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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453화 (453/858)

제453화

장씨 가문 사람들이 여종의 안내를 받아 2층으로 올라왔다. 장찬과 장굉, 맹씨 등이 앞에서 걸어오고 있었고 엽이채와 장박원은 차갑고 음침한 표정으로 아이를 안고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하하하하. 젊은 후야, 정말 축하하네.”

장찬은 주운환을 보더니 큰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다가왔고, 진씨 가문 사람들을 알아보고 얼른 진무 등과 인사를 나누었다.

주운환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장찬, 진무에게 인사를 건넸다.

“두 분 대인께서는 이쪽으로 오시지요!”

뒤에 서 있던 장박원과 엽이채는 장찬이 말끝마다 후야라는 말을 꺼내자 안색이 변했다. 특히, 엽이채는 주운환을 보더니 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손에 들고 있는 아이도 숨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아이가 떳떳지 못한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주운환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지만 또 저도 모르게 그에게 눈길이 갔다.

주운환은 은실로 자수를 놓은 집에서 입는 평범한 연청색 도포를 입었는데, 단출함 속에서 고결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허리에는 구슬이 박힌 넓은 허리띠를 두르고 있었고, 흑옥 같은 머리카락은 반은 묶어 은관으로 고정하고 나머지 반은 등 뒤로 넘겨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청수하면서도 화려한 외모를 가진 그는 눈썹꼬리와 눈꼬리에서 매력적인 분위기가 흘러넘쳤고, 부드러운 눈빛엔 어두운 빛도 섞여 있었다. 붉은 입술을 살짝 올리며 지어 보이는 미소엔 날카로움과 비웃음이 담겨 있었고, 차분하고 진중한 몸짓엔 거세게 몰아치는 비바람이 아직 멈추지 않은 듯 늠름하고 씩씩한 기운이 감돌았다.

이는 전쟁을 겪으며 자연스레 몸에 밴 빛과 기개였는데 보는 이들은 그에게 흠뻑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엽이채는 시선을 돌려 제 곁의 장박원을 슬쩍 훑어봤다.

장박원도 오늘 격에 맞는 차림을 하고 있었다. 파란색 구름 문양이 들어간 둥근 옷깃이 달린 금포를 입고 있었고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있으니 한층 외모가 준수해 보였다.

전에는 장박원을 보고 있노라면 귀티가 흐르고 학식이 풍부한 귀공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지금 장박원과 주운환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보니 그는 주운환의 풍채에 압도되어 아주 볼품없고 채신머리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비교하면 할수록 장박원이 점점 더 하찮은 사람으로 느껴져 엽이채의 불만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채와 제부가 드디어 왔네.”

엽연채는 더없이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알은체했다.

“어제 궁에서 베푼 연회에서 두 사람을 못 봐서 나랑 부군이 얼마나 걱정했는데. 그래서 추길이를 보내 안부를 물어본 거야. 장 부인도 괜찮으신 거죠?”

장박원은 얼굴을 찌푸렸다 웃었다 하는 엽연채의 모습이 하도 아름답고 화려해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동시에 가슴이 후끈후끈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어 저도 모르게 등을 꼿꼿이 폈다. 자신의 가장 늠름한 모습을 그녀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녀는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다정하게 주운환을 부르는 모습에 장박원은 짜증과 분노가 확 치밀어 올랐다.

‘가증스러운 것!’

맹씨도 엽연채와 주운환이 잘나가는 꼴을 보고 싶지 않긴 매한가지였다. 특히 주운환이 여러모로 그녀의 아들과 비교가 되자 기분이 언짢아진 그녀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어제는 몸이 안 좋아서 연회에 참석하지 못했네.”

그러자 엽이채는 표정이 굳어졌고 어제 추길이 했던 말이 또 생각났다. 집에 또 도둑이 들어 독약을 타는 바람에 온 가족이 몸져누운 게 아니냐는 빈정거림 말이다. 그녀는 할 수 없이 냉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을 보탰다.

