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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395화 (395/858)

제395화

채결은 어린 환관을 출궁시켰고, 어린 환관은 정오가 되어서야 궁으로 돌아와 보고를 올렸다.

정선제는 태후, 정 황후와 함께 식사를 했고 채결은 한쪽에 서서 조앵기가 말한 것과 다름이 없다고 보고를 올렸다.

“이 일은 이미 명확히 밝혀졌다고 볼 수 있사옵니다. 엽승덕이라는 사람이 전처에게 보복을 한 것이옵니다. 그래서 소문이 며칠 잠잠해졌는데 뜻밖에도 또다시 퍼지더니 멈추지 않을 기세입니다. 그런데 그 엽승덕이라는 사람은 지금 너무 가난해서 허리띠를 졸라매며 지내고 있사옵니다.”

그 말인즉, 엽승덕은 음모를 꾸민 배후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채결은 또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 하순에 유 재상의 손녀가 한림원 편수 초빙풍에게 시집갔다고 하옵니다.”

“짐도 알고 있다.”

정선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중신들의 가정사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전시가 끝난 후, 유 재상은 시험에 붙은 사람들 중 사윗감을 골라잡으려 했고 4등을 한 전여를 마음에 들어 했다. 초빙풍과 유곡요가 정혼을 하자 정선제는 유 재상의 안목이 훌륭하다며 그를 놀리면서 초빙풍은 학문도 뛰어나고 용모 또한 단정하다고 칭찬했다.

초빙풍이 한림원에 들어온 후 정선제는 몇 번이나 시독侍讀을 맡길 사람을 불렀는데 환관은 그때마다 초빙풍을 불렀다. 정선제도 바보가 아닌지라 당연히 그 이유를 알고 있었고, 그도 유 재상의 체면을 살려 주기 위해 유 재상의 손녀사위인 초빙풍에게 여러 번 기회를 주었다.

나중에 요리의 일로 양왕에게 빚을 진 기분이 든 정선제는 양왕에게 하사품을 내렸지만 양왕은 심술을 부리며 필요 없다고 했다. 마음이 편치 않았던 정선제는 갑자기 자기 딸과 아주 닮은 주운환이 떠올랐다.

주운환이 『효경』을 읽어 준 후로 정선제는 점점 더 그가 딸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주운환을 번번이 지명했다. 게다가 학문으로 따져도 확실히 주운환이 초빙풍보다 위에 있었다.

이제 주운환은 출정했으니 다시 유 재상의 체면을 고려해 초빙풍을 자주 상서방으로 불렀다. 또 진지항이 겉보기엔 어수룩해 보이지만 꺼내는 말마다 하나같이 쓸모가 있었기에 진지항도 자주 불렀다.

“이 일이 유 재상, 초 편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정선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초 편수의 혼례식 날 조강지처라는 사람이 뛰어 들어와 소란을 피웠다고 하옵니다. 하지만 조강지처일 리는 없고 아마 정혼녀인 듯하옵니다!

결국 초 편수가 그 여인은 동향 사람에 불과하며 좋은 마음으로 여인을 집에 머무르게 해 준 것인데 자신을 넘보려 했던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고는 사람을 시켜 그 여인을 밖으로 쫓아냈다고 하옵니다.”

그 말에 정선제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여기서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어디 있겠는가. 동향에게 선심을 썼단 건 거짓이고 정혼녀라는 말이 사실인 것이다.

“그 후 주 부인이 그 제민이라는 소녀를 데려갔다고 하옵니다.”

체결이 말을 더하자 정선제는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그래. 이제야 어찌 된 일인지 알겠다!’

유씨 가문에서 제민을 데려간 엽연채에게 보복한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정선제는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라 싸늘한 소리를 냈다.

“어허,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이냐!”

어찌 됐든 주운환은 자신이 직접 임명한 서정장군이었다. 지금 타지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유씨 가문은 설마 주운환이 자신이 직접 임명한 사람이란 걸 모른단 말인가?

‘감히 짐에게 이런 치욕을 주다니! 유씨 가문이 문관의 우두머리로 너무 오래 지냈고 조정을 너무 오랫동안 관리해 와서 이제 이 조정을 자신의 집안으로 생각하는 것 아닌가!’

“폐하. 야압동과탕野鴨冬瓜汤(오리와 박과 식물 동과를 재료로 한 탕)을 드시지요!”

