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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399화 (399/858)

제399화

하룻밤 사이에 대제가 반격을 할 것이고 응성 탈환에 희망이 생겼다는 소식이 우후죽순처럼 온 도성에 퍼져 나갔다. 사람들은 문득 그들이 경멸하고 조소하던 엽연채가 주운환의 아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영웅의 아내가 어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황제는 그녀에게 봉호까지 내렸다.

그녀가 남편을 배신하고 사내들을 유혹한 부덕한 사람이라면 주운환이 나라를 위해 출정하여 싸우고 있는데 황제가 그녀를 용서하고 봉호를 내렸을 리 없었다. 따라서 누군가가 헛소문을 퍼뜨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주 장군의 아내를 이리 폄훼할 수 있는가.

‘어라? 그러고 보니 요릿집에서 함부로 입을 놀려대던 몇 사람이 오늘 아침에는 보이지 않네?’

그들은 마치 하룻밤 사이에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 * *

그 시각 초부.

유곡요는 창백한 얼굴로 탑상에 앉아 손에 든 둥글부채를 꽉 움켜쥐었다.

‘엽연채가 봉호를 받았다니! 그 주씨 가문 셋째 공자는 아직…….’

게다가 이런 때에, 자신이 벌인 일이 황궁의 높으신 분들을 자극했단 말인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이번 일은 여인들 간의 사적인 일에 불과하고, 주운환이 한 번 이기기는 했지만 결과가 어찌 될지는 아직 모르는데 말이다. 또 자신이 벌인 짓이라는 게 드러나 궁 안 귀인들의 귀에 들어갔다고 해도, 유씨 가문의 체면을 생각해서 상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마님.”

이때, 여매가 안으로 들어오더니 조금 창백한 얼굴로 이렇게 고했다.

“어, 어르신께서… 두 분께 집으로 들르라고 하셨습니다.”

유곡요는 낯빛이 변하더니 입술을 꽉 깨물며 지난번에 그녀를 꾸짖던 유 재상을 떠올렸다. 그녀는 몸이 경직된 채로 자리에 앉아 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멍한 얼굴로 여매와 함께 문을 나섰다.

수화문에 도착하자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는 초빙풍의 모습이 보였다.

마차에 오른 후 초빙풍은 비웃음 섞인 눈빛으로 유곡요를 힐끗 쳐다봤다.

엽연채 일은 바로 유곡요가 벌인 짓이었지만, 유곡요는 유씨 집안에서 중요한 사람이니 유씨 가문에서 벌인 것과 다름이 없었다. 즉, 유 재상의 체면을 깎는 짓이었다.

황제가 그저 엽연채를 보호하려는 것이었다면 유 재상을 불러 주의를 줬을 것이고 유 재상은 알아서 유곡요를 단속했을 것이다. 그런데 황제는 일언반구도 없이 바로 봉호를 내린 것뿐 아니라 일부러 그녀를 궁으로 불러들이기까지 했다. 이는 유씨 가문의 체면을 무시한 행동이고 유 재상에게 하는 경고성 질책이었다.

초빙풍은 하얗게 질린 유곡요의 얼굴을 보자 속이 후련했다.

‘민이를 못살게 굴더니 결국 벌을 받는군!’

이제 엽연채가 봉호를 받았으니 그녀는 더욱 제민을 감싸고돌겠지만, 주운환의 승리는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니 그가 옥안관에서 패배하면 봉호도 유명무실해질 것이다.

주씨 가문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최고의 백야와 백 부인이었던 사람들이 전투에서 패배하고 나니 개만도 못한 신세가 되어 버렸다.

‘명예는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제민은 곧 의지할 사람을 잃게 될 거야.’

“왜 웃는 겁니까?”

이때, 싸늘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곡요의 목소리였다.

초빙풍은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화를 꾹 참고 있는 유곡요를 쳐다보며 부정했다.

“웃지 않았소.”

“하.”

유곡요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 날 비웃는 거예요?”

그러자 초빙풍의 눈빛에 조롱기가 스쳤다.

