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1화
엽승덕은 고기를 뜯는 그 모습을 보자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닭다리의 고소한 냄새와 소고기의 매콤한 향이 진하게 그의 얼굴로 풍겨 왔다.
‘저렇게 큰 닭다리를 베어 물면 육즙이 좔좔 흐르겠지? 물어볼 것도 없지. 분명 아주 부드럽고 맛도 좋을 거야! 이와 두 뺨에도 고기 냄새가 남겠지!’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으니 엽승덕의 입 안엔 저도 모르게 침이 고였고 고기가 너무 먹고 싶어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럼 의좋은 부부끼리 계속 물로나 배를 채우며 사세요!”
엽연채는 깔깔 웃고는 닭다리를 씹으며 그곳을 떠났다. 그렇게 걸어가다가 저 멀리서 한마디를 보탰다.
“아니지. 당신은 마음이 풍족하니 물만 먹어도 배부르긴 하겠어. 진정한 사랑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만, 하하하.”
엽연채의 마지막 말에 엽승덕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엽승덕은 고기가 너무 먹고 싶어 입 안에 군침이 다 돌았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그를 지탱해 주는 마지막 지푸라기인데 어떻게 가짜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어째서인지 엽승덕은 알 수 없는 당혹감이 들었다. 그래서 되레 화를 내며 응수했다.
“내가 아무리 보잘것없어도 정랑은 날 따르려고 할 게다! 날 버리거나 떠나려고 하지 않을 테니 그거면 내가 이럴 만한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게지! 너희들이 아무리 호사스럽게 산다고 한들 다 소용없는 일이다. 너희 모녀는 하나같이 아무도 원하지 않는 과부 아니냐! 너흰 벌을 받을 게다!
아니, 이미 벌을 받았구나! 두고 봐라. 주운환 그 급살 맞을 놈은 조만간 옥안관에서 목숨을 잃을 게다. 어디 그때 가서도 행복해하는지 보자꾸나!”
엽연채는 그에게서 점점 더 멀어졌지만 그래도 그의 저주는 그녀에게 들려왔다. 그녀는 콧방귀를 뀌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손에 든 닭다리가 아까보다 조금 맛없게 느껴졌다.
‘떠난 지 한참 됐는데, 공자는 그 뼈도 못 추릴 곳에서 무사한 걸까?’
* * *
집으로 돌아온 엽연채는 서차간에서 제민과 함께 구럭을 떴다.
“아가씨. 밖에서 갑자기 누가 문을 두드리는데요?”
추길이 갑자기 안으로 들어와 고했다.
엽연채는 미간을 찌푸렸다. 오밤중에 누가 문을 두드린다는 말인가? 게다가 이 집은 평소 온씨 혼자 여종들과 함께 지내는 곳이라 밤이 되면 문을 열지 않았다.
엽연채가 추길을 보내 거절하려는 찰나, 뜻밖에도 혜연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제가 문틈으로 보니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물건을 받고 사람은 돌려보냈어요.”
혜연은 빙그레 웃으며 이리 말했는데, 두 손엔 교룡과 구름 문양이 조각된 커다란 박달나무 상자가 들려 있었다.
엽연채는 이 상자를 보더니 커다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혜연이 엽연채 옆에 있는 원탁 위에 상자를 올려놨다. 엽연채가 상자를 열어 보니 진주가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진주들은 하나같이 부드럽고 윤기가 좌르르 흘렀다. 모두 두 눈을 반짝이며 광채를 뿜어내는 진주를 쳐다봤다.
“와. 엄청 많아요!”
추길이 탄성을 질렀다. 이 진주들은 최상품이라 하나도 값어치가 상당할 것이다. 그런데 상자 한가득 담겨 있으니 어느 정도의 값어치일지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았다.
“밖에 왔던 사람이 이런 말도 전했어요. 아가씨께 마마를 찾아주셔서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혜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엽연채는 검은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작게 콧방귀를 뀌었다.
‘양왕 그 몹쓸 놈.’
