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366화 (366/858)

제366화

두 사람이 화원의 구석으로 걸어가 보니 그곳은 산 중턱처럼 꾸며져 있었다. 화단도 없고, 그저 다보록이 자란 빨갛고 노란 꽃들뿐으로 그다지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었다.

엽영교는 한 번도 이런 꽃을 본 적이 없었다.

“이게 무슨 꽃인지 아니?”

“홍초예요.”

“홍초? 들어 본 적이 없는데. 귀한 거니?”

“아니에요. 시골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꽃이에요.”

엽연채는 옅은 미소를 짓더니 근처에 있는 옅은 보라색 꽃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엉겅퀴예요.”

“어쩐지. 그래서 내가 몰랐던 거구나.”

엽영교는 후부의 적녀였기에 어려서부터 봤던 화초는 집 안에 있던 분재盆栽가 전부였다. 난초 아니면 모란 같은 진귀한 꽃들 말이다. 그러니 어디 이런 평범한 꽃을 본 적이 있겠는가.

엽연채가 말을 이어 갔다.

“이런 꽃들은 시골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에요. 그다지 예쁘지도 우아하지도 않죠. 그러니 저희 같은 사람들은 이런 꽃을 심어 감상하지 않죠. 고모도 모르는 것도 당연해요.”

“그런데 넌 어째서 아는 거니?”

그 말에 엽연채는 눈동자를 굴렸다. 전생에서 그녀가 갇혀 있던 별장은 빈촌貧村에 자리했기에 곳곳에 이런 야생화들이 자라나 있었다.

그녀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렇게 핑계를 댔다.

“제가 지금 갖고 있는 별장에… 전에 놀러 갔었는데, 그곳에도 이런 꽃들이 있더라고요. 고모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뿐이죠.”

“그래?”

엽영교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수긍하더니, 엽연채의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다들 가난한 가문의 진사가 갑자기 부귀해졌으니 자신을 기품 있고 우아하게 포장하려고 하고 옷도 점잖고 화려하게 입으려고 할 거랬어. 사는 곳 또한 도성의 고관과 귀인들을 따라 보수하려고 할 거랬는데, 초 전여는 여전히 꾸밈없는 소박한 마음을 가지고 있네.

과거 시험에 합격했고 지체 높은 가문의 규수를 아내로 맞이했는데도 소박하게 저택을 꾸며 놨잖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사람들이 촌뜨기라고 비웃는 것도 걱정하지 않나 봐. 보아하니 의지가 강하고 세속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인 것 같아.”

그러자 엽연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저 꽃구경하는 것뿐인데 고모는 느낀 게 이렇게나 많네요! 이곳 풍경이 확실히 색다르긴 해요. 보고 듣는 게 전부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와요. 고모, 우리 밖으로 나가서 거닐어요.”

엽영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엽연채의 손을 당기며 밖으로 걸어갔다.

주위 풍경은 소박하고 우아하면서도 조금은 적막하게 느껴졌다. 반면, 손님들이 모인 쪽은 그 수가 유씨 가문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꽤나 떠들썩한 편이었다.

두 여인이 아치형 문을 넘어가자 앞에 아담하고 정교한 뜰이 나왔는데, 문 앞에서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멈들 몇몇이 그곳에서 서로 밀치락달치락하며 호통을 치고 있었다.

“저기서 뭐 하는 걸까요?”

엽연채가 먼저 푸른 연잎이 수놓인 반투명한 둥글부채로 그쪽을 살짝 가리켰고, 엽영교는 그쪽을 쳐다보더니 비단부채로 입술을 살포시 가리며 대꾸했다.

“그냥 여종들끼리 싸우는 거지, 뭐!”

엽연채가 까치발을 들고 쳐다보니 작은 뜰 앞에서 네다섯 명의 어멈이 중간에 선 사람을 거듭 밀며 소리치고 있었다.

“돌아가거라!”

엽연채가 고개를 갸웃하며 사방을 두리번거리자 엽영교는 그녀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다른 집 일은 신경 쓰지 말고 가자꾸나!”

엽연채는 어리둥절해했으나 엽영교에게 끌려 그곳을 떠났다.