정 황후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탕을 권했다. 그녀는 정선제의 표정만 봐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정선제는 탕을 마신 후 채색 사기그릇을 내려놓더니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봉호를 내리는 일 말이오, 일단 사람을 예부禮部로 보내지 않아도 되오.”

그러고는 몸을 일으켜 그곳을 떠났다.

* * *

아침이 밝자마자 정선제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조회에 참석했다.

그는 채결에게 부축을 받으며 용의龍椅에 앉았고 하좌의 신하들은 만세 삼창을 한 뒤 자리에 똑바로 서 있었다.

신하들이 어제 논하던 누리 충해에 대해 논의를 이어가려는 찰나, 정선제가 갑자기 예부상서를 불렀다.

“여 상서는 조회가 끝난 후 봉호를 내릴 준비를 하거라.”

“봉호 말씀이옵니까?”

여지가 놀라며 물었다.

여지뿐만 아니라 유 재상, 요양성, 전지신 등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황제가 누구에게 봉호를 내리려 한단 말인가?

봉호를 내려 달라고 청하는 일은 보통 남편이 관리가 된 후 아내와 어머니를 위해 예부에 보고했다. 황제가 한 사람을 관리로 임명했다는 건 그의 아내와 어머니에게 봉호를 내리는 일을 윤허했다는 의미였다.

봉호를 내리는 일에 불과한데 황제가 조정의 정사를 주관하는 자리에서 굳이 이런 말을 꺼낼 필요까지 있단 말인가?

“폐하, 어느 관리가 봉호를 내려 달라고 청했사옵니까?”

여지는 고개를 숙인 채 여쭈었다.

“서정장군 주운환이다.”

정선제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서정장군이 너무 급하게 떠나는 바람에 보고하는 것을 잊었다.”

관리들은 깜짝 놀랐다. 특히 유 재상, 전지신, 요양성 등은 더욱 그러했다. 당시 주운환의 출정을 반대했고 주운환의 사람들을 곤란하게 했으니 말이다.

태자는 미간을 꿈틀거렸다. 그는 어제 황제가 봉호를 내리는 것에 동의했다고 해도 그저 예부에 말 한마디 전하는 게 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조정의 정사를 주관하는 자리에서 이런 사소한 일을 꺼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건 엽연채의 체면을 너무 살려 주는 것 아닌가!

태자뿐만 아니라 전지신과 요양성 등도 정선제가 엽연채와 주운환의 체면을 너무 챙겨 준다고 생각했다.

표정이 어두워진 전지신이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폐하, 이런 사소한 일은 주 장군이 돌아온 뒤 다시 청해도 늦지 않사옵니다. 굳이 폐하께서 직접 명령을 내리시지 않으셔도 되옵니다.”

‘일단 돌아오고 나서 다시 이야기하면 안 될까!’

“왜 그러느냐? 짐이 봉호를 내리라고 명령하는데 감히 불복하는 것이냐?”

정선제가 싸늘한 목소리로 호통을 치자 전지신과 요양성, 여지는 식겁했다.

“소신이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전지신이 황급히 사죄하자 정선제는 써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어찌 됐든 간에 정이품 장군의 아내이다! 주 장군은 지금 타지에서 나라를 지키고 있는데 그 가족이 모욕을 당하고 있어서야 되겠느냐! 이러고도 충심을 다하는 주 장군을 볼 면목이 있겠느냐? 유 재상, 안 그런가?”

그의 엄한 호통에 조정의 신하들은 화들짝 놀랐고 그 누구도 감히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 특히 유 재상은 ‘그 가족이 모욕을 당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에 안색이 조금 하얗게 변했다. 정선제는 그를 콕 짚어서 문책하고 있었다.

유 재상은 부끄럽고 분한 마음이 들면서도 간담이 서늘해졌다.

요즘 밖에서 엽연채와 제민을 겨냥한 소문이 떠돌고 있다는 걸 자신이 어찌 모르겠는가. 하지만 조정 일로 바빴고 크게 문제 될 것 없는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해 손녀가 소란 피우는 걸 그냥 내버려 두었다.

게다가 주씨 가문은 그런 상태이고 주운환은 필시 목숨을 잃을 테니, 그런 주운환을 위해 정선제가 노신인 저를 심하게 몰아붙이지는 않으리라고 여겼다.

