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392화 (392/858)

제392화

“마님, 그 엽승덕이라는 사람이 매를 맞은 후 관아 밖으로 내던져졌다고 합니다. 저희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여매가 이리 고하자 유곡요의 눈빛에 조롱기가 스쳤다.

“그자는 그런 짓을 할 배짱이 없다!”

“그럼 이제…….”

“돈을 더 써서 그런 자들이 계속해서 입을 놀리게 하거라!”

유곡요가 차가운 목소리로 분부했다.

소문은 형체가 없는 것이라 떠드는 사람만 많아지면 결국 사람들은 믿게 된다. 지금은 잠시 방향이 틀어졌을 뿐. 계속해서 떠들어 댄다면 그들의 평판이 엉망이 되지는 않을지 몰라도 좋을 거라는 생각은 접어야 할 것이다.

‘제민은 내 집으로 들어올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것이고!’

“예.”

여매는 옅은 한숨을 쉬며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으로서 그녀가 생각하기에 유곡요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제민과 화해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 다 제민이 이 집에 들어오는 걸 원치 않지 않는가.

하지만 유곡요는 자존심과 거만함 때문에 고개를 숙이지 못했다. 제민은 초부에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데 초빙풍은 간절히 바라고 있으니 초빙풍의 아내인 자신이 뭐가 되겠는가?

이렇듯 유곡요는 또 돈을 써서 수작을 부리려 했지만, 그녀가 날뛰는 꼴을 더 이상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이가 있었다.

* * *

그 시각 양왕부.

양왕부 안에 있는 시냇물은 산에서 끌어오는 물로, 주위엔 각종 괴석怪石과 화초가 가득했다. 한 소녀가 시냇가에 있는 커다란 청석靑石 근처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값비싼 분홍색 제흉유군齊胸襦裙(가슴께까지 높게 올라오는 치마)을 입은 이 소녀는 고개를 숙인 채라 새하얀 목이 약간 드러나 있었다. 단라계單螺髻 머리에 꽂혀 있는 보요의 금색 술이 이따금씩 그녀의 해사한 목에 부딪혔다.

조앵기는 조그만 거북이를 들어 시냇물에 담그더니 작은 솔로 녀석을 닦아 주었다.

그녀 뒤엔 커다란 청석이 놓여 있는데, 거기서 멀찍이 떨어진 곳엔 시녀 둘이 등롱을 들고 걸어가는 중이었다. 등롱 위에는 금가루로 쓰인 ‘수壽’ 자 문양이 보였다.

내일은 바로 견우와 직녀가 다시 만나는 칠석이자 양왕의 생일이기도 했다.

양왕부 사람들은 모두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분주했는데, 조앵기만이 한가하게 거북이나 씻기고 있었다.

“서쪽 측문 쪽은 등롱이 충분하니?”

한 시녀가 물었다.

“모자란 것 같아.”

곁의 시녀가 답했다.

“그럼 먼저 동문으로 등롱을 보낸 다음에 서쪽 측문에 달 등롱을 보내야겠다. 아 참, 너 그 이야기 들었니? 어제 관아에서 판결한 사건 말이야. 아주 우습고 황당하다던데.”

“응! 나도 들었어. 또 그 엽씨 가문 이야기잖아! 쯧쯧. 작년부터 올해까지 소란이 끊이질 않더니 이제 좀 잠잠해지는가 싶었는데 또 소란이 일어날 줄이야. 그 엽연채라는 사람도 참 재수 없는 일을 자초하는 사람이야.”

“도성 안에 이런 소문이 퍼졌으니 평판과 명예가 땅에 떨어진 셈이지! 공당에서 엽승덕이 퍼뜨린 소문이라고 고발해 어느 정도 가라앉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 소문을 함부로 퍼뜨리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이 말에 다른 시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였으면 그렇게 날 폄훼하고 공격하면 목을 매달았을 거야. 어쩌면 그 소문이 사실일지도 모르지! 아니면 어떻게 그리 뻔뻔하게 살아 있겠어!”

“맞아! 하하하!”

