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6화
도성에 퍼진 소문은 계속 몸집을 불려 나갔고 내용도 점점 더 터무니없게 변했다.
하지만 엽연채와 온씨는 이에 개의치 않았다. 이날, 엽연채는 마차를 타고 엽씨 가문으로 갔다. 그녀가 수화문에서 내리자 어린 여종들은 하나같이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엽연채는 코웃음을 치더니 곧장 안녕당으로 향했다.
묘씨와 전 마마는 안녕당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바로 엽연채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여종이 갑자기 소리를 쳤다.
“큰아가씨께서 오셨습니다.”
묘씨는 순간 어리둥절해하더니 얼른 이렇게 말했다.
“어서 안으로 들라 하렴.”
엽연채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
“할머니.”
묘씨는 그녀를 보자마자 허리를 꼿꼿이 펴더니 염려를 표했다.
“밖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고 하던데… 지금도 네 어머니와 함께 장명가 쪽에서 지내고 있는 게냐?”
“네.”
엽연채는 다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머니가 처한 상황이 말이 나오기 쉽긴 하지. 게다가 네 부군이 먼 곳으로 떠났으니 입을 나불거리는 것들이 더 많은 게다.”
묘씨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주씨 가문으로 돌아가 지내는 편이 나을 게다! 네 어머니는… 온씨 가문으로 거처를 옮기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그리하면 저희가 찔리는 게 있다고 사람들에게 말해 주는 셈 아닐까요?”
엽연채는 코웃음을 치며 반문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할머니. 걱정 마세요. 저에게 대응책이 있답니다.”
“대응책?”
묘씨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엽연채는 그 대응책이 말 못 할 일도 아니고 묘씨의 허락도 있어야 하기에 조용히 묘씨에게 알려 주었다. 묘씨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짓더니 아주 흥미롭다는 목소리로 동의했다.
“그래. 그리 해 보거라!”
“감사합니다. 할머니.”
엽연채는 미소를 짓더니 여종들을 데리고 영귀원으로 향했다.
* * *
그 시각, 동가에서 가장 좋은 요릿집인 풍화루에는 손님들이 모여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삼십 대 여인은 이리와 같고 사십 대 여인은 호랑이 같다고들 하잖아. 온씨가 딱 삼십 대니 어디 참아 낼 수가 있겠어. 얼마나 많은 남정네들과 놀아났을지 말하면 입만 아프지!”
“누가 아니래. 여인 혼자 밖에서 지내고 단속할 사내도 없으니 당연히 막 나가는 거겠지.”
그러나 그 소문을 믿지 않는 한 사람이 이렇게 반박했다.
“그건 말이 너무 심하네. 여인 혼자 지내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함부로 소문을 퍼뜨리고 입을 놀려서야 되겠는가?”
“그 여인과 함께 지냈던 사내가 직접 말한 거네. 그 여인 늑골에서 한 마디 정도 아래 반점이 있다고 했어. 그 여인과 잔 게 아니라면 어찌 알겠는가?
그리고 그 여인은 제민이라는 소녀도 거뒀는데, 그 소녀가 바로 유씨 가문 여식의 혼례식에서 소란을 피웠던 그 소녀야! 혼인도 하기 전에 다 큰 사내와 함께 살았다고 하더군.
쯧,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여인이니 벌써 초빙풍과 뭔 짓을 했을지도 모르지. 원래부터 행실이 부정하고 자기 몸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여인이니 초빙풍이 그 여인을 버린 게지.”
“원래 끼리끼리 노는 거잖아. 온씨는 사내와 함부로 동침하는 여인인데 그 여인과 함께 지내려 하는 걸 보니 그 제민이란 소녀도 괜찮은 여인일 리가 없잖아?”
“망측해라!”
한편, 요릿집 구석의 조그만 탁자 앞에는 행색이 초라한 중년 남녀가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실컷 먹고 마시고 있었는데 다름 아닌 엽승덕과 은정랑이었다.
둘은 엽연채와 온씨에 관한 질 낮은 소문을 듣고 있으니 속이 다 후련했다.
그날 엽승덕에게 돈을 줬던 여종은 바로 여매였다. 그녀는 엽승덕에게 온씨 몸에 남들은 모르는 특징이 있는지 알려 달라고 했고 엽승덕은 온씨 몸에 반점이 있음을 이야기해 줬다.
