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3화
그들은 금세 일상원에 도착했고 매씨는 부축을 받아 상석에 앉았다. 그러고는 축 처진 눈으로 냉담하게 주위를 쳐다보며 운을 뗐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로 소란을 피우는 것이냐?”
“어머님, 저희는 소란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진씨가 제일 먼저 냉담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셋째가 멀쩡히 있다가 갑자기 분가를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매씨가 반문했다.
“황제 폐하께서 저택을 하사하시지 않았느냐? 이는 폐하께서 베푸신 은덕이니 그곳으로 옮겨 가서 지내면 된다.”
그 말에 진씨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하, 이 마귀할멈. 당신이 분명 주운환 편을 들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곳으로 옮겨 가면 분가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희는 지금 재산을 분배하고 있었습니다!”
“예, 맞습니다.”
비 이낭이 얼른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매씨는 입술을 오므리더니 한마디 했다.
“하사품은 셋째가 전부 가져가거라.”
청천벽력에 진씨는 낯빛이 확 변했고 비 이낭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네? 어째서요? 이건 가문의 물건입니다!”
그러자 매씨의 눈빛이 차갑게 변하더니 밖을 쳐다보며 이렇게 물었다.
“비양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넌 얼마나 나눠 줬으면 좋겠느냐?”
주비양은 어두운 표정으로 앞으로 나서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건 운환이가 목숨을 걸고 얻어 낸 겁니다. 전…….”
“이 불효막심한 것!”
눈앞이 캄캄해진 진씨는 주비양에게 다가가 그를 때리려고 했다. 주비양은 그녀의 손길을 피하더니 냉랭한 목소리로 말을 마쳤다.
“이건 운환이가 목숨을 걸고 얻어 낸 것이니, 전 필요 없습니다!”
그 말에 진씨는 머리가 핑 돌았고 성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이건 너무 불공평합니다……!”
“형제들끼리 재산을 나눈다는데 네가 왜 소란이냐!”
매씨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쓱 쳐다봤다.
진씨는 화가 나 죽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매서운 눈빛으로 강심설을 노려보며 그녀가 입을 열도록 했다. 그러자 강심설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신도 당연히 엽연채가 잘나가는 꼴이 눈꼴사나웠다.
‘어째서 엽연채와 나는 하늘과 땅처럼 이렇게 큰 차이가 난단 말인가?’
자신은 한미한 집안 출신이라 원래부터 여러 면에서 엽연채에게 비교가 안 됐다. 하지만 자신은 어쨌든 적장자에게 시집왔고 엽연채는 서자에게 시집왔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좀 편해졌었다.
그런데 엽연채는 좋은 팔자를 타고났던 것이다. 시집온 서자 남편이 일약 큰 성과를 거두어 후야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강심설은 불만에 겨워 엽연채를 한껏 질투했다. 하지만 집안이 일어서면서 궁에서 베푸는 연회 같은 곳에 참석하게 될 때마다 두려움을 느꼈다. 주비양에게 돈이 생기고 그의 가치가 상승하게 되면 자신은 그에게 더욱 어울리지 않는 짝이 된다.
그래서 강심설은 재산 같은 것은 원하지 않았다. 어차피 굶어 죽는 것도 아니니 부부가 먹고 살 것만 있으면 됐다. 자신이 찌그러진 냄비이니 주비양도 찌그러진 냄비 뚜껑이어야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강심설은 고개를 숙이고는 두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진씨는 아무 말도 안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정말이지 화가 나 죽을 것만 같았다.
“우리 둘째 도련님…….”
비 이낭이 창백한 얼굴로 얼른 입을 열었다.
“그 입 다물거라!”
매씨는 죽일 듯이 그녀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천비賤婢 주제에 어디 감히 입을 여는 것이냐!”
비 이낭은 그녀가 매서운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자 깜짝 놀라 몸을 부르르 떨더니 주종과를 잡아끌었다. 하지만 그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고 창백한 얼굴로 감히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안 됩니다!”
진씨는 죽어도 물러설 수 없었다.
“어째서요? 설령 이것들이 셋째가 얻어 낸 것이라고 해도 집안에 귀속되는 물건입니다. 집안의 모든 재산은 조상들께서 대대로 이렇게 축적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셋째가 얻어 낸 것들은 저 애 혼자서 차지한단 말입니까?
