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458화 (458/858)

제458화

태자가 주운환을 모해하려 했다는 일은 삽시간에 온 도성에 파다하게 펴졌다.

사건이 일어난 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 있었으니 숨기려 해도 숨길 수가 없었다. 원래도 소문이란 게 한 사람이라도 입을 놀리면 순식간에 퍼져 나가기 마련 아닌가.

백성들은 하나같이 격분했다.

“진서후가 아니었다면 아마 서노군들이 도성을 공격해 왔을 게야.”

“진서후는 서노군을 쫓아냈을 뿐만 아니라 서노와 남쪽 오랑캐들을 투항시켜 화친까지 맺게 했어. 해마다 공물을 바치게 하는 것은 물론, 전쟁에서 벗어나게 해 줬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는지 몰라.

매년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병사들과 응성 전투에 휘말린 백성들이 얼마나 많았어? 수천만 명이 목숨을 잃었지! 그런데 이렇게 큰 공을 세운 장군을 죽이려고 했다니!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야!”

“태자가 어째서 그런 일을 벌이려고 했을까?”

“태자가 풍씨 가문 여식을 측비로 들였기 때문이지. 그러니 풍씨 가문 사람들은 태자의 사람인 건데 주씨 가문 사람은… 확신할 수 없던 거다. 병권이 남의 손에 넘어갈까 봐 두려워서 주씨 가문 사람을 죽이고 풍씨 가문이 병권을 탈취하게 하려 한 거야.”

“태자는 어째서 이런 생각은 안 했을까? 응성 전투가 끝났고 서노와 남쪽 오랑캐들이 고개를 숙이고 신하가 되겠다고 했지만 만에 하나라도… 서노가 우리 대장군이 죽은 걸 보고 국서國書를 파기할 수 있잖아. 다시 정예 기병을 보내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오면 우리 대제는 서노군에 짓밟혀 어떤 꼴이 되겠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겠냐고! 어쩌면 아예 나라가 망할지도 모르지!”

백성들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런 개만도 못한 놈이 무슨 태자라고!”

“맞아. 태자가 될 자격이 없소!”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네. 어쩌면 누군가가 계략을 써서 모함하는 걸지도 모르지.”

반면 주류에 반대하는 이도 있었다.

“태자가 왜 이런 고생만 하고 좋은 소리도 못 들을 일을 하려고 했겠어?”

“그래, 태자가 풍씨 가문 사람이 무능하다는 걸 몰랐을까? 이 국토는 황가의 것이고 태자는 황태자인데 자신의 영토에 위협을 가하는 일을 했겠어?”

“누가 아니래. 태자는 황제가 인정했고 신하와 백성들도 인정한 사람이야. 그런데 이런 쓸데없는 일을 할 필요가 뭐가 있겠어?”

이렇듯 반박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긴 했지만 대다수는 태자가 이 일을 벌였다고 확신했다.

장찬은 정선제가 자신에게 임무를 맡기자 이마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는 우선 태자를 대리시에 가뒀는데 그곳엔 지위와 권세가 높은 사람들만 따로 감금하는 곳이 있었다. 당연히 일반적인 감옥과는 비교가 안 되는 곳으로, 감옥이라지만 평범한 방처럼 꾸며졌고 안에는 간단한 장식품들도 비치되어 있었다.

태자를 가둔 후 장찬과 정 부윤, 노왕은 풍씨 가문 저택으로 가서 두 젊은 장수의 시체를 관 속에서 꺼냈다. 그런 다음 검시관에게 시신을 검안하게 했고 또 두 젊은 장수의 유품을 찾아내고 피범벅이 된 사내도 심문했다.

* * *

이튿날 이른 아침, 조정 안에는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조정 신하들이 전부 참석했는데, 문무백관들은 두 줄로 나눠 서 있고 태자는 중앙에 서 있었다.

“황제 폐하 납시오!”

환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잠시 후, 정선제가 채결의 부축을 받으며 안으로 들어오더니 의자에 앉았다.

“황제 폐하를 알현하옵니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백관들은 얼른 머리를 조아리며 예를 올렸다.

정선제는 어두운 낯빛으로 아래를 쓱 훑어보더니 장찬과 정 부윤에게 시선을 향했다.

