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8화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담! 무슨 개도 아니고 사람을 보더니 물고 늘어져 놓지를 않네.”
사동이 냉랭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주위에 있는 손님들은 대부분 유씨 가문 체면을 봐서 이곳에 온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제민은 이미 뻔뻔한 짓을 저지른 적 있는 파렴치한이니 손님들은 잇달아 사동의 비난에 동조했다.
“이러는 건 정말 아니지. 남의 혼례식에서 이렇게 소란을 피우다니.”
“그러니까요. 분위기를 제대로 망쳐 버렸어요. 유 소저도 놀라게 했고요.”
“이런 사람은 당장 관아로 보내야 해요!”
손님들이 의분에 찬 목소리를 내자 침묵을 지키고 있던 초빙풍이 사동에게 이리 일렀다.
“우선 제민을 데리고 가서 적당한 데 두거라.”
사동은 얼른 주위에 있던 어멈들을 불러 제민을 끌어내려고 했다.
“잠시만요. 소란을 일으킨 사람이니 집안에 둘 게 아니라 쫓아내세요!”
엽연채가 차가운 목소리로 끼어들자 손님들은 일제히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소란을 피운 사람은 대부분 집에서 쫓아냈고, 심할 경우 관아로 보내 가둬 놓기도 했다. 어느 누가 초빙풍처럼 따지지도 않고 집 안에 두려고 하겠는가.
당황한 사동이 얼른 이렇게 말했다.
“저희 나리가 어질고 너그러운 분이셔서 그럽니다. 어쨌든 동향 사람이니 일을 조용히 처리하려고 하시는 겁니다.”
“초 대인은 도량이 참 넓네요.”
주위에 있는 손님들은 이리 그를 치켜세웠으나 유곡요는 낯빛이 한층 싸늘하고 어둡게 변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한눈에도 이 여인이 집적거리는 게 분명한데, 자신의 남편은 이 여인을 집에 두려고 하는 것이었다.
“초 대인, 사람들의 오해를 살 만한 일은 하지 마시죠.”
이렇게 말문을 연 엽연채의 맑고 아름다운 얼굴에서 조롱기가 느껴졌다.
“대인에게 마음이 있는 소녀를 집에 두면 그 행동을 용납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오늘은 경사스러운 날이잖습니까? 아무리 초 대인이 어질고 너그러운 분이라고 해도 신부의 기분도 생각하셔야죠.”
엽연채의 말에 손님들도 동의했다.
“그 말이 맞네요!”
그러자 초빙풍은 낯빛이 어두워졌다.
“곡요 소저는… 너그러운 사람이라 개의치 않을 겁니다. 오늘은 저희 두 사람에게 경사스러운 날이니 덕을 쌓는 셈 치고 평화롭게 보내는 것이 좋죠!”
유곡요는 기가 차서 표정이 확 굳었다. 가만히 있는 자신은 왜 끌어들인단 말인가!
엽연채는 검은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론 유 소저는 너그럽고 도량이 넓은 분이죠. 하지만 오늘은 소저가 혼례를 올리는 중요한 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날에 웬 여인이 튀어나와 소저의 기분을 엉망으로 만들었잖습니까. 그런데도 초 대인은 이 여인을 집안에 고이 모셔 두려는 겁니까?
소저의 남편으로서 적어도 체면은 세워 주셔야죠. 어질고 너그럽다는 초 대인의 평판을 지키려고 신부가 억울한 일을 당해서야 되겠습니까?”
유곡요의 표정은 냉랭하게 변해 있었고 그녀를 데리고 초부로 들어온 여종들은 전부 어두운 낯빛으로 초빙풍을 쳐다봤다.
초빙풍은 크게 당황했지만 얼른 냉정을 되찾고 이렇게 말했다.
“그럼 밖으로 쫓아내도록 합시다!”
어멈들은 그 말을 듣더니 얼른 제민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은 바닥에 흥건한 핏자국을 보더니 몸서리를 쳤다.
“하던 의식을 마저 하시죠.”
초씨 가문의 한 어멈이 웃으며 말했다.
