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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428화 (428/858)

제428화

“하지만 풍씨 가문 두 젊은 장수는 응성을 지킬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송초가 냉담한 목소리로 지적했다.

“지금 정 노후야가 그곳에 가지 않았는가? 정 노후야에게 그곳을 지키게 하고 이 기회를 이용해 정씨 가문 자제들을 단련시키면 되지.”

요양성은 물러나지 않았다.

“똑같은 장수 가문이네. 주씨 가문도 그렇게 오랫동안 무능하게 지내 오다가 주운환 같은 자가 나왔는데 정씨 가문이라고 정말 인물이 없겠는가? 집안에 재능 있는 자가 억눌려 있을지도 모르지.”

주운환보다는 차라리 황후의 친정이 나았다.

“전하?”

송초는 미간을 찌푸리며 태자를 응시했다.

자신이 보기에 주운환은 능력 있는 자이며 하늘에서 내린 장수였다. 그는 분명 남쪽에서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 후 주운환을 자신들 편으로 끌어들이면 된다.

하지만 지금 전지신 등은 주운환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그가 살아서 돌아오는 걸 원치 않았고 그를 죽일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다. 거기다 무능한 풍씨 가문 두 젊은 장수들이 공을 가로채게 한 후 정씨 가문을 발전시켜서 응성의 병권을 정씨 가문 손으로 도로 가져다 놓으려고 했다.

송초는 저들을 한심하게 생각했다.

‘뭣 하러 죽도록 고생만 하고 좋은 소리는 못 듣는 이런 짓을 하려 한단 말인가! 왜 주운환을 꺼린다는 말인가!’

고작 주운환과의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그러고 있었다.

송초는 태자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이런 불합리한 짓은 하지 않기를 바랐다.

태자는 기품이 흐르는 얼굴로 냉담한 표정을 지은 채 날카로운 눈썹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책상 위를 톡톡 두드리며 곰곰이 생각에 빠져 있었다.

주운환이 직접 나서 출정을 청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고상한 외모에 재능이 넘쳐 보이던 소년은 정의롭고 늠름하며 드높은 기세를 보였다. 그때가 돼서야 자신은 그 소년이 바로 엽연채의 서자 남편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전에는 겁 많고 옹졸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양왕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잘생긴 공자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게다가 과거시험에서 장원 급제를 했고 재능이 흘러넘치며 애국심도 대단했다.

당시 자신은 주운환이 스스로 나서 희생하는 모습을 보며 탄복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탄복은 주운환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그가 정말로 응성을 탈환하고 다시 돌아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태자가 생각하는 대장군이란 허대실처럼 우락부락하고 나이 든 사내이거나 강왕처럼 선비의 풍모를 지닌 중년의 무장이여야 했다.

‘어떻게 그런 어린 소년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잘생긴 외모에 나이도 어리며 뛰어난 재능을 가진 그런 사람이…….’

그가 발하는 빛은 태양을 뒤덮으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태자인 자신도 이런 사람 앞에 서 있으면 빛을 잃고 초라해질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태자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전하.”

송초가 미간을 찌푸리며 태자를 다시금 불렀으나 태자는 담담한 목소리로 이리 말했다.

“요 상서와 전 상서의 말이 일리가 있군.”

송초는 놀라며 미간을 모았고 이어 태자의 의중을 알아차렸다. 태자는 주운환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었다. 송초는 고개를 숙인 채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역시 전하께서는 현명하십니다.”

전지신이 태자를 치켜세웠다.

“주씨 가문은 전부터 황자들 간의 싸움에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병권을 주씨 가문이 쥐게 된다면 저희는 결코 그들을 끌어들이지 못할 것입니다. 황제 폐하께서는 항상 전하를 마음에 두고 계시지만, 손에 쥐어야 할 것은 손에 쥐고 난 후에야 안전하고 확실한 것이옵니다.”

“그 말이 맞소.”

태자는 자신의 결정이 더욱 옳다고 생각하며 동조했다. 모두 대국을 위해 고려한 것이었다.