* * *

두 사람은 손님들을 접대하는 뜰로 돌아왔고 홍초가 심어진 꽃밭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미시未時(오후 1~3시) 삼각쯤까지 기다리자 어멈 한 명이 안으로 들어와 고했다.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손님들은 의식을 참관하기 위해 잇달아 자리에서 일어나 대청으로 향했다.

“가자. 어서 가야지, 안 그러면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지도 못할 거야.”

엽영교가 꺄르르 웃으며 엽연채를 잡아당겼고, 두 사람은 잰걸음으로 월공문月拱門을 나와 대청으로 향했다.

뜰을 나와 조금 걸어가다 협문을 넘어가니 널찍한 뜰이 나왔다. 저 멀리 넓은 대청이 보였는데 네 칸의 커다란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정교한 무늬가 조각된 장지문들이 일렬로 늘어서 활짝 열린 채였다. 서서 보니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대부분 관직이 높지 않은 관원들이었다.

태자를 비롯한 황실과 귀족의 자제들은 유씨 가문에 축하를 하러 갔다. 그러나 그들은 선물을 건넨 후 유곡요가 출가하자 사내 쪽 집으로 가지 않고 돌아갔다.

신랑은 유씨 가문 여식을 아내로 맞이하기는 했지만 고작 7품 편수에 불과했다. 그러니 유씨 가문에 방문한 귀인들은 7품 관원의 집에까지 방문하면 스스로의 격과 위신을 떨어뜨린다고 여긴 것이다.

엽연채는 엽영교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고, 대청 안에 모인 관원과 귀부인들은 그녀를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 엽연채의 뛰어난 외모 때문이었다. 특출난 미모는 어디서든 쉽게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고, 이 자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범수도 관원들 틈에 껴 있었다. 그는 엽연채가 한 아리따운 젊은 부인을 끌고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다 같은 이번 과거 시험에 합격한 진사인데 주운환의 아내는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아름다웠고, 가난한 집안 출신인 전여마저도 명문가의 여식을 아내로 맞이하게 됐는데, 자신은 여전히 집에 있는 부인을 쳐다보고 있어야 한다는 현실을 새삼 느낀 것이었다.

하지만 주운환이 자초한 화가 떠오르자 그는 다시 평정심을 되찾았다.

엽연채는 엽영교와 함께 사람들 사이로 걸어 들어가 진 부인 옆에 섰다.

밖에선 음악 소리와 폭죽 소리가 울려 퍼졌고 중매인은 기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엽연채가 고개를 내밀고 보니 신랑 신부 한 쌍이 한 걸음씩 내디디며 걸어오고 있었다.

신부는 화려하고 진귀해 보이는 혼례복을 입고 있었고 머리에는 금실로 수를 놓은 붉은 덮개를 쓰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신랑은 부드럽고 점잖게 생겼지만 비범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진홍색 혼례복을 입고 있음에도 온몸에서 풍기는 학자 분위기가 가려지지 않았다.

엽연채는 이 새신랑을 보더니 둥글부채로 아래턱을 톡 치며 미간을 찌푸렸다.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생각이 잘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그러니? 눈을 뗄 줄 모르네?”

엽영교가 작은 목소리로 묻더니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덧붙였다.

“아무리 잘생겼다고 해도 네 부군의 타고난 외모엔 비할 바가 못 되는걸.”

엽영교가 자신의 남편을 칭찬하자 엽연채는 흐뭇한 기분이 들고 조금 우쭐해졌다.

“그냥 낯이 익어서 그래요. 어디선가 본 것 같거든요.”

“저 사람은 전여잖니. 황제 폐하께서 베풀었던 연회에서 봤겠지.”

엽영교는 둥글부채로 엽연채의 머리를 톡 치며 말했다.

그 말에 엽연채의 표정이 굳었다. 황제가 베푼 연회를 떠올려 보았으나 그때 자신은 줄곧 주운환과 정선제에게 관심을 두었고, 그런 한편으로 조앵기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니 어디 다른 사람을 쳐다볼 여유가 있었겠는가?

