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445화 (445/858)

제445화

정 마마의 말에 진씨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고, 정 마마가 이어서 말했다.

“지금이 바로 셋째 나리의 평판이 가장 좋고 백성들이 가장 추앙하는 때입니다. 그러니 설령 이 일이 밖으로 퍼진다고 해도 백성들이 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님, 믿는다 하더라도 결과가 어떠할 것 같습니까?”

“결과가 어떻다니?”

비 이낭이 차가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소문이 사실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셋째 나리는 배은망덕하고 가족들을 몰라보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정 마마가 말했다.

“그래! 셋째 나리는 배은망덕한 사람이야! 사실이 되어 버리는 게 제일 좋겠지! 게다가 그건 원래 사실이라고!”

비 이낭이 큰 소리로 나발을 불어댔다.

“어찌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십니까!”

정 마마는 그녀를 쳐다보며 고함을 쳤다. 당장이라도 그녀의 뺨을 후려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맞아요. 셋째 나리는 가족들을 나 몰라라 하고 있어요. 하지만 셋째 나리는 평판만 좀 나빠질 뿐 여전히 부귀한 후야이실 거예요. 그런데 저희는 여전히 별 볼 일 없는 처지라는 게 현실입니다!

그럼 큰아가씨의 혼사는 어찌 되겠습니까? 지금 큰아가씨 혼담은 셋째 나리의 평판에 기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셋째 나리께서 가족들을 나 몰라라 한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면 큰아가씨가 어떻게 좋은 사람에게 시집갈 수 있겠습니까? 정말로 4품 소관 집안인 서씨 집안에 시집보내시려는 겁니까?”

그 말에 진씨는 낯빛이 확 변했고 온몸에 소름이 확 끼쳤다. 그 순간, 정 마마가 하는 말의 요점을 깨닫게 됐다.

“정말로 이런 소문이 퍼지게 되면 셋째 나리는 크게 상관없겠지만 저희는 잘 지낼 생각을 접어야 할 겁니다. 혼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셋째 나리는 그렇다 치면 되지만 아가씨의 혼사는 미룰 수 있습니까?”

눈앞이 캄캄해진 진씨는 하마터면 바닥에 나동그라질 뻔했고 이어 화가 치밀어 올라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과연, 이래서 엽씨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거구나. 알고 보니 큰 손해를 볼까 봐 상대를 건드리지 못하는 건 엽씨가 아니라 우리였구나.’

“그럼 이제 어찌한단 말인가?”

비 이낭은 발을 동동 굴렀다.

“참아야죠!”

정 마마는 그리 말하며 냉랭한 눈빛으로 비 이낭을 쏘아봤다.

“참는다고?”

비 이낭은 두 눈을 부릅떴다.

“네.”

정 마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 간의 불화와 관련된 소문은 조금도 퍼져 나가면 안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마님이 자애를 베푸셨다고, 셋째 나리께서 얻어 낸 모든 하사품들이 집안의 것이기는 하나 셋째 나리께 가져가라고 했고 새집으로 거처를 옮기라 했다고 말해야 합니다.”

화가 난 진씨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비 이낭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더니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고 정 마마는 싸늘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비 이낭, 돌아가서 또 몰래 농간을 부릴 생각은 하지 말아요. 정말로 안 좋은 소문이 퍼지게 되면 다 이낭이 벌인 거라고 생각해서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비 이낭은 발이 미끄러져 하마터면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그녀는 촤락 소리를 내며 발을 걷더니 밖으로 뛰어나갔다.

진씨는 화가 나 가슴을 움켜쥐더니 탁자 위로 몸을 숙였다. 정 마마가 그녀를 다독였다.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서씨 가문과의 혼사입니다. 이미 정혼했고 납폐도 받았는데 어떻게 파혼하실 생각입니까?”

“매파를 불러와 그 사람에게 물리라고…….”

진씨가 냉랭한 목소리로 대꾸하자 전 마마가 딱 잘랐다.

“매파 쪽에서 어디 이런 일을 맡으려고 하겠습니까? 더는 미룰 수 없습니다. 셋째 나리 부부가 거처를 옮기면 좋은 혼처를 구하는 건 더더욱 어려워질 겁니다.”

