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2화
주종과는 낯빛이 확 변했고 부끄럽고 분한 나머지 버럭 화를 냈다.
“내가 왜 촌티 나고 돈도 없는 여인을 아내로 맞이해야 되느냐!”
“그러니까요. 그럼 고관대작의 적녀는 왜 그쪽 같은 뭣도 없는 서자에게 시집을 가야 되죠?”
제민은 냉소를 짓더니 눈을 부라렸다.
“내가 제일 혐오하는 사람이 바로 당신 같은 사람이에요. 자신이 가난한 것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고 자신에게 시집오지 않는 선녀 같은 미인들은 전부 허영에 들뜬 멍청이인 거죠!”
그러자 주종과는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했다. 엽연채가 냉소를 지으며 쐐기를 박았다.
“설옥인 소저는 도련님의 출신을 따지지 않았는데 왜 도련님은 그 소저를 마다한 거죠?”
“그 천박한…….”
말을 하던 비 이낭은 낯빛이 확 변하더니 이를 악물고 이렇게 보탰다.
“그 천박한 계집애는 사내를 유혹했어요. 그런 방법을 쓰지 않으면 누가 그 계집애를 아내로 맞으려 하겠어요!”
“난 이것저것 따지지 않는 사람인데 난 어때요?”
제민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그게 무슨 뜻이냐?”
주종과의 낯빛이 쉼 없이 바뀌었다.
“누가 너 같은 시골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다는 말이냐! 꿈도 크구나!”
“도련님, 꿈도 참 크시네요!”
엽연채가 냉소를 지었다.
비 이낭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며 휙 돌아서서 자리를 떴다.
주종과가 제민을 보니 그녀는 청아하고 수려한 외모에 눈빛에 영기英氣가 담겨 있었다. 하나 그녀는 그저 시골 처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신분은 서녀나 설옥인보다도 못했다.
주종과는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제민을 보더니 낯빛이 확 변했다.
“왜 날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이냐!”
‘나에게 시집오고 싶어서 이러는 건가? 꿈도 야무지구나!’
“이런 고약한 것! 처, 천박한 것!”
주종과는 제민이 진짜로 자신에게 들러붙을까 봐 허둥대며 줄행랑을 쳤다.
비 이낭은 밖으로 나가며 상소리를 퍼부었다.
“저런 가증스러운 사람은 내 처음 본다! 신붓감을 소개해 달라고 한 것뿐인데 이리저리 핑계를 대 가며 회피하는 것도 모자라 저런 촌년을 우리 종과 도련님에게 갖다 붙이려고 해!”
지나가던 하인들은 그 말을 듣더니 모두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비 이낭은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는 모습을 보자 표정이 더욱 어두워지더니 서둘러 자신의 처소로 달려갔다.
* * *
그 시각 일상원.
진씨는 비 이낭이 엽연채에게 갔다가 부아만 치밀어 올랐다는 이야기를 듣더니 피식 웃었다.
“제 주제는 생각도 안 하고 명문가 적녀를 아내로 맞이하려고 하다니. 천한 서자 주제에. 여인들이 다 엽연채처럼 눈이 삔 것도 아니고!”
진씨는 속에서 화가 솟구쳤다. 입으로는 눈이 삐었다고 말했지만 그 비천한 서자는 공교롭게도 과거 시험을 쳐서 장원이 되었고, 출정했는데 아직 죽지도 않았다.
하좌에 앉아 있던 백 이낭은 입꼬리를 삐죽거렸다. 주종과가 제 분수도 모른다고 하는데 그럼 주묘서는 뭐란 말인가?
오늘 힘들게 구한 매관이 몇몇 집안의 사내들을 소개해 줬는데 그중에 진씨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솔직히 말해 주묘서와 진씨의 외모가 닮지 않았다면 자신은 주묘서야말로 비 이낭의 소생이라고 의심했을 것이다. 아니면 주종과도 진씨의 배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두 사람이야말로 동복남매처럼 닮았으니 말이다.
“녹지야. 가서 비 이낭을 불러오너라!”
