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448화 (448/858)

제448화

이튿날, 궁에서는 주운환을 위한 환영회가 열렸다. 이날은 이른 아침부터 3품 이상의 관리들과 공훈이 있는 귀족 그리고 그 가족들이 모두 입궁하여 연회에 참석했다.

이번 연회는 전과 마찬가지로 청휘원에서 열렸고, 그 뒤 대전으로 들어가 연회를 마저 즐기는 식이었다.

아침이 밝자마자 엽연채와 주운환은 옷을 갈아입은 후 동쪽에 위치한 수화문으로 갔다.

진씨와 주묘서 등은 일찌감치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초췌한 몰골이었지만 그렇다고 이런 자리에 빠지고 싶진 않았다. 지금이야말로 권세 있는 사람들과 사귈 수 있는 좋은 때이며, 자신들과 주운환의 관계가 좋음을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기회이니 말이다.

주묘서는 전과 마찬가지로 화려하게 치장했고, 주묘화도 격식에 맞는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화려하게 치장한 사람은 바로 주종과였다. 그는 물결 문양의 천사금天絲錦으로 만든 둥근 깃이 달린 옷을 입었고, 묶은 머리 위에는 금관을 썼으며, 허리에는 옥대玉帶를 둘렀다. 또 허리춤에는 두 개의 혈옥패血玉牌와 복숭아나무 가지 문양이 수놓인 비단 향낭, 낙자를 걸고 있었다. 이번 옷차림은 전에 입었던 것들보다 배는 비싼 것들이었다.

게다가 그는 얼굴에 분칠까지 하고 있어 피부가 더욱 새하얗게 보였다. 어쨌든 전체적인 분위기와 용모가 대폭 향상되어 보였다.

주종과는 이번 치장에 상당히 공을 들였고 출혈도 꽤나 컸다. 큰돈을 써서 몸에 맞는 옷을 짓고 치장을 했으며 화장까지 했다. 주운환보다 근사해 보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주운환이 다가오자 주종과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주운환은 후작위에 오른 관원들이 입는 이무기 문양이 수놓인 검붉은 색깔의 의복을 입고 있었다. 머리에는 좀처럼 쓰지 않던 금관을 썼으며, 허리에는 구슬이 박힌 넓은 허리띠를 두르고 있어 존귀한 분위기가 한층 더 부각됐다.

본래 그가 자연스레 지니고 있는 위엄과 귀티가 흐르고 있어 중후한 느낌이 들면서도 화려해 보였다. 또 날카로운 눈빛은 예기를 드러내고 있어 그야말로 높은 지위에 있는 조정 중신의 모습이었다. 반면, 그의 위압감에 짓눌린 주종과는 기루의 남기男妓처럼 보였다.

엽연채는 진주가 달린 진보라색 조복을 입고 있었다. 주운환과 함께 걸어오니 색깔이 조금 튀었지만 나름대로 우아한 멋이 느껴졌다.

엽연채가 주운환을 쳐다보며 말했다.

“황제 폐하께 다음에는 2품 의복을 입어도 되는지 여쭈어볼게요.”

그 옷은 검붉은색이니 주운환이 입은 옷과 잘 어울릴 것이었다.

그러나 그 말에 주운환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저는 부인이 1품이 된 게 기쁘니까요. 나중에 갈아입을 때, 저와 같은 색깔의 옷을 입으면 됩니다. 정 안되면 제가 더 노력하겠습니다. 제가 더 올라갈 수 있을지 없을지 지켜봐 주십시오. 당장은 어렵겠지만, 나중에… 기회가 생길 겁니다.”

“네.”

엽연채는 미소를 지으며 끄덕였다.

사람들은 주운환과 엽연채가 찰싹 달라붙어 걸어오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고 진씨와 주종과 등은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올 것만 같았다.

진씨는 포복을 입고 있는 주운환의 모습을 보더니 안색이 확 변했다.

어쨌든 일가는 마차에 오른 후 황궁으로 향했고, 동화문에 도착하여 마차에서 내리자 환관 한 명이 바로 다가서더니 미소를 지으며 안내했다.