진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럼 지금 가세!”

진씨는 자리를 떨치고 정 마마와 함께 문을 나섰다.

* * *

서씨 가문 저택에 도착한 진씨가 첩자帖子를 건네자 서씨 가문 사람은 얼른 그들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주운환이 큰 공을 세웠기 때문에 진씨의 첩자를 받은 서씨 가문은 그녀를 깍듯하게 대접했다. 진씨가 서씨 가문 저택에 방문하자 그들은 얼른 진씨를 본채로 모셨고 가장 좋은 차와 간식거리로 그녀를 대접했다.

서 부인은 안으로 들어와 진씨를 보더니 ‘아이구’ 하며 반겼다.

“사돈, 오셨습니까!”

그 말에 진씨는 샐쭉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누가 당신 사돈이야!’

그녀는 그저 웃으며 말했다.

“서 부인, 오셨군요.”

서 부인은 탑상에 앉지 않고 찻상을 사이에 두고 진씨 근처에 놓인 권의에 앉았다.

“사돈, 오늘 시간이 나셨나 봅니다. 사돈댁에 후야에 봉해진 분이 나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저택도 하사받았다고 하더군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시겠습니다.”

그러자 진씨는 탐탁지 않아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네… 제 아들이… 지금 기세가 보통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모두 그 아이를 우러러보고 있죠.”

서 부인은 미소를 지으며 진씨를 거듭 추어올렸다.

“좋은 일입니다. 사돈은 복도 많으세요!”

그러나 진씨는 더욱 짜증이 나며 괴로울 따름이었다. 그녀는 분개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복이라니요! 화가 나 죽을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미소를 띠고 있던 서 부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모자 사이에 불화가 있는 걸까? 하긴 친자식이 아니니 그럴 수도 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낼 필요가 있나?’

진씨는 더 질질 끌고 싶지 않아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닦으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 사돈, 무슨 일이세요?”

서 부인은 깜짝 놀랐다.

“그 불효자가 묘서의 혼사까지 관여하려고 합니다.”

진씨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 애가 자기는 친누이동생이나 친누님이 없는데 이제 후야가 됐으니 묘서의 혼처를 알아보겠다고 하더군요. 어떻게 서씨 가문에 시집보낼 수가 있냐면서 말이죠!”

“네?”

서 부인은 깜짝 놀라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단 말입니까?”

진씨는 가슴을 움켜잡고 분개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제가 서 공자를 얼마나 마음에 들어 하는지는 하늘만이 아실 겁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불효자가 지금 황제 폐하의 총애를 받고 있고 후야까지 되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어찌 감히 그 애의 뜻을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그 애와 말할 때 목소리만 좀 높여도 사람들은 제가 서자를 괴롭힌다고 말할 겁니다.

그래 제가 생각을 해 봤는데… 이 혼사는 물리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안 그러면 그 애가 황제 폐하 앞에서 부인의 부군을 난처하게 만들 겁니다.”

서 부인은 저도 모르게 진씨를 유심히 살펴봤다. 그녀도 반편이가 아니니 세상 사람들이 가난한 자는 싫어하고 부유한 자는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제 주씨 가문이 일어서게 됐으니 진씨는 서씨 가문과의 혼사를 물리려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서 부인은 그런 생각을 하더니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저희는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니 사돈께서는 마음 푹 놓으세요!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저희 부군이 후야와 교분이 좀 있습니다. 어쨌든 제 부군도 국자제주이고 후야도 장원 급제 출신이니… 후야가 과거 시험에 합격한 뒤로 제 부군과 학문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연구한 적이 꽤 있습니다. 이따가 부군께 대체 어찌 된 일인지 후야에게 여쭈어보시라고 하죠.”

그 말에 진씨는 낯빛이 확 변했고 화가 나 쓰러질 것만 같았다. 이 일이 주운환에게 알려지면 아마 주운환은 주묘서가 몰락한 서씨 가문에 시집가는 걸 두 손 들고 환영할 것이었다.

