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0화
“돈은 당연히 당신처럼 우리에게 적개심을 불태우고 있는 사람이 주었겠죠. 한 사람은 돈을 대고 다른 한 사람은 어머니의 비밀을 말한 다음, 사람을 구해 함부로 헛소문을 퍼뜨리고 다니게 한 것이 아닙니까.”
엽연채는 붉은 입꼬리를 추켜올리며 웃는 듯 마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엽승덕은 얼굴이 확 굳어졌다. 그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하지만 엽연채는 자신이 그 사람과 손을 잡았다는 걸 증명할 증거가 없고, 또 감히 유씨 가문과 정면으로 맞설 수도 없을 것이었다.
“말만으로는 입증할 수 없다.”
그런데 뜻밖에도 엽연채는 빙긋 웃더니 갑자기 고개를 돌려 무뢰배들에게 말했다.
“말해 보거라. 저 사람이 너희에게 돈을 주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소문을 퍼뜨리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그녀의 물음에 두 무뢰배는 안색이 확 변했고 엽승덕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내, 내가 구한 사람이 이 무뢰배들인 걸 저게 어떻게 안 거지!’
엽연채는 코웃음을 치더니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구한 사람이 이 두 사람인 걸 내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 묻고 싶겠죠?”
“어떻게 알고 있느냐?”
상좌의 정 부윤이 물었다.
“그건 말입니다, 저 사람은 지금 이 지경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자신은 고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디 저런 무뢰배들과 어울리려고 하겠습니까?”
엽연채는 냉소를 띠며 설명했다.
“다른 사람의 돈을 받고 저희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이 없었다면 이런 사람들과 알고 지내지도 않았을 겁니다! 이 두 사람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저 사람에겐 충분히 모욕적일 텐데, 어디 이런 무뢰배들과 더 교류하려 하겠습니까?
“너, 너……! 허튼소리 하지 말거라! 난 소문 같은 건 퍼뜨린 적 없다.”
엽승덕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잡아뗐다.
“했느냐, 안 했느냐?”
엽연채는 두 무뢰배만 쳐다보며 물었다. 그러자 두 무뢰배는 안색이 변했고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 없…….”
키 큰 사내가 황급히 변명하려고 하는 찰나, ‘탕’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 부윤이 경당목을 힘껏 내려친 것이었다.
“어서 바른 대로 고하거라! 그렇지 않으면 참혹한 형벌을 내릴 것이다!”
“히익!”
두 무뢰배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들은 엽승덕이 누구와 거래를 했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엽승덕에게 고용된 것에 불과했고, 엽승덕이 두렵지도 않아 사실을 숨겨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참혹한 형벌이 가해지면 분명 버텨 내지 못할 텐데, 그때 가서 자백하면 소문을 퍼뜨렸다는 이유로 또 곤장을 맞을 것이다. 그럼 벌을 두 번 받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느니 자백해서 한 번만 맞는 게 나았다.
“대인, 살려 주십시오!”
키 작은 사내가 얼른 바닥에 엎드리더니 울면서 실토했다.
“모두 엽승덕이 시킨 짓입니다!”
“예, 맞습니다. 저 사람이 시켰습니다!”
키 큰 사내는 키 작은 사내가 공을 가로챌까 봐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 전 엽승덕이 은화 열 냥을 가져오더니 저희에게 소문을 퍼뜨려 온씨 모녀의 평판을 깎아내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은화 두 냥을 써서 도움을 줄 사내들을 구해 이곳저곳에 가서 소문을 퍼뜨렸고, 또 몇몇 사내들과 함께 매일 장명가에 가서 어슬렁거렸습니다…….”
“대인. 잘못했습니다!”
키 작은 사내가 흐느끼며 얼른 끼어들었다.
“저희에게 우선 온씨의 평판을 깎아내리라고 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려 줬습니다. 그런 다음 주 부인과… 제민의 평판도 깎아내리라고 했습니다……. 한 명씩 해치워야 한다고…….”
“허, 헛소리 그만하거라!”
엽승덕은 표정이 확 어두워졌다.
“난 너희들에게 그런 일을 시킨 적이 없다.”
