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446화 (446/858)

제446화

정 마마는 그 말을 듣더니 두 눈을 반짝였다.

지금 서씨 가문이 주씨 가문을 죽어라 붙들고 있는 건 주운환에게 아첨하기 위함이었다. 그럼 주묘화로 바꿔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제 주씨 가문은 예전의 주씨 가문이 아니니 서녀인 주묘화가 종4품 소관의 아들에게 시집을 간다 하더라도 서씨 가문에게 모욕이 되지는 않을 것이었다.

적녀에서 서녀로 바뀌는 것을 달가워하진 않겠지만, 주 백야에게 주운환의 명성을 이용해 압박을 넣으라고 하면 분명 가능할 것이었다.

정 마마는 점점 더 마음이 동했고 그녀가 입을 열려는 찰나, 뜻밖에도 진씨와 주묘서의 낯빛이 확 변했다. 더욱이 주묘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이렇게 딱 잘랐다.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말아요!”

정 마마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주묘화가 주묘서를 대신하는 게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그리하자고 해야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서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백 이낭은 낯빛이 확 변하더니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진씨를 훑어보며 재차 말했다.

“저… 서씨 가문은 큰아가씨께 어울리지 않으니 저희가…….”

진씨는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청화 찻잔을 천천히 들어 올려 차를 한 모금 들이켜더니 피식 냉소를 흘렸다.

“백 이낭 자네의 뜻이 무엇인지 우리도 아네. 하지만 우리가 파혼하려는 이유는 단지 우리 가문과 서씨 가문이 어울리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네. 서 공자가 아내를 잡아먹는 명운을 타고났기 때문이네. 묘서를 그런 사내에게 시집보내서야 되겠는가? 묘서를 시집보낼 수 없으면 당연히 묘화도 안 되지. 묘서가 벗어나기 위해서 묘화를 희생시키면 되겠는가?

묘화가 내가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어쨌든 내 곁에서 자라난 아이이네. 그러니 내가 묘화를 박대하겠는가? 묘화는 자네의 친딸이고 자네는 어릴 때부터 내 곁에서 날 모셔 왔네. 그러니 더더욱 묘화가 그런 불구덩이에 뛰어들게 할 수…….”

“마님!”

정 마마가 더는 참을 수 없었는지 얼른 그녀의 말을 끊었다.

“서 공자가 어떻게 아내를 잡아먹는 팔자이겠습니까? 그저 큰아가씨와 사주가 맞지 않는 것뿐입니다. 백 이낭이 마음이 있다고 하시니 서씨 가문으로 가서 한번 상의라도 해 보시지요. 사주를 맞춰 보고 맞는다면 그렇게 하는 걸로 하시지요.”

그 말에 백 이낭은 기뻐했고 진씨의 마음이 변할까 봐 겁이 나 얼른 차를 따르고는 인사까지 마쳐 버렸다.

“부인, 감사합니다. 그럼 전 먼저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녀는 그리 말하고는 재빨리 그곳을 떠났다.

“정 마마, 뭐 하는 겐가?”

주묘서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뭐가 말입니까?”

정 마마는 미간을 찌푸리다가 차갑고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진씨에게 말했다.

“이렇게 좋은 방법인데, 마님께선 어째서 동의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그러자 진씨가 새파란 얼굴로 말했다.

“정 마마, 자네는 셋째 그 빌어먹을 놈이 어떤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는지 모르는 겐가?”

정 마마는 어리둥절했다.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엄청난 행운을 얻지 않았습니까? 원래는 장씨 가문에 시집갔어야 하는 분인데 신랑이 될 사람이 도망가는 바람에 저희 가문으로 시집와서 셋째 나리가 이득을 보셨죠.”

“중점을 우리 가문에 두지 말게. 엽씨에게 사촌 여동생이 있는데 그 아이가 장씨 가문으로 시집을 가는 바람에 결국 그 빌어먹을 서자 놈이 빛을 보게 됐지. 자매간에 혼사가 뒤바뀌는 바람에.”

진씨는 그리 말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정 마마는 곧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서씨 가문이 눈에 차지 않지만 혹여나 주묘화가 이득을 보는 것은 싫다는 뜻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서 공자가 주운환처럼 갑자기 처지가 바뀌게 되면 어찌하겠는가! 그리되면 주묘서는 엽이채처럼 웃음거리로 전락할 게 분명했다.

