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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442화 (442/858)

제442화

황명을 다 전달한 뒤 채 공공은 시원스레 웃으며 앞으로 걸어나왔다.

“주 후야, 감축드립니다.”

“고맙소, 채 공공.”

주운환은 옅은 미소와 함께 답례했다.

엽연채는 얼른 붉은 비단에 원보元寶(화폐의 한 종류) 문양이 수놓인 작은 돈주머니를 가지고 나와 채 공공의 손에 쥐여 줬다.

“채 공공이 수고가 많아요.”

“부인, 뭘 이런 걸 다 주십니까.”

채 공공은 미소를 지으며 돈주머니를 소매 안으로 집어넣었다. 이런 행하行下(심부름을 하거나 시중을 든 사람에게 주는 돈이나 물건)는 반드시 챙겨 주는 법으로, 받지 않으면 오히려 상대방의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었다.

“내일 저녁에 환영회가 있을 것이니 주 후야와 주 백야는 준비를 하셔야 됩니다.”

“알겠소.”

주운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후부의 보수가 끝나 그곳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면 채 공공도 꼭 와서 한잔 함께하며 내 체면을 살려 주시게.”

“예, 그럼요.”

채 공공은 하하 웃음을 지었고 옆에 있던 주 백야는 그 말을 듣더니 낯빛이 살짝 하얗게 변했다.

채결은 주운환과 몇 마디를 더 나눈 후 사람들을 데리고 그곳을 떠났다.

사람들이 떠나자 주 백야가 급히 입을 열었다.

“셋째야. 후부로 거처를 옮긴다는 게 무슨 말이냐?”

“아버지, 방금 전에 들은 황명이 이해가 되지 않으십니까?”

주운환은 그리 말하며 손에 들고 있는 조서를 주 백야의 품으로 홱 넘겨줬다.

“황제 폐하께서 후부를 하사하셨습니다. 보수가 완료되면 저와 제 내자는 그곳으로 거처를 옮길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거, 거처를 옮기다니?”

주 백야는 놀라서 멈칫했고 뒤에 있던 진씨와 백 이낭 등도 낯빛이 확 변했다.

진씨가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셋째야. 그게 무슨 뜻이냐? 분가를 하고 싶다는 말이냐?”

“셋째야, 어떻게 분가를 하겠다는 것이냐?”

주 백야는 다급한 목소리를 내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셋째야… 네가 공을 세웠다고 해도… 왜 꼭 분가를 해야 한다는 말이냐? 우리 조상들은 공을 많이 세웠지만 다들 함께 살았었다! 함께 살며 서로를 보살폈지…….”

“그럼 그분들이 절 보살펴 주셨습니까?”

주운환이 냉소를 짓자 주 백야는 표정이 굳어졌다. 그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주종과가 찬웃음과 함께 입을 뗐다.

“어찌 됐든 간에 셋째 너도 우리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 이제 진서후가 되고 공도 세웠는데 너의 뿌리를 버리겠다고 하는구나. 근본을 잊다니!”

“형님, 방금 전에 들은 말을 이해하지 못했나 봅니다? 황제 폐하께서 하사하신 겁니다! 폐하께서도 제가 이사를 가서 그곳에서 지내기를 바라십니다!”

주운환은 입꼬리를 쓱 올리며 냉소를 지었다. 그 말인즉 황제도 그가 분가하여 독립적으로 생활하기를 바란다는 뜻이었다.

진씨와 주종과는 동시에 말문이 막혔다.

“그럼 네가 황제 폐하께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으니 거처를 옮기지 않겠다고 말씀드리면 된다. 우리 대제는 효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니… 네가 그리 말씀드리면 폐하께서도 분명 네게 거처를 옮기라고 강요하지 않으실 게다.”

주 백야는 얼른 이렇게 말했다.

“전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주운환은 날카로운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

그러자 진씨의 낯빛이 더욱 어두워졌다.

“지금 불효를 저지르려는 것이냐!”

그 말에 주운환의 잘생긴 얼굴이 싸늘하게 변했다.

“어머니께서는 참 자애로운 분이시네요. 전 전장에서 수개월 동안 분투하며 몇 번이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고, 가까스로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황제 폐하께서는 제게 며칠 동안 쉬라고 하셨는데 어머니께서는 그조차 안 된다고 하셨죠!”

진씨는 그 말에 머리가 어질어질했고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했다. 주위에 있던 하인들마저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훑어봤다.

“셋째야…….”

주 백야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를 설득하려 애썼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게다…….”

“아버지, 아무것도 장담하실 필요 없습니다.”

주운환은 손사래를 치며 위엄 어린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자식은 어른이 되면 자연히 분가하는 법입니다. 또 황제 폐하께서도 후부를 하사하셨으니 거처를 옮기려는 겁니다. 전 앞으로 타지에서 군대를 이끌어야 하니 도성을 떠나 있는 시간이 더 많을 겁니다. 그러니 밖에서 사나 여기서 사나 뭐 다를 게 있겠습니까?”

주 백야는 덜덜 떨리는 입술을 벌렸고, 어떻게든 만류의 말을 다시 꺼내고 싶었으나 오늘 아침에 일어난 일이 떠오르자 결국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갑시다!”

주운환은 그리 말하며 엽연채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여양과 여한이 바닥에 놓인 진홍색 나무 상자를 들어 올리려고 하는데 비 이낭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뭐 하는 것이냐?”

여양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물건을 옮기려고요!”

“어디로 가져가는데? 궁명헌으로 가져가니?”

비 이낭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집안에 들어온 물건이면 당연히 창고에 넣어야지, 어째서 셋째 나리의 처소로 옮기니! 셋째 나리께서 혼자 독식하시려는 거니?”