“어서 음악을 연주하시게.”
하지만 유씨 가문 사람들은 기분이 상한 지 오래였고, 유곡요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여매는 땅에 떨어진 덮개를 집어 들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가씨…….”
“얼른 덮어 드리거라.”
초씨 가문 어멈은 얼른 덮개를 넘겨받아 유곡요의 머리 위에 씌워 주려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유곡요가 그 어멈을 홱 밀치더니 싸늘한 눈빛으로 초빙풍을 쳐다보며 물었다.
“방금 무슨 뜻이었습니까?”
“소저?”
초빙풍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에 유곡요는 입술을 꽉 깨물더니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멀쩡한 혼례식에 갑자기 웬 여인이 뛰어들었습니다! 거기다 공자의 정혼녀라는 이야기까지 했죠. 혼례식에 초를 쳤는데도 공자는 그 여인을 쫓아내 두들겨 패지 않고 집안에 고이 놔두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면 정말로 그 여인을 집에 둘 생각이었나요?”
그녀가 써늘한 목소리로 따지자 자리에 있던 손님들은 전부 깜짝 놀라 그녀를 쳐다봤다. 여인들은 거의 다 그녀의 추궁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사내들은 미간을 찌푸렸고 유 소저가 속이 너무 좁다고 생각했다.
“요아야!”
이때, 누군가의 호통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였지만 천둥이라도 친 듯 주위에 있던 손님들은 모두 조용해졌다.
엽연채가 고개를 돌려 보니 검은색 구름 문양이 들어간 도포를 입은 한 노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은 인자해 보이는 얼굴이었으나 머리엔 검은빛이 도는 금색 작변爵弁(고대 중국 남성들이 쓰던 모자의 일종)을 썼고 전체적으로 위엄 있는 분위기가 두드러졌다.
“재상 어른을 뵈옵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 그를 향해 예를 올렸다.
“할아버지…….”
유곡요는 억울해서 눈시울을 붉혔다.
“이 일은 네 부군의 탓이 아니다.”
유 재상이 말했다.
“하던 의식을 이어서 하거라. 이 할아비가 왔으니!”
엽연채는 표정이 싸늘해졌다. 초빙풍은 딱 봐도 쓰레기 같은 사내인데, 지금 재상이 직접 나서 손녀의 혼사를 주재하려고 하니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유곡요는 입술을 꽉 깨물었고, 여매가 그녀의 머리 위에 붉은 덮개를 덮어 주었다. 사의는 안도의 한숨을 훅 내쉬며 큰 소리로 외쳤다.
“천지 신령과 웃어른께 절을 하시오!”
그러자 신랑 신부는 다시 붉은 명주를 잡은 채 몸을 숙였다.
“먼저 천지 신령께 절을 올리고 부모님께 절을 올린 후 부부가 맞절을 한 다음 신방으로 들어가시오!”
사의의 마지막 말이 떨어지자 신부는 여종들의 부축을 받으며 방으로 향했다.
유 재상은 손님들을 향해 공수하며 말했다.
“손녀가 응석받이로 자라 제멋대로입니다. 여러분에게 우스운 꼴을 보이고 말았군요.”
“먼저 혼례식에 찬물을 끼얹은 사람이 있으니 유 소저 탓이 아닙니다.”
조범수가 얼른 앞으로 나와 그의 비위를 맞췄다.
“그 말이 맞습니다.”
그러자 나머지 손님들도 연신 맞장구를 쳤다.
“유 소저를 탓하면 안 됩니다.”
사내들은 잇달아 유 재상 주위를 에워싸며 그에게 말을 걸려고 안달이었고, 엽연채는 혼란한 틈을 타 추길을 데리고 몰래 밖으로 나왔다.
수화문 밖으로 나온 엽연채와 추길은 마차에 올랐고 추길은 명치를 두드리며 이렇게 말했다.
“아휴. 방금 전에 정말 놀라 죽는 줄 알았어요. 아가씨, 왜 그런 자리에서 나서신 거예요! 지금이라도 빠져나와야 한다는 걸 아셨으니 다행이죠!”