“주 후야, 부인. 오셨군요.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진씨는 어린 환관이 달려와 주운환과 엽연채만 부르자 기분이 언짢아졌다.

주운환을 포함한 사내들은 안내를 받아 정선제를 알현하러 갔고, 엽연채는 봉의궁으로 안내를 받아 황후를 만난 후, 다시 청휘원으로 안내를 받았다. 그녀는 그제야 조복을 벗고 검붉은 색깔의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었다.

그런데 주운환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황제가 계속 붙잡고 있는 게 분명했다.

잠시 후, 엽연채가 청휘원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귀부인들이 그녀를 둘러쌌다.

“아이구, 후 부인! 후 부인께서 오셨구먼!”

대제는 널린 게 후야였지만, 진서후인 주운환은 평판이 아주 높으니 그중에서도 특별했다. 사람들은 ‘후야’와 ‘후 부인’이라는 호칭이 마치 그들만을 지칭하는 말인 것처럼 다들 그녀를 후 부인이라고 연신 불렀다.

“연채야!”

그녀를 부르는 누군가의 작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보니 제민이 그녀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민아.”

엽연채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반겼다.

“일찍 와 있었네!”

“응!”

제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궁첩宫帖을 받아 연회에 참석한 참이었다.

“축하해! 요 며칠 널 보러 가고 싶었는데 네 부군이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으니 부부가 편히 쉬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방해하지 않기로 했지.”

“그동안 뭐 하면서 지냈어?”

엽연채가 물었다.

“몇몇 가문의 초대를 받아서 어린 소녀들에게 바둑 두는 법을 가르쳤어.”

제민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부인, 우리 앞에 있는 가산정假山亭(석가산 근처에 있는 정자)에 가서 놀아요.”

이때, 또 다른 부인들이 얼른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다가섰다.

“아유, 현주가 아니신가! 함께 가서 이야기를 나누시죠!”

엽연채가 그들을 쓱 훑으니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었다. 다들 이편의 비위를 맞추며 아첨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이에 엽연채는 그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짧게 말했다.

“그러시죠.”

엽연채와 제민은 그들과 함께 백옥로白玉路를 따라 앞으로 걸어갔다. 이윽고 앞에 있는 높은 비탈에 석가산이 세워져 있는 모습이 보였고, 엽연채가 널찍한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보니 지붕이 높이 솟은 팔각정자가 보였다. 안에는 귀인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바로 태자비와 노왕비, 신양 공주 등이었다.

태자비는 그녀를 보자마자 점잖게 웃으며 말했다.

“어머, 연채가 왔네요.”

그 말에 엽연채는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우리가 언제부터 친했다고 왜 남의 이름을 함부로 부른담.’

태자비는 몇 번이나 엽연채를 적대시했는데 그 이유는 엽연채가 태자를 홀릴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주운환이 큰 공을 세웠고 후야의 작위도 받았으며 황제의 총애를 넘치게 받고 있으니 태자는 더는 감히 엽연채를 건들지 못할 것이었다. 그래서 엽연채는 경계해야 할 적에서 그녀가 포섭해야 할 존재가 되었다.

“태자비 마마, 오랜만에 뵈옵니다.”

엽연채는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올린 후 신양 공주와 노왕비를 향해 예를 올렸다.

“왕비 마마, 공주 마마를 뵈옵니다.”

“아이 참, 그리 예의 차릴 것 없네.”

노왕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서 일어나게.”

푸른 국화 문양이 들어간 둥글부채를 쥐고 있는 신양 공주는 미소를 지으며 부채로 입을 가렸다.

“요즘 부인의 꽃차가 또 생각나던데 시간이 있으면 태자부에 놀러 와서 나와 함께 차를 즐기세.”

태자비가 미소를 지으며 권했다.

“참. 자네 후부도 정륭가에 있지 않은가?”

“예.”

엽연채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보수 중이고, 대략 한 달 정도면 준비가 완료될 듯하옵니다. 그곳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면 마마와 부인들께서 누추한 저희 집에 꼭 왕림하셔서 제 체면을 세워 주십시오.”

“물론이네.”

