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379화 (379/858)

제379화

조앵기는 원래부터 엽연채를 아주 좋아했으니, 함께 밖에서 어울리자는 소리에 당연히 뛸 듯이 기뻐했다.

엽연채는 조앵기를 데리고 거리를 전부 둘러본 후 책방에 갔다. 뒤에서 쫓아다니는 추길과 혜연은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조앵기가 보묵재에서 화본을 고르는 동안 추길이 갑자기 엽연채를 끌고 책방 입구로 갔다.

“아가씨, 이렇게 양왕비 마마를 다시 돌려보내지 않아도 정말 괜찮은 걸까요?”

추길이 울상을 짓고 있는데도 엽연채는 허허 웃으며 태평하게 말했다.

“뭐 어쩌겠어!”

추길은 입꼬리를 삐죽거리며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연채야!”

그때 조앵기가 책방 안에서 나오더니 생글거리며 웃었다. 엽연채가 고개를 돌려 보니 조앵기는 서책 두 권을 들고 있었다.

“겨우 그 두 권만 고른 거야? 그걸로 충분하겠어?”

“응, 충분해.”

조앵기는 그 서책 두 권을 손으로 매만지더니 다시 돌아서서 뒤에 있는 커다란 책방을 쳐다봤다. 그녀는 이리 크는 동안 단 한 번도 이렇게 많은 화본이 쌓여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이 화본들을 전부 가져갈 수 없고 그저 한두 권만 고를 수밖에 없음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숨겨 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하늘은 어두컴컴해졌고 엽연채 일행이 보묵재를 나와 보니 큰 거리는 화려한 불빛으로 가득했다. 노점상마다 붉거나 어슴푸레한 불빛이 흐르는 등롱을 걸어 두었고, 특히 꽃등을 파는 노점상들이 후미진 곳들을 환하게 비춰 반짝거리는 빛이 가득했다.

조앵기는 눈앞의 화려한 아름다움을 두 눈으로는 다 담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궁이나 왕부王府의 고상하고도 호화로우며 획일화된 모습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과는 결이 달랐다. 거리의 찬란한 아름다움에서 세상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졌다.

“배고파요.”

그때 추길이 이리 말하자 조앵기가 갑자기 맞은편에 있는 노점상을 가리켰다.

“저 저거 먹고 싶어요!”

엽연채가 고개를 돌려 보니 꽃등을 파는 노점상 옆에 혼돈混沌과 교자 따위의 밀가루 음식을 파는 작은 노점상이 있었다.

작은 노점상의 두 탁자엔 이미 사람들이 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다. 젊은 남녀가 한 탁자에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다슬기를 먹고 있었다.

“그래요, 그럼 저기 가서 먹죠.”

엽연채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흔쾌히 동의했다.

그들은 노점상으로 걸어가 탁자 앞에 앉았다. 노점 주인은 노부부와 열세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여자아이는 엽연채와 조앵기가 입은 귀한 옷을 보더니 단박에 귀족임을 알아봤고 얼른 다가가 공손히 그들을 맞이했다.

엽연채는 일인당 혼돈 한 그릇을 주문했고 볶은 다슬기와 떡도 몇 개 주문했다.

조앵기는 젓가락으로 다슬기를 집었는데 집을 때마다 떨어뜨리기를 반복했다. 엽연채는 하는 수 없이 접시에 담아진 다슬기를 커다란 사발에 반쯤 덜어 주었다.

조앵기는 다슬기를 좋아해 입에 즙을 가득 묻히며 다슬기를 먹었다. 하지만 야무지지 못해 한참 동안 다슬기와 씨름을 했는데도 하나도 빨아먹지 못했다.

엽연채는 어이가 없었다.

‘양왕이 허구한 날 어리석은 여편네라고 부르던데 아주 틀린 말도 아니구나. 이렇게 어수룩하다니!’