진씨는 쯧쯧 혀를 차며 녹지를 불렀다. 그동안 일어난 일마다 하나같이 좋은 일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아주 우스운 일이 생겼으니 얼른 그녀를 부르려는 것이었다.
녹지는 알겠다고 대답한 후 얼른 밖으로 뛰어나갔다.
잠시 후, 비 이낭이 굳은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와 진씨에게 예를 올렸다.
“마님.”
“그래. 앉거라!”
진씨는 미소를 지으며 흰 바탕에 짙은 푸른색 문양이 들어간 찻잔을 들어 올렸고 비 이낭은 입을 삐죽거리며 백 이낭 옆에 앉았다.
“다 들었네. 셋째 처의 처소에 가서 혼처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면서?”
진씨는 허허 웃었다.
“내가 소홀했구먼. 둘째도 스물이 넘었는데. 아 참, 둘째가 올해 스물 몇이더라?”
비 이낭은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답했다.
“스물셋입니다!”
“아이고, 나이가 벌써 그렇게 됐구먼. 혼담을 꺼낼 때가 됐네! 설씨 가문에서 파혼하자마자 혼처를 구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네. 이젠 혼처를 구해도 괜찮겠군.”
비 이낭은 진씨가 주종과에게 좋은 혼처를 구해 주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기에 억지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종과 도련님 혼사는… 부인께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게 무슨 뜻인가?”
진씨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내가 둘째의 어머니인데 걱정할 필요 없다니?”
비 이낭은 얼굴을 찌푸리며 눈을 부릅떴다.
‘전에는 혼사는 나 몰라라 하며 못 잡아먹어서 안달을 하더니만 이제 와서 호의를 베푸는 척하시겠다?’
“그래. 내가 걱정할 필요가 없긴 하지!”
진씨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방금 전에 비 이낭 자네가 셋째 처를 찾아가 좋은 혼처를 구하려고 했다지. 그 제민이라는 아이도 괜찮은 거 같더군. 얼굴도 예쁘고 셋째 처가 데려온 친한 친구라고 하던데. 그 애에게 혼담을 꺼내 보게.”
비 이낭은 화가 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마님,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까? 제민이요? 셋째 마님은 그런 혼사는 언급하지 않으셨어요!”
“오. 그래?”
진씨는 버들잎 모양의 고운 눈썹을 추켜세웠다.
“셋째 처가 말하지 않았어도 상관없다. 내가 보기에 괜찮은 것 같으니 말일세. 그 애는 몸매도 늘씬하고 얼굴도 예쁘더군. 어제저녁에 이따금씩 둘째 옆을 지나가던데, 보니 아주 잘 어울렸고 말이야. 내 생각에는 두 사람이 잘 맞는 한 쌍 같으니 지금 사람을 보내 혼담을 꺼내야겠어.”
“마님, 일부러 우리 종과 도련님을 난처하게 만드시는 겁니까?”
비 이낭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했다.
“우리 종과 도련님이 아무리 못났다고 해도 백부의 자제인데 어떻게 시골 처자를 아내로 맞이한다는 말입니까! 마님, 지금 서자를 박대하시는 겁니까?”
진씨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이런 사리분별 못 하는 사람을 봤나. 난 그저 인품과 외모가 괜찮은 아이이기에 말해 본 거네.”
비 이낭은 씩씩거리며 방을 나섰다. 진씨는 수치심과 분노를 느끼며 떠나가는 비 이낭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쯧쯧. 그래도 덕분에 즐거웠다. 그런데 주종과가 시골 처자를 아내로 맞이하는 것도 괜찮은데? 정말 딱 어울리는 한 쌍이야!’
물론 불가능한 생각인 줄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비 이낭이 난리굿을 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주 백야도 절대로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리하면 정말로 자신이 서자를 박대한다는 말이 퍼질 것이다.
진씨와 비 이낭이 큰 소리로 떠드는 바람에 밖에 있던 사람들도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밖에 있던 여종들이 수군거렸다.
“들어 보니 마님께서 둘째 도련님에게 그 제씨 소저를 소개해 주려고 하신대!”
