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391화 (391/858)

제391화

“형을 집행하거라!”

정 부윤이 싸늘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포졸들은 얼른 기다란 형구 두 대를 들고 와 엽승덕과 은정랑을 그 위에 눕혔다. 이어 ‘퍽퍽’ 소리를 내며 두 사람의 볼기를 쳤다.

“악! 아악!”

엽승덕과 은정랑은 볼기를 맞자 연신 비명을 질렀고, 엽연채와 온씨 등은 그 모습을 보며 후련해했다.

엽승덕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으며 엽연채와 온씨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매를 맞으면 어떻고 벌을 받으면 어떠한가, 자신들 뒤엔 유씨 가문이 있었다.

유 소저는 돈도 있고 신분도 좋으니 엽연채와 온씨를 괴롭혀 죽이는 일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두고 봐! 너희들은 곧 벌을 받을 게다! 보복이 끝이 없을 거야!’

엽승덕과 은정랑의 형벌 집행이 완료되자 엽연채는 온씨, 제민 등과 함께 그곳을 떠났다.

그동안 떠돌던 소문은 엽연채가 엽승덕을 끌고 공당에 와서 심문을 받자마자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온씨가 사내들과 동침을 했다고들 했잖아. 온씨 몸의 어느 부위에 반점이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아주 세세했지. 한데 알고 보니 전남편이 함부로 지껄인 거였네.”

“하지만 엽승덕이 했다는 증거도 없잖아!”

누군가가 이렇게 엽승덕을 비호하고 나섰다.

“부윤 대인마저도 저 사람이 유언비어를 날조한 거라고 판결하지 않으셨어. 어쩌면 억울한 누명을 쓴 걸지도 모르지.”

“억울한 누명? 에잇, 퉤! 엽승덕이 비열한 짓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몰라서 그래? 내가 하나하나 열거해야 돼?

다른 건 고사하고 외실을 위해 정실부인을 핍박해 평처로 만들고 그로도 모자라 사생아를 자기 혈육으로 속여 친아들의 상속권을 가로채게 한 일이 있었잖아. 이것만 봐도 몰염치하기 이를 데 없다고.”

“엽승덕의 인품이 쓰레기라는 건 인정하지만, 그 소문 자체는 엽승덕과 별개로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거야!”

“그럼 그 사내들을 찾아오면 다시 이야기하자고!”

“정말로 온씨와 관계를 가졌다고 해도 그런 일은 은밀한 일이잖아. 당연히 다른 사람들이 아는 걸 원치 않겠지. 누가 나서서 그 일을 인정하려고 하겠어.”

“그럼 나설 엄두도 못 내고 남들이 아는 걸 원치 않는데 어째서 얼마 전엔 사내들이 하나둘 튀어나와서 입을 나불거린 건데? 그 사내들을 찾을 수도 없었잖아?”

이렇듯 밖에서는 온갖 이야기들이 정신없이 퍼지고 있었다. 하지만 전처럼 한쪽으로 치우쳐 있지 않았고 대부분 누군가에 의해 날조된 것이고 없는 사실을 꾸며 낸 거라고 생각했다.

* * *

더위가 점점 물러가는 칠월이지만 날씨는 여전히 찌는 듯이 무더웠고 초가을의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추길이 우산을 쓰고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낭하에 올라 우산을 접었고 유랑을 따라 걸어가다가 방에 도달했다. 들어가 보니 엽연채와 온씨가 신발의 코 부분에 수를 놓고 있었다.

엽연채는 추길을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오늘은 또 뭘 알아봤니?”

“여전히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다들 저희 이야기는 하지 않더라고요.”

추길은 그리 말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일부는 여전히 마님과 아가씨의 평판을 깎아내리려고 합니다.”

“과부 집 앞에서는 본래 시비가 잦은 법이다.”

온씨가 말했다.

“내가 죽을 때까지 험담을 하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을 게다.”

“그건 그렇다 쳐도 엽승덕이 받은 처벌은 너무 가벼워요! 고작 태형 스무 대만 맞고 감옥에도 들어가지 않았잖아요.”