“맞아요, 전 어제 집에서 어머님을 보살펴 드렸어요.”

그러자 옆에 있던 엽영교는 피식 냉소를 흘리며 엽이채를 흘겨보았다. 그러고는 꼬챙이로 신 모과 한 조각을 찍어서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엽이채는 엽영교를 쳐다보며 버들잎 모양의 고운 눈썹을 추켜세우더니 그녀의 배를 흘깃했다. 그녀는 넉넉한 크기의 연분홍색 배자를 입고 있었다.

“고모, 회임했어요?”

그 말에 엽영교는 표정이 굳어졌고 화가 나서 얼굴이 달아올랐다. 원래는 이 경사스러운 소식을 오늘 묘씨와 엽연채에게 조용히 알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엽이채가 이리 대수롭지 않게 말을 꺼낼 줄 누가 알았겠는가?

“뭐? 회임이라니?”

묘씨는 그 말에 깜짝 놀랐고 이어 흐뭇하고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옆에 있던 진 부인이 얼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렇게 알려 주었다.

“맞습니다. 이제 막 3개월이 됐어요!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오늘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에서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도성에는 임신한 지 3개월이 될 때까지는 이 사실을 알리면 안 된다는 관습이 있었다. 혹여나 태아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할까 염려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진씨 가문 사람들은 지금까지 이 사실을 꼭꼭 숨겨 왔고, 오늘에서야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정말 축하드려요!”

엽이채는 조그만 입을 가리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고 고개를 숙이더니 자기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보야. 좀 있으면 삼촌이나 고모가 생기겠구나!”

진씨 가문 사람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하다가 그제야 그 말뜻을 이해했다. 엽영교는 엽이채의 고모이며 손윗사람이니 엽영교의 아이는 엽이채 아이의 손윗사람이 되는 것이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엽이채는 갑자기 엽연채를 쳐다보더니 쯧쯧 혀를 찼다.

“전 보한테 사촌 남동생이나 사촌 여동생이 먼저 생길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삼촌이나 고모가 먼저 생길 줄 누가 알았겠어요! 호호호.”

이는 엽연채가 이렇게 오랫동안 아이가 없음을 비웃는 것이었다.

맹씨와 장박원은 속이 후련해졌다. 적어도 엽이채가 엽연채를 이긴 부분이 하나는 있는 셈이었다.

엽이채는 단번에 아들을 낳았다. 그에 반해 엽연채는 혼인한 지 일 년이 넘었는데도 아이 하나 낳지 못했다.

‘쯧쯧, 후손이 없으면 지금 아무리 잘나가 봤자 아무 소용없는 일이지. 나중엔 그저 죽 쒀서 개 준 꼴이 될 테니까.’

장박원은 그런 생각을 하며 엽이채의 몸에 기대었다. 고로 자신이 엽이채를 아내로 맞이한 건 옳은 일이었다. 적어도 엽이채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몸이지만 엽연채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몸이었다.

엽연채의 눈빛엔 싸늘한 기운이 어리었고 옆에 있던 묘씨와 나씨 등도 노여워하며 냉담한 눈빛으로 엽이채를 노려봤다. 장찬마저도 화가 잔뜩 나 있었다.

하지만 사실상 엽이채의 말에는 잘못된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만약 이를 트집 잡아 엽이채를 나무란다면 감추고 싶은 일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셈으로, 오히려 엽연채를 더욱 난감하게 만들 것이다.

그런데 엽이채는 아직도 성에 안 찼는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한마디 더 했다.

“언니, 제가 용한 의원 한 분을 알고 있는데 이따가 소개해 줄게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네.”

주운환이 이 말과 함께 앞으로 다가서더니 엽연채의 허리를 살짝 끌어당기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가 소홀했던 것뿐이네. 전엔 내가 바빴거든. 과거 시험 공부에만 매진하기 위해 줄곧 다른 처소에서 방문을 닫고 지냈지. 나중에 장원 급제를 한 뒤엔 출정하겠다는 생각을 했기에 계속 아이 문제는 고려하지 않았던 거네.”