반면, 제민은 민첩하고 영리해서 손을 댄 일은 순식간에 전부 척척 해내는 사람이었다. 밥을 짓고 옷을 빠는 집안일은 물론이고, 농사일, 노점 장사 등 모든 일을 깔끔하게 해치웠다. 그렇기에 그녀가 가장 업신여기는 사람이 바로 행동이 굼뜨고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필 조앵기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엽연채조차도 교자를 빚고 수를 놓고 밥을 할 줄 알며 기꺼이 손을 움직이며 일하는 사람이었는데, 조앵기는 다슬기 하나도 제대로 빨아먹지 못하니 제민은 정말이지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당신 집은 어디에요?”

“정륭가에 있어요.”

조앵기는 희고 보드라운 손가락으로 다슬기 하나를 집으며 대답했다.

“제가 물은 건 친정집이에요.”

제민이 다시 묻자 조앵기는 어리둥절한 투로 대답했다.

“나도 몰라요.”

조앵기는 아주 어릴 때, 그러니까 네 살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양왕과 혼례식을 올렸다.

그 전의 기억은, 아주 작고 허름한 집에서 진흙을 주무르며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에게 끌려 나가며 자신이 어렵게 만든 작은 진흙 인형을 떨어뜨린 것이었다. 이어 귀한 옷을 입고 있던 낯선 이의 품에 밀쳐졌고 그 상태로 마차를 타고 어디론가 끌려갔다.

마차에서 내려 보니 아주 크고 화려한 집이 보였고, 그렇게 무거운 혼례복으로 갈아입혀진 후 절을 올리고 혼례식을 치렀다.

그날 이후, 양왕에게 괴롭힘과 업신여김을 당하는 비참하고 암담한 삶을 이어왔다.

엽연채는 시선을 피하며 대답을 꺼리는 조앵기의 모습을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배불러요?”

“아니, 아직.”

조앵기는 이어 이렇게 말했다.

“상어 지느러미와 게가 들어간 죽이 먹고 싶어요. 진피陳皮(말린 귤껍질)가 들어간 토끼 고기 요리와 소금에 절인 강두豇豆(콩과의 식물)가 들어간 닭내장 볶음도 먹고 싶고……. 그리고 붕어도요!”

그녀는 그리 말하며 두 눈을 반짝였다. 그러나 이런 음식은 전부 귀한 것이라 작은 노점에서는 팔지 않았다.

제민이 말했다.

“그런 귀한 음식은 평소에 질리도록 먹지 않아요?”

“평소에 먹을 수 없어요.”

조앵기는 그리 대꾸하며 기대 섞인 눈빛으로 엽연채를 쳐다봤다.

“그것참, 이상하네요. 평소에 못 먹는 음식인데 이름은 줄줄 꿰고 있네요?”

제민은 픽 웃으며 말했다.

“밥상에 차려져 있기는 한데 몰래 한 입씩밖에 못 먹어요. 그분이 못 먹게 하거든요.”

엽연채는 조앵기가 말하는 ‘그분’이 양왕임을 알기에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못 먹게 하시는데요?”

“그분이 싫어하시거든요.”

조앵기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엽연채는 그 말을 듣더니 좀 어이가 없었다. 양왕은 정말 까다롭고 까칠한 인간이었다. 자기가 먹기 싫은 음식은 다른 사람도 못 먹게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지난번 궁에서 열린 연회에서 조앵기는 반찬 하나 더 집어 먹는 것도 그가 간섭한다고 말했었다.

“그럼 먹으러 가죠.”

엽연채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조앵기는 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이렇게 그들은 노점상을 떠나 동가東街에서 가장 좋은 요릿집으로 갔다.

그들은 요릿집에서 식사를 한 뒤 꽃등을 샀다.

엽연채는 날개를 편 푸른 난조鸞鳥가 그려진 꽃등을 샀고, 제민은 공작이 그려진 꽃등을 샀다. 그리고 조앵기는 연꽃 위에 앉은 토끼 그림이 그려진 꽃등을 골랐다.

길을 지나가다 작은 동물을 파는 노점이 보이자 엽연채는 그녀에게 작은 거북이도 하나 사 주었다.

