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396화 (396/858)

제396화

“말해 보거라!”

이 시위는 옥안관의 전보를 가지고 온 것이다. 정선제는 옥안관 전보는 단계별로 보고를 올리지 말고 곧장 어전으로 전부 가져오라고 명을 내렸었다.

채결은 얼른 아래로 내려가 검은 바탕에 금박 문양을 넣은 상주서를 건네받았다. 이는 전보 특유의 오금烏金 상주서였다.

채결은 오금 상주서를 들고 앞으로 걸어갔고 그 시위는 무릎을 꿇고 공수하며 고했다.

“황제 폐하, 주 장군이 박주를 봉쇄한 남쪽 이민족들을 뚫자 서노의 사율이군이 포위공격을 했습니다!”

그 말에 정선제는 눈앞이 캄캄해졌고 태자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요양성과 전지신 등은 이를 악물며 낯빛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옥안관에도 도착하지 못하고 서노의 그 유명한 사율이 장군에게 포위당하다니!’

서노의 사율이 장군은 서노에서 가장 용맹하고 유능한 장군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주 유명했다. 지난번 응성 전투에서 서노의 주장主將인 금도 대장군이 풍 대장군과 풍 노장군을 차례로 참살했고, 풍씨 가문의 젊은 세 장군은 사율이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 지금 풍씨 가문의 젊은 세 장군만도 못한 햇병아리 주운환이 그와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몇 명이나 도망쳤느냐?”

요양성이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조정 신하들은 전부 그 시위를 쳐다보고 있었고 정선제는 오금 상주서를 열어 보더니 희끗희끗한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러고는 아래에 있는 신하들의 멍청한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패잔병은 옥안관으로 가면 안 된다!”

상관수가 말했다.

“북쪽으로 가야 한다. 우선 서북쪽으로 가서 강왕 전하와 합류해야 한다!”

“강왕 전하 쪽은 이미 지원을 위한 준비를 마치셨다.”

전지신이 말했다.

“지금 바로 강왕 전하께 소식을 전하면 되오!”

“아닙니다!”

그 시위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이렇게 말했다.

“주 장군은 전사하시지 않았습니다!”

그 말에 요양성과 전지신 등 조정 신하들은 깜짝 놀랐고 태자는 두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죽지 않았다고 했느냐?”

“예! 그뿐만 아니라 사율이가 이끄는 군대도 섬멸했습니다!”

“섬멸했다고?”

시위의 말에 요양성과 전지신 등은 표정이 확 굳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그 사율이가 이끈 병졸이 얼마나 되었느냐?”

“사율이의 병졸은 7만 명이었고, 주 장군이 박주를 뚫고 나왔을 때 저희 군에는 10만 명이 남아 있었습니다.”

요양성과 전지신은 눈썹을 치켜세웠고 태자는 이리 말했다.

“우리가 3만 명이 더 많았으니 적어도 수적으론 우세했던 겁니다. 다행히도 사율이의 군대가 주 장군을 얕잡아보고 7만 명만 데려왔던 거군요.”

“어쨌든 주 장군은 이번 전쟁이 처음입니다. 남쪽 이민족들은 박주에서 독을 사용하는 교활한 수법을 썼으니 주 장군의 첫 전투는 사율이와의 전투인 겁니다. 군대를 이끌고 간 게 이번이 처음인데 첫 전투에서 승리를 했으니 장수로서 자질이 있음을 증명한 겁니다!”

상관수는 두 눈을 반짝이며 기뻐했다.

“맞소! 과연… 주씨 가문 사람이구먼!”

장찬이 이렇게 맞들자 대전 분위기가 단박에 달아올랐다.

“역시 황제 폐하께서 현명한 판단을 하셨습니다. 주 장군이 정말 용맹무쌍하군요!”

“하하하, 짐의 안목은 늘 틀림이 없었다!”

정선제는 호탕하게 웃었다. 이날은 최근 들어 그가 가장 마음을 놓은 날이었다.

그가 직접 고른 장군이 아니라 주운환이 자발적으로 출정하겠다고 한 거지만, 어찌 됐든 선견지명이 있어 주운환에게 15만 명의 군사를 내주었다.