두 시녀는 엽연채를 비웃으며 그곳을 떠났다.

조앵기는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연채 이야기를 하는 건가?’

그녀는 거북이 씻기기를 멈추고 품에 거북이를 숨긴 후 치마를 들고 뛰어갔다. 먼저 평정소축에 들른 그녀는 자기가 찾는 사람이 보이지 않자 다시 나가 화원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삼각 동안 찾으러 돌아다니니 저 멀리 어호漁湖 쪽에 그녀가 찾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호숫가에는 처마가 위로 솟은 팔각정자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자줏빛 옷을 입은 수려한 외모를 뽐내는 한 사내가 그곳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홍색 대금유군對襟襦裙 차림의 아리따운 여인이 그에게 기대어 앉아 낚시질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앵기는 멀리서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상대편 여인은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분명 양왕이 새로 들인 첩실일 터였다.

조앵기는 그 모습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의 곁에 있는 여인들은 매번 볼 때마다 늘 새로운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조앵기는 다리를 지나 정자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 아리따운 여인이 먼저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봤고 고운 눈으로 멸시의 눈빛을 보였다. 그녀는 조앵기가 누구인지 모르는 척하며 일부러 자신의 몸을 양왕의 등에 밀착했고, 그의 어깨의 우묵한 부분에 자신의 턱을 괴며 양왕에게 바짝 기대었다.

조앵기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다가갔다.

“전하.”

낚싯대를 들고 있던 양왕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

“내일이 전하의 생신이죠.”

조앵기는 쭈뼛거리며 운을 뗐다.

“그래.”

양왕은 냉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호, 혹시 연채를 초대하셨어요?”

조앵기는 조심스럽게 그를 쳐다봤다.

“아니.”

양왕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물었다.

“내가 왜 그자를 초대한단 말이냐?”

조앵기는 주저하며 이리 대답했다.

“작년에는 초대하셨잖아요.”

양왕의 표정이 한층 차갑게 변했다.

“초대하기 싫다! 어쩔 테냐?”

조앵기는 순간 멍해지더니 콧날이 시큰거렸고 간절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하지만 양왕은 이미 고개를 돌리고 계속해서 낚시질을 할 뿐, 더 이상 그녀를 상대하지 않았다.

양왕의 몸에 기대어 있는 그 아리따운 여인은 조롱의 눈빛으로 조앵기를 쓱 흘겼다.

‘쯧쯧. 보는 내가 다 불쌍하네!’

조앵기는 그가 더는 자신을 상대해 주지 않자 돌아서서 치마를 들고 그곳을 떠났다.

아리따운 여인이 ‘풉’ 웃자 양왕이 매력적인 눈으로 그녀를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

“저 사람이 누구인지 아느냐?”

아리따운 여인이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답했다.

“예, 압니다. 왕비 마마이시죠.”

“왕비인 걸 아는데 어찌 예를 올리지 않은 것이냐?”

양왕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아리따운 여인은 표정이 확 굳어졌다. 까닭이야 뻔하지 않은가. 양왕비가 양왕의 총애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이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아닌가.

그녀는 양왕부에 새로 들어왔고 요즘 양왕이 아주 총애하는 첩실이니 당연히 이름뿐인 왕비에게 예를 올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양왕이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떻게 대답할지 생각할 새도 없이 그녀는 몸이 붕 뜨는 느낌과 함께 ‘풍덩’ 소리를 내며 물에 빠졌다.

양왕은 손에 든 낚싯대를 집어 던지고는 그곳을 떠났다.

정자 밖으로 나오자 정면에서 육 측비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육 측비는 물에 빠져 아직도 허우적대고 있는 첩실을 보자 안색이 확 변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입을 뗐다.

“전하.”

“저런 버릇없는 것들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소.”

양왕의 목소리는 상대방을 얼어붙게 만들 만큼 차가웠다. 육 측비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얼른 몸을 굽히고 대답했다.

“신첩이 소홀하여 제대로 교육하지 못했습니다.”