“잠시 후 입궁하여 어마마마와 상의해 보겠소. 정씨 가문 쪽에서 능력 있는 사람을 잘 골라 보라고 말이오. 나 역시 정씨 가문에 정말로 인재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소.”

그들은 한참을 더 상의한 후에야 자리를 파했다.

태자는 곧장 궁으로 들어가 정 황후와 공을 가로채는 문제와 병권 문제를 상의했다.

정 황후는 당연히 정씨 가문이 큰 권력을 손에 쥐고 점점 더 눈부시게 빛나기를 바랐다. 태자와 요양성 등의 생각을 들은 그녀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정 황후와 상의를 마친 태자는 태자부로 돌아가 서신을 한 장 쓴 다음, 훈련이 잘된 솔개를 이용해 응성으로 서신을 보냈다.

* * *

그 시각 응성.

높이 솟은 성벽 위에는 병사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고, 횃불이 화살이 꽂혔던 흔적과 불이 붙었던 흔적으로 가득한 성벽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며 주변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면 응성 안 무너진 담벽과 아수라장이 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 여기저기 망가진 집들이라지만, 그래도 조그만 등불을 켜고 있어 처참한 광경에 한 줄기 온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그동안 응성은 갖가지 고생을 겪어 왔다. 우선 서노에게 공격을 당했고, 이어 대장군이 참살되었으며, 서노군이 성문을 부시고 안으로 쳐들어와 응성 사람들을 무참히 도륙했다. 그 후 응성은 서노에게 점령당했다. 그렇게 지옥 속에서 살아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주 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응성을 탈환한 것이다.

비록 눈앞의 광경은 여전히 아수라장이지만, 덕분에 응성 백성들은 편안하게 잠들 수 있게 되었고 마음속엔 의지할 곳이 생겼다.

높다란 성벽 위엔 갑주를 걸친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이 사람은 바로 풍씨 가문 두 젊은 장수 중 하나인 풍흠이었다.

이때, 하늘에서 갑자기 솔개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고 고개를 든 풍흠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풍흠은 이 솔개가 태자부의 솔개임을 한눈에 알아봤다. 전에 그의 아버지가 태자와 연락을 주고받을 때 이 솔개가 오갔기 때문이다.

풍흠이 손을 내밀자 솔개는 그의 팔뚝 위에 내려앉았고, 풍흠이 솔개의 다리에 묶여 있는 조그만 죽통을 풀자 솔개는 곧장 하늘 위로 날아가 버렸다.

풍흠은 조그만 죽통 안에서 서신 한 장을 꺼냈다. 그는 안에 적힌 내용을 보더니 표정이 심각해져서 그곳을 떠났다.

성벽에서 내려온 그는 곧장 자신의 형인 풍용의 방으로 갔고 손에 든 서신을 그에게 건네며 살벌한 눈빛을 번뜩였다.

“태자 전하의 뜻은, 주운환이 이미 남쪽 오랑캐의 영역으로 들어갔는데 그가 명이 길어 그곳에서 죽지 않는다면, 우리가 평수진平水鎭에 매복해 있다가 그들이 도착하면 몰살시키라는 것입니다. 도성 쪽에서도 손을 쓸 것이니 저희가 병사들을 데리고 도성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이번 전쟁의 공로는 저희 것이 되는 겁니다.”

이에 풍용이 말했다.

“그리되면 우리 풍씨 가문은 다시 영광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 * *

주묘서의 혼례식은 내년 이월 초여드렛날로 정해졌고, 삼서육례三書六禮도 절반쯤 진행되었다.

주묘서는 남편감이 국자제주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별로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이제 더는 선택지가 없었다. 불만은 마음속에만 담아둘 뿐이었다.

한편, 지금 도성에선 응성에 관한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사실 응성을 탈환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풍씨 가문 두 젊은 장수래.”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자마자 또 다른 누군가가 반박했다.

“그 풍씨 가문 아들들이 능력이 있었다면 응성에서 옥안관까지 도망가지 않았겠지. 그사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잖아. 주 장군은 가자마자 연속으로 적을 벴으니 주 장군의 공로인 게 확실하지! 왜 남의 공을 가로채려는 거야?”

