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467화 (467/858)

제467화

그 마마는 얼른 멀지 않은 곳에 세워진 작은 마차로 돌아가 그 마차에 오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받으셨습니다.”

“그래.”

매씨는 그저 가볍게 대답한 뒤 마차 창문에 달린 발을 살짝 걷어 올리며 점점 멀어져 가는 풍씨 가문 일행을 눈으로 배웅했다.

풍씨 가문과 주씨 가문은 전부터 서로를 알았지만 왕래를 하고 지내지는 않았다. 처음이자 마지막 왕래가 지금이 될 줄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으리라.

“마님, 바람이 찹니다. 어서 돌아가시죠.”

장 마마는 매씨가 덮은 검붉은 두꺼운 담요를 위쪽으로 끌어당겼다. 매씨는 아직 몸이 좋지 않은 상태였지만, 풍씨 가문 사람들을 배웅하고 싶어서 병든 몸을 이끌고 기어이 이곳에 왔던 것이다.

“그래.”

매씨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차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며 황량한 들판을 지나 화려한 성문 쪽으로 향했다.

성안으로 들어간 마차는 잠시 후 정국백부로 돌아왔다.

매씨가 마차에서 내리자 어멈 두 명이 얼른 활간을 들고 다가왔다. 그런데 매씨가 활간에 앉자 여종 한 명이 뛰어오더니 미소를 지으며 고했다.

“노마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집안에 교서가 전달되었습니다!”

매씨는 어리둥절해하더니 장 마마를 쳐다봤다.

“우리도 가 보자꾸나.”

“마님…….”

장 마마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매씨를 쳐다봤다. 매씨는 요즘 몸이 크게 좋지 않았는데 이미 한나절 이상 기운을 썼으니 얼른 돌아가 쉬는 편이 좋았다.

“나와 있는 상태인데… 보러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매씨는 콜록콜록 기침을 하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럼 가시죠!”

장 마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활간을 들고 있는 어멈들에게 수화문으로 들어가라고 했고 이어 그들은 본채로 향했다.

본채에 도착해 보니 이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엽연채, 주운환, 진씨 등이 보였고, 진씨는 길쭉한 탁자를 펴라고 하인들에게 지시하고 있었다.

“그래. 중간으로 좀.”

진씨는 여종에게 녹나무 제사상을 반듯하게 놓으라고 지시하고 있었는데, 매씨가 오는 모습을 보고는 얼른 함박웃음으로 그녀를 맞이하였다.

“어머님, 오셨군요.”

온몸에 기운이 넘쳐 보이는 진씨를 보더니 매씨는 희끗희끗한 눈썹을 치켜올렸다.

주묘서와 주묘화는 구석 쪽에 서 있었는데 자매는 작은 목소리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언니, 오늘 왜 새 옷을 입고 나온 거예요?”

주묘화는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아… 그냥 입고 싶어서 입었지.”

둘러대면서도 주묘서는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주묘서는 앞섶이 교차하는 붉은색 유군 차림이었는데, 치맛자락과 소맷부리에 오밀조밀한 분홍색 복숭아 꽃잎 문양이 들어가 있어 화사하고 매력적인 그녀의 모습이 한층 더 부각됐다. 원보계 머리에는 홍옥으로 장식된 복숭아 꽃 모양의 화전을 꽂고 있었고 보석 술을 늘어뜨리고 있어 아주 귀엽고 아리따워 보였다.

어제 황제에게 칭찬을 받고 하사품까지 받은 그녀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진씨는 이 일을 알게 되자 당연히 뛸 듯이 기뻐했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자기 딸이 정선제의 눈에 들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풍 측비도 사라졌으니 그녀는 은근히 좋은 예감이 들었다.

과연, 오늘 이른 아침에 궁에서 어린 환관 한 명이 오더니 좀 있으면 황제의 교서가 전달될 테니 교서를 받을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교서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진씨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고 심장이 쿵쿵 뛰어 이 사실을 바로 주묘서에게 알렸다. 이 교서는 아마 십중팔구 틀림없이 자신들이 기다리던 것이리라.

