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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434화 (434/858)

제434화

한림원 쪽은 서둘러 주운환을 후야에 봉한다는 황제의 뜻이 담긴 조서詔書를 작성했다. 주운환이 집으로 돌아가면 정식으로 황명을 알릴 것이었다.

조회가 끝난 후 장원학사 필 씨는 주운환이 떠나는 모습을 쳐다보다가 한림원으로 돌아왔다.

진지항과 조범수 등은 한곳에 모여 조잘조잘 떠들어대고 있었다. 조범수가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운환이가 분명 우리 대제의 영토를 지켜 내고 적군을 몰아낼 줄 알았네! 정말 대제를 지킨 영웅이지 않은가! 마침내 서노를 물리치고 남쪽을 굴복시키게 됐어. 과연 어떤 상을 받게 될까?”

“그러게 말이에요!”

일부 편수와 시독들이 얼른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쳤고, 어떤 이들은 시샘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영광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때, 진지항이 냉소를 지으며 반문했다.

“범수 형님은 전에 운환이가 죽으러 갔다고 하지 않았어요?”

“무, 무슨 허튼소리를 하는 겐가?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 난 결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네!”

조범수는 말을 꺼낼 때는 뒤가 조금 켕겼지만 말끝에서는 당당함을 보였다.

‘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정말이다!’

비록 속으로는 끊임없이 조롱했지만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황제가 직접 주운환에게 출정을 명했는데, 어찌 감히 황제가 주운환을 사지로 몰았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진지항은 어이가 없는 나머지 한층 더 차가운 냉소를 흘렸다.

“전에 제 조카사위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다는 말을 했던 사람이 누구였더라?”

“전에는 우리가 큰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던 거네.”

조범수는 하하 웃으며 진지항을 툭툭 쳤다.

“지금 생각해 보니 열여덟 살에 장원 급제를 했으니 원래부터 보통 사람은 아니었던 게지!”

조범수는 주운환에게 원래부터 질투심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주운환이 출정하여 첫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금도 대장군을 참살하자 조범수는 주운환을 자신의 발을 찧은 조그만 돌멩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치워 버리고 싶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돌멩이는 점점 더 커졌고 그럴수록 더욱더 괴로워져 치우고 싶은 마음이 점점 더 커졌다. 그런데 결국 이 돌멩이는 산이 되어 버렸다.

그에게 완전히 압도당한 조범수는 더 이상 화를 낼 수가 없었다. 태산을 어찌 치울 수 있으랴.

전에 느꼈던 강한 질투심이나 불만은 전부 아부와 아첨이 넘쳐흐르는 맑은 샘물로 변해 버렸다. 사람의 마음을 촉촉이 적시는, 이 얼마나 맑디맑은 샘물인가!

“어쨌든 운환이는 주씨 가문 사람 아닌가. 명문가의 후손이고 장군가 출신이네! 원래부터 대장군이 돼야 할 재목이었던 게지.”

말을 마친 조범수는 이 모든 일이 더욱더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지지 않았고 주운환보다 못한 사람도 아니었다. 주운환은 원래 날 때부터 자신들과는 다른 사람이었던 것이다. 지금 대장군이 된 것도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으리라.

이 말이 나오자 주운환에게 질투심을 느끼던 일부 한림원 사람들은 조범수에게 동화되었다. 이 옹졸한 늙다리 같은 조범수의 말로 자신들도 구원을 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진지항은 입꼬리를 삐죽거렸으나 더는 무어라 쏘아붙이지는 않았다.

“에헴, 뭘 이리 시끄럽게 떠드는 것이냐!”

그때, 누군가가 냉랭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고 이어 장원학사 필 씨가 뒷짐을 지고 안으로 들어왔다.

“장원학사 대인, 운환이는 어떻게 되었나요?”

진지항이 얼른 앞으로 다가섰다. 이곳에서 조정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장원학사 필 씨뿐이었다.

장원학사 필 씨는 ‘흥’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진서후에 봉해졌네.”

“와! 하하하!”

진지항은 큰 소리로 웃으며 꼭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내 조카사위가 후야가 됐다니!”

그러자 한림원 사람들은 ‘흥’ 코웃음을 쳤다.

‘체면 좀 챙기시지!’

“진서후에 봉한다는 조서는 제가 작성하겠습니다!”

진지항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쓰겠습니다! 제가 방안입니다.”

조범수도 사람들을 비집고 앞으로 나왔다.

“제가 쓰겠습니다. 전 시강侍講입니다. 그리고 지난 회의 장원이었습니다.”

한림원 사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나같이 왁자지껄 떠들며 서로 앞으로 나서려고 했다.

“다들 입 다물게!”

장원학사 필 씨는 뒷짐을 진 채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내가… 쓸 것이네!”

그 말에 진지항 등은 멍한 표정을 짓다가 폭소를 터뜨렸다.

갑 집무실은 아주 시끌벅적했고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림원 사람들은 너도나도 우르르 갑 집무실로 몰려들었다. 을 집무실에는 한 사람만이 탁자 앞에 앉아 조용히 『전조실록』을 수정하고 있었다. 다름 아닌 초빙풍이었다.

주운환이 공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 초빙풍은 자신은 마치 작은 배를 타고 광활한 바다 위를 떠다니다가 울렁출렁 흔들리는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기분이었다.

주운환은 자신과 겹치는 부분이 거의 없었지만 그럼에도 항상 자신의 감정과 마음에 영향을 주었다. 참 우습게도 자신은 마치 주운환을 숙적으로 삼은 듯했다.

하지만 주운환은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영웅이 되었다.

