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6화
정선제는 병부상서를 쳐다보며 또 다른 명을 내렸다.
“강왕에게 서찰을 보내 서북쪽에서 군량을 보내라고 전하거라. 강왕 쪽은 며칠 더 버티면 북연의 군량이 도착할 것이다. 북연과 서북은 가까우니 말이다.”
“저희 쪽도 군사가 꽤 모이지 않았습니까?”
양왕이 말했다.
“20만 명을 응성으로 더 파병해야 하옵니다.”
“이미 20만 명을 보냈습니다. 또 보낸다고 해도 아마 그쪽에 도착하기도 전에…….”
말을 하던 요양성은 이를 사리물었다. 도성에서 옥안관까지는 보름이나 걸리니 원군이 도착했을 때 옥안관은 이미 함락되었을 것이다.
요양성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렇게 말을 이었다.
“확실히 파병은 필요하옵니다.”
군사를 순주盾州와 익주益州에 배치해서 옥안관 함락 후 서노가 깊숙이 침투하는 것에 대비해야 한다.
정선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 노후야老侯爺를 쳐다봤다.
“경이 출정하거라!”
“예, 폐하.”
정 노후야는 이를 사리물고는 그리하겠다고 대답했다.
조회가 끝난 후 정 노후야는 속히 군영으로 가서 병사들을 소집해 길을 떠났다.
서노는 결국 옥안관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서노는 30만 대군인데 반해 옥안관에는 현재 13만 명밖에 없었다.
‘이 정도 군사로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정선제는 초조한 마음에 입술에 물집이 다 생길 지경이었고 하루 종일 안절부절못했다.
요 며칠 조정 신하들은 내내 전쟁에 관해 논의했는데, 대부분 패배한 이후에 20만 대군을 어느 곳에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었다.
정선제는 패배한 이후에 어찌할 것인지에 대해 정말 듣고 싶지 않았지만, 준비를 해야만 하는 부분이었다. 하여 무거운 마음으로 신하들과 의논을 했다.
의논을 한 지 3일째가 되던 날, 정선제 등이 순주와 익주에 어떻게 병력을 분배할 것인지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시위 한 명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전보이옵니다!”
“고하거라!”
정선제는 가슴이 조마조마해 두 손을 꽉 움켜쥔 채로 탁자 위에 올려놨다.
조정의 신하들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요양성은 아마 주운환이 패배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서노는 옥안관을 먼저 점령한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사주를 공격할 것이다. 그렇게 한 걸음씩 진격해 온다면 한 달도 되지 않아 익주를 공격해 올 것이다.
“황제 폐하, 서노가 옥안관을 공격했고 주 장군의 10만 군민軍民이 성을 지키고 있다가 계략을 써서 서노의 30만 대군을 무찔렀습니다. 서노의 금도 대장군은 병사들을 이끌고 응성으로 퇴각하려고 했지만, 주 장군이 승기를 타고 추격해 서노의 금도 대장군과 부장副將 몇 명의 목을 베었고 응성을 탈환했사옵니다.”
시위의 보고가 끝나자 대전 안은 순간 정적이 흘렀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있었던 정선제가 놀라 외쳤다.
“타, 탈환했다는 말이냐?”
“예, 폐하.”
시위는 흑금黑金 상주서를 머리 위로 들었다. 그러자 채결이 얼른 뛰어 내려와 그 상주서를 받아다가 황제의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정선제가 손을 떨며 상주서를 펼쳐 보니 주운환이 보낸 친서였다. 안에는 전황에 관한 모든 내용이 소상히 적혀 있었다. 정선제는 상주서를 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아, 정말로 하늘이 내린 장수로구나!”
장찬은 흥분하여 큰 소리로 외쳤다. 그는 진작부터 주운환이 전도양양한 사람인 걸 알고 있었다.
상관수와 오일의 등 조정 신하들도 하나같이 그를 칭찬했다.
“과연 주씨 가문 사람답습니다. 대대로 영웅이 배출되는군요. 그러게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주씨 가문 같은 장수 가문이 어찌 몰락했다고 하여 정말로 몰락했겠습니까. 영웅의 자질이 대대로 이어지는 겁니다!”
다들 흥분에 휩싸여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지경이었다. 번영한 도성에 있어도, 높은 곳에 앉아 있다고 해도 변방에서 일어난 전쟁이 가져오는 고통을 어찌 남의 일처럼 생각하랴. 만약 패배했다면 어떤 상황과 맞닥뜨리게 됐을까?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는 조정 신하들이 그래도 꽤 많았다.
주운환은 응성을 탈환했을 뿐만 아니라 대제의 강산 전부를 지켜 냈고 수많은 백성들을 지켜 냈다!
한쪽에 서 있던 유 재상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거칠게 닦아 내며 옅은 한숨을 쉬었다.
전지신, 요양성 등은 멍하니 서 있었다.
‘정말로 응성을 탈환했다! 정말로 탈환한 것이다! 고작 열여덟 살밖에 안 되는 애송이가 말이다!’
게다가 그는 문과 장원 급제자일 뿐, 전쟁 경험이 전무한 햇병아리에 불과한 이었다. 그런 이가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 풍씨 가문을 박살 낸 금도 대장군의 목을 벤 것이다.
‘흉악하고 잔인한 금도 대장군의 정예 기병이 문약한 서생에게 무너지다니!’