상자 안을 뒤적거리던 엽연채는 순간 멍해졌다. 진주들 밑에 금박문金箔紋이 들어간 가늘고 긴 연녹색 쪽지 한 장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엽연채가 쪽지를 펼쳐 보니 위엔 ‘안安’이라는 한 글자만 적혀 있었다. 고작 한 글자였으나 엽연채의 마음을 뒤흔들기에는 충분했다. 콧날이 시큰해진 그녀는 훅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 * *
한편, 엽연채 일행과 마주쳤던 엽승덕은 부끄럽고 분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그러니 어디 노점상을 펼치고 있을 기분이겠는가? 그는 일찍 물건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엽승덕은 자신의 허름한 탁자를 어깨에 메고 붓과 벼루를 등에 지고 힘겹게 송화 골목으로 돌아와 대문을 열어젖혔다.
“정랑!”
그는 잔뜩 화가 난 모습으로 문으로 들어서다가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맛있는 닭고기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그는 그 자리에 멈춰 서더니 둘러메고 있던 탁자를 ‘탁’ 땅에 떨어뜨렸다.
어째서 닭고기 냄새가 난단 말인가? 설마 은정랑과 허서가 저를 배신하고 몰래 닭고기를 먹었단 말인가?
그랬다. 은정랑은 허서의 방에서 맛나게 밥을 먹고 있었다.
한쪽 귀퉁이에 흠집이 난 조그만 팔선상 위엔 채소가 담긴 접시 하나와 원래는 닭다리가 담겨 있던 빈 접시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은정랑은 그 닭다리를 집어 들고 맛있게 씹고 있었다.
원래라면 식사를 할 시간이 아닌데, 오늘 허서가 병이 나서 의원을 부르고 약을 처방받느라 이 시간에 상을 차리게 된 것이었다. 진료비가 더 저렴한 의원을 부르기 위해 일부러 도성 서쪽까지 오고 가다 보니 이렇게 늦어 버린 것이었다.
은정랑은 닭다리를 씹으며 맛을 음미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밖에서 ‘정랑’ 소리가 들리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녀는 낯빛이 확 변하더니 당황해 이렇게 혼잣말했다.
“어떻게 이 시간에 돌아온 거지!”
엽승덕은 평소 지금으로부터 한 시진 후쯤에야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이렇게 불시에 들이닥칠 거라고 어디 상상이나 했겠는가!
은정랑은 깜짝 놀라 하마터면 손에 든 닭다리를 집어 던질 뻔했다. 하지만 하나에 십 문文이나 하는 닭다리이니, 아까워서 던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은정랑은 들고 있던 닭다리를 단숨에 다 씹어 먹어 뼈만 남겼다. 그러면서 속으로 엽승덕을 원망했다. 이 큼직한 닭다리를 천천히 음미하고 싶었는데, 이렇듯 꾸역꾸역 삼킬 수밖에 없게 됐으니 말이다.
“정랑!”
이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고 엽승덕이 새파란 얼굴로 문 앞에 서 있었다. 이어 엽승덕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허서는 평소처럼 얼굴은 벽을 향하고 그들을 등진 채 침상에 누워 있고 은정랑은 낡은 팔선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팔선상 위엔 채소 한 접시와 죽 한 그릇만 놓여 있었다.
상 위엔 그가 상상했던 닭다리는 놓여 있지 않았다. 하지만 방 안에서 나는 닭다리 냄새는 방 밖에서보다 더욱 진동하고 있었다.
엽승덕은 코를 벌름거리더니 안색이 확 변했다.
“방금 전에 뭘 먹고 있었소?”
그러자 은정랑은 자신은 무고하다는 얼굴로 엽승덕을 쳐다보며 말했다.
“뭐라고 하셨어요? 제가 뭘 먹었냐고요? 밥을 먹고 있었죠!”
그녀는 그리 말하며 손가락으로 밥상 위에 있는 채소 접시를 가리켰다.
“아니. 내가 분명히 닭고기 냄새를 맡았소!”
엽승덕은 그녀의 말이 아닌 자신의 코를 믿었다.
“그, 그게 무슨 뜻이에요?”
은정랑은 낯빛이 확 변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나리 말씀은 제가 나리를 배신하고 몰래 닭고기를 먹었다는 거예요? 나, 나리께서 절… 의심하다니!”
그 말에 엽승덕은 표정이 확 굳어졌다.
“내, 내가 분명히 닭고기 냄새를 맡았단 말이오……. 어떻게 잘못 맡을 수 있겠소. 지금도 이렇게 냄새가 나는데.”
“그런데 왜 전 냄새가 안 나죠?”