“애초에 당신이 잘못한 거잖소!”

“내가 뭘 잘못했는데요?”

유곡요의 표정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

“할아버님께서는 제민을 들이는 것을 허락하셨소. 그러니 좀 관대해질 수는 없는 거요? 그랬으면 이렇게까지 난감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요.”

초빙풍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지금은 잠시 후에 할아버님께 어떻게 대응할지 그 생각이나 해요!”

그리 말하는 초빙풍의 눈빛에는 좀 전보다 더 짙은 조롱기가 스쳤다.

유곡요는 화가 나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지만, 한마디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이윽고 마차는 유씨 가문 저택 앞에 도착했다. 마차가 멈춰 서며 조금 흔들리자 유곡요는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했다.

“나리, 마님. 도착했습니다.”

밖에서 여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초빙풍은 발을 걷으며 먼저 마차에서 내렸고 유곡요는 이를 악물더니 그를 따라 마차에서 내렸다. 유 재상의 사동은 이미 그곳에 서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고, 바로 그들을 모시고 유 재상의 서재로 향했다.

서재 밖에 도착하자 길을 안내한 사동이 이렇게 말했다.

“우선 나리부터 들어가시지요.”

초빙풍은 어리둥절해하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동을 따라 서재로 들어갔다. 유곡요는 손수건을 꽉 움켜쥔 채 밖에서 기다렸다.

널찍한 서재 안, 뒷짐을 지고 창가에 서 있던 유 재상은 기척이 들리자 몸을 돌렸다.

“할아버님.”

초빙풍은 앞으로 다가가 읍했다.

유 재상은 그를 한번 쳐다보고는 뒤에 있는 태사의에 앉더니 찻잔을 들어 올리며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일을 들었느냐? 최근에 일어난 일을 너도 똑똑히 알고 있으렷다?”

“예, 할아버님.”

초빙풍이 공손하게 말했다.

“할아버님, 걱정 마십시오. 이 일로 곡요 소저를 탓하지는 않을 겁니다.”

“당연히 그 애를 탓하면 안 되지. 탓하려면 네 자신을 탓해야지!”

유 재상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뼛속까지 파고드는 한기가 느껴졌다.

“할아버님…….”

초빙풍은 깜짝 놀라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 재상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유 재상은 그동안 그에게 늘 온화한 모습만 보여 주었다.

처음 유 재상을 만났을 때 초빙풍은 그가 온후하면서도 위엄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일국의 재상인 귀한 신분이지만 한 번도 권력으로 상대방을 짓누르려고 하지 않았고 저 같은 가난한 집안의 진사도 업신여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높이 평가했으며, 손녀사위로 들이려 하면서도 따뜻한 모습을 보여 주었고, 단 한 번도 거들먹거리며 사람을 내려다보지 않았다.

자신은 유곡요를 아내로 맞이하려고 했지만, 그러려면 유씨 가문이 제민을 집안으로 들이는 데 동의해야만 했다. 다른 명문가나 세도가 같았으면 분명 이런 일에 동의하지 않았을 텐데 유 재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자신은 늘 유 재상을 존경하고 우러러 모셨다.

요 며칠간의 일은 전부 유곡요가 벌인 짓이고, 때마침 주운환이 대승을 거두는 바람에 유씨 가문의 체면이 크게 깎이게 된 것이었다. 그러니 자신은 유 재상이 유곡요를 나무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리에 밝은 유 재상이 자신을 나무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게다가 뼛속까지 시려 오는 차가운 말투로 말이다.

“할아버님…….”

초빙풍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유 재상을 쳐다봤다.

“혼사에 대해 상의할 때 우리가 서로에게 했던 약속을 아직 기억하느냐?”

유 재상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기억합니다!”

초빙풍은 깍듯이 대답했다.

“당시 할아버님께서 저에게 데릴사위가 될 필요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둘째 아들을 유씨 가문의 양자로 삼게 한다면 제가 벼락출세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전 유씨 가문 손녀사위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드렸고, 할아버님께서도 제민을 집안으로 들이는 걸 허락해 주셨지만 제민이 대를 이을 아들을 낳는 건 불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좋다. 똑똑히 기억하고 있구나.”