엽연채는 말없이 검은 눈썹을 추켜세웠다. 마차는 이미 문밖으로 나온 후였다.
엽연채가 발을 들어 올려 보니 근처에 혜연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혜연은 마차를 보더니 조르르 달려왔다.
“아가씨.”
“어디에 있느냐?”
“앞쪽 객줏집에 있습니다.”
혜연은 그리 대답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누구를 말씀하시는 거야?”
추길이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그 제민이라는 사람 말이야. 이쪽입니다.”
혜연이 간단히 대꾸하고는 마차에 타지 않은 채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
방금 전 초빙풍이 사람을 시켜 제민을 밖으로 내칠 때 많은 손님의 하인들이 따라 나와 그 모습을 지켜봤고, 결국 제민은 정말로 측문 쪽에 있는 골목에 버려졌다.
엽연채에게 지시를 받은 혜연은 구경하러 나온 한 어멈에게 은화 한 냥을 주며 근처에 있는 객줏집으로 제민을 옮기는 걸 도와 달라고 했다.
“뭐라고? 제민?”
추길은 깜짝 놀랐다.
“그 사람이 우리랑 무슨 상관이라고? 방금 전에 무슨 객줏집이라고 하지 않았어? 설마 아가씨께서 혜연이를 시켜 그 제민이라는 사람을 데려온 건 아니시죠?”
추길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침내 후환이 두려워져 초부를 빠져나오신 줄로만 알았는데, 그러기는커녕 더 시끄러운 문제를 일으키려고 하실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가씨, 왜 이러시는 거예요?”
“이러고 싶으니까.”
엽연채가 흑단 같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대꾸했다. 말문이 막힌 추길은 초조해서 눈물이 다 나올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사람들이 전부 셋째 도련님께서 어떻게 될 거라고 얕보고 있습니다. 다들 저희를 짓밟고 싶어서 안달인데 적을 만들면 어쩝니까!”
그러나 엽연채는 냉소를 흘릴 뿐이었다.
“지금은 그 누구도 감히 날 못 건드린다.”
추길은 또 말문이 막혔다. 확실히 주운환이 나라를 위해 출정하여 적을 무찌르고 있으니 이 기간 동안은 그 누구도 감히 엽연채와 주씨 가문을 건들 수 없었다.
“하지만 만약에…….”
주운환이 패배하게 되면 주씨 가문은 그길로 폭삭 망하게 될 텐데, 지금 엽연채가 적을 더 만들게 되면 뒷일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도 ‘만약’도 없다!”
엽연채가 싸늘한 목소리로 일렀다.
그리고 만약에 정말로 어떻게 되어 버린다면, 그때 적이 몇이든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를 썼다.
전생에서 이맘때쯤은 엽이채는 시집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그때 자신은 중병을 앓아 병상에 누워 있었으니,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과 변방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주운환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전생의 자신은 장박원, 엽이채와 관련된 시답잖은 일에만 온 정신이 팔려 있었으니 어디 엽이채의 전 정혼자에게 신경이나 썼겠는가? 자신들의 이 지저분한 혼사에 있어 그 또한 관련자라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언젠가 추길이 새로운 기보棋譜를 가져오며 했었던 말만 기억할 뿐이었다.
“그 주씨 가문은 정말로 배알도 없나 봐요. 둘째 아가씨 쪽에서 파혼하겠다고 하니 바로 그러겠다고 했대요. 그래 들어 보니 그 주씨 가문 셋째 도련님이 이미 반년 전에 둘째 아가씨가 장박원의 첩실이 된 걸 알고 계셨대요. 그분은 화가 나 가출을 했다고 합니다.”
전생의 자신은 엽이채를 막지 못한 무능한 주씨 가문을 원망했을 뿐, 그 이상은 조금도 더 신경을 쓰지 않았다.
화가 나서 가출을 했다? 아니, 가출이 아니라 아마 전장으로 달려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생에서도 그는 마찬가지로 전장에 나갔다.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무하니 그저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