태자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요즘 날씨가 쌀쌀해져 마침 추국秋菊이 활짝 폈으니 이것으로 어떻게 꽃차를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엽연채는 말린 꽃을 만드는 솜씨가 그리 좋지 않았기에 대화에 낄 수 없었고, 태자비가 꽃을 말리는 법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데 그녀가 답을 하지 못할 때마다, 태자비가 번번이 그녀를 도와 적당히 상황을 넘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엽연채는 입꼬리를 삐죽거리며 속으로 금세 태도를 바꾼 태자비에게 감탄해 마지않았다.

가산정 쪽은 사람들의 말소리로 떠들썩하기 그지없었는데, 저 멀리 석가산 근처에서 분홍색 옷을 입은 한 사람이 이쪽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물처럼 맑은 커다란 두 눈을 깜빡거리더니 기다란 속눈썹을 살짝 드리웠다. 음영이 진 얼굴이 퍽 씁쓸해 보였다.

조앵기는 오늘 분명 엽연채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엽연채와 시간을 보낼 수 있던 전과 달리, 지금은 태자비 등이 서로 그녀와 함께 있으려고 해서 감히 다가갈 수가 없었다.

잠시 생각을 하던 그녀는 근처에 있는 시냇물 근처로 걸어갔고 그곳에는 사람의 모습이 가려질 수 있는 높이 솟은 석가산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평평한 돌 위에 앉아 혼자서 실뜨기를 하며 놀고 있었는데 이때 뒤에서 누군가의 싸늘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앵기가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돌려 보니 양왕이 그곳에 서서 냉담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여기서 뭐 하고 있느냐?”

“아무것도 아니에요…….”

조앵기는 입을 실쭉거리더니 긴 속눈썹을 살짝 들어 올려 그를 힐끗 보고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나한테 궁에 데리고 들어와 달라고 그렇게 오랫동안 부탁했던 게, 겨우 여기서 실뜨기를 하기 위해서였느냐?”

양왕은 코웃음을 쳤다.

“오지 말라고 해도 굳이 오겠다고 하더니, 누가 널 상대해 준다고!”

양왕은 그리 말하고는 옷소매를 뿌리치며 그곳을 떠났다.

조앵기는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그에게 비웃음을 당한 그녀는 이제 실뜨기를 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져 조용히 시냇물 속 조약돌만 세어 나갔다.

“어……? 왜 여기에 있어?”

그때 누군가의 옅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앵기가 움찔하며 고개를 돌려 보니 엽연채가 그곳에 서서 배시시 웃으며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고 엽연채 뒤로 제민이 서 있었다.

“연채야…….”

조앵기는 그녀를 보더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난 네가 날 모르는 척하는 줄 알았어.”

“그럴 리가! 내가 봤을 때는 네가 숨던데.”

엽연채는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다가섰다.

“간신히 핑계를 대고 나왔어. 이제 숨통이 좀 트이네.”

“오, 민이도 여기 있었네.”

조앵기는 기뻐하며 인사를 건넸고, 그에 제민은 발끈하며 다리를 휘청였다.

“이제야 본 거예요?”

“참. 지난번에 낙자 만드는 법을 알려 줬잖아. 몇 개나 만들었어? 오늘은 새로운 모양으로 만드는 법을 알려 줄게.”

엽연채의 말에 조앵기는 멍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숙였다.

“그게… 제대로 못 배워서 안 했어.”

“엥?”

제민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정말 세상 물정 전혀 모르는 게으름뱅이군요. 뭘 좀 배우라고 하는데도 여전히 그냥 있는 거예요?”

조앵기는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엽연채 뒤로 숨었다.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이런 상태로 있다가, 양왕 전하께서 정말로 마마를 쫓아내 버리면 어쩌려고요? 마마는 그저 굶어 죽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을 거예요!”

조앵기는 제민이 자신을 나무라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입을 꾹 다물었다.

엽연채는 그런 그녀를 당기며 미소 띤 얼굴로 다른 얘깃거리를 꺼냈다.

“열흘 후에 민이가 집들이를 하고 한 달 뒤에 내가 이사를 가. 그때 꼭 와야 돼.”

“응!”

조앵기는 기쁜 마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밖에서 라鑼와 북소리가 울리자 엽연채가 말했다.

“연회가 시작하나 보다. 어서 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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