진씨는 화가 잔뜩 치밀었다. 뒤에 있던 정 마마는 서 부인이 진씨의 의도를 간파한 것을 알아채고는 뼈 있는 말을 톡 쏘아붙였다.

“서 부인, 사람은 높은 곳을 향하는 법이고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법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높은 곳을 향하려 하고 있지 않은가!”

서 부인은 진씨를 쳐다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예전의 주씨 가문처럼 말이죠. 주 부인은 이제 와서 혼사를 후회하나 봅니다? 삼서육례三書六禮를 절반이나 치렀고 심지어 저희는 청첩장도 돌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 저희 가문에 시집보내지 않으려는 겁니까?

정말 궁금하군요. 대체 뭘 믿고 이러시는 겁니까? 후야 때문입니까? 정말로 어찌 된 일인지 후야를 찾아가 물어봐야겠군요.”

“이……!”

진씨는 정말이지 분통이 터져 죽을 것만 같았다.

“서 부인, 이러지 마세요. 문제가 있으면 서로 잘 상의하면 되지 않습니까?”

정 마마가 얼른 앞으로 나서며 중재했다.

“상의할 게 뭐가 있는가? 각자 돌아가서 혼사 준비나 잘하세.”

서 부인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진씨는 소매를 확 뿌리치더니 돌아서서 그곳을 떠났다.

정 마마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녀는 일이 이렇게 쉽게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쨌든 서씨 가문은 주씨 가문이 가장 힘들 때 정혼을 했다. 그런데 이제 주씨 가문이 다시 일어서자 파혼을 하겠다고 하니 그 어떤 가문이라도 이를 원치 않을 것이다.

* * *

진씨가 집으로 돌아와 보니 주묘서가 수화문에 앉아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묘서는 그녀를 보자마자 곧장 달려와 이렇게 물었다.

“어머니, 어떻게 됐어요?”

진씨는 좋지 않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어디 쉽게 해결되겠느냐?”

“그럼 어떡해요?”

주묘서는 화가 나서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만 같았다.

진씨 모녀가 일상원으로 돌아와 자리에 앉자 백 이낭이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아이고! 부인, 돌아오셨군요.”

진씨가 싸늘한 눈빛으로 백 이낭을 쳐다보자 그녀는 손에 찬합을 들고 멋쩍게 앞으로 다가갔다.

“옥수수 떡을 좀 만들어 봤는데 부인 맛보시라고 특별히 가져왔습니다.”

진씨는 냉담한 눈빛으로 백 이낭을 힐끗하며 짧게 대꾸했다.

“내려놓게!”

백 이낭은 작은 찬합을 들고 걸어와 진씨 옆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하좌에 있는 권의로 물러나 그곳에 앉았다.

“큰아가씨의 혼사는 잘 처리되었습니까?”

그녀가 이 이야기를 언급하자 진씨는 가슴이 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어디 그리 쉽게 해결되겠는가! 이제 우리 주씨 가문이 일어섰으니 그 몰락한 가문이 꽉 붙들고 놓아주지 않으려는 게지.”

가장 가증스러운 건 그 빌어먹을 종자는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신들 편에 선 적이 없었다는 것과 심지어 주묘서가 몰락한 가문에 시집가고 주비양이 몰락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으리라는 점이었다.

“어쨌든… 혼인 증서를 작성했으니 처리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백 이낭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누가 아니래요!”

정 마마는 미간을 찌푸렸다.

“서씨 가문은 저희 가문의 사정이 점점 좋아지는 걸 보고 절대 놓아주지 않을 겁니다……. 에휴, 그 가문의 자제가 감히 저희 적출 큰아가씨에게 어울리는 짝이 되겠습니까?”

이에 백 이낭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본심을 꺼내 놓았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둘째 아가씨도 큰아가씨보다 겨우 두 달 어릴 뿐입니다. 벌써 열여섯 살이에요. 서씨 가문 자제는 큰아가씨에게 어울리는 짝이 아니니 둘째 아가씨로 바꿔도 됩니다. 부인께서… 그 서씨 가문으로 가셔서 한번 이야기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둘째 아가씨로 바꾸면 어떠냐고 물어보시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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