겨우 이런 사소한 정보를 제공한 대가로 유곡요는 엽승덕에게 은화 이십 냥을 주었고, 은화 열 냥을 더 주면서 사람을 구해 소문을 퍼뜨리라고 했다. 그리고 유곡요 자신도 따로 사람을 구해 엽승덕과 협공을 펼쳤다.
엽승덕은 진작부터 온씨와 엽연채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동안 제게 서신을 써 달라 부탁한 사람들에게 온씨가 얼마나 밝히는 여인이었는지, 한쪽 눈을 깜빡거리며 추파를 던지기 일쑤였다며 소문을 퍼뜨려 왔다. 그녀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했는데 이제 이혼을 했으니 매일같이 밖에 나가 사내를 꾀어낸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그가 가진 거라고는 고작 입 하나가 전부였으니 온씨에게 별 피해를 주지도 못했다. 그런데 졸고 있는 사람에게 때마침 베개가 떨어지듯 누군가가 갑자기 돈을 주며 온씨를 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엽승덕이 어찌 이에 응하지 않겠는가?
돈을 받은 후 그는 노점상을 열 기분이 아니라 매일 밖으로 나가 온씨와 엽연채를 험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기분이 상쾌해졌다.
요 며칠 온씨와 엽연채가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엽승덕은 그들이 어찌할 도리가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해 아주 통쾌해했다. 가슴이 뻥 뚫린 그는 좋은 곳에 가서 소문을 들으며 포식도 했다. 한데 이 한 끼에만 무려 은화 석 냥을 썼더니 막상 돈이 아까워 죽을 것만 같았다.
엽승덕은 또다시 분노가 치밀었다. 엽연채와 온씨는 호의호식하는데 왜 자신은 은화 석 냥에 벌벌 떨어야 한단 말인가? 그래도 이제야 그 별것도 아닌 뻔뻔한 것들이 벌을 받는다 생각하니 다시 기분이 좀 나아졌다.
“꺼억!”
은정랑이 탁자에 남아 있던 마지막 닭발을 살 한 점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발라먹은 후 트림까지 하자 식사는 끝이 났다.
엽승덕과 은정랑은 조금 더 이야기를 들은 후 집으로 돌아갔다. 영존거 문 앞에 도착해 보니 누추한 홑옷을 입은 거지 아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리, 돌아오셨군요!”
엽승덕이 물었다.
“무슨 일이냐?”
온씨와 엽연채의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후 엽승덕은 흥분할 대로 흥분했다. 매일같이 온씨의 동태를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직접 가 볼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온씨와 엽연채에게 걸려 난처해질지도 몰랐다.
그래서 엽승덕은 매일 2문을 주고 장명가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거지 아이를 시켜 그들을 지켜보게 했다. 온씨 모녀 쪽에서 무슨 움직임이 보이면 자신에게 알리라고 말이다.
“오늘 주 부인이 출타하시기에 소인이 뒤를 밟았습니다. 엽씨 가문으로 가셨어요.”
“엽씨 가문으로 갔다고?”
엽승덕은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엽씨 가문엔 뭐 하러 간 거지?”
마지막 말은 그의 혼잣말이었다. 이 거지 아이가 그 이유는 모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인도 처음엔 몰랐는데 운에 맡겨 보기로 하고 기다렸습니다. 뭐라도 볼까 싶어서요.”
그런데 뜻밖에도 거지 아이가 이리 말했다.
“동쪽 측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문이 열려 있어 앞쪽 수화문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은정랑이 얼른 물었다.
“수화문에 커다란 마차 두 대가 서 있었습니다. 참, 주 부인이 엽씨 가문으로 가실 때 마차 두 대로 이동했습니다.
소인이 밖에서 보니 여종들이 안에서 물건들을 하나씩 가지고 나온 다음 커다란 마차 안으로 넣었습니다. 그 물건들이 참…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들이라 어찌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정말 하나같이 천금처럼 값진 것들이었습니다.”
엽승덕은 ‘픽’ 냉소를 지으며 면박을 주었다.
