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5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엽연채는 이를 악물었고 온씨는 낯빛이 어두워졌다.
“게다가… 내용이 아주 세세했습니다. 마님의 늑골에서 한 마디 정도 아랫부분에 나뭇잎 모양의 조그만 반점이 있는데, 마님과 관… 관계를 가진 사내가 말해 줬다고 했습니다.”
온씨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그녀의 늑골 아래 정말로 작은 반점이 있었다.
“아무튼 지금 안 좋은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추길은 목소리를 떨며 더듬더듬 말했다.
“많은 사내들이… 마님과 한 번……. 아휴, 이 말뿐만 아니라 셋째 도련님께서 출정한 뒤 아가씨가 이곳에 와서 오랫동안 머물고 계시는 것도, 사실은 적적함을 못 견디고 마님과 함께 사내들과 놀아나려고 그런 거랍니다.
또 제민 소저도 전부터 깨끗한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아니면 초빙풍이 왜 제민 소저를 버렸겠느냐고……. 마님과 아가씨께서 제민 소저를 끌어들여… 이곳에서 사내들과 놀아난다고 했습니다.”
“뭐라? 이런 빌어먹을 놈들! 어떤 철면피들이 그런 소리를 한 게냐!”
온씨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탁자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 한 사람만 두고 이야기하는 거라면 그래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었다. 이제 그녀는 혼자 있는 여인의 몸이니 어디를 가든 시비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딸이 연루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이는 명예와 절조를 더럽히는 엄청난 일이니, 나중에 주운환이 돌아오면 딸이 사위 앞에서 어떻게 고개를 들 수 있겠는가?
“한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추길은 격양을 주체하지 못해 목소리가 계속 떨렸다.
“제가 찻집과 술집 몇 곳을 가 봤는데 가는 곳마다 떠드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사정을 파악한 엽연채는 입꼬리를 올리며 냉소를 지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벌인 짓이구나.”
“누가 그런 걸까요?”
추길은 물음과 동시에 낯빛이 새파래졌다. 누가 그랬을지야 뻔했다. 최근에 밉보인 사람이라고는 유곡요밖에 없었다.
“일단 해결 방법부터 찾아봐야겠어요.”
추길은 뜨거운 가마 속의 개미처럼 허둥대더니 몹시 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증거도 없는 유언비어인데 설마 사람들이 진짜라고 믿진 않겠죠?”
“없는 사실을 꾸며 내는 걸 좋아하는 이들도 있단다. 그래서 없던 일이 있던 일이 되는 경우도 있지. 분명 거짓말임을 알면서도 헛소문을 퍼뜨리는 데 열을 올리거든.”
엽연채는 그렇게 대꾸하며 싸늘한 웃음을 보였다.
의도적으로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자가 부채질을 하면 백성들은 신이 나서 떠들어댔고, 유언비어의 주인공은 한 푼의 값어치도 없는 사람으로 전락해 버렸다.
“제민 소저가 왔습니다!”
밖에서 여종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발이 걷히자 제민은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오더니 그들을 향해 허리를 숙이고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두 분이 말려들게 됐습니다.”
영특한 제민도 금세 사태를 파악했다. 전에는 없던 허튼소리가 자신이 이곳에 온 지 며칠도 안 되어 생겼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저격한 것이 분명했다.
“아니다. 크고 작은 유언비어가 돈 것이 처음도 아니고…….”
온씨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사소한 소문이면 그냥 놔두면 그만이라지만 이제 연채까지 연루됐으니 그냥 듣고만 있을 수는 없겠구나.”
“이런 유언비어가 전에도 있었습니까?”
추길은 깜짝 놀라 온씨를 쳐다봤다. 온씨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도 있었단다. 많지 않았을 뿐이지.”
“이모님과 사촌 도련님들이 도성을 떠나자마자 그런 소문이 아주 잠깐 돌았단다.”
채 마마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이런 소문은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 사내 없이 여인 혼자 지내면 이런 지저분한 뜬소문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이게 바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여인들이 겪는 부당한 일이었다. 과부 집 앞에서는 시비가 잦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바로 이 같은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아니면 마님께서 온씨 가문으로 거처를 옮기는 건 어떨까요?”
“안 돼. 갈수록 소문이 험하게 변할 거야. 우린 지금 소문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데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겨 버리면 사람들은 우리가 켕기는 게 있어서 그리하는 거라고 생각할 게다.”
엽연채는 추길의 제안을 단박에 거절했다.
“그럼 어쩌죠?”
추길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엽연채의 아름다운 눈동자에 순간 싸늘한 빛이 번득였다.
“우선 잠자코 있다가 기회를 봐서 움직이자꾸나. 내게 묘책이 있거든.”
그날 이후, 엽연채와 온씨 등은 외출하지 않았고 매일 여종을 밖으로 보내 음식을 사 오게 했다.
아무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으니 유언비어는 걷잡을 수 없이 번졌고 그 내용 또한 듣기에 몹시 거북할 정도가 되었다.
* * *
초씨 가문.
초빙풍은 사동의 보고를 들으며 냉담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바깥에서는 다들 주 부인이 제민 소저를 데려간 후 그 과부와 함께 사내들과 놀아나며 정조를 더럽히고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사동은 그동안 초빙풍을 따라다니며 함께 지내 보니 상전의 성격과 생각을 거의 읽어 낼 수 있게 되었고, 그의 마음이 어느 쪽을 향해 있는지도 자연히 알게 되었다.