풍씨 가문에 공로가 있다고 말한 사람은 일단 입을 다물었지만, 이튿날 또 와서 은근슬쩍 이 일을 언급했다.

진씨는 줄곧 사람을 보내 바깥소식을 알아오게 했다. 아무도 믿고 따르지 않는 이런 소문이 생길 낌새가 보이자 그 사람은 얼른 진씨에게 이를 알렸다.

일상원의 진씨는 녹지의 보고를 듣더니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빌어먹을 종자는 남쪽에서 죽을 테니 풍씨 가문 장수들이 도성으로 돌아와 공을 가로채려고 하겠구나!”

진씨의 목소리는 분노한 듯해도 한편으론 의기양양함이 섞여 있었다. 그녀는 주묘서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전에 네 혼사를 정해 줬으니 다행이구나.”

속으로 불만스러워했던 주묘서는 이 소식을 듣고 나니 조금씩 마음이 풀리기 시작했고, 결국 이 혼사를 받아들이게 됐다.

해바라기씨를 까먹던 강심설은 코웃음을 치며 주묘서를 쓱 봤다.

주운환이 정말로 승리를 거두고 돌아와 주씨 가문을 다시 잘나가게 만들까 봐 자신이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는 하늘만이 알 것이다. 강심설은 주씨 가문이 다시 위로 오르는 걸 조금도 바라지 않았다. 자신은 안 그래도 시어머니에게 무시를 당하고 있었고, 자신의 시어머니는 강씨 가문을 진흙탕이라도 되는 양 취급했다.

그런데 주씨 가문이 또다시 위로 오르게 된다면 자신은 더욱더 시어머니에게 트집을 잡힐 거고 주비양에게 어울리지 않는 짝이 될 뿐이었다.

사람마다 제게 어울리는 짝이 있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자신은 낡아 빠진 솥인데 주비양이 갑자기 번듯한 솥뚜껑으로 변하는 걸 바랄 리가 없었다.

강심설은 손에 한 움큼 쥐고 있던 해바라기씨를 전부 까먹은 뒤 아들을 데리고 그곳을 떠났다.

강심설이 계화정桂花亭를 지나가고 있는데, 저 멀리 한 떨기 계화 앞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며 멍하니 선 주비양의 모습이 보였다.

“세자 나리께서는 뭘 하고 계시는 걸까요?”

그녀의 여종 만월이 작은 목소리로 궁금해하자 강심설은 ‘픽’ 냉소를 지었다.

“뭘 하고 있겠니. 저 멍한 모습을 보니 분명 그 빌어먹을 여인을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강심설은 그리 말하며 주학해를 데리고 그곳을 떠났고 만월은 멍한 표정을 짓더니 그녀를 조용히 따라갔다.

* * *

태자는 사람을 시켜 밖으로 소문을 퍼뜨렸다. 그는 백성들에게 각인된 주운환의 영웅적 형상이 왜곡되기를 바랐고 공로를 풍씨 가문에게 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백성들은 소문에 넘어가지 않았다.

태자가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자 이계가 그를 달랬다.

“아직은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믿는 사람이 조금은 생겼습니다. 이렇게 계속 밀고 나가기만 하면 금세 그자를 영웅으로 받드는 사람이 줄어들 것입니다. 그런 뒤 풍씨 가문 두 젊은 장수가 돌아왔을 때는 확고부동한 사실이 될 것이옵니다.”

태자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아바마마 쪽은 어떠하냐?”

“폐하께서는 주 장군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밖에 떠도는 소문도 마음 쓰지 않으시고요. 하지만 주 장군이 죽기만 하면 이 공로는 어쨌든 누군가에게는 돌아가야 하니, 때가 되면 풍씨 가문에 돌아가게 될 겁니다.”

태자는 매서운 눈빛을 번뜩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자뿐만 아니라 풍씨 가문과 정씨 가문도 전력을 다해 소문을 퍼뜨리고 있었고, 전지신과 요양성 등도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운환의 부고가 황제의 탁자 위로 전달되기만 하면 그들은 전심전력으로 정선제를 설득해 공로를 풍씨 가문으로 돌릴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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