추길의 말투엔 불만이 가득했다. 엽연채가 냉소를 지으며 그녀를 이리 달랬다.

“괜찮아. 은정랑은 아마 더는 견딜 수 없을 거야.”

“어찌 됐든 간에 이제 일도 어느 정도 정리됐으니 연채 너도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지.”

온씨가 말머리를 돌렸다.

“내일이 칠석이니 집으로 돌아가서 보내야지. 지금 짐을 정리해 돌아가렴!”

엽연채는 입을 삐죽거렸다. 자신은 지금처럼 계속 온씨 곁에 찰싹 붙어 있고 싶었다. 주씨 가문 저택에 주운환도 없으니 그곳에 있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그녀는 꾸물거렸지만 결국 온씨에게 떠밀려 마차에 올랐다.

* * *

경인이 마차를 몰고 문을 나섰고 이각이 지나자 정국백부에 도착했다. 마차가 수화문으로 들어서자마자 어린 여종 한 명이 얼른 일상원에 가서 그녀의 도착을 알렸다.

진씨와 주묘서는 탑상에 앉아 창화窓花(주로 창문 장식에 사용하는 전지剪紙의 일종)를 오리고 있었는데 녹엽이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마님. 셋째 마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진씨는 표정을 확 굳히더니 들고 있던 조그만 가위를 내팽개쳤다.

“그 빌어먹을 것이 뻔뻔하게도 돌아왔구나!”

“밖에 소문이 쫙 퍼졌어요. 온씨와 함께 사내들과 놀아났다고요.”

주묘서가 냉랭한 목소리로 온씨 모녀를 헐뜯자 녹엽은 저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졌다. 이 일은 이미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는가?

그러나 녹엽은 오랫동안 진씨를 모셨기 때문에 당연히 그녀의 의중을 파악하고 있었다. 엽연채가 오명을 벗은 셈이긴 하나 진씨와 주묘서는 엽연채에게 원한을 품고 있기 때문에 그녀를 구정물로 밀어 넣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실지로 두 모녀는 엽연채의 평판이 바닥에 떨어져 사람들에게 짓밟혀 죽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그리되면 주씨 가문도 좋을 게 없었다. 특히 주묘서는 아직 혼담도 꺼내지 못했는데 엽연채가 정말로 외간 사내와 놀아났다면 그녀 또한 영향을 받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셋째 마님이 오셨습니다.”

밖에서 여종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발이 ‘차르륵’ 소리를 내며 걷히자 엽연채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어머님. 큰아가씨.”

진씨는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찌 돌아왔느냐?”

“내일이 칠석이라 집에서 보내려고 돌아왔습니다.”

이 대답에 진씨는 제민이 아직 추씨 가문에서 지내고 있고 그녀가 엽연채가 구해 온 사람임을 떠올렸다. 사실 진씨도 얼마 전에 벌어졌던 일이 유씨 가문 소행임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엽연채는 추씨 가문 저택에서 지내며 이미 온씨를 말려들게 했는데, 이렇게 주씨 가문으로 돌아오면 이쪽도 역시 말려들지 않겠는가? 주묘서의 평판이 훼손되면 어떻게 혼담을 꺼내겠는가?

진씨는 굳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칠석은 큰 명절도 아니고 우리 가문은 사람이 많다. 네 어머니가 적적하실 텐데 가서 함께 보내거라!”

엽연채는 눈을 희번덕거렸다. 생각한 대로 딱 맞아떨어지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럼 전 어머니에게 가 보겠습니다.”

그녀는 그리 말하며 예를 올린 후 그곳을 떠났다.

진씨는 분개한 목소리로 뒷소리를 늘어놓았다.

“저건 재수 없는 일을 스스로 자초하는 물건이다. 죽지도 않는 그 늙은이만 아니었으면 벌써 저 계집애를 요절냈을 게다.”

* * *

그 시각 초부.

연못 한가운데엔 처마가 위로 솟은 투구 모양의 팔각지붕 정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푸릇푸릇한 경치가 눈앞에 펼쳐졌고 분홍색 연꽃이 드문드문 떠 있었다. 꽃봉오리가 활짝 벌어져 있어 연못의 정경에 아름다움을 더해 주었다.

