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388화 (388/858)

제388화

엽승덕은 오늘 미리 저택 맞은편의 커다란 나무에 사다리 두 개를 숨겨 놓았다. 엽승덕은 사다리를 가져와 담장 위에 걸쳐 놓고 조심조심 기어 올라가 머리를 저택 쪽으로 내밀었다.

천당은 환했는데, 그 안엔 정말로 두 대의 커다란 마차가 서 있었다. 하지만 말과 분리된 채 사람이 타는 찻간만 남아 있었다. 말은 분명 멀지 않은 마구간에 있을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 엽승덕은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저 안에 바로 수천 냥의 은화가 있으리라.

마차 옆에는 서너 명의 어멈들이 함께 둘러앉아 작은 목소리로 돈내기를 하고 있었다. 엽승덕은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부잣집 출신이라 이 하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야경을 서라 하면 늘 함께 모여 돈내기를 하고 술을 마셨다.

엽승덕이 담장 아래를 향해 손짓을 하자 키 작은 무뢰배가 그에게 둥근 형태의 뭔가를 건넸다. 그것에 화절자火折子(불을 붙이는 데 사용하는 휴대용 도구)로 불을 붙이자 바로 연기가 났다.

엽승덕은 이 연기를 조금도 맡고 싶지 않았다. 사람을 기절시키는 연기였기 때문이다. 그가 숨을 참고선 높다란 담장 위에서 아래를 향해 그 둥근 물건을 살짝 내던지자 그 물건은 찻간 아래로 굴러 들어갔다.

“높은 패야, 떠라!”

어멈들은 돈내기를 하느라 한창 흥이 올라 있었다. 소리소리 치고 있었으니 이런 작은 소리를 들었을 리 만무했다.

마차 아래에서 피어나는 연기가 천천히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러자 그 어멈들은 고개를 좌우로 갸우뚱갸우뚱하더니 자리에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했다.

“왜 이러지…….”

“머리가 너무 어지러운데…….”

결국 어멈들은 전부 몸을 휘청거리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됐다! 됐어!”

엽승덕은 흥분했다. 은화 천 냥이 그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엽승덕은 단숨에 처마 위로 올라갔고 아래에 있던 은정랑 등은 얼른 사다리를 그에게 건넸다. 엽승덕은 힘겹게 그 사다리를 건네받아 아래쪽으로 사다리를 내렸고 그렇게 아래로 내려갔다.

밖에는 사다리가 하나 더 있었다. 담장 위로 사다리가 걸쳐지고 키 작은 사내가 사다리를 타려는 찰나, 은정랑이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형님이 앞장서고 잠시 후 안전이 확보되면 우리도 올라가죠.”

키 작은 사내가 헤헤 웃으며 동조했다.

“자네 영리하구먼.”

그렇게 세 사람이 기다리는 동안, 사다리에서 내려온 엽승덕은 서둘러 마차 쪽으로 걸어갔다. 마차의 발을 걷어 보니 과연 안에는 물건이 가득 쌓여 있었고 울긋불긋한 작은 상자도 보였다. 그는 흥분이 밀려와 얼른 그 작은 상자를 품에 안고서 열어 보려 하는데,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엽승덕은 지금 이것을 열려고 애를 쓰기는 마땅치 않다는 생각에 할 수 없이 상자를 담장 아래 어두운 곳에 놔두었다.

“야옹!”

엽승덕이 고양이 울음소리를 흉내 내자 저쪽에 있는 두 무뢰배는 흥분에 휩싸였다.

키 작은 사내와 키 큰 사내는 차례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다음 다시 사다리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 엽승덕 곁으로 달려갔다.

“어이! 형님. 이 약은 반 시진밖에 효과가 없으니 서둘러야 해요!”

온씨와 엽연채를 생각하자 마음이 급해진 그들은 얼른 내원으로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잠시만!”

엽승덕은 두 눈을 살짝 깜빡이며 그들을 저지했다.

“내 동생이 사다리를 잘 못 타니 내가 가서 받아 줘야겠다.”

보석함을 무사히 손에 넣었고 현재 상황도 안전하니 두 무뢰배를 내원으로 들여보낼 필요가 없었다. 괜히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라도 하면 되레 일을 망칠 수도 있었다.

이제 상자를 밖에 있는 은정랑에게 건네기만 하면 된다. 그런 다음 곧장 다시 돌아와 이 두 무뢰배에게 마차 안에 든 물건이 전부 값나가는 물건임을 알려 주는 것이다. 일부를 가지고 나가게 해서 밖에서 공평하게 나누면 된다. 여인 같은 건 돈만 생기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 않은가.

처음부터 이 계획을 두 무뢰배에게 알려 주지 않은 이유는 이 상자가 가장 귀중하기 때문이었다. 그것만은 기꺼이 이걸 나눠 줄 수 없었다.