다들 주운환은 죽으러 가는 것이니 그에게 5만 명의 군사만 내어 주라고 했을 때 정말로 5만 명만 주었다면 어찌 되었겠는가. 주운환이 군대를 통솔하는 데 재능이 있었다고 해도 부릴 수 있는 군사가 없어 영락없이 목숨을 잃어야만 했을 것이다.

전지신과 요양성은 난감해졌다. 당시 5만 명을 줘야 한다고 고래고래 아우성을 쳤던 사람이 바로 자신들이기 때문이었다.

주운환에게 적개심을 품고 있어 주운환이 반드시 그곳에서 죽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주운환이 정말로 응성을 탈환할 수 있을 거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운환이 첫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해도 그에겐 10만 명의 병졸이 있었으니 상대에 비해 무려 3만 명이나 많았다. 또 그가 전장 경험이 없는 햇병아리라는 소식은 당연히 서노도 들었을 것이다. 사율이는 늘 오만하고 우쭐대던 사람이라 상대를 얕잡아 본 탓에 싸움에서 패했을 터였다.

그리고 사율이 뒤에는 아직 금도 대장군이 있었다. 그는 현재 응성에 주둔하고 있는 서노의 살인귀였고, 응성을 탈환하려면 그와 싸움을 벌여야 했다.

풍 대장군 같은 용맹스러운 사람과 풍 노장군처럼 한평생 군생활을 한 경험이 풍부한 사람도 금도 대장군에게 목숨을 잃었다. 그러니 주운환 같은 애송이가 어찌 그의 적수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러니 한순간의 활약상에 현혹되면 안 되었다. 주운환은 조만간 응성에 묻힐 거고, 지금 죽기 전에 잠깐 영광을 누리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전지신과 요양성은 이런 말을 절대로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적의 기세를 북돋우고 대제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잖은가. 다들 승리를 염원하고 주운환이 기적을 창조해 내기를 기대하는 판국에 찬물을 뿌릴 수야 없었다.

“사율이는 어떻게 됐느냐?”

장찬이 물었다.

“사율이는 주 장군에게 죽었습니다!”

시위의 답변에 조정 신하들은 또다시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동안 서노군이 우리 대제의 장수들을 베었는데, 이제야 대갚음해 줬구먼!”

그러나 전지신은 속으로 이렇게 토를 달았다.

‘서노는 우리 장수를 다섯이나 벴는데 우린 이제 겨우 하나를 벴을 뿐이야. 다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조정 신하들은 또 격양된 어조로 말했다.

“전부터 오만방자하게 굴던 사율이가 마침내 우리 대제의 위풍을 느꼈겠군요! 목숨을 잃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요양성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속으로 이렇게 낮잡아 보았다.

‘적군보다 3만 명이나 많았어. 3만 명이 한 명을 쫓는데 안 죽고 배겨?’

“하하하!”

정선제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시위가 다시 보고를 이어 갔다.

“주 장군은 이미 옥안관으로 진입해 남아 있는 젊은 두 풍 장군과 합류했습니다. 다만…….”

“왜 그러느냐?”

조정 신하들이 얼른 물었다.

“다만… 군량과 마초가 부족합니다!”

시위는 새파란 얼굴로 말했다.

“군량과 마초가 왜 또 부족하다는 게냐!”

전지신은 군량과 마초 이야기를 듣자마자 미간을 씰룩거렸다.

양왕은 싸늘한 눈빛으로 전지신을 쓱 쳐다보며 말했다.

“전 상서가 더 잘 알 것 아니오? 이번에 군량과 마초를 얼마나 주었소?”

그 말에 전지신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는 주운환이 분명 패배할 거라고 예상했기에 군사의 절반은 노약자와 병자, 불구자로 내어 주었고, 군량과 마초 또한 한 달 분량 정도밖에 주지 않았다.

“주 장군은 옥안관으로 가는 동안 현지에서 먹을 것을 조달하며 군량과 마초를 이미 충분히 절약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게다.”

정선제는 희끗희끗한 눈썹을 찌푸리더니 전지신을 쳐다봤다.

조정 신하들도 그 이야기를 듣더니 저도 모르게 전부 전지신을 쳐다봤다.

주운환이 순조롭게 옥안관에 도달한 이상, 응성을 탈환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한데 지금 군량과 마초가 또 부족하다는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제대로 전쟁에 임하자면 군량과 마초는 끊임없이 제공되어야 했다.