양왕은 소매를 뿌리치며 자리를 떴고 육 측비는 얼른 사람을 불러 그 여인을 물에서 건져냈다. 다행히도 이 여인은 수영을 조금 할 줄 알아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칠월은 날씨가 꽤 쌀쌀하고 호숫물도 차가웠다. 물 밖으로 건져진 여인이 몸을 덜덜 떨었다. 하지만 그녀를 가장 두렵게 하는 건 차가운 호숫물이 아니라 양왕의 분노였다.

여인은 바닥에 엎드려 물을 토해 내다가 육 측비가 다가오자 그녀의 손을 확 움켜잡더니 울면서 말했다.

“측비 마마…….”

“양왕부에 들어올 때 내가 소추를 보내 규율을 가르치지 않았느냐?”

육 측비는 화가 난 목소리로 꾸짖었다.

“왕비가 아무리 총애를 받지 못하고 전하께서 미워하신다 하더라도 그분은 왕비이며 정비正妃시다! 전하는 정비의 소생이시라 규율을 가장 중요히 여기시는 분이다.”

추워서 창백하게 질린 여인의 얼굴이 확 굳어졌고 이어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했다.

양왕은 정비의 소생이며 대제의 정통正統인 데 반해 지금의 태자는 계비繼妃의 소생이니 둘을 비교하면 지금 상황은 규율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태자를 추대하고 있고 황제 또한 태자에게 마음을 두었으니 양왕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러니 양왕은 자연히 더더욱 규율을 중시했고 법제를 엄격하게 지켰다. 그런데 총애받지 못하는 왕비 또한 그 법제의 일부였던 것이다.

* * *

조앵기는 어호漁湖를 떠나 바로 평정소축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자등紫藤(보랏빛 꽃이 피는 등나무)으로 꾸며진 정원의 낭가 아래 석탁에 앉아 그 조그만 거북이에게 손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아이고, 이 거북이는 어디서 나셨습니까?”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석탁에 엎드려 있던 조앵기는 몸이 경직되었고 고개를 돌려 보니 열여덟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참하게 생긴 한 시녀가 허리를 굽히고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름은 소완이었다. 그런데 이전 시녀의 이름도 소완이었고 그 이전 시녀의 이름 또한 소완이었다. 시녀를 워낙 자주 바꾸니 양왕은 그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는 게 귀찮아 모두를 소완이라고 불렀다.

조앵기는 우물쭈물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여기서 주운 거란다.”

“아, 그렇군요.”

소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거북이는 이름이 뭡니까?”

“소연이란다.”

“무슨 연이에요?”

소완은 쪼그리고 앉으며 물었다.

“연꽃의 연이란다.”

조앵기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이곳에 두고 가끔 보러 올 거란다. 방으로 데려가지 않을 거다.”

“예.”

소완은 공손히 대답했다.

조앵기는 다시 엽연채 생각이 나 이렇게 물었다.

“밖에 퍼져 있는 엽씨 가문 일을 알고 있니?”

“예, 물론입니다. 말이 나돈 지 한참 되었습니다.”

소완은 밖에서 떠도는 소문을 그녀에게 이야기해 줬다. 정결하지 못한 엽연채와 온씨가 사내들을 유혹했다는 말이 퍼졌는데, 온씨 모녀가 엽승덕을 붙잡아 그가 꾸민 흉계임을 밝혔다고 했다.

“주씨 가문 셋째 부인의 부군이 출정하셨잖아요. 옥안관에 가셨는데 생사도 알 수 없으니, 주 부인은 매일같이 부군 생각을 하며 몹시 걱정하고 계실 거예요!”

조앵기는 순간 멍해졌고 엽연채의 처지가 떠오르자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눈물을 뚝뚝 흘렸다.

“왕비 마마, 우시면 안 돼요.”

소완은 미간을 찌푸렸다.

“전하께서 역정을 내실 거예요. 좀 있으면 석반을 드실 시간인데 마마께서 우신 걸 아시면 전하께서 고함을 치시지 않겠어요?”

그제야 조앵기는 눈물을 닦고 처소로 돌아갔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