주 백야는 땅에 놓인 붉은 칠을 한 커다란 나무 상자를 보더니 놀라서 멈칫했다. 이 모든 건 주운환이 받은 하사품이었다. 황금 일천 냥과 토지 문서도 황제가 주운환에게 준 가산이었다.

추길과 혜연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고 추길은 얼른 앞으로 나서며 이렇게 말했다.

“이 모든 건 황제 폐하께서 셋째 나리께 하사하신 겁니다!”

그러자 비 이낭은 한숨을 내쉬더니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도 대갓집에서 교육받은 아이인데 어째서 이런 규율조차 모르는 것이냐?”

그 말에 추길은 낯빛이 확 변하더니 입술을 꽉 깨물었다.

“황제 폐하께서 하사하셨든 아니든 모두 집안의 물건이다.”

진씨는 그제야 성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분가는 막을 수 없다지만 이 하사품들을 가지고 나갈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맞습니다!”

비 이낭이 단박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추길은 화가 나 죽을 것만 같았다.

“이건 셋째 나리께서 목숨을 걸고 얻어 내신 것들이에요.”

“우리 주씨 가문에 있는 것들 중 목숨을 걸고 얻어 내지 않은 것들이 어디 있느냐?”

진씨가 싸늘한 목소리로 반박했다.

“우리 주씨 가문이 대대로 이어져 오면서 주운환만 타지에 가서 목숨을 내걸고 상을 받은 줄 아느냐? 우리 주씨 가문은 조상 대대로 수많은 공훈을 세웠고 수많은 하사품을 받았다. 그런데 그것들을 그분들이 독식했을 것 같으냐? 전부 주씨 가문의 재산이 되었다!

우리가 먹고 입는 것 모두 선조들께서 얻어 내신 거다. 안 그러면 어떻게 너를 먹여 살릴 수 있었겠느냐! 네가 어떻게 이리 클 수 있었겠어! 네가 성을 갈지 않는 한 이 모든 건 주씨 가문의 것이다.”

주운환의 준수한 얼굴이 싸늘하게 변했다. 진씨가 한 말이 전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편안하게 분가하기란 역시나 불가능해 보였다.

“하사받은 모든 물건과 후부까지 전부 주씨 가문으로 귀속돼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주씨 가문 재산을 다시 분배해야 합니다.”

비 이낭이 목청을 높였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세자 나리께서 적장자이시니 가장 큰 몫을 가지셔야 합니다. 6할은 세자 나리께서 가져야 하고 나머지 4할 중 1할은 아직 출가 전인 아가씨들의 혼수로 쓰고 나머지 3할을 둘째 도련님과 셋째 나리께서 똑같이 나눠 가지면 됩니다.”

그리 말하는 비 이낭은 한스럽기 짝이 없었다. 주비양에게 6할이 돌아가고 주종과는 겨우 1.5할을 갖게 된다는 생각이 들자 죽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진씨와 주비양 쪽에 서지 않는다면 주운환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하게 될 텐데, 죽어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다.

엽연채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주씨 가문에는 재산이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으니 주운환에게 하사된 황금 일천 냥과 기름진 논 천 경, 거기다 후부까지 더해지면 가문 재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들 중 주운환은 겨우 1.5할밖에 가질 수 없다니,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후부조차 손에 넣을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정륭가에 위치한 저택이니 값어치가 상당할 텐데 말이다.

“왜 이리 소란을 피우는 것이냐!”

이때, 누군가의 싸늘한 호통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전부 깜짝 놀랐고 진씨, 주묘화, 비 이낭은 이 익숙한 호통 소리를 듣더니 놀라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머릿속에는 이 네 글자만 떠올랐다.

‘또 왔구나!’

그들은 이 노인은 항상 호통부터 먼저 치며 등장했고 쓸데없이 참견하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돌려 보니 두 명의 마마가 활간을 들고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활간 위에는 바로 매씨가 앉아 있었다.

진씨 모녀와 비 이낭은 매씨를 보자 저도 모르게 몸을 떨더니 놀라서 움찔거리며 한쪽으로 비켜서고는 감히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어머니… 편찮으신 거 아니셨습니까? 여긴 어쩐 일로 오신 겁니까?”

주 백야가 얼른 앞으로 다가섰다.

두 마마가 매씨를 내려 주자 주 백야는 얼른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다. 그런데 매씨가 퉤 하고 사정없이 침을 뱉더니 호되게 그를 꾸짖었다.

“이 변변치 못한 놈. 내가 병들어 죽어도 얼마든지 찾아올 것이다!”

얼굴에 침이 튀긴 주 백야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어머니…….”

엽연채가 앞으로 다가가 보니 매씨는 지난번보다 낯빛이 더욱 창백했다. 살이 빠진 게 아닌데도 피부 역시 더욱 처져 있었다. 중병을 앓고 있는 게 분명했다.

엽연채는 놀라서 얼른 그녀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여긴 바람이 많이 붑니다. 우선 방 안으로 들어가 말씀하시지요.”

“그럼 우선 방 안으로 가자꾸나.”

매씨는 진씨 등을 싸늘한 눈빛으로 쏘아보고는 마마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두 마마는 다시 그녀를 활간에 태워 들어 올린 후 일상원 방향으로 걸어갔다.

진씨와 비 이낭 등은 화가 나서 자리에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간신히 본인들에게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했고 주운환과 엽연채의 재산을 손에 넣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갑자기 이 죽지도 않는 늙은이가 나타나 훼방을 놓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자 진씨의 가슴은 결의로 가득 찼다. 어찌 되든 간에 오늘 죽어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 이치를 따져 봐도 자신들에게 유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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