그런데 정선제가 이 자리에서 이런 지저분한 일로 화를 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유 재상은 낯빛이 창백해지더니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선제도 이 일을 더는 들추어낼 생각은 없었다. 어쨌든 유 재상은 일국의 재상이고 황제의 노신이니 그래도 그의 체면을 살려 주려고 했다.

하지만, 주운환이 그쪽에서 어떤 결과를 낼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대제를 위해 싸우고 있었다. 주운환은 자신이 직접 임명한 장군이었다. 그런데 이 나이든 신하들이 이리 안중에도 두지 않으니 그럼 황제인 자신의 체면은 뭐가 된단 말인가.

“이 일은 조회가 끝난 후 바로 처리하겠사옵니다. 한림원에 알려 고봉서를 준비하도록 하겠사옵니다.”

여지가 말했다.

“그리하도록 하라!”

정선제의 목소리는 여전히 냉랭했다.

전지신 등은 고개를 숙인 채 감히 아무 입도 열지 못했지만, 주운환에게 불만이 상당했다. 죽으러 간 게 뻔한데 15만 군대를 이끌고 갔고 거기다 군량과 마초도 그렇게나 많이 가져가는 바람에 호부는 탈탈 털려 남은 게 별로 없었다.

옥안관 쪽 근황 보고는 거의 매일같이 황제의 책상 위로 날아들었다.

주운환은 출정한 후 군량과 마초를 가지고 빠른 속도로 옥안관을 향해 나아갔다는데, 옥안관에 당도하려면 남쪽 이민족에게 봉쇄된 박주를 반드시 경유해야 했다.

흉악하고 싸움에 능한 서노군에 비해 남쪽 이민족들은 음흉했다. 남쪽 이민족들은 독이 든 동물과 곤충을 다루는 데 능해 그들과 싸우면 독사와 독전갈 심지어 독이 있는 모기 등이 몰려왔다. 워낙 지독한 수법이라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병졸들 중 상당수가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다.

당시 풍 노장군이 응성에 도착하자 남쪽 이민족들은 박주를 봉쇄해 버렸다. 용주容州와 정성에 지원을 요청하려고 했지만 두 주의 병사와 군마는 박주에 딱 가로막혀 지나갈 수가 없었다.

주운환은 15만 명의 병력을 차출했는데 풍 노장군보다 5만 명을 덜 차출한 것이었다. 게다가 당시 신하들은 주운환이 병력을 인솔하는 건 그저 죽으러 가는 것에 불과하며 백성들에게 변명을 하기 위한 눈가림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니 대부분의 조정 신하들은 15만 명은 고사하고 5만 명도 내어 주고 싶지 않았는데, 황제가 무리하여 15만 명의 군사를 그에게 내주었다. 전지신과 요양성 등은 아까워 죽을 것만 같았다.

이에 주운환이 병력을 차출할 때 병부상서와 군영의 장군이 농간을 부려 병사의 수는 맞췄지만 15만 명 중 절반이 노약자와 병자, 불구자였다!

주운환은 절반은 쓸모없는 셈인 15만 명을 데리고 출정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들 주운환도 박주에 도착하자마자 목숨을 잃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 병사들을 데리고 독을 이용한 남쪽 이민족의 전술을 무너뜨렸다.

조정 신하들은 깜짝 놀랐지만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당시 박주 밖에서 독을 쓴 전술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건 약초에 대해 운 좋게 알게 되었다고 염탐꾼이 보고했기 때문이다.

염탐꾼의 보고에 따르면 주운환은 군대를 지휘할 때도 허둥거리며 적군을 만나면 온몸이 경직되니 그저 운이 좋았던 것뿐이라고 했다. 결국 죽음이 조금 늦춰진 것뿐이며 박주는 조만간 또다시 서노와 남쪽 이민족의 손에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옥안관 쪽이 패배하면 서노의 대군이 국경으로 쳐들어올 것이었다. 그때 가서 대제 어디에서 충분한 군량과 마초를 조달해 전투에 임할 수 있겠는가? 병사와 군마는 물론이고 군량과 마초도 부족하니 황성 전체가 위태로워질 것이 자명했다.

하지만 지금 주운환은 명색이 정2품 장군이고 황제가 직접 그의 아내에게 봉호를 내리려 하고 있다. 전지신은 정말 싫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전지신, 요양성 등의 가슴속이 분노로 가득한 이때 갑자기 시위 한 명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전보입니다!”

그 말에 사람들은 전부 깜짝 놀랐다.

“가져오너라!”

정선제의 가슴이 쿵쿵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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