초빙풍은 동료들과 함께 물가에 지어진 정자에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야. 이곳 경치 정말 끝내주네!”

정자에 서 있는 조범수는 백옥 술잔을 손에 든 채였는데, 파릇파릇한 연못을 쳐다보고 있자니 질투가 나서 이렇게 한탄했다.

“우리 같은 진사들은 과연 몇 년이나 노력해야 이런 큰 저택을 살 수 있을까!”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이번 과거 시험에 합격한 진사들이고 대부분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다. 집안이 상대적으로 부유한 사람이라고 해도 향신鄕紳이나 부농 집안 출신에 불과하니, 초빙풍의 저택 같은 세도가의 커다란 저택에 비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위치도 도성 안이니 절로 부러움을 살 수밖에 없었다.

과연, 삼십 대로 보이는 푸른 도포를 입은 한 사내가 말을 받았다.

“우리 같은 출신은 십 년에서 이십 년 정도 관직 생활을 해도 도성에서 집을 살 수 없을지도 모르죠. 초 형이 사는 이런 큰 저택은 더 말할 것도 없고요!”

그의 말투엔 부러움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런데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옆에 있던 검은 도포를 입은 한 청년이 팔꿈치로 그를 툭툭 치며 눈짓을 했다.

푸른 도포를 입은 사내는 순간 어리둥절해하더니 그제야 눈치를 챘다. 방금 한 말이 아마도 초빙풍의 아픈 곳을 찔렀을 것이다. 그는 얼른 어색한 웃음으로 실언을 무마했다.

초빙풍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했다. 마치 말속에 숨겨진 뜻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그에 조범수는 여전히 허허 웃으며 다시 입을 놀렸다.

“이번에 합격한 사람들 중엔 초 형만 이런 복을 누리게 됐구먼.”

‘여인에게 기대어 지위가 상승하는 복 말이다! 기생오라비같이 생겨 가지고!’

초빙풍은 그저 옅은 미소를 짓더니 손을 뻗어 백옥 술 주전자를 들어 올리고는 사람들에게 술을 따라 주며 말했다.

“우리 연꽃을 주제로 시를 지어 보는 건 어떨까요?”

“좋습니다!”

검은 도포를 입은 사내 등이 얼른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마침 풍경과 딱 어울리네요! 제가 먼저 시작하죠…….”

사람들은 시를 읊으며 대구對句를 만들었고 날이 조금 어두워지자 아쉬워하며 자리를 떴다.

초빙풍이 사람들을 수화문까지 배웅하고 돌아서는 순간, 온화했던 그의 얼굴은 확 어두워졌다. 잘생긴 두 눈엔 싸늘함이 가득 서렸다. 지금 이 모든 건 유씨 가문 덕분에 얻어진 것이니 그는 겸허하게 이 사실을 인정해 왔고, 사람들의 조롱을 당할 마음의 준비도 했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 사람들이 던지는 시선은 정말 무시할 것이 못 되었다.

그래도 일단은 참아야 했다. 나중에 대신들 중 지위가 제일 높은 사람이 되면 이런 수모를 견디지 않아도 될 테니.

이 순간 그는 제민이 떠올랐다. 이런 순간마다 제민이 더없이 그리워졌다.

또 이제 그녀의 평판은 회복된 셈이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추측할 필요도 없이 누가 이 일을 벌였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들춰내서는 안 되는 일도 있는 법이었다.

유곡요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이렇게 얄팍한 수를 쓰는 것뿐이고, 제민은 이번 기회에 권세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이제 엽연채는 마음은 있으나 힘이 부족하니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니 기다리면 언젠가는 제민이 자기 곁으로 돌아올 것이다.

초빙풍은 내원으로 걸어 들어와 고개를 들어 본채 쪽을 쳐다보더니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측문으로 나가 포하抱廈(기존 건물의 앞이나 뒤에 잇대어 지은 작은 공간)로 걸어갔다.

본채에 있던 유곡요는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는 그의 모습을 보더니 표정이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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