엽이채는 주운환이 엽연채를 조금도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녀를 감싸는 모습을 보게 되자 질투심을 느꼈다. 역시 심사가 비틀린 장박원이 하하 냉소를 지으며 빈정댔다.

“형님은 처형에게 정말 잘해 주네요! 사사건건 처형을 감싸 주니 말이에요!”

이 말인 곧 주운환이 지금 엽연채에게 마음을 뺏긴 상태라 그녀를 감싸고도는 것일 뿐, 엽연채가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래, 당연히 잘해 줘야지.”

주운환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내 아내는 남편을 성공시키는 여인이니.”

‘남편을 성공시키는 여인?’

장박원과 맹씨, 엽이채는 그 말에 뜨끔했고 미간을 찌푸리더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더듬거렸다. 심지어 장굉마저 낯빛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엽연채가 남편을 성공시키는 여인이라고?’

남편을 성공시키는 여인이라는 말은 많은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던지는 말이고 점쟁이들이 덤으로도 해 주는 말이었다. 그들이 입만 열면 남편을 성공시키는 여인이라고 해대니 사람들도 그저 덕담 정도로 생각할 뿐이었다.

‘그런데 엽연채는…….’

생각을 하던 장박원과 맹씨 등은 저도 모르게 주운환을 쳐다봤다.

“나리, 양왕 전하께서 오셨습니다.”

이때, 한 여종이 주운환에게 달려왔다.

“가족분들도 데리고 오셨어요.”

“알겠다. 지금 가마.”

주운환은 고개를 돌려 묘씨와 장박원 등에게 말했다.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부인도 같이 갑시다.”

“네! 할머니, 고모. 편하게 계세요.”

엽연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운환과 함께 천천히 그곳을 떠났다.

아래층 연극 무대에선 여전히 흥겨운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엽영교가 까르르 웃으며 그쪽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어머니, 요즘 이 연극을 제일 좋아하시죠. 보세요, 덕명반 사람들이 공연하고 있어요.”

“그래.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화단이 노래를 부르고 있구나.”

묘씨도 하하 웃으며 말을 받았다.

주위는 더없이 시끌벅적했다. 장박원과 맹씨 등은 그곳에 앉아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이리저리 오가는 손님들을 구경했다. 그러나 뇌리에서 ‘엽연채는 남편을 성공시키는 여인’라는 말이 계속 맴도는 탓에 낯빛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엽연채가 남편을 성공시키는 여인이다? 그녀가 정말로 남편을 성공시키는 여인이란 말인가? 아니다. 그럴 리가! 하지만…….’

주운환은 듣도 보도 못한 비천한 서자에 불과했는데 엽연채를 아내로 맞이한 후로 갑자기 처지가 뒤바뀌었다. 거인이 되고 춘시의 장원 급제자가 되었으며 전시에서도 장원으로 합격하고, 그 후엔 심지어 장군이 되어 진서후라는 작위까지 받았다.

그렇게 주운환은 가는 길마다 승승장구하며 모든 사람을 자기 발아래에 두었다.

그에 반해 장박원은 어떠한가. 그는 원래 패기만만하고 품위 있는 소년이었다. 도성 귀공자들 중에서 꽤 이름을 떨친 재능 있는 소년이었는데, 엽연채를 밀어내고 엽이채를 아내로 맞이한 후로는 재수 없는 일이 끊이지가 않았다.

장박원은 생각하면 할수록 낯빛이 창백해졌고 도저히 이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 그럴 리가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맹씨와 장굉은 크게 티를 내진 않았지만 그들도 무척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리에 함께 앉아 있는 엽이채는 오금이 다 저렸다.

‘빌어먹을 계집애. 남편을 성공시키는 여인은 무슨…….’

엽영교는 그런 그들을 지켜보며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악독하고 파렴치하게 행동하더니 상대방이 한마디 했다고 바로 나락에 빠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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