조범수 같은 소인도 마음을 활짝 열고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자신은 도저히 그를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주운환이 자신보다 뛰어나지 않았다면, 주운환의 아내가 자신과 제민의 사이를 가로막지만 않았다면, 자신이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겠는가!

초빙풍은 이 상황이 못마땅하고 자신의 평범함도 못마땅했다.

언젠가는 자신이 대신들 중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를 테지만 제민이 없으면 대신들 중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리되면 자신이 유곡요를 아내로 맞이한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결국, 지금은 참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료들의 조롱과 유씨 가문의 냉대를 계속 견뎌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초빙풍은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이대로 무너질 것만 같았다.

전에는 이런 대우를 다 참아 낼 수 있었다. 한 번도 햇빛을 본 적이 없었기에 어둠을 견뎌 낼 수 있었다. 하지만 하늘이 이미 햇빛을 보여 줬으니 이젠 어둠을 참아 낼 재간이 어디 있겠는가?

전에는 눈앞에 길이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제민이 현주가 될 줄은 몰랐다. 유곡요를 아내로 맞이하지 않았어도 자신은 단번에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었고 전도양양한 앞날이 눈앞에 펼쳐졌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온갖 조롱과 모욕을 받아야 했다.

자신에게는 제민이라는 탄탄대로가 있었는데, 기어코 칼날과 가시로 가득한 유곡요라는 좁고 험한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니 어찌 후회하지 않고 마음이 쓰리지 않겠는가.

* * *

봉의궁. 담황색 얇은 천으로 만든 휘장이 용 문양이 새겨진 기둥을 따라 아래로 드리워져 있고, 한쪽에 놓인 경태삼족상비향로景泰三足象鼻香爐(코끼리의 코 모양이 조각된 경태(중국 명나라 제7대 황제) 시대 향로)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탑상에 앉은 정 황후는 하좌의 엽연채와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널찍한 전당 안에 두 사람과 그들 가까이에 있는 궁녀 몇 명만 있으니 다소 썰렁해 보이기도 했다.

“황후 마마.”

이때, 사 마마가 안으로 걸어 들어오더니 미소를 지으며 엽연채를 쳐다봤다.

“감축드립니다, 부인. 장군께서 진서후에 봉해졌습니다.”

엽연채는 기뻐하며 미소와 함께 답례했다.

“알려 줘서 고맙네.”

“정말 크나큰 경사구먼.”

정 황후가 미소를 지으며 축하했다.

“지금 장군은 어디 있는가?”

“황후 마마, 장군께서는 황제 폐하의 부름을 받아 상서방으로 가셨습니다.”

“오. 중요한 일로 이야기를 나누시려나 보구나.”

정 황후가 엽연채를 쳐다보며 말했다.

“변경 지역의 전쟁은 연관된 일이 많네. 그 두 나라도 화친을 맺으려고 하고 해결해야 할 일도 아주 많지. 그러니 주 장군은 아마 며칠 동안 궁에 머물러야 할 걸세. 폐하께서 주 장군을 총애하고 신임하시는 게지. 날도 어두워지니 부인은 먼저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에게 주 장군이 후야에 봉해진 좋은 소식을 알리게.”

주운환이 궁에 머물 줄 이미 예상하고 있던 엽연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황송하옵니다, 황후 마마.”

“아 참. 사 마마, 자네는 가서 그 머리 장신구를 가져오게.”

정 황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 황후 마마.”

대답과 함께 자리를 비웠던 사 마마가 잠시 후 쟁반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쟁반 위에는 붉은색 비단이 깔려 있고 그 위에는 머리 장신구인 전사산호대모纏絲珊瑚玳瑁가 놓여 있었다. 색깔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순도가 높고 아름다워 한눈에 봐도 진귀한 물건임을 알 수 있었다.

엽연채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린 후 돌아서서 그곳을 떠났다.

사 마마는 엽연채를 동화문까지 바래다줬고 그녀가 마차에 오르고 나서야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봉의궁으로 돌아온 사 마마는 미소를 지으며 고했다.

“돌아갔습니다.”

“이거 참.”

정 황후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

“모든 거리에 오색 깃발을 걸어 두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게 들어 보니…….”

사 마마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말했다.

“깃발이 너무 많이 꽂혀 있어서… 주 장군의 부인께서 장군이 보이지 않자 아래로 뛰어 내려가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정 황후는 말문이 막혔다. 이건 스스로 제 발등을 찍은 꼴이었다.

“장군이 이미 부인을 봤습니다. 그럼 오늘 저녁에…….”

사 마마가 말끄트머리를 흐렸다.

“보고 품에 안았으니 더욱 견딜 수가 없을 게다!”

그러나 정 황후는 도리어 붉은 입술을 씩 올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응성 쪽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소년 후야가 자제력이 아주 대단하다고 하더구나. 게다가 변경 쪽 상황이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서 한가하게 시간을 보낼 기회는 조금도 없었다고 한다.

또 장군이 남쪽 이민족의 영역에서 나온 후 폐하께서는 그자가 또 무슨 깜짝 놀랄 만한 일을 벌일까 봐 급히 도성으로 불러들이셨네. 밤낮으로 길을 재촉하며 서둘러 왔겠지.”

“벌써 몇 달이나 굶주렸지요.”

사 마마가 반짝이는 눈을 살짝 깜빡이며 말했다.

“갑자기 마주치게 되었는데 하필 황제 폐하께서 궁 안에 머무르게 하려 하시니…….”

정 황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명옥아, 가서 그 아이에게 준비하라고 전하거라.”

수수한 옷차림의 궁녀가 그리하겠다고 대답한 후 전당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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