한쪽에 서 있는 엽연채와 주운환은 주묘서와 진씨의 적극적인 모습을 쳐다보며 비웃음을 지었다.

“교서가 도착했습니다!”

이때,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환관이 대문으로 걸어 들어왔고 시위 몇 명이 그 뒤를 쫓아 들어왔다.

진씨와 주묘서는 흥분이 몰려왔고 얼른 사람들과 함께 일렬로 섰다. 그런데 교서를 전하러 온 사람이 채결이 아닌 이름 없는 환관인 걸 보더니 진씨와 주묘서는 미간을 찌푸리며 속으로 조금 불만스러워했다.

“천명을 받드시오. 황제 폐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소. ‘주씨 가문 여식 묘서는 영리하고 대범하며 뛰어난 용모를 지녀 짐과 황후는 이를 듣고 매우 기뻐하였다. 이에 주묘서를 황태자의 측비로 임명한다. 모든 의식은 예부禮部와 흠천감欽天監에 맡기며 이곳에서 공동으로 준비하고 진행한다. 길일인 시월 스무날에 태자부로 들어오도록 하라.’ 이상!”

환관의 높은 목소리가 널찍한 주씨 가문 정원에 울려 퍼졌다.

“황은이 망극하옵나이다, 폐하!”

주묘서는 흥분한 모습으로 앞으로 나가 교서를 건네받았다.

진씨의 마음도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은 엽연채가 집으로 들어온 후로 가장 즐겁고 설레는 날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진씨와 주묘서는 하늘 위로 날아갈 듯 몸이 가뿐했다.

“감축드리옵니다, 측비 마마.”

그 환관이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왔다.

“하하, 덕담 고맙소.”

진씨는 그리 말하며 두루주머니를 꺼내어 그 환관의 손에 쥐여 줬는데 무게가 제법 나갔다.

“어서 방 안으로 들어가 앉읍시다.”

“괜찮습니다. 소인은 궁으로 돌아가 보고를 올려야 하옵니다.”

그 환관은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렇구먼. 그럼 붙잡지 않겠네.”

진씨가 말했다.

교서를 전달하러 온 사람들이 떠나자 주씨 가문 사람들은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와! 언니. 태… 태자부에 시집가는 거예요?”

주묘화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주묘서는 주묘화의 이 반응에 더욱 우쭐해했다.

“그래! 나도 황제 폐하께서 혼사를 정해 주실 줄은 몰랐어. 윗분들이 날 왜 좋게 보셨는지도 모르겠고……. 폐하께서 혼사를 정해 주시다니.”

“큰아가씨가 아주 총명하며 슬기롭고 꽃처럼 아리따운 용모를 가졌기 때문이죠.”

백 이낭은 얼른 미소를 지으며 듣기 좋은 말을 건넸다. 황제가 주묘서의 혼사를 정해 준 걸 진씨보다 백 이낭이 더 기뻐하고 있다는 건 하늘만이 알 것이었다.

이제 주묘서가 시집을 가게 됐으니 그녀의 딸 주묘화의 차례가 돌아온 것이다. 게다가 뭐가 됐든 간에 태자 측비였다. 집안에 후야도 나오고 측비도 나왔으니 주묘화의 가치도 덩달아 오르게 된 것이다.

“이런… 태자 전하께 시집을 가다니!”

주 백야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더니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사실 그는 아주 기쁘고 신이 났지만 조심스러운 눈길로 매씨를 힐끗 봤다.

“어머니… 그…….”

“됐다! 시집가고 싶은 사람한테 가면 그만이지!”

매씨는 냉담하게 이 말만 했다.

“돌아가자. 콜록콜록!”

두 어멈이 활간을 들어 올린 다음 공거로 향했다.

“이거 참… 잘됐구나!”

주 백야는 안도의 한숨을 훅 내쉬었다.

주씨 가문은 과거 황자들의 다툼에 끼지 않았기 때문에 황실과 혼사를 맺는 일이 거의 없었다. 주비양이 전에 정혼했던 그 군주도 아버지가 세상을 떴기 때문에 황위 다툼과는 관련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주묘서가 태자부에 시집을 가게 된 것이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황태자에게 말이다.

