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407화 (407/858)

제407화

“매파가 되었다고? 그럼… 우리 서의 혼처도 좀 알아봐 주게.”

은정랑의 부탁에 진 마마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전… 그런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중매를 하지 않습니다. 저 같은 매파는 알고 지내는 소저들에게 사람들을 소개해 줍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그 말에 은정랑은 표정이 확 굳어졌다. 무슨 말인지 당연히 알아들었다. 그녀가 말하는 소저들이란 기루에 들어가지 않았거나 기루에서 나와 혼자서 영업을 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진 마마는 자신이 이런 소저들에게 상대를 연결해 주고 있다고 솔직히 털어놓은 것이다!

“들어 보니 요즘 마님도 그 일을 하신다고 하던데, 마님과 일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제가 마님께 사람들을 소개해 드릴게요.”

은정랑은 그 말에 안색이 확 변했고 부끄럽고 분한 나머지 버럭 화를 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네!”

그러면서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했다. 진 마마는 어리둥절해하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럼요. 알고 있습니다. 저도 뭐 이상한 사람을 소개하려는 게 아니라… 벗이 될 만한 사람들을 소개해 드리려는 겁니다. 마님과 시를 읊고 그림도 그리며 이상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벗들 말이죠!”

은정랑도 진작부터 중매인을 찾고 싶었지만 체면이 서지 않아 그렇게는 못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중매인이 스스로 찾아왔고 더군다나 오래 알고 지낸 사이니 은정랑은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진 마마가 설득 조로 말을 이어 갔다.

“지금 마님께서 왕래하는 사람들은 전부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니, 이건 마님 스스로를 모욕하는 겁니다! 게다가 그 사람들은 마님이 부끄러워하는 걸 알고 돈도 적게 주는 거예요! 제가 마님께 소개해 드릴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은정랑은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에 들어 거리에도 나가지 않고 얼른 진 마마를 집 안으로 들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회포를 풀며 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후 신시申時(오후 3시~5시)가 되어서야 두 사람은 이야기를 마쳤다.

이튿날, 진 마마는 정말로 신분과 지위가 있는 사람들을 소개해 주었다. 이 사람들은 통도 커서 한 번에 다섯 냥에서 열 냥을 주었다. 물론 다들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이날 엽승덕은 또 먹을 더 챙겨오는 걸 깜빡해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입이 삐뚤어졌고 배도 툭 튀어나온 한 사내가 정원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엽승덕은 표정이 확 굳어졌고 그가 묻기도 전에 은정랑이 이렇게 말했다.

“이분은 나무 심는 걸 도와주러 이곳에 오셨어요!”

‘그래. 저번에는 수납장 고치는 걸 도와주고 이번에는 나무 심는 걸 도와줬구나! 푸릇푸릇한 게 아주 잘도 심었네! 정말 심금을 울리게 아름답네!’

엽승덕은 머릿속이 하얘지고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그는 얼빠진 표정으로 먹을 들고 방에서 나온 뒤 곧장 문을 나섰다.

서신을 써 주는 허름한 노점상으로 돌아온 그는 붓을 들었지만 도저히 글을 써 내려갈 수가 없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무너져 내렸고 절망으로 인한 분노가 가슴속에서 들끓었다.

결국 엽승덕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손에 든 붓을 집어 던지고 집으로 달려갔다.

영존거로 돌아온 그는 문을 열려고 했지만 안에서 문을 잠근 상태였다. 그러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엽승덕은 ‘쾅’ 대문을 냅다 걷어찼다. 하지만 대문이 아주 두껍고 튼튼해서 발로 걷어차도 꿈쩍도 하지 않았고, 되레 반동 때문에 발만 아파 왔다.

“이익! 문 열어! 문 열라고!”

엽승덕은 큰 소리로 고함을 쳤다.

그러자 ‘끼익’ 소리가 나며 문이 열리긴 열렸는데 맞은편에 사는 춘화 집의 문이었다.

춘화는 퉁퉁한 머리를 쑥 내밀더니 담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담장에서 뛰어내리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그 허대실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여기로 올라가는 걸 몇 번이나 봤거든요. 여기로 올라가면 틀림없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엽승덕은 허대실의 이름을 듣자 머리가 어질어질했고, 화가 나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허대실이라니! 어째서 그자가?’