그럼 친척 간에 왕래할 때 몹시 껄끄러워질 것이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진씨는 주묘화를 서씨 가문으로 시집보내는 일을 결사반대한 것이다.

“하지만 마님, 서씨 가문이 입신양명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요?”

“입신양명은 무슨!”

진씨는 콧방귀를 뀌었다.

“자네는 아무나 다 입신양명하는 줄 아는가. 흥! 불확실한 미래에 기댈 바에야 지금 능력 있는 사내를 찾는 것이 백번 낫지! 지금은 그저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뿐이네. 그런데 자네가…….”

진 씨가 냉랭한 눈빛으로 정 마마를 노려봤으나 정 마마도 지지 않고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당장 아가씨의 혼사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진씨는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정 마마는 초조한 목소리로 설득을 이어 나갔다.

“이 일은 미뤄서는 안 됩니다. 둘째 아가씨를 서씨 가문으로 시집보낸다고 반드시 서씨 가문의 처지가 뒤바뀌는 것도 아닙니다. 큰아가씨가 셋째 나리를 이용해 훌륭한 가문의 자제와 정혼하게 되면 저희가 다시 둘째 아가씨의 혼사를 망칠 방법을 생각해 내면 됩니다. 이래도 안 되겠습니까?”

진씨는 순간 멍해졌다.

“자네에게 방법이 있었군. 그래, 이 일은 늦춰서는 아니 되네. 내일 저녁에 환영회가 있으니 우린 오늘 이 일을 해결해야 하네.”

* * *

진씨는 다시 정 마마와 함께 서씨 가문으로 갔다.

진씨에게 혼사를 물릴 방법이 생겼다는 걸 모르는 서씨 가문 문지기는 이곳을 떠난 지 얼마 안 된 그녀가 또다시 찾아오자 어리둥절하며 그녀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마침 서 부인과 서 대인은 방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인이 진씨를 모시고 걸어오는 모습이 보이자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서 부인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진씨를 맞이했다.

“사돈, 방금 전에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셨습니까? 어째서 또 오신 거죠?”

“사돈과 상의할 중요한 일이 있어서죠.”

진씨는 그리 말하고는 누가 자리에 앉으라고 권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자리에 앉았다.

서 부인은 그녀도 자신을 사돈이라고 부르자 표정이 한결 누그러졌다.

“사실 묘서와 서 공자의 사주가 잘 맞지 않아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제 막내딸과 서 공자는 사주가 아주 잘 맞더군요.”

진씨는 허허 웃으며 되도록 완곡하게 말을 꺼냈다.

하지만 서씨 부부는 얼간이가 아니었다. 상대방이 궁합 상관없이 적녀와 서녀를 바꾸려고 변명을 늘어놓는 것을 어찌 모르겠는가.

서 부인은 화가 나 낯빛이 확 변한 데 반해 서 대인은 미간만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그랬군요……. 이소저의 사주와 저희 아들의 사주가 더 잘 맞는다면 저희도 반대할 이유가 없지요. 다만 이 혼사는… 부인께서도 아시다시피 제 아들놈이 대소저에게 구혼을 해 달라고 부탁하여 진행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 일은 그 애에게 먼저 물어봐야 합니다. 가서 공자를 데려오너라.”

옆에 있던 여종은 알겠다고 대답한 후 돌아서서 밖으로 뛰어나갔고 이윽고 서 공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준수한 외모에 키가 훤칠한 서 공자는 예비 장모가 와 있는 모습을 보더니 얼른 앞으로 다가가 예를 올렸다.

“장모님을 뵙습니다.”

진씨는 지난번에 혼담을 나눌 때만 하더라도 서 공자가 번듯한 외모를 가졌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리 봐도 꾀죄죄하고 초라해 보였다.

진씨가 빙긋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일어나게.”

“아들아. 방금 전에 주 부인께서 사주 이야기를 하시면서 너와 주씨 가문 이소저의 사주가 더 잘 맞는다고 하시더구나. 그래서 혼인 상대를 이소저로 바꾸려고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서 대인이 옅은 한숨을 쉬며 물었다.

“이소저로 바꾸다니요?”

서 공자는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그러니까 너와 혼인할 사람은 대소저가 아니라 이소저라는 말이다.”

“네?”

서 대인이 다시 한번 말하자 서 공자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제가 혼인하고 싶은 사람은 대소저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대소저예요! 전에 사주를 맞춰 봤을 때만 해도 궁합이 좋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갑자기 안 좋다는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게다가 왜 저와 이소저의 사주를 맞춰 보신 거죠?”