초빙풍은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 소문이 이미 제민의 평판에 영향을 끼쳤으니 이제 그녀를 집안으로 들이는 건 쉽지 않을 것이며, 유씨 가문도 동의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집으로 들이지 않고 밖에서 외실로 삼는 건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찌 됐든 간에 외실을 데리고 사는 건 본처를 존중하지 않는 행위로, 이는 본처의 체면을 깎고 유씨 가문의 체면도 깎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리, 다시 제민 소저를 설득해 보는 건 어떨까요? 정 안 되면 납치해 올 방법을 생각해 보시죠.”
사동이 그리 말하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여종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님!”
사동은 깜짝 놀라 얼른 입을 다물었다.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유곡요가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에 내가 들어오자마자 조용해지는 것이냐?”
사동은 표정을 굳히더니 머리가 가슴팍에 묻힐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유곡요는 예쁜 두 눈으로 사동의 몸을 싸늘하게 훑어보더니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
“내가 묻지 않느냐?”
그러자 사동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대답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이것 봐라? 나리만 네 상전이고 나는 네 상전이 아닌가 보구나?”
유곡요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그게 아니라…….”
사동이 뭐라고 말하려는 찰나, 유곡요가 그의 말허리를 잘랐다.
“흠, 사람마다 다 자신의 심복이 있는 법이지. 네가 우리 유씨 가문 돈을 써서 사 온 사동이라고 해도 어쨌든 나리가 직접 너를 샀고 네 노비 문서도 나리가 가지고 있으니, 당연히 나리께만 충성하는 거겠지. 그게 틀린 건 아니다.”
사동은 안도의 한숨을 훅 내쉬었으나 이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초빙풍은 배나무 책상 앞에 앉아 냉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눈빛은 침울했다. 유곡요는 방금 사동을 유씨 가문 돈으로 사 왔다고 했다.
초빙풍은 책상 위에 손을 올려놓더니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일단은 참아야 했다. 출세해서 지위가 높은 대신이 되면 그땐 이런 모욕을 더는 넘기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초빙풍은 유곡요를 쳐다보며 무덤덤한 목소리로 물었다.
“부인, 여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유곡요는 웃으며 말했다.
“할아버지께서 서찰을 보내셨는데 내일 집에 들르라고 하시네요.”
“알겠습니다. 가 볼게요.”
초빙풍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응했고 말을 마친 유곡요는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유곡요는 기다란 초수유랑을 걸으며 입술을 씩 올리고 냉소를 지었다.
“마님, 소문이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습니다.”
여매가 옅은 한숨을 지었다.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꾸시는 것이…….”
“내가 왜 생각을 바꿔야 하느냐?”
“마님과 사촌 아가씨, 외숙모님 말씀이 맞습니다. 우선 대범하게 그 여인을 집으로 들인 다음 천천히 손보셔야 됩니다.”
유곡요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뒤엔 친어머니와 우애 좋은 사촌 여동생, 외숙모 등이 있었고 다들 그녀에게 아낌없이 조언을 해 주었다. 그런데 그들의 의견은 하나같이 일단 제민을 집으로 들이라는 것이었다.
유곡요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그리하면 이 유곡요의 체면은 어찌하라는 것이냐?”
그녀의 눈빛에선 억울함과 분노가 스쳐 지나갔다.
“하하, 지금 상관운과 다른 소저들이 뭐라고 떠드는지 아느냐? 평소 아주 고상하던 대제 최고의 재녀이자 재상의 손녀인 내가 초라하고 궁상맞은 사내에게 시집간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우스웠는데, 이젠 수모를 참으며 웬 여인 하나까지 집안으로 들여야 한다니 아주 우스워 죽겠다고 하더구나!
이여는 자기 가문보다 훨씬 좋은 영국후부 세자에게 시집을 가서 그런 거라고 치지만 난… 별 볼 일 없는 진사에게 시집을 왔는데도 이런 일을 당해야 하다니! 내 부군이 뭘로 영국후부 세자와 비교가 되겠느냐!”
유곡요는 몹시 분개했고 여매도 그런 상전을 보니 마음이 쓰려 말을 아꼈다.
지금 유곡요는 제민을 철저하게 망가뜨려서 그녀가 이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할 생각뿐이었다. 모든 면에서 자신에게 못 미치는 농가 소녀 때문에 왜 자신이 수모를 겪어야 한단 말인가?
게다가 제민이 이 집안으로 들어오고 싶지 않다고 말한 것이 더더욱 얄미워 죽을 것 같았다. 제민은 이 집안에 들어오고 싶지 않고 도망치고 싶은 게 분명한데 초빙풍이 그녀를 놓아주려고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럼 자신은 뭐가 된단 말인가? 자기 사내가 오로지 다른 여인에게만 마음을 준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신세 아닌가.
제민이 이쪽 집안으로 들어오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건 제민이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지 않아서야 했다.
그럼 초빙풍은? 자신이 그의 마음을 붙잡으라고?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그는 권세가에게 빌붙은 데릴사위와 비슷한 존재이니 당연히 빌붙은 자답게 굴어야 했다. 자신이 그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억울하게 굽혀야 할 필요는 없었다.
또 자신이 아들을 낳아 유씨 가문에 양자로 보내면 할아버지도 전적으로 자기편을 들어줄 텐데, 어디 그때 가서도 초빙풍이 감히 이렇게 방자하게 굴 수 있을지 지켜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곡요가 선택한 길이었다.
‘나에게 미안한 짓을 한 사람, 나에게 모욕을 준 사람, 전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