“우리가 뭣 하러 허튼소리를 합니까!”
키 큰 사내가 냉랭한 눈빛으로 엽승덕을 노려봤다.
“설마 우리가 부윤 대인 앞에서 없던 일을 인정하겠어요?”
“저, 저것들이 모함하는 겁니다! 이건 모함입니다!”
엽승덕은 계속해서 반박했다. 어떻게 인정할 수 있겠는가. 처벌받는 건 두렵지 않았다. 두려운 건 바로 이 빌어먹을 모녀가 오명을 벗는 것이었다. 그것만큼은 절대로 싫었다!
“무뢰배 둘이 아무렇게나 몇 마디 지껄인 걸 부윤 대인께서도 믿으시는 겁니까? 너무 경솔한 거 아닙니까? 증거는요?”
은정랑은 몹시 대로한 목소리로 따지며 저도 모르게 엽승덕을 쓱 쳐다봤다.
‘무능한 놈! 머저리 같은 놈! 변명도 제대로 못 해 그저 모함이다, 억울하다고 소리만 치다니. 그런 말이 퍽이나 소용 있겠다!’
밖에 있던 백성들은 순간 멍해졌다. 그들은 엽승덕이 이 일을 벌였다고 생각했지만 은정랑 말이 맞긴 했다. 증거가 없었다.
상좌의 정 부윤은 미간을 꿈틀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증거는 없다.”
“증거도 없는데 함부로 입을 놀려 저희에게 구정물을 튀기네요. 주 부인과 온씨 부인도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려 하지 않는데 저희라고 당하려 하겠습니까?”
은정랑은 조롱기 섞인 목소리로 도발적인 발언을 했다.
“똑같은 일인데 본인은 되고 다른 사람은 안 된다니요?”
“맞습니다!”
엽승덕도 냉소를 지으며 맞들었다.
두 사람은 엽연채와 온씨를 쳐다보며 엽연채의 분노와 불만 가득한 표정을 감상하려 했는데, 뜻밖에도 그녀는 붉은 입술을 씩 올리며 승리의 미소를 보였다.
“아무튼 내가 이겼네요!”
다소 창백한 얼굴의 은정랑은 표정이 확 굳어지더니 화가 나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확실히 이 빌어먹을 모녀가 승리했다. 인정하든 부인하든 간에 백성들은 이미 이쪽에서 했다고 믿고 있었다. 온씨가 이렇게 전남편을 공당에 끌고 와서 무릎 꿇게 했고, 두 무뢰배도 소문을 퍼뜨린 게 자기들이라고 인정해 버렸으니 말이다.
백성들도 사실 관계를 전부 알아 버렸다. 소문은 정말 그저 소문에 불과했다. 온씨와 엽연채에게 덮어씌워진 오명은 이미 거의 다 벗겨진 상태였다.
그렇게 이번 일로 모든 오명을 씻게 되었으니, 엽연채가 이긴 것이다.
엽승덕은 미칠 듯이 화가 나 엽연채와 온씨에게 큰소리를 쳤다.
“아무튼 너희들은 날 어쩌지 못한다! 어쩌지 못한다고!”
“사람들이 옳고 그름에 대해 공정한 판단을 내릴 겁니다.”
엽연채의 냉담한 목소리에 밖에서 구경 삼매경이던 백성들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부끄러워했다.
“으흠, 정숙하시오.”
정 부윤은 마른기침을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확실히 엽승덕이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는 증거는 부족하다.”
“저희는… 저희는 물건을 훔치려고 갔던 게 아닙니다. 그 물건들은 원래… 아니, 제 말은 그저 서신을 찾아오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게다가 저희는 물건도 훔치지 않았습니다.”
“맞습니다!”
엽승덕이 급히 변명하자 은정랑도 몹시 분하다는 목소리로 거들었다.