“전 상서는 돌아가서 군량과 마초를 확실히 준비하거라.”

정선제의 명에 전지신은 얼굴의 군살을 파들대더니 목소리를 떨며 대답했다.

“예…….”

주운환이 박주를 뚫고 사율이를 참살했으며 순조롭게 옥안관에 도달했다는 소식은 금세 비빈妃嬪들에게도 전해졌다.

이 소식을 접한 정 황후는 정선제가 이제 주운환을 더욱 중시할 거라고 생각했다. 응성을 탈환할 수 있을지는 둘째 치더라도 적어도 지금은 그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다. 생각을 하던 정 황후는 사 마마에게 다가오라고 손짓을 했다.

* * *

주운환의 소식은 아직 밖으로 전해지지 않고 궁 안에만 머물렀다.

어제 칠석을 보낸 후 날씨가 점점 더 쌀쌀해지자 엽연채는 가을 옷 준비에 나섰다.

그녀와 제민은 밖에 있는 돌 탁자 앞에 앉아 수본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엽연채는 정신을 딴 데 팔고 있었는데, 당연히 주운환 때문이었다. 그녀는 주운환을 믿기는 했지만 전장은 자칫 방심했다가는 그 즉시 목숨을 잃고 마는 위험천만한 곳이었다.

게다가 엽이채 등은 매번 자기 분수도 모른다며 그를 비웃었고 조만간 그곳에서 죽을 거라고 했다. 매번 사람들이 이쪽에 상심하지 말라며 빈정댈 때마다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그들을 맞받아쳤지만, 속으로는 그들이 하는 말 때문에 괴로워하며 걱정했다. 말이 씨가 되지는 않을까 염려했다.

왜 상처를 받겠는가? 당연히 그 말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었다.

“아가씨!”

이때, 혜연이 갑자기 안으로 들어왔다.

“으…….”

엽연채는 혜연이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그만 손이 미끄러졌고, 그리던 꽃도 당연히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 올렸다.

“무슨 일이니?”

혜연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소식을 전했다.

“추길이가 밖에서 누군가와 싸우고 있어요!”

“뭐? 어쩌다가?”

“저도 잘 모릅니다.”

혜연은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오늘 마님께서 풍화루의 통닭구이가 드시고 싶다면서 추길이에게 사 오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추길이가 염교랑 함께 외출했는데, 방금 전에 염교가 겁먹은 얼굴로 뛰어오더니 추길이가 풍화루에서 누군가와 말싸움이 붙었다고 알려 줬어요!”

엽연채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풍화루에서 말싸움이 붙은 이유야 보지 않아도 뻔했다. 분명 밖에서 떠도는 그 유언비어 때문일 것이다.

추길은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라 참는 법이 없었다. 그러잖아도 예의 그 유언비어에 꽤나 신경을 쓰고 있던 추길이 풍화루의 손님들이 함부로 입을 놀리자 끝내 폭발하고 만 것이 분명했다.

“보러 가야겠다.”

엽연채는 손에 들고 있던 붓을 탁자 위에 내던졌다.

“나도 갈게.”

제민도 들고 있던 걸 내려놓고 두 사람은 함께 밖으로 나갔다.

풍화루로 가던 중, 제민이 미안해하는 얼굴로 말했다.

“내가 나가는 게 낫겠어. 안 그러면 그 사람들이 계속해서 널 표적으로 삼아 끝없이 괴롭힐 거야. 난 너랑 네 주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

“첫째, 난 그들이 두렵지 않아! 둘째, 널 그들에게 내주면 넌 죽은 목숨이야. 난 그런 짓은 할 수 없어. 셋째, 넌 나에게 아주 쓸모 있는 사람이야.”

엽연채가 조목조목 반박하자 제민은 어리둥절해했다.

“나 같은 사람이 무슨 쓸모가 있다는 거야?”

“왜 없어?”

엽연채는 옅은 미소를 짓더니 이렇게 말했다.

“넌 네가 늘 유곡요보다 뛰어난 사람이라는 걸 믿어야 돼.”

한 사람의 바둑 실력과 능력으로는 그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지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오랫동안 지켜본 결과 인품, 소양 그리고 삶에 대한 태도만 봐도 제민은 확실히 유곡요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그들은 풍화루에 도착했다. 아직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안에서 말다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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