제로 혼사를 맺어 주면서 서 공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네.”

물론 이렇게 반박하는 이도 있었다.

“군君은 군이고 신臣은 신이지. 어찌 됐든 간에 폐하께서 정한 혼사이니 서씨 가문 사람들이 원치 않더라도 따랐어야지.”

“무슨 소리인가. 서씨 가문 사람들이 언제 불만스러워했다고! 본인들이 나서서 혼사는 없었다고 해명하지 않았는가. 이미 물러난 셈이고, 서씨 가문은 신하로서 해야 할 일을 했어. 다만… 서 공자가 너무 어리석었던 거지.”

서 공자의 일은 궁으로도 전해졌다.

정선제는 봉의궁에서 황후, 태자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소식을 듣게 되었고 모두 낯빛이 어두워졌다.

“짐이 정한 혼사에 감히 불만을 품다니!”

“폐하. 고정하시옵소서.”

정선제가 노성을 터트리자 정 황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다독였다.

“이 일은 결코 폐하를 탓할 수 없습니다. 서 공자가 어리석은 것뿐입니다.”

정선제는 콧방귀를 뀌더니 더는 이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고작 4품 소관의 아들에 불과하니 그는 이 일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게다가 이 일은 밖으로 퍼져 봤자 대부분 서 공자의 잘못이라며 그를 비난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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