“소문을 퍼뜨린 자가 누구인지 부윤 대인께서 철저히 조사해 주십시오. 어쩌면 저희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대어를 건질지도 모르죠. 어쨌든 헛소문을 만들어 문제를 일으키는 데도 돈이 필요한 법입니다. 이렇게 많은 돈을 들일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이제 와서 다시 온씨와 엽연채에게 구정물을 튀기는 건 이미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은정랑도 알고 있었다. 차라리 헛소문임을 인정하고 이를 이용해 부윤이 자신들의 가택침입죄와 절도죄를 가볍게 처벌하도록 유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말을 마친 은정랑은 싸늘한 눈빛으로 엽연채를 쓱 쳐다봤다. 엽연채 등을 손봐 주려는 사람은 유씨 가문 사람이고 그들도 분명 이 사실을 알고 있을 테니, 감히 더는 물어뜯지 못할 것이다.
상좌의 정 부윤은 미간을 심하게 찌푸렸다. 그는 항상 소식을 빨리 접하는 사람이었다. 유씨 가문에서 여식을 시집보낼 때 신랑의 정혼녀가 찾아와 소란을 피웠고, 이 때문에 유씨 가문이 큰 웃음거리가 된 일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제민은 유씨 가문의 적인데 엽연채가 그녀를 구해 줬으니 유씨 가문은 당연히 엽연채를 적대시했을 것이다.
그러니 사실 관계는 이미 명확히 드러나 있었다. 유씨 가문에서 돈을 대고 엽승덕은 힘을 보탠 것이다. 두 집안 사람이 함께 나서 엽연채 모녀와 제민에게 구정물을 튀긴 것이다.
정 부윤은 좋은 관리이고 싶었고 온 힘을 다해 공평하고 공정한 판결을 내리고 싶었지만, 권세가들과 연루된 일에는 그리 행동할 수 없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밉보이면 부윤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는데, 만약 자신의 후임자가 더욱 시시비비를 가리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백성들 역시 고통을 호소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정 부윤은 옅은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엽승덕에게 너무 무거운 처벌을 내리면 그가 홧김에 유씨 가문을 끌어들이고 자신도 연루될 것 같다는 걱정이 들었다.
궁리를 거듭하던 정 부윤은 엽연채를 쳐다보았다.
“주 부인?”
엽연채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대인은 부윤이시고 저희는 대인께 판결을 내려 달라고 관아에 고발을 한 사람들입니다. 대인께서 생각하시기에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정 부윤은 그 말에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고 헛기침을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태형 스무 대의 처벌을 내리겠다!”
그 말에 엽승덕과 은정랑은 남몰래 기뻐했다. 본디 남의 집에 침입해 도둑질을 하면 겨우 이 정도 처벌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것도 없었다. 작년에 온씨의 혼수에 손을 댔을 때만 해도 엽승덕에게 태형 서른 대와 3개월의 옥살이라는 판결이 내려지지 않았던가. 그러니 태형 스무 대는 정말로 경미한 처벌인 것이다.
엽승덕과 은정랑은 안도의 한숨을 훅 내쉬었다. 호가호위狐假虎威가 먹혀서 다행이었다. 그들은 다시 의기양양한 눈빛으로다 엽연채와 온씨를 쳐다봤다.
‘쯧쯧. 그래도 유씨 가문이 무섭긴 하나 보네.’
지금 엽연채와 온씨는 자신들을 물고 늘어질 수 없었다. 이미 오명을 거의 다 벗었다고 해도 자신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아마 분통이 터져 미쳐 버릴 것만 같은 심정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엽승덕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엽연채는 기다란 속눈썹을 살짝 아래로 드리워 아름다운 눈동자에 비친 조롱기를 감추며 자신의 뜻대로 일이 풀린 걸 숨겼다.
그녀는 일부러 그들을 놔주었다. 앞으로 밖에서 지내는 게 감옥에 수감되는 것보다 더욱 지옥 같을 테니 말이다.
엽연채는 은정랑이 방금 전 엽승덕을 쳐다볼 때 혐오의 눈빛을 내비쳤음을 포착했다.
은정랑은 이미 견딜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고 허대실의 돈도 받았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이 잠잠해졌던 건 엽승덕이 갑자기 은화 이십 냥을 가지고 돌아와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젠……. 쯧쯧, 생각만 해도 아주 통쾌하네!’
감옥 안에 가둬 두면 그들을 쥐고 주무를 수 없으니 속이 시원할 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