그렇게 일행은 거리를 돌아다녔고, 신이 날 대로 난 조앵기는 꽃등을 들고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갑자기 그녀의 뒷덜미를 확 잡아당겼다. 조앵기는 한순간에 위로 들렸고 이어 그녀는 하늘과 땅이 뱅글뱅글 돌더니 무언가의 위에 올려졌다.

“꺄악……!”

조앵기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니 앞에서 걷고 있던 엽연채 일행은 깜짝 놀라 몸을 홱 돌렸다.

그곳엔 매력이 넘치는 절세미남이 커다란 검은색 준마를 타고 있었고 조앵기는 말의 목 위에 걸쳐져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론 말고삐를 잡아당기고 다른 한 손으론 앞에 있는 조앵기를 꾹 누르고 있었다.

차가운 표정,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검은 머리칼, 반쯤 내리깐 긴 속눈썹. 그리고 날카로운 두 눈은 냉혹함과 분노가 느껴지는 눈빛을 번뜩이고 있었다.

추길과 혜연은 기겁했고, 사내를 알아본 혜연은 낯빛이 변하더니 허둥지둥 예를 올렸다.

“양왕 전하를 뵈옵니다.”

“전하. 오늘 양왕비 마마께서 납치를 당했는데 저희가 우연히 마마를 보고 구해 드렸습니다. 보니 마마께서 배가 고파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시기에 우선 마마를 모시고 음식부터 좀 사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엽연채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두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자 양왕의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것참 고맙군!”

그리 말하며 그가 말고삐를 확 잡아당기자 거머번지르한 준마가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대로는 여전히 서로 부딪히지 않고는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검은색 준마가 미친 듯이 속도를 내며 빠르게 달려오자 사람들은 깜짝 놀라 잇달아 길을 비켜섰고, 여럿이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다른 사람 위로 넘어져 아주 난장판이 되었다.

말이 빠른 속도로 달려 몸체가 계속해서 흔들리자 양왕은 몸을 낮추며 말고삐를 꽉 움켜쥐었다. 매력이 넘치는 그의 수려한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고 두 눈동자엔 싸늘함이 가득했다.

조앵기는 양왕 앞에 가로눕혀져 있었는데, 그 탓에 아랫배가 안장에서 툭 튀어나온 모서리 부분에 닿아 있어 배기는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말이 빠르게 내달리자 심한 통증이 느껴졌고 조앵기는 참지 못하고 흑흑 울었다.

“윽… 흐윽, 아파요……. 캑캑……!”

양왕은 그제야 안장을 떠올렸다. 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목덜미를 잡아 몸을 들어 올렸다.

조앵기는 몸이 뒤집히나 싶더니 어느 순간 양왕 앞에 앉혀졌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하늘과 땅이 빙빙 돌고 있어 머리가 어지러웠고, 준마는 여전히 빠른 속도로 앞을 향해 내달려 몸이 쉴 새 없이 흔들렸다.

말이 흔들려 조앵기의 몸은 양왕의 품과 밀착되었고 그녀는 가슴팍에 닿은 양왕의 비단옷에 조그만 얼굴을 묻고 꼼지락거리며 눈물을 닦았다. 여전히 배가 아파 몸을 움찔거렸고 손으로 쉴 새 없이 자신의 배를 문질렀다.

양왕은 자신의 품에서 옴지락거리는 그녀를 보자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왜 이리 야단이냐!”

그러면서도 한 손으론 말고삐를 잡아당겼고 다른 한 손으론 그녀의 배를 문질러 줬다.

양왕부에 도착하자 양왕은 몸을 돌려 말에서 내린 후 그녀를 확 낚아채 들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가 걸어가자 양왕부에 있던 시녀와 마마들은 깜짝 놀라 전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평정소축에 도착하자 양왕은 조앵기를 침상 위로 홱 집어 던졌다. 조앵기는 끙끙거리는 소리를 낼 뿐, 부드러운 침상 위에 엎드려 감히 일어나지 못했다. 보지 않아도 지금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오늘 어디에 갔던 것이냐?”

뒤에서 양왕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앵기는 놀라서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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