“네가 천금처럼 값진 것들이 뭔 줄이나 아느냐! 그리고 고작 엽씨 가문이 어떻게 천금처럼 값진 물건을 갖고 있겠느냐!”
거지 아이는 꾀죄죄한 얼굴로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예, 소인은 아는 게 적어 그런 물건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무척이나 화려하고 귀해 보여 부잣집 물건은 전부 천금처럼 값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됐다. 이야기나 마저 해 보거라!”
은정랑의 얼굴엔 초조함이 묻어 있었다.
“아무튼 여종들이 물건을 잔뜩 옮긴 뒤 마차에 올랐어요. 너무 궁금했지만 어디 감히 물어볼 수가 있어야죠. 허, 근데 생각지도 못하게 누가 소인 대신 물어봐 줬습니다! 문을 지키고 서 있는 한 젊은 형님이 물건을 옮기던 어멈에게 옮기는 물건이 무어냐고 물은 겁니다.
그 어멈이 말하길 지난번에 온 부인께서 이혼하실 때 경황이 없어 물건들을 많이 못 가져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주 부인을 보내 본인 짐을 챙기게 했다고요.”
엽승덕은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리가. 그 불효막심한 녀석의 성격상 다른 사람이 조금의 이득이라도 취할까 봐 진작에 온씨의 물건을 싹 다 옮겨 놨을 것이다. 정말 뭘 좀 남겨 놨다고 해도 별로 값어치가 없는 물건들일 텐데, 그걸 가지러 일부러 엽씨 가문에 갔단 말이냐?”
“그건 저도 모르지요.”
거지 아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화려하고 귀하기 이를 데 없는 물건들을 아주 많이 봤습니다. 사람 키만 한 커다란 백자병도 봤고 오색찬란한 아름다운 상자도 봤고요…….”
여기까지 들은 은정랑은 낯빛이 확 변했다. 듣다 보니 그 물건들이 모두 자신의 것 같았다. 전에 엽씨 가문으로 시집갈 때, 송화 골목 영존거에 놔두었던 진귀한 물건을 거의 다 영귀원으로 옮겨 두었다.
그 물건들을 꿈에서도 얼마나 많이 봤는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 엽연채가 이 물건들을 전부 가져가 버린 것이다.
“그게 어떻게 온씨의 물건이에요. 그건 전부……!”
은정랑은 화가 나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아버님은 어떻게 그 사람들이 물건을 가져가게 놔두실 수 있지! 전부 다 값나가는 것들인데!”
엽승덕이 그 물건들을 마련해 줄 때마다 출혈이 꽤 컸었다.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거지 아이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리고 선녀처럼 아름다운 한 젊은 부인이 밖으로 나오는 것도 봤습니다! 정말 선녀처럼 아주 고왔어요! 그 부인이 물건을 옮기던 어멈에게 우선 장명가로 옮기라고 했어요. 마차에서 물건들을 내릴 필요도 없다고, 내일 바로 팔아서 새집을 산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은정랑은 눈앞이 캄캄해졌고 화가 나 까무러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다음에는 어찌 됐느냐?”
엽승덕은 미간을 찌푸리며 뒷말을 재촉했다.
“그 선녀 같은 부인은 마차에 오른 후 일행들과 함께 돌아갔습니다. 제가 어찌 감히 그곳에 오래 머물렀겠습니까? 곧장 돌아와서 나리께 이렇게 보고를 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알겠다. 그만 가 보거라.”
엽승덕이 거지 아이를 물리려 하자 아이는 미간을 구기더니 조금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나리, 제가 이렇게 먼 거리를 달려와 힘도 들고 배도 고픈데, 어쨌든 성의 표시는 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엽승덕은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소매 안쪽을 더듬어 동화 두 문을 꺼냈다. 그는 못내 아까워하며 거지 아이의 손에 돈을 쥐여 주었다.
“됐느냐!”
거지 아이는 동화 두 문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삐죽이다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소인은 이만 가 보겠습니다.”
거지 아이는 쏜살같이 그곳을 떠나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더니 너덜너덜한 의복 안쪽에서 두세 냥은 족히 나갈 은화 하나를 꺼냈다.
거지 아이는 헤헤 웃으며 기뻐했다.
“그 선녀 같은 부인이 통이 크네!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