“조사는 어찌 되었느냐?”

“폐하.”

정 부윤이 답했다.

“검시관이 풍씨 가문 두 젊은 장수의 시신을 검안했는데 두 사람은 혈용화血溶花에 중독되어 사망했습니다.”

“혈용화가 무엇이냐?”

정선제가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

“혈용화는 무색무취의 독약인데 이 약은 북연 일대에서 상당히 흔하지만, 대제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약이옵니다.

소신의 생각엔 풍씨 가문 두 젊은 장수가 자진한 거라면 비상砒霜이나 학정홍鶴頂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두 독약이 구하기가 훨씬 쉬우니 굳이 혈용화를 찾을 필요는 없었을 것이옵니다.”

그 말에 조정 신하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풍씨 가문 쪽에서는 뭐라고 말하더냐?”

정선제가 말했다.

“풍씨 가문은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사옵니다.”

이번엔 노왕이 대답했다.

“어제 소신들이 풍씨 가문을 탐문하였는데, 그들이 말하길, 두 젊은 장수가 집으로 돌아온 후로 몹시도 우울해했다고 하옵니다. 풍씨 가문 사람들은 두 사람이 이번 전쟁에서 패하고 응성 백성들까지 도륙되게 만든 것을 자책하고 있다고 생각해 아무도 감히 위로의 말을 건네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튿날 이른 아침, 형제가 함께 풍흠의 방 탁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고 하옵니다. 두 사람은 탁자 위에 엎드려 있었는데 이미 검붉은 피를 토하고 사망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탁자 위엔 독주가 있었다고 하옵니다.

풍씨 가문 사람들은 두 사람이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정신적 충격을 감당하지 못해 자진한 거라고 여겼답니다. 또 이 일을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해 장례 준비도 대충 하고 자세히 밝혀내려 하지도 않았다고 하옵니다.”

“진서후에게 서신을 보낸 사람은 어찌 됐느냐?”

“몸 곳곳에 중상을 입고 내장도 손상을 입어 숨만 간신히 붙어 있는 상태이지만 아직 살아 있사옵니다.”

정선제의 물음에 장찬이 답했다.

“안으로 들이거라.”

정선제가 싸늘한 목소리로 그자를 찾았다.

잠시 후, 밖에서 어린 환관 두 명이 들것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 위엔 온몸을 붕대로 칭칭 감은 사람이 누워 있었다. 그 사람은 힘없이 눈을 뜨고 있었는데 정선제를 보더니 조금 감격스러운 눈빛을 내비쳤다. 그는 몸을 덜덜 떨며 간청했다.

“황제 폐하… 풍씨 가문의 억울함을 꼭 밝혀 주십시오…….”

그에 정선제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물었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

“폐하… 큭…….”

사내는 힘겹게 말을 이어 나갔다.

“소인 평안은… 풍흠 나리의 사동이옵니다. 수년 동안 줄곧, 나리를 모셔왔습니다. 진서후께서 응성을 탈환한 뒤… 남쪽 오랑캐의 영토로 들어가시자 저희 나리께서 응성 쪽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두 분 나리께서, 큭, 갑자기 태자 전하로부터 밀서를 받으셨고 펼쳐 보니… 두 분 나리께 매복하고 있다가 진서후 나리를 공격하여 그분의 공을 가로채고 풍씨 가문의 영예를 지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나리께서는 아무리 상황이 달갑지가 않아도 어찌 그런 양심을 저버리는 일을 할 수 있냐고 하셨습니다……. 캑캑… 그래서 두 분 나리는 태자 전하의 계획을 따르지 않았고 도성으로 돌아온 첫날 밤 태자 전하를 뵈었습니다…….

그리고 태자부에서, 나오시면서 이 밀서를… 소인에게 건네셨습니다. 하시는 말씀이 태자 전하께서 풍 측비 마마의 얼굴을 봐서 두 분 나리를 믿어 주실 수도 있지만 죽여 입막음을 할 가능성도 있으니… 커헉…….”

말을 하던 그는 시뻘건 선혈을 토해 냈고 숨이 잘 안 쉬어지는지 헉헉거리더니 요점만 간단히 이야기했다.