엽승덕은 담장 위로 오르고 싶었지만, 힘이 부족했고 담장의 키 또한 높았다. 결국 그는 다시 자신의 노점으로 돌아가 허름한 탁자를 가져온 다음, 그것을 담장 아래 두고 발판으로 삼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가 정원으로 뛰어내리자마자 방 안에서 기척이 들려왔다.

엽승덕은 그 소리를 듣더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 소리는 바로 그날 객줏집에서 그가 들었던 소리였다.

그게 정말로 은정랑의 소리였던 것이다!

사실 그도 진작부터 그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믿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그런 사람이라면, 그녀가 자신을 이리 대한다면 자신이 그동안 해 온 것들은 뭐가 된단 말인가?

‘내가 어떻게 틀릴 수 있는가! 어떻게 틀릴 수 있느냔 말이다!’

엽승덕은 눈에 핏발을 세우고 성큼성큼 낭하로 걸어가 발로 문을 걷어찬 다음 침실로 들어갔다. 들어가 보니 은정랑은 정말로 못생기고 뚱뚱한 한 사내와 함께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왕 노인이었다.

“으아악! 지금 뭣들 하는 짓이냐!”

엽승덕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 죽일 놈의 영감탱이! 감히 정랑을 욕보이다니! 감히 내 아내를 욕보이다니!”

“무슨 욕을 보였다는 겐가?”

왕 노인은 헤헤 웃으며 걸어 나왔다.

“욕보였다니! 난 돈을 주고 했네!”

“돈을 줬다니…….”

엽승덕은 뭐라고 더 말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왕 노인이 입을 씰쭉거리며 엽승덕이 문으로 들어설 때 부르짖던 말을 흉내 냈다.

“‘으아악!! 지금 뭣들 하는 짓이냐!’라고 했지. 퉷! 저 사람이 언제 자네 아내가 되었는가? 그냥 외실에 불과한 거 아냐? 그저 뻔뻔한 외실이잖아? 어떻게 자네 아내가 될 수 있지? 쯧쯧, 저러니 지금 이 지경이 되어 버린 거겠지. 이런 백치 같은 작자를 봤나! 흐흐흐!”

그는 그리 비아냥대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은정랑에게 말했다.

“오늘 나쁘지 않았네. 내 다음에 또 오지!”

왕 노인은 기름진 배를 내밀고 거만한 걸음걸이로 그곳을 떠났다.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 버린 엽승덕은 그를 막아설 힘조차 없어 그저 은정랑을 쳐다볼 뿐이었다.

몸을 일으킨 은정랑은 지친 모습으로 하품을 했고 엽승덕이 마치 공기라도 되는 양 그가 있는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엽승덕은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 발바닥에서 한기가 느껴지더니 등줄기까지 타고 올라와 온몸에서 오한이 났다. 그는 멍한 얼굴로 말했다.

“정랑… 아무리 사는 게 힘들어도… 내가 아무리 고생한다고 해도 날 위해 이런 일까지 할 필요는 없소…….”

은정랑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더 이상 그를 참아줄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경멸과 조롱이 섞인 표정으로 쏘아붙였다.

“뭐라고? 아직도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여기는 거야? 당신 때문이라고? 내가 당신 때문에 이런다고? 이 돈은 전부 이 몸이 고생해서 번 거야. 그런데 이 돈을 탐내는 거야? 에이 퉷. 이런 뻔뻔하고 비열한 인간을 봤나!”

‘지, 지금 정랑이 무슨 말을 한 거지? 나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엽승덕의 머릿속에서 폭발음이 연신 울렸다.

은정랑이 한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이런 사람들과 왕래를 한 지 이미 오래되었는데, 그런데도 엽승덕은 매일 흰죽과 채소 반찬을 먹었고 기름기 있는 음식은 구경도 못 했다. 그러니 결코 엽승덕을 위해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를 위한다면 이런 짓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정랑… 난 당신을 위해… 당신을 위해 본처를 모해하고 내 자식마저 가만두지 않았소! 이젠 집에서까지 쫓겨났는데…….”