다만 꼬장꼬장한 성격의 매씨가 무슨 일이라도 벌이면 그대로 끝이라는 생각에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매씨가 이 혼사를 허락해 준 것이다.

주 백야는 뛸 듯이 기뻤다. 사실 그는 주씨 가문이 황실과 그 친척들과 가까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거 응성에서 대패했을 때, 집안사람 중에 황실로 시집간 사람이 있었다면 그렇게 심한 조롱을 당하지는 않았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었다.

주비양은 주묘서가 태자의 측비가 된다는 말에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강심설도 낯빛이 새파랗게 질렸고, 속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괴로움과 씁쓸함을 느끼며 돌아서서 그곳을 떠났다.

주종과는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했다. 어째서 다들 좋은 여인에게 장가가고 좋은 사내에게 시집가는데 자신만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단 말인가.

“부군, 저 졸려요.”

엽연채는 하품을 하며 주운환의 팔짱을 꼈다.

“그래요, 돌아가서 잡시다.”

주운환은 그녀를 품에 끌어안으며 고개를 숙여 아래턱을 그녀의 정수리에 비비적댔다.

그런데 부부가 돌아서려는 찰나, 주묘서가 앞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작은새언니, 어디 가려고요?”

엽연채는 검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주묘서는 아주 오랜만에 자신을 작은새언니라고 불렀다. 전에는 저를 통해 이득을 취하고 싶어서 사근거리며 새언니라고 불렀었는데, 갈등이 점점 더 깊어지더니 결국 사이가 완전히 틀어져 원수지간이 된 후론 만나기만 하면 눈썹을 추켜세우고 눈알을 부라렸다. 그런데 지금 또 갑자기 새언니라고 부를 줄이야.

“자러 가요!”

엽연채는 그녀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아, 잠은 무슨 잠이에요!”

주묘서는 손수건을 흔들며 앞으로 다가서더니 이렇게 말했다.

“황제 폐하께서 제 혼사를 정해 주셨고 혼례식 날도 얼마 남지 않았어요. 다음 달에 출가하는데 새언니도 제 방에 와서 혼례식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자세히 이야기를 나눠야죠.”

그 말에 엽연채는 비웃음을 지었다.

모든 부분에서 뒤떨어진다는 생각에 상대를 미친 듯이 질투하고 신경을 곤두세우며 성질을 부렸는데, 이제 자신이 상대방보다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들자 침착하고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지금 주묘서와 진씨가 딱 이랬다.

전에는 엽연채와 주운환이 한 걸음씩 위로 올라가자 진씨와 주묘서는 안달을 냈다. 질투와 불만 때문에 두 눈에 핏발이 서고 미친 듯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성질을 부렸었다. 마치 굶주림에 실성한 사람처럼 날카롭게 굴고 극단적으로 행동했었다.

속으로 스스로를 구차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엽연채를 작은새언니라고 부르는 것조차 비굴하게 느껴졌고 스스로를 무안하게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제 태자의 측비로 시집을 가게 됐으니 자신이 엽연채보다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곳에 올라 엽연채를 넘어서게 됐으니 흔쾌히 그녀를 작은새언니라고 부른 것이다. 물론 자신의 기품 있는 모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었다.

주묘서는 여유롭고 차분한 모습으로 엽연채를 짓밟으려고 했다. 이것이야말로 측비가 지녀야 할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그래. 하하, 셋째 내외도 함께 와서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자꾸나.”

진씨는 의기양양하기 이를 데 없는 미소를 지었다.

엽연채는 붉은 입술을 살짝 올리고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어머님, 아가씨. 잠깐 쉬고 계시는 편이 좋을 것 같네요! 방금 전 교서에서 혼례 준비와 진행을 예부와 흠천감에 맡긴다고 하지 않았나요?

게다가 이건 측비의 혼례예요! 다른 집 첩실들과는 다르기는 하나 어쨌든 첩실이니 출가하여 태자부에 들어가는 절차가 다를 거예요! 이에 대해선 어머님과 아가씨도 모를 거고 저는 더더욱 모릅니다. 그러니 공연히 분주하게 움직이지 않는 편이 좋죠. 예부와 흠천감 사람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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