신랑 신부가 천천히 다가오자 주위에 있는 손님들은 쉴 새 없이 칭찬을 꺼냈다. 혼례복이 멋스럽다고 하다가 또 신랑의 인물이 훤하고 풍채가 좋아 신부와 천생연분이라고도 했다.

“천지 신령과 웃어른께 절을 올리시오!”

붉은색 비단 도포를 입은 사의가 미소를 지으며 식을 진행했다. 그에 한 어멈이 신랑과 신부에게 가운데에 커다란 붉은 꽃을 묶은 붉은 명주를 건넸다. 신랑 신부는 부모가 앉는 자리를 향해 섰으나 그 자리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 보아하니 신랑의 부모가 이미 세상을 떠난 게 분명했다.

사의가 큰 소리로 다시 외치려는 찰나,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고 어멈들의 호통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으론 못 들어간다!”

“썩 꺼지거라!”

그러기 무섭게 누군가가 큰 소리로 비명을 꽥 질렀다.

“아악! 내 손! 사람 잡네!!”

대청에 있던 손님들은 깜짝 놀라 잇달아 목을 쭉 빼고 밖을 쳐다보며 궁금해했다.

“뭐지?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사람을 잡다니?”

대청에 있던 신부는 어리둥절했고, 기품이 느껴지는 준수한 얼굴의 신랑은 낯빛이 확 변했다. 정교한 무늬가 조각된 장지들이 활짝 열려 있었는데, 그곳을 통해 보니 아담한 체구를 가진 여인이 해를 등진 채 살짝 비틀거리며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 숨을 헉 하고 들이켰다.

그 소녀는 온몸에 선혈이 낭자했고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완전히 산발이었다. 그뿐 아니라 참하게 생긴 얼굴엔 맞아서 생긴 멍과 핏자국도 보였다. 영기英氣가 살짝 어린 두 눈은 맑고 투명해 조금도 탁해 보이지 않았으나 시리도록 싸늘해 마치 온 세상이 그녀의 눈빛에 꽁꽁 얼어 버릴 것만 같았다.

엽연채는 이 소녀를 보더니 깜짝 놀라 두 눈을 번쩍 떴고 저도 모르게 신랑에게 시선이 향했다.

‘생각났다! 어쩐지 신랑 낯이 익더라!’

눈앞의 이 소녀는 다름 아닌 작년에 적성대에서 바둑 대결을 벌였고 이후 엽연채와 안면을 튼 제민이었다. 그리고 이 신랑은 바로 작년 단오절에 제민과 함께 연을 팔았던 사내 초빙풍이었다.

“민…….”

초빙풍은 제민을 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특히 선혈이 옷을 핏빛으로 물들인 모습을 보고 그랬다.

같은 붉은색이지만 그가 입은 혼례복은 곱고 화려했고, 옆에는 방금 막 집으로 데려온 신부가 있었다. 그의 기품이 느껴지는 잘생긴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버렸다.

소녀는 탁탁 발소리를 내며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녀의 오른손엔 나무를 벨 때 쓰는 칼이 들려 있었고 칼의 윗부분에선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꺄악! 칼에… 피가 묻어 있어!”

“정말 사람이라도 죽인 건가? 세상에!”

“경사스러운 날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주위에 있던 손님들은 모두 경악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뭣들 하는 게냐? 어서 저 막돼먹은 여인을 끌어내지 않고!”

관사처럼 보이는 한 어멈이 황급히 앞으로 달려 나와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러자 그녀의 뒤에 있던 다른 여종들이 얼른 앞으로 나가 제민을 끌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제민의 손에 들린,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과 방금 전 그녀에게 상처를 입은 한 여종을 보더니 그들은 놀란 나머지 주춤거리며 더는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무슨 일이냐?”

누군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신부가 답답한지 머리에 덮인 붉은 덮개를 홱 벗어젖혔다.

“아가씨! 안 됩니다!”

그녀를 부축하고 있던 몸종 여매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더니 얼른 땅에 떨어진 붉은 덮개를 집어 들어 다시 유곡요의 머리 위에 덮어 주려고 했다. 그러나 유곡요는 여매를 확 밀쳐 버렸고, 이어 온몸이 피투성이에 몰골이 말이 아닌 그 소녀를 보더니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넌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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