“제씨 소저라니?”
“어제 셋째 마님이 데려온 시골 아가씨 말이야!”
“쯧쯧! 야야, 저기 온다! 쉿!”
여종들이 어리둥절해하며 보니 멀리서 비 이낭이 상소리를 퍼부으며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느냐?”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여종들은 얼른 한쪽으로 물러났다.
“아무 말도 안 했다고? 내가 똑똑히 들었다! 감히 우리 둘째 도련님이 촌년을 아내로 맞이하려 한다는 말을 하다니!”
비 이낭은 그리 말하며 여종 하나를 꼬집었다.
“이 말 많은 계집애가!”
“아얏……!”
비 이낭에게 꼬집힌 그 여종은 비명을 질렀고 다른 여종들은 놀라서 얼른 한쪽으로 비켜섰다.
“이 빌어먹을 년! 뻔뻔한 년!”
비 이낭은 그 여종을 바닥에 밀쳐 버리더니 궁명헌이 있는 방향으로 손가락질을 하며 상소리를 내뱉었다.
“천하고 뻔뻔한 촌년 주제에 감히 우리 종과 도련님을 넘보다니! 그런 천한 계집은 우리 둘째 도련님에게 첩실로 줘도 어림없다!”
그녀는 한바탕 분풀이를 하고선 서둘러 자신의 처소로 향했다.
* * *
한편, 엽연채는 여전히 궁명헌에서 제민과 바둑을 두고 있었는데 추길이 달려와 이렇게 전했다.
“아가씨, 비 이낭이 제민 소저는 둘째 공자의 첩실로도 어림없다며 큰 소리로 떠들고 있어요.”
제민은 검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해했다.
“이쪽도 그런 촌티 나는 사내는 눈요기하라고 줘도 사양이거든!”
“추길아, 가서 비 이낭에게 계속 떠들어대면 정말로 그리될 거라고 전하거라.”
엽연채는 냉소를 지었다.
추길은 알겠다고 대답한 후 곧장 비 이낭의 처소로 향했다.
비 이낭은 아직도 처소에서 쌍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뻔뻔한 것. 촌년 주제에 우리 종과를 난처하게 만들다니!”
이때, 추길이 굳은 표정을 하고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아유, 이낭. 목소리가 담벼락을 몇 개 지나도 다 들려요!”
“그래서 뭐? 내가 욕하겠다는데! 내가 너희 마님을 욕할 수는 없잖니. 봉호를 받은 부인이고 이 집안의 상전이니 말이다. 제기랄, 그래서 우리 종과 도련님을 넘본 그 촌년을 좀 욕하겠다는데 그것도 안 되냐?”
“욕해도 되죠.”
추길이 냉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제민 소저가 둘째 도련님을 눈곱만큼도 넘보지 않는다는 건 말할 것도 없지만요. 그런데 이낭이 이렇게 욕을 해 대면 제민 소저 평판이 엉망이 될 텐데, 그럼 둘째 도련님께 시집갈 수밖에 없을 걸요!”
“에라이, 퉷! 그 촌년이 시집오고 싶다고 하면 올 수 있는 줄 아니?”
비 이낭이 바닥에 침을 탁 뱉자 추길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주인마님께서 이 혼사를 원하시잖아요. 그러시면 저희 셋째 마님도 동의할 수밖에 없으시죠. 이낭이 남의 명예를 더럽히면 그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것과 다름없으니, 백야의 자당께서도 이낭의 뜻을 따라 주지 않으실 거예요. 그리되면 둘째 도련님은 제민 소저를 책임지실 수밖에 없겠죠!”
비 이낭은 말문이 막혔고 온몸이 경직됐다. 매씨의 사나운 모습이 떠오르자 그녀 앞에서 자신은 전투력을 완전히 상실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길은 코웃음을 치더니 돌아서서 그곳을 떠났다.
비 이낭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기가 확 꺾여 버렸고 더는 감히 고래고래 욕지거리를 할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밖에 있는 사람들조차 이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건 그저 우스갯소리야. 아무도 진짜로 이뤄지리라고는 생각지 않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