엽승덕은 목소리마저 떨고 있었다.

“하하. 그래! 근데 누가 그러라고 시켰어? 누가 그렇게 어리석게 행동하라고 했냐고! 그건 당신 사정이지!”

은정랑은 냉소를 지었다.

“정랑… 당신은 이런 사람이 아니었소……. 전에 당신은… 내가 당신의 전부라고 했소. 당신이 가진 거라곤 나밖에 없다고 하지 않았소. 이번 생에 날 만난 게 가장 큰 행운이라고 했지! 날 그렇게 사랑했는데…….”

“그랬지!”

은정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당신은 내게 전부였지! 난 그저 혹까지 달려 있는 가난한 촌부에 불과했어. 자수 상점에서 수를 놓으며 고생고생해도 하루에 겨우 동화 이삼십 냥밖에 못 벌었어. 맞은편 거리의 홀아비조차 날 업신여겼지!

그런데 그때 갑자기 웬 얼뜨기 하나가 나타나 날 돌봐 주겠다고 한 거야. 돈도 엄청 많은 데다가 후부의 세자이기까지 했지. 그러니 내 어찌 응하지 않을 수 있겠어? 게다가 내게 정실 자리까지 주겠다고 하니 당연히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 같은 천치를 만난 건 내 인생 최대의 행운이었지. 안 그랬으면 난 여전히 촌부에 불과했을 테니 말이야!”

그 말에 엽승덕은 머리가 핑글 돌았다. 알고 보니 그녀의 눈에 비친 자신은 한낱 천치에 불과했던 것이다.

“난 이제부터 후부의 부인으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당신이 이런 머저리일 줄 누가 알았겠어! 떠먹여 주는 것도 못 받아먹는 인간아!”

엽승덕은 화가 나 큰 소리로 말했다.

“날 원망하는 거요? 분명 당신이…….”

“그래, 원망한다! 당신 잘못이잖아! 다 무능한 당신 탓이야!”

은정랑은 이를 악물고 그를 매섭게 노려봤다.

“전에는 후부의 세자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나중에서야 후부의 세자도 급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 당신은 급이 떨어지는 축에 속했지!

게다가 당신은 학문적 소양도 전혀 쌓아 놓지 않아 수재로도 붙지 못했고, 힘들게 얻은 관직도 돈을 써서 산 거였지! 그러니 내가 어떻게 귀족들 틈에 섞일 수 있었겠어?”

은정랑은 말하면 할수록 흥이 났다.

‘누가 그보고 날 이 지경으로 만들라고 했는가!’

그녀는 마음속에 묻어 놨던 말을 전부 꺼내어 놓았고, 놀라서 얼이 빠진 엽승덕의 멍청한 모습을 보니 속이 아주 후련해졌다.

“그러던 차에 허대실이 돌아온 거야. 나와 서는 그자가 허 장군인 줄 알았고 그래서 그쪽을 따라나섰던 거지.

쯧쯧, 그 사람이 당신보다 훨씬 나았어! 아니, 그 많은 사내들 중에 당신이 제일 형편없어! 전에는 당신에게 맞춰 줘야 해서 좋은 척 연기를 해 줬더니 당신은 자기가 되게 잘하는 줄 알더라! 근데 사실 정말 별로였거든!”

그 말에 엽승덕은 사내로서의 자존심까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허대실이 곧 장군에 봉해질 줄 알고 그자를 따라갔던 거야! 그 사람은 당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이 되는 거니까!

그런데… 그저 비천한 마부에 불과할 줄 누가 알았겠어! 나와 서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지. 그 비천한 마부가 한 달에 겨우 은화 두 냥을 버는 걸로는 내 간식거리도 못 산단 말이야!

그래서 할 수 없이 다시 당신을 찾아간 거야! 원래는 그저 시도나 해 보자는 심산으로 갔었어. 당신이 다시 날 받아 주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당신이 진짜 그런 얼간이일 줄 누가 알았겠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날 받아 주더라! 하하하. 서방질하는 여인의 남편이 되겠다고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올 줄이야. 내가 다른 사내와 놀아난 것도 모르고 말이지. 쯧쯧! 오래 살다 보니 정말 별의별 사람이 다 있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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