조상들의 재산이 아니었다면 셋째가 어떻게 이리 자라날 수 있었겠습니까? 집안의 재산으로 먹고 자랐으면서 집안의 재산 형성에는 한 푼도 기여하지 않다니요. 이건 의리도 정도 없는 배은망덕한 행동입니다!”
그러자 엽연채가 코웃음을 치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제가 알기로는 가문에서 먼저 제 부군을 불공평하게 대했습니다. 저희는 서자 부부이니 당연히 적장자 부부와는 감히 비교할 수 없고 먹고 입는 데 쓰는 비용도 차이가 난다는 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같은 서자인데도 둘째 도련님한테는 끼니마다 세 가지 반찬과 국이 나오고 닭고기나 오리고기, 거위고기가 나오거나 맛 좋은 생선이 나오는데, 제 부군한테는 배추 볶음만 나온 겁니까! 기름진 음식은 먹어 보지도 못했어요!”
그러자 진씨는 낯빛이 확 변했다.
“무, 무슨 허튼소리를 하는 게냐!”
“허튼소리인지 아닌지는 주방 사람들을 불러와 물어보면 알게 되겠지요.”
엽연채가 냉소를 짓자 진씨는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주방 사람들은 원래 자신의 사람이었지만 주운환이 출세를 하게 되자 암암리에 궁명헌 쪽에 아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지금 불러와 증언을 하라고 하면 주운환의 편을 들 것이 분명했다.
진씨는 그런 생각을 하더니 얼른 이렇게 말했다.
“주방 사람들은 원래 권세 있는 자에게 아부하고 그렇지 않은 자는 무시한다. 그러니 그들을 나무랄 것도 없…….”
“어머, 어머님께서도 그 사람들이 권세 있는 자에게 아부하고 그렇지 않은 자는 무시한다는 걸 알고 계셨네요. 그런데 어째서 관여하지 않으신 겁니까?”
엽연채는 미간을 꿈틀거렸다.
“그…….”
진씨의 안색이 휙휙 바뀌었다.
“음식뿐만이 아닙니다. 둘째 도련님은 철마다 옷을 두 벌씩 짓는데 제 부군은 몇 년에 겨우 한 벌만 지어서 팔다리 쪽이 다 짧았습니다. 낡은 옷들이 난죽거에 쌓여 있는데 가져와서 어머님께 보여 드릴까요?”
진씨는 화가 나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주 백야는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결국 입도 달싹이지 못했다.
“다 집안 재산으로 쓰는 건데 누구는 편애하고 누구는 박대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님은 집안 재산을 따지시는 겁니까?”
엽연채가 냉랭한 목소리로 다그쳤다.
“어쨌든… 셋째는 이렇게 잘 컸잖아요.”
결국 주종과가 더는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는데 입을 열지 않았다간 정말로 아무것도 가질 수 없게 될지도 몰랐다.
“굶어 죽은 것도 아니잖아요…….”
“그럼 너는 지금 굶어 죽느냐?”
매씨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너도 지금 굶어 죽을 처지는 아닌데 어째서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것이냐?”
그 말에 주종과는 말문이 막혔다.
주운환은 냉랭한 눈빛으로 주 백야를 힐끗하더니 이렇게 상황을 종료시켰다.
“황금은 남겨 두고 다른 건 제가 다 가져가겠습니다.”
황금 천 냥은 은화 일만 냥과 맞먹는 돈이었다.
이 정도 돈이면 과거 주씨 가문의 칠팔 년 수입에 버금가지만, 지금 주운환이 가진 기름진 논과 앞으로 발생할 수익과 비교해 보면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
주운환은 그리 말하고는 엽연채를 데리고 그곳을 떠났다.
진씨는 성질이 나 미칠 지경이었다. 그녀는 주 백야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나리…….”
“이… 이 정도면 됐소.”
주 백야는 괴로워하며 이마를 짚었고 두리뭉실하게 상황을 수습하는 본인의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매씨가 냉담한 눈빛으로 주 백야를 보며 한마디 덧붙였다.
“셋째는 계속 장군으로 살 것이니 둘째가 내년에 과거 시험을 쳐서 공명을 얻게 하거라.”