“그러니… 만약 두 분께서 정말로 목숨을 잃게 되면 소인이 이 밀서를 들고 진서후 나리를 찾아가 그분에게 건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두 분 나리가 그저께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소인은 곧장 진, 서후 나리를 찾아가려고 했는데 뜻밖에도 태자 전하의 사람이… 소인이 밀서를 가지고 있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소인을 추격해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행히… 소인이 도망쳐 나와 나리께서, 맡기신 마지막,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사옵니다…….”

주위에 있던 대신들은 평안의 말을 들으며 제각기 다른 표정을 보였다.

“너에게 묻겠다. 이 밀서라는 걸 누가 전달하였느냐?”

태자가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

“청두응靑頭鷹 한 마리가… 쿨럭…….”

평안은 기침을 멈추지 못했다.

“그래, 맞다.”

뜻밖에도 태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성난 얼굴로 해명했다.

“태자부에서 분명 서신을 전달하는 청두응 한 마리를 기르며 길들이고 있으나 난 풍씨 가문 형제에게 밀서 같은 걸 보낸 적이 없다. 응성을 빼앗긴 후, 풍 측비가 울면서 날 찾아와 두 형제가 집으로 돌아올 면목이 없어 어리석은 짓을 할지도 모르니 그들에게 가서家書 한 통을 보내 상심하지 말라고 위로하겠다고 했다.

청두응은 속도가 빨라 도성에서 응성까지 가는 데 이틀도 걸리지 않지. 풍 측비가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고 나도 풍씨 형제의 안위가 걱정되어 두 사람에게 가서를 보내는 데 동의했다.”

“그런데 그 ‘가서’가 뜻밖에도 사람을 죽이라는 밀서였네요?”

양왕은 냉소를 지었다.

“그때 측비는 나에게 가서를 보여 줬다. 분명 평범한 가서에 불과했어.”

태자는 괴로움과 분노가 섞인 얼굴로 받아쳤다.

“그런데… 풍씨 형제 손에 전달된 게 그런 것일 줄이야.”

“쿨럭쿨럭……! 아닙니다…….”

평안은 반박하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상태가 위중해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더니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맞습니다!”

전지신이 때를 놓치지 않고 끼어들었다.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서신을 보낼 때 풍 측비가 분명 서신을 바꿔치기한 겁니다.”

“맞습니다! 그 파렴치한 자가!”

당장에 거들고 나선 요양성이 콧방귀를 뀌며 소매를 확 뿌리쳤다.

“지금 풍씨 가문은 몰락했고 주씨 가문이 다시 일어섰습니다. 이 상황이 가장 탐탁지 않은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누가 가장 손해를 보겠습니까? 바로 풍씨 가문입니다! 지금 풍씨 가문을 가장 보호하고 싶은 사람은 풍 측비와 풍씨 가문 사람들입니다!”

“일리 있는 말이옵니다.”

조정 신하들도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확실히 풍씨 가문은 태자가 손에 쥐고 있는 셈이긴 하나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쓸모없는 장기짝,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그에 반해 주운환은 능력 있는 인물이니 풍씨 가문을 잃게 되면 태자는 다시 주운환을 포섭하면 그만이다. 그러니 태자는 굳이 이런 일을 벌일 필요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초조한 사람은 당연히 풍 측비와 풍씨 가문 사람들일 것이다. 가문의 영예를 지키기 위해 사람을 죽이고 공을 가로채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로, 변방에선 이런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곤 했다. 그저 풍씨 가문 두 젊은 장수가 너무 정직한 사람들이라 응하지 않았던 것뿐이다.

“그럼 밀서는요?”

“그걸 내가 어찌 알겠소?”

이부상서吏部尙書의 말에 태자가 싸늘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무튼 난 그런 서신을 작성한 적이 없소.”

탁자 앞에 앉아 있던 정선제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명을 내렸다.

“장찬, 풍 측비를 불러오너라.”

“예, 폐하.”

장찬은 얼른 공수하고 돌아서서 자리를 떴고 양왕과 주운환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때, 밖에서 어린 환관 한 명이 황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황제 폐하. 밖에… 궁 밖에 서생들이 모여 있고 백성들이 청원하고 있습니다. 태자 전하가 부덕하여 공신을 죽이려 했다고 태자 전하의 폐위를 청하고 있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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