유 재상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

“난 30년이 넘게 관직 생활을 해 오는 동안 약속한 말은 틀림없이 지켜 왔다. 내 이미 제민을 집안으로 들이는 데 동의했고 그 약속은 반드시 지킬 것이다. 하지만 네가 그 여인을 강제로 데려오는 걸 돕겠다고 한 적은 없다!”

“할아버님… 전 그런 적이 없습니다!”

초빙풍의 낯빛이 확 변했다.

“그렇게 한 적은 없지만 속으론 그런 생각을 품지 않았느냐!”

유 재상은 싸늘한 목소리로 초빙풍을 몰아세웠다.

“그 여인을 집안에 가둬 놨던 것처럼 말이다. 너도 원하고 그 여인도 원했다면 나도 흔쾌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여인은 원치 않음이 이제 분명히 드러났다. 그런데 넌 그곳에서 애걸복걸했으니 이게 유씨 가문 사위로서 최선을 다한 것이냐?”

초빙풍의 안색이 또다시 홱 바뀌었다.

“네가 그곳에서 구차하게 매달리지 않았다면, 곡요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행동했겠느냐?”

유 재상은 써늘한 목소리로 거듭 힐난했다.

“곡요가 그리 행동할 때 넌 무엇을 했느냐?”

그 말에 초빙풍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전…….”

“넌 지켜보고 있었겠지! 심지어 곡요가 제민을 압박해서 제민이 네 품으로 달려들기를 바랐을 게다. 그리고 그리되면 모든 잘못을 곡요의 탓으로 돌렸겠지!”

“할아버님. 저, 전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초빙풍은 다급히 부정했다.

“네가 그렇게 생각했는지 아닌지는 상관없다. 결국 그 제민이라는 여인 때문에 유씨 가문에 폐를 끼쳤고 화를 자초했다! 유씨 가문 사위로서 최선을 다할 수 없다면 여기서 그만두거라!”

가볍게 툭 던지는 말에서 뼛속까지 파고드는 듯한 한기가 느껴졌다. 초빙풍은 반박하고 싶었으나 유 재상의 마지막 말이 천둥소리처럼 자신의 귓전을 때렸다.

자애롭게만 비쳤던 유 재상이 한순간에 음랭한 분위기를 가득 풍기며 서슬 퍼런 모습으로 자신을 압박해 왔다. 초빙풍은 낯빛이 하얗게 질리더니 감히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허리를 푹 숙였다.

“앞으로는 신중하게 행동하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도가 지나친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유 재상은 번득이는 눈빛 못지않게 냉담한 목소리로 그를 내보냈다.

“알겠다. 이만 물러가거라!”

초빙풍은 창백한 얼굴로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유 재상은 그가 떠나가는 방향을 쳐다보며 매서운 안광을 번득였고 옆에 시립하고 있던 사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리께서 인자하게 대해 주시니, 손녀사위께서 그 인자함을 믿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겁니다. 보니 눈치가 있는 분 같지 않습니다.”

유 재상은 콧방귀를 뀌었다. 자신은 진심으로 초빙풍에게 인자하게 대해 줬다. 아내 집에 기대어 사는 사위는 사는 게 녹록치 않고 분명 자존심도 상할 테니 말이다.

자신은 혼사를 맺어 주면서 손자 하나를 유씨 가문 양자로 들이길 기대했고, 또한 부부가 화목하게 지내기도 바랐다. 그래서 초빙풍이 제민을 집안으로 들이겠다는 요구 사항을 제시했을 때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사내가 처첩을 거느리고 사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고, 아내를 존중하고 중요하게 생각하기만 한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사내이기에 젊었을 때는 첩실들을 총애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차츰 흐르며 나이를 먹으니 정실부인이야말로 가장 좋은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됐고, 정실부인을 그 누구보다도 존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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