그 말에 주종과는 온몸이 경직됐고 이 상황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전에는 늘 속으로 다음 춘시에 반드시 합격할 거고 진사로, 장원으로 반드시 합격할 거라고 맹세했다. 한데 지금 주운환이 문인의 길을 버리고 무인의 길을 걸으며 후작위를 받았으니, 자신이 시험을 봐서 공명을 얻으면 웃음거리만 될 것이었다.
그러니 시험을 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과거 시험을 보겠다는 마음이 모조리 식은 것이다.
자신도 장군이 되어 개선 행진을 하고 싶을 따름이었다. 도성 사람들이 전부 길 양쪽으로 늘어서서 저를 환영해 주고, 자신은 말을 타고 위풍당당하게 도성으로 돌아와 미인을 품에 안고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개선대로 달려간 뒤 궁으로 들어가 후야의 작위를 받고 싶었다.
‘아니, 나는 국공國公이 되고 싶어!’
매씨는 주종과의 덜 떨어진 모습을 쳐다보며 입꼬리를 삐죽거렸다.
“가자!”
그러면서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갑자기 어지러운 느낌이 들며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그대로 뒤로 나동그라졌다.
“어머니!”
주 백야는 깜짝 놀라 얼른 매씨를 부축했지만 그녀는 이미 혼절한 상태였다.
“저 죽지도 않는 늙…….”
진씨는 혼절한 매씨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어서 활간으로 모시거라.”
주 백야는 얼른 하인들에게 매씨를 활간으로 옮긴 후 공거로 모셔 가라고 지시했다. 그러고는 매씨를 쫓아 공거로 간 다음 사람을 시켜 의원을 불러오게 했다.
주운환은 엽연채를 데리고 궁명헌으로 돌아와, 아직 문으로 들어서지 않았는데 어린 여종 한 명이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노마님께서 쓰러지셨습니다.”
“뭐?”
깜짝 놀란 엽연채는 얼른 주운환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어서 할머님을 뵈러 가요! 오늘 황명을 받들 때 원래 할머님은 오지 않으신다고 했잖아요……. 병이 위중하시다고요. 분명 저희 쪽에 소란이 일어난 걸 들으시고는 아픈 몸을 이끌고 나오신 거예요.”
“…어서 갑시다.”
주운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거에 도착한 엽연채와 주운환이 침실로 들어가 보니 매씨는 허름한 침상 위에 누워 있었고 의원은 진맥을 짚는 중이었다.
주 백야와 주비양은 한쪽에 서서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였다.
잠시 후,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주 백야가 얼른 그에게 물었다.
“어떤가?”
의원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지병이 도진 데다 연세가 있으셔서 장기들의 기능이 저하되어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주 백야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는 비통하고도 석연한 눈빛을 보였다. 매씨는 이미 팔십의 고령이니 병약은 예견된 일이었다.
“어르신이 푹 쉬게끔 하십시오. 소인은 가서 약을 짓겠습니다.”
의원은 그리 말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난 의원을 배웅하러 가마.”
주 백야는 그리 말하고는 주운환을 쳐다봤다.
“너희는 여기서 할머니를 지켜보거라.”
그는 그리 말하고는 의원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주비양도 주운환을 힐긋하더니 돌아서서 그곳을 떠났다.
엽연채는 침상 옆에 놓인 매화 문양 수돈에 앉아서, 혼절해 잠든 매씨를 쳐다봤다.
매씨를 처음 봤을 때를 떠올려 보니 그녀는 위엄이 서려 있는 모습에 시종일관 잔뜩 굳은 표정을 지으며 차갑고 날카로운 눈빛을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잔뜩 굳어 있던 얼굴이 힘없이 축 처져 있어, 더 나이 들어 보이고 초췌해 보였다.
“셋째 마님.”
이때, 장 마마가 안으로 들어오더니 엽연채를 불렀다.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엽연채 옆에 있는 주운환에게 시선을 향했다.
“나리께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신다는 소식을 들으신 후로 노마님께서는 미소를 지으며… 마음을 놓으셨습니다.”
장 마마는 미소를 지으며 눈시울을 살짝 붉혔지만 아주 기쁘고 안심이 되었다.
반면에 엽연채는 마음이 한층 무거워졌다. 매씨는 원래부터 병으로 인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집안도 변변치 못하고 자손들은 돌아가며 소란을 피워 대니 육체적으로나 심적으로나 고통에 시달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