엽승덕은 두 무뢰배가 내원 쪽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사이, 얼른 상자를 품에 안고 담벼락을 기어 올라가 은정랑에게 상자를 넘겨 주려고 했다.

둥둥! 징징!

“으아악!”

깜짝 놀란 엽승덕은 발이 미끄러져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무슨 일이지?”

두 무뢰배도 안색이 확 변하더니 뒷걸음질 쳤다.

“들켰다! 어서 튀자!”

둘은 그리 말하더니 바닥에 엎어진 엽승덕을 발로 차고 사다리를 타고 도망치려고 했다. 그런데 내원 쪽에서 갑자기 등불이 환하게 켜지더니 수화문과 협문에서 갑자기 우락부락한 어멈과 하인들이 우르르 뛰어나왔다.

“이 간 큰 도둑놈들아. 어딜 도망가느냐!”

어멈들이 싸늘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한 어멈이 땅에 떨어진 엽승덕을 먼저 제압했고, 남은 어멈들은 두 무뢰배가 사다리를 오르자 얼른 힘을 합쳐 사다리를 무너뜨렸다. 두 무뢰배는 ‘아이고’ 소리를 내며 땅으로 떨어졌다.

세 사람은 힘을 합친 어멈들에게 제압당했고 포박된 채 담 모퉁이로 던져졌다. 은정랑도 줄에 묶인 채 안으로 끌려와 엽승덕과 무뢰배들 곁으로 던져졌다.

어멈들은 등롱을 들고 이 세 사람 주위를 둘러쌌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키 작은 사내가 새된 소리를 질렀다.

“보면 모르겠어! 들킨 거잖아!”

키 큰 사내는 화난 목소리로 그런 그를 타박했다.

“정랑!”

엽승덕은 은정랑을 자기 뒤로 바짝 잡아당겼다.

은정랑은 ‘훅’ 숨을 몰아쉬더니 독기 어린 눈빛으로 엽승덕을 쳐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주의를 주었다.

“들키면 안 되니 소리 내지 마세요!”

“알겠소.”

엽승덕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갑자기 협문에서 유리 등롱을 든 어여쁜 여종 둘이 나왔고, 이어 누군가가 오밀조밀한 해당화 문양이 들어간 선홍색 비단 치맛자락을 살랑거리며 걸어 나왔다. 진주가 상감된 꽃신의 주인공을 본 순간 두 무뢰배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요염하고 아리따운 자태를 뽐내는 한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고, 이어 그녀와 꽤 닮은 용모 고운 부인과 청초하게 생긴 한 소녀도 모습을 드러냈다.

엽연채와 온씨를 보자 엽승덕과 은정랑은 증오심이 불타올랐다. 당장이라도 앞으로 달려 나가 두 사람의 살을 씹어 먹고 피를 삼키고 싶은 심정이었다.

엽연채는 온씨와 팔짱을 끼고 천천히 걸어오더니 엽승덕, 은정랑 그리고 두 무뢰배들 앞에 멈춰 섰다.

엽연채는 냉소를 터트렸다.

“담 한번 정말 크네. 감히 남의 집에 무단침입을 하다니!”

두 무뢰배가 그녀의 싸늘한 냉소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보니 이 소녀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고 꽃다운 나이의 소녀에게서 느껴지는 푸릇푸릇함이 물씬 풍겼다. 찬웃음을 지으며 그들의 뺨을 때린다 해도 기꺼이 뺨을 내줄 만큼 그 미모가 대단했다.

은정랑은 두 무뢰배가 엽연채의 미색에 홀린 모습을 보고 화가 나 뒤로 넘어갈 뻔했다. 하나 정체가 발각될까 봐 그저 시선을 아래로 한 채 잠자코 있었다.

‘사내나 호리는 뻔뻔하고 천한 계집애!’

엽승덕은 얼른 팔꿈치로 키 큰 사내를 쿡쿡 찔렀다. 그제야 그 무뢰배는 정신을 차리더니 엽연채와 온씨에게 고함을 쳤다.

“그래! 우리가 저택에 무단침입을 했는데 뭐 어쩔 테냐? 우린 너희들에게 눈독 들이고 있었다. 능력 있으면 관아에 고발해 보시든가!”

“그래. 맞아!”

키 작은 사내는 고개를 쳐들고 목청을 높였다.

“어서 가서 고발해 보라니까! 그럼 너희들이 사내를 꼬셔 집 안으로 들인 걸 사람들이 다 알게 될 거다! 그러니 허튼 생각 말고 우릴 놔줘라. 그럼 절대로 밖에다 떠벌리지 않겠다.”

그 말을 들은 온씨는 낯빛이 어두워졌다.