전지신과 요양성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들은 당연히 옥안관이 함락되면 대제가 어떤 상황을 맞닥뜨리게 될지 알고 있었다. 아무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도 옥안관을 지켜 내고 응성을 탈환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 일을 해낸 사람이 주운환 이 햇병아리라는 생각이 들자 뺨을 마구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어 주운환이 출정을 청했을 때 자신들이 갖은 방법으로 저지하며 5만 명의 병사와 군마만 내어 줘야 한다는 소리를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런데 결과는 어떠한가.
주운환 이 어린 것이 돌아오면 자신들을 겨냥하여 얼마나 싫은 소리를 해 댈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전지신과 요양성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 이게 무슨 소리냐?”
그때였다. 정선제가 고개를 숙인 채 상주서를 쳐다보며 시위에게 하문했다. 기쁨과 흥분으로 가득했던 그의 얼굴은 마지막 부분을 보더니 확 굳어졌다.
“주 장군이… 어디로 갔다는 말이냐?”
“공격을 당한 서노군이 반격할 여력이 조금도 남지 않게 되자 서노의 황자가 눈물로 용서를 구하고 강화講和하자는 이야기를 꺼냈다고 하옵니다.
그에 반해 남쪽 이민족은 즉시 국경으로 퇴각했고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고 하옵니다. 그러자 주 장군이 5만 정예병을 이끌고 남쪽 이민족들이 주둔하고 있는 곳으로 쳐들어갔고, 지금 응성은 장군이 선발한 부장과 풍씨 가문의 두 젊은 장수가 지키고 있다고 하옵니다.”
그 말에 정선제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서노는 금도 대장군과 사율이를 비롯한 몇 명의 장수들을 잇달아 잃었으니 이미 앞니 두 개를 잃은 상태였다. 하지만 남쪽 이민족은 비록 규모가 작고 군사들의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전술은 정말이지 너무도 기이했다.
남쪽 이민족들은 수백 년 동안 대제에 깊은 원한을 품어 왔고 수시로 변방과 대제의 도시와 농촌에 해를 입혔다. 또 최근 몇 년간 서노와 대제 사이의 전쟁은 모두 남쪽의 이민족이 중간에 껴서 이간질을 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
하지만 대제는 남쪽 이민족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들이 단독으로 나와 움직이면 위협이 되지 않았지만, 그들의 영역으로 쫓아가게 되면 살아서 나오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정선제는 화가 나서 까무러칠 것만 같았다. 주운환은 그가 갑작스레 얻게 된 천재 장수가 아니던가! 게다가 나이도 아직 어리고 전도가 유망하니 앞으로 변방은 그에게 맡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죽음을 자초하고 남쪽 이민족의 영역으로 달려간 것이었다.
“이런……!”
조정 신하들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주 장군은 어째서 그들의 영역으로 갔단 말인가!”
“그러게 말입니다.”
일제히 다급한 목소리로 염려를 토했다.
“남쪽 이민족들은 확실히 괘씸하고 죽어 마땅한 것들이긴 하나 그곳은 가서는 안 되는 곳입니다!”
“아이고, 커다란 공을 세웠는데 어찌 이렇게 생각이 짧을까!”
전지신은 걱정스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속으로는 이미 끅끅거리며 숨넘어갈 듯이 웃고 있었다.
주운환이 응성을 탈환했고 서노의 황자가 울면서 강화를 청했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온 도성에 파다하게 퍼졌다.
도성의 백성들은 환호성을 질렀지만, 이따금씩 주 장군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고 남쪽 이민족들의 영역으로 달려갔다는 말도 섞여 있었다.
* * *
그 시각 주씨 가문.
일상원에 앉아 있던 진씨와 강심설, 주묘서는 그 소식을 듣고는 전부 경직된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 백야는 바닥에 앉아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진씨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녀는 주운환이 큰 공을 세우는 걸 털끝만큼도 바라지 않았지만 또 내심 그가 공을 세워서 가문의 위상을 더 높이기를 바랐다.
마침내 주운환이 공을 세우게 되었으니 진씨는 몹시 탐탁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문의 위상이 높아졌으니 화가 나면서도 좀 기쁘고 다행이라는 생각 역시 들었다. 주묘서가 더 좋은 배필을 구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주운환은 남쪽 이민족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이건 또다시 죽음을 자초하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진씨는 그가 알아서 저승길로 들어서는 꼴을 보고 싶었고, 그녀가 가장 바라는 건 그의 시체도 온전히 수습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리되면 응성 탈환의 공은 결국 어떻게 되겠는가?
지금 응성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새로 발탁된 부장과 아직 죽지 않은 풍씨 가문의 두 젊은 장수였다. 만약 주운환이 죽게 된다면 이 공로는 그들에게 돌아가지 않겠는가? 그럼 주씨 가문에는 뭐가 남는다는 말인가?
주운환이 설령 죽고 싶다 하더라도 일단 돌아와서 공로를 인정받은 다음, 다시 출정하여 남쪽 이민족의 영역으로 들어가야 했다. 이런 생각을 하자 진씨는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흐릿해졌다.
“어머님. 큰아가씨의 혼사는 어찌할까요?”
강심설이 갑자기 그녀에게 물었다.
진씨는 정말이지 화가 나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주씨 가문 사람인 그녀는 전에 공을 가로채는 일을 참으로 많이도 봤었다. 이 공로를 빼앗기게 되면 백성들은 겉만 번지르르한 자들만 추앙할 텐데, 어디 주씨 가문에까지 생각이 미치겠는가?
진씨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승낙하자꾸나!”
나중에 그 ‘공을 가로챈’ 부장과 풍씨 가문 장수들이 돌아오면 주씨 가문을 억압하려고 할 수도 있었다. 그리되면 서씨 가문조차 혼사를 원치 않는다고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