은정랑은 갑자기 눈물을 흘리더니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나리는 절 그런 사람으로 생각하는 겁니까? 전에 나리가 부유했을 때 전 나리를 따랐습니다. 지금 나리가 가난해졌는데도 전 여전히 나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리는 절 의심하고 있군요……. 흑…….”
엽승덕을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은 한없이 슬퍼 보였다. 엽승덕이 저를 의심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엽승덕은 그녀의 눈물을 보며 미간을 심하게 찌푸렸다. 전엔 은정랑의 눈물을 보면 마음이 아팠는데 이젠 힘이 쭉 빠지고 지겨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은정랑은 자신의 참사랑이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저를 버리거나 떠나지 않았음을 떠올리자 속으로 죄책감이 들었다.
“전에 나리께서는 이러지 않았어요. 전엔 토라지는 제 모습도 좋다고 했고 욕심을 부리는 제 모습도 좋다고 했어요. 그런데 이젠… 제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는데도 나리는 제게 닭다리가 있네 없네 하고 계시네요. 게다가 고작 닭고기 하나 아닌가요? 무슨 대단한 일인 것처럼 구시네요!”
은정랑은 조롱하는 듯한 미소를 보였다.
엽승덕은 표정이 확 굳어지더니 과거의 삶을 떠올렸다. 그땐 동화는 대수롭지 않게 뿌리고 다녔고, 수많은 장신구도 아무렇지 않게 방 안에 던지고 다녔다.
그런데 이제는 있지도 않은 닭다리 하나 때문에 이리 추접하게 소란을 피우고 있으니, 엽승덕은 순간 부끄럽고 또 구차하다는 생각이 들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바람에 방 안에 퍼진 닭고기 냄새와 은정랑 입에 묻은 기름기는 그만 놓치고 말았다.
“정랑, 미안하오!”
엽승덕은 눈시울을 붉히며 앞으로 다가서더니 그녀를 품 안에 끌어안았다.
은정랑은 엽승덕이 자신을 부둥켜안자 혐오감만 들 뿐이었다. 이 쓸모없는 머저리 같은 사내는 하루에 고작 동화 몇십 문밖에 못 벌었고 자신에게 밥다운 밥도 먹여 주지 못했다.
그녀는 이 무능한 머저리를 당장이라도 걷어차 버리고 싶었지만, 변변치 못한 아들을 달고 있는 현재 상황으로선 엽승덕보다 더 나은 사내를 찾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게다가 어찌 됐든 간에 엽승덕은 엽씨 가문 적장자였다. 그러니 반드시 엽씨 가문에서 돈을 빼내 올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엽씨 가문에서 한몫 톡톡히 챙기기만 하면 바로 그를 뻥 차고 멀리 도망가 버릴 것이다.
엽승덕은 물건들을 내려놓은 후 목욕을 하러 갔고 은정랑은 그 틈을 타 닭다리 뼈를 치웠다.
* * *
이튿날 아침이 밝자마자 엽승덕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밖으로 나가 노점을 폈다.
은정랑은 뜰에서 빨래를 널었는데 그녀는 빨래를 널며 불평을 쏟아냈다.
엽씨 가문에서 쫓겨난 후 은정랑과 엽승덕은 위자와 봉춘, 진 마마를 모두 팔아 버렸다. 그래서 지금 청소하고 밥을 짓고 설거지하는 등의 모든 집안일을 은정랑 혼자 도맡아 하고 있었다.
매일 집안일을 할 때마다 그녀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전에는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았으니 말이다.
언제쯤 되어야 더는 이런 집안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언제가 돼야 종복들에게 둘러싸인 예전의 부귀했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녀는 억울한 마음뿐이라 자신도 원래 농촌 출신의, 땅이나 파먹고 살던 촌부에 불과했음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녀는 종복들에게 둘러싸여 부귀영화를 누리던 마님 생활을 해 봤기에 이젠 작은 고초만 겪어도 억울해 죽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이 든 은정랑은 얼굴을 좀 찌푸리더니 대야 안에 든 옷은 비틀어 짜지도 않고 대나무 장대 위에 홱 걸쳐 놓았다.
“정랑…….”
이때, 그녀를 부르는 누군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은정랑이 경직된 채로 고개를 들어 보니 건장한 체격의 한 사내가 담벼락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고는 원망이 가득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