은정랑은 조롱 섞인 악랄한 눈빛을 보이며 냉소를 지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이 준비한 빠져나올 방법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이 무뢰배 둘을 더 불렀겠는가.

지금 엽연채 모녀의 평판은 형편없었다. 사내를 꼬셨다는 둥 많은 사내들과 관계를 가졌다는 둥, 여하튼 이보다 더 나쁠 수가 없었다. 무뢰배 두 명이 밤에 집으로 찾아왔다는 이야기가 또 퍼지면 엽연채와 온씨의 평판은 설상가상으로 더욱 악화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이 두 사람이 눈치가 있다면 자신들을 놓아줄 것이다.

즉, 지금 무뢰배들이 한 이 위협은 은정랑이 엽승덕을 시켜 두 무뢰배에게 미리 일러 둔 것이었다.

“우리 평판이 이미 듣기 거북할 정도이니 감히 당신들을 관아에 고발하지 못하고 결국 울분을 참으며 당신들을 놓아줄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한 거겠지. 설마 입막음 비용까지 바라려나?”

엽연채는 검은 눈썹을 살짝 추켜세웠고 은정랑과 엽승덕은 그 말에 깜짝 놀랐다.

“그, 그게 무슨 말이냐?”

키 작은 사내의 낯빛이 확 변했다.

‘이 말을 꺼내면 저 여인들이 감히 우리를 어쩌지 못할 거라고 말하지 않았나?’

“당신들이 누구인지 몰랐다면 우린 당신들을 벌하고 싶어도 되레 더 큰 손해를 볼까 봐 엄두를 내지 못했겠지. 그런데 이를 어찌하나. 우린 이미 당신들의 정체를 알고 있거든. 은정랑, 엽승덕!”

엽연채는 붉은 입술을 씨익 말아 올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듣기 좋은 목소리였지만 은정랑과 엽승덕의 귀엔 천둥이 치는 것처럼 들렸다. 그들은 놀라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고, 귀에서는 윙윙 소리가 울렸다.

“사, 사람 잘못 봤소……!”

엽승덕은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추길이 냉소를 짓더니 앞으로 달려 나갔다. 엽승덕의 얼굴 아랫부분을 가리고 있는 검은 천을 확 잡아당겼고 이어 은정랑의 천도 잡아당기더니 비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우리를 욕보이려고 왔으면서 여인까지 데리고 왔네? 그것도 늙고 못생긴 여인을!”

두 무뢰배는 은정랑을 보더니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들은 눈앞이 아득해졌다. 여인를 데리고 부녀자를 겁탈하고 재물을 빼앗으려는 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리하면 여인의 명예와 절조를 더럽힐 수 없고, 상대 또한 하나도 두려워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누구보고 못생겼다고 하는 거야!”

은정랑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했지만 저도 모르게 온씨에게 시선이 향했다. 온씨는 연꽃 문양이 들어간 비단 배자를 입고 비취로 장식된 머리 장신구를 꽂고 있었다. 아름다운 용모에 화려함과 부티가 넘쳐흘렀다.

그에 반해, 자신은 요즘 매일같이 다음 끼니엔 뭘 먹어야 할지 고민하고, 몰래 닭다리처럼 맛있는 것을 먹는 걸 엽승덕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했다.

은정랑은 부끄럽고 분한 마음에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 온씨의 얼굴을 발기발기 찢어 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너희들… 함정이었구나……!”

엽승덕은 분노한 목소리를 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제때에 이리 많은 사람들이 튀어나왔겠는가. 아까 저 어멈들은 왜 기절한 척을 했겠는가. 엽연채와 온씨 등은 어떻게 의복을 제대로 갖춰 입은 상태로 밖으로 나왔겠는가!

“그럼 안 돼요?”

엽연채는 하하 웃으며 받아치고는 사람들을 불렀다.

“경인아, 채 마마. 하인 대여섯 명을 데려가 이 사람들을 감시하게 해요. 내일 아침이 밝자마자 관아에 넘길 거예요.”

그녀는 그리 말하고는 하품을 하더니 돌아서서 온씨의 팔짱을 꼈다.

“아우, 졸려. 어머니, 저희 어서 돌아가서 잠자리에 들어요!”

“그러자꾸나!”

온씨는 비웃는 눈빛으로 엽승덕을 한 번 쳐다보더니 혀를 찼다.

“쯧쯧, 궁상맞은 꼴 하고는! 어쩌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그녀는 그 말만 남기고 엽연채와 함께 협문으로 들어섰다.

온씨의 조롱에 엽승덕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신의 가장 초라한 모습이 그들 앞에 이토록 낱낱이 드러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는 부끄럽고 분한 나머지 죽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쓰레기 같은 것들이 제대로 그물에 걸려들자 엽연채와 온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돌아가서 단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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