그리 말하던 서 공자는 낯빛이 확 변했다.

“파혼하고 싶으신 겁니까?”

진씨의 표정은 더 좋지 않았다. 다들 속으로는 잘 알고 있지만 입 밖으로 꺼내면 껄끄러워지는 일도 있는 법이다. 그녀는 민망함을 헛기침으로 가리며 말했다.

“크흠……. 우린 둘째와 자네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것뿐이네.”

“그런 말씀 마세요! 결국 파혼하고 싶으신 거겠죠!”

서 공자는 싸늘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주씨 가문 셋째 공자가 공을 세워 이름을 날리게 되자 주씨 가문도 덩달아 위상이 높아졌다고 저희를 업신여기는 거 아닙니까?”

진씨는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했다. 남 앞에서는 낯가죽이 두꺼운 편이 아닌 그녀는 이런 말을 참아 낼 수가 없었다.

정 마마는 더는 참지 못하고 앞으로 한 걸음 내딛더니 쏘아붙였다.

“아셨으면 좀 분별 있게 행동하세요. 저희는 지금 도련님과의 혼인을 물리겠다는 게 아닙니다. 그저 상대를 둘째 아가씨로 바꾸겠다는 것뿐이에요. 저희 둘째 아가씨는 비록 서출이기는 하나 지금 주씨 가문 수준이면 도련님의 짝이 되어도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겁니다. 그리해도 두 가문이 사돈을 맺은 것은 마찬가지이니 앞으로 서씨 가문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저희 주씨 가문이 도울 겁니다.”

서 부인은 뚜껑이 열리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입을 오므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네는 내가 바라는 게 그런 것들이라고 생각하는가?”

서 공자가 새파란 얼굴로 말했다.

“어쨌든 저희는 할 말을 다 전했습니다!”

정 마마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럴 수는 없다!”

서 공자는 바로 거절 의사를 밝혔다.

“다들 꿈도 꾸지 마세요! 저와 주씨 가문 대소저는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합니다. 그러니 누구든 저희 사이를 억지로 갈라놓을 생각 하지 마세요!”

그 말에 진씨는 화가 나 몸을 비틀거렸다.

“이런 무례한 사람을 봤나! 누가 자네와 진심으로 사랑을 한다는 게야! 우리 묘서의 평판을 더럽히지 말게!”

“저희는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해요!”

서 공자가 소리쳤다.

“얼마 전에는 함께 호수를 유람하고 연도 날렸습니다. 대소저가 다소 조심스럽게 행동하긴 했지만 저희는 정말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진씨는 격정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얼마 전을 떠올려 보니 확실히 주묘서와 서 공자는 한동안 친밀하게 지냈었다. 당시 주씨 가문 상황이 심상치 않았기에 서씨 가문에서 갑자기 혼사를 물리자고 할까 봐 걱정이 되어 주묘서에게 서 공자와 잘 지내며 그의 마음을 붙들어 놓으라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 묘서는 자네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네!”

진씨는 낮게 깔린 싸늘한 목소리로 반박했다.

“예전을 생각해 보십시오. 주씨 가문이 그런 처지에 있을 때 전 주씨 가문을 꺼려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마음에 든 사람은 주 대소저입니다. 그런데 지금 주씨 가문에서는…….”

서 공자가 음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찌 됐든 간에 전 혼인하기로 했던 사람과 혼인할 겁니다. 두 소저를 바꾸는 건 어림도 없습니다!”

“이……!”

진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정 마마는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가문은 후부입니다! 그리고 저희 셋째 나리께서는 혁혁한 전공을 세운 대장군이십니다. 이번에 진서후에 봉해졌단 말입니다!”

“후야는 그럴 분이 아니네!”

서 공자는 콧방귀를 뀌더니 이렇게 되받아쳤다.

“전에 후야께 가르침을 청한 적이 있네. 그때 그분은 후야는 아니셨지만 그래도 장원 급제자였고 훌륭한 분이셨네. 하지만 오만함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지. 난 그저 보잘것없는 수재에 불과한데도 그분은 날 업신여기지 않으셨네.”

진씨는 화가 나 까무러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서 공자가 주운환의 인품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파혼은 어림도 없습니다! 제가 혼인하고 싶은 사람은 주 대소저입니다! 그러니 후야의 위세를 이용해 저희를 압박할 생각은 하지 마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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