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362화 (362/858)

제362화

신랑 신부는 자신들을 빼곡히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대청으로 걸어왔다. 묘씨와 엽학문에게 절을 올리며 감사 인사를 드렸다. 그런 뒤 나팔을 불고 북을 치는 무리와 함께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엽씨 가문을 떠났다.

한편, 어멈에게 떠밀려 측문으로 쫓겨난 엽승덕은 떠나지 않고 작은 골목에 서 있었다. 그는 앞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를 들으며 분노 섞인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수중의 목조품을 집어 던지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이 목조품은 은화 한 냥을 들여 사 온 것이라 내던지기는 아까웠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는 수치심과 분노를 더욱 견딜 수가 없었다.

겨우 한 냥짜리 목조품에 불과한데 버리기 아까운 지경에 이른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가장 모욕을 느끼는 부분이었다.

그와 은정랑은 엽씨 가문에서 쫓겨난 뒤로 줄곧 송화 골목에서 지내고 있었다. 처음엔 그저 모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 엽승덕은 여전히 투지를 갖고 있었고 지금이야말로 자신의 능력을 드러낼 때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혼인하여 엽씨 가문에 들어간 후 대부분의 물건을 엽씨 가문 저택으로 옮겼지만, 송화 골목에 옷과 장식품들을 조금은 남겨 두었다. 사랑을 키워 온 보금자리이니 앞으로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으로 돌아와 잠깐 머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그 물건들로 저당을 잡고 은자를 구할 수 있었다.

물론 엽승덕도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팡팡 놀고먹으면 없어진다는 이치를 알고 있기에 나가서 일거리를 찾았지만, 어딜 가든 난관에 부딪혔다.

육체노동은 하지도 못하는 데다 볼썽사납다고 꺼렸고, 남의 상점에 가서 지배인이 되거나 금전이나 화물의 출납을 관리하는 일은 상점 주인보다 아래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엽승덕은 난관에 부딪히고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옷과 장식품들을 저당 잡아 은화 삼백 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한동안 쓰기에는 충분한 돈이었고, 손에 쥐고 있는 돈이 있으니 크게 힘들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찌 됐든 자신이 은정랑 모자를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에 아주 뿌듯한 마음이 들 따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와 허서가 또 장찬이 있는 대리시로 끌려가게 되었다. 엽학문과 요리는 허서가 사람을 매수했다고 자백했고, 그런 뒤 엽승덕과 엽학문은 풀려났는데 허서는 태형 20대를 맞은 후 감방에 갇혔다.

그는 두 달 동안 갇혀 있었고 유월 초가 되어서야 풀려나게 되었다. 하지만 밖으로 나왔을 때 허서는 이미 폐인이 되어 있었다.

허서는 태형을 맞아 손 근육이 손상되고 다리가 부러졌는데 제때에 치료를 받지 못해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손과 발을 못 쓰게 된 상태였다. 오른손으론 글씨를 쓸 수 없고 왼쪽 다리는 걸을 때 절뚝거렸다.

그런 허서의 모습을 본 은정랑은 반미치광이가 되어 버렸다. 돈이 얼마나 들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백방으로 용한 의원을 부르고 약을 구했지만, 다들 고개를 가로저으며 치료 시기를 놓쳐 고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은정랑은 여전히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수중에 있던 돈을 전부 써 버렸지만 호전되는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고, 허서는 완전히 폐인이 되어 버렸다. 손과 발만 못 쓰게 된 게 아니라 사람 자체가 망가져 버렸다. 매일 자신의 방에만 틀어박혀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고 온종일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집안은 이미 끼니를 잇지 못할 정도로 가난해졌기 때문에 엽승덕은 하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일을 하러 나갔다.

엽승덕은 지금껏 이런 모욕을 당해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을 낮추고 상인을 찾아가 일을 하며 치욕을 견뎠는데, 결국 해고를 당하고 돈도 250문밖에 받지 못하다니 말이다.

집으로 돌아오니 손에 쥔 돈에 온기가 채 전해지기도 전에 은정랑이 돈을 낚아챘다. 그러더니 죽상을 하고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겨우 250문 가지고 뭘 합니까? 쌀도 없고 기름도 다 떨어졌어요!”

엽승덕은 생계를 위해 하는 수 없이 밖에 나가 가난한 서생들처럼 서신을 대신 써 주는 일까지 했는데, 서신 한 장당 겨우 5문을 받았고 그마저도 글씨가 예쁘지 않다며 타박을 들었다. 그의 체면은 완전히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 후 엽영교의 혼사가 정해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은정랑은 그에게 선물을 보내라고 말했다. 백자천손 목조품을 선물하면 받고 싶지 않아도 받을 수밖에 없을 거라고 했다. 선물을 받으면 엽씨 가문에서 어쩔 수 없이 답례품을 보낼 터였다.

엽씨 가문은 체면을 중시했다. 준비한 목조품은 은화 한 냥의 값어치밖에 안 나가지만 엽씨 가문은 아무리 간소한 걸 보낸다 해도 어쨌든 이것보다는 값이 나가는 걸 보낼 것이 분명했다.

그걸로 저당을 잡으면 적어도 은화 수십 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동안 그 돈을 쓰며 버티다가 진씨 가문에 들러붙으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엽승덕은 죽마고우인 등융을 찾아가 자신을 데리고 엽씨 가문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일이 성사되는 건 고사하고 되레 개망신만 당하게 되었다.

엽승덕은 목조품을 손에 들고 창백한 얼굴로 송화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다. 고개를 들어 보니 ‘영존거’라고 쓰여 있는 편액이 보였다. 전에는 더없이 따뜻하고 시적인 정취와 그림 같은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울상을 하고 있을 은정랑의 얼굴과 불구가 되어 의원에게 진찰받게 돈을 달라고 기다리고 있을 허서의 모습만 떠올리면, 신경이 잔뜩 곤두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엽승덕은 집에 들어서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방금 전 엽씨 가문에서 너무 난감한 상황을 겪었기에 속히 집 안에 숨어 있어야 했다.

엽승덕이 문안으로 들어서니 뜰에서 옷을 널고 있는 은정랑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엽승덕을 보자마자 흥분한 모습으로 달려왔다.

“승덕 나리, 어떻게…….”

그녀는 말을 하다 말고 멈추었다. 그의 손에 들린 목조품을 봤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은정랑의 표정은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왜 선물하지 않으셨어요? 떠나기 전에 제가 누누이 당부드렸잖아요. 나리께서 누이동생이 3년 안에 아이 둘을 낳고 자손들이 번창하길 바라는 목조품을 선물하면 그쪽에서 받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억누르지 못한 분노와 귀에 거슬리는 날카로움이 묻어 있었다.

“그게… 내가 이혼한 사람이라 불운을 가져온다고 말하더군.”

엽승덕은 난처함이 섞여 있는 분개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 사람들 말에 반박도 못 하셨어요? 임기응변도 못 하시는 거예요?”

은정랑은 화가 난 목소리로 다그쳤다.

“서가 약을 다 먹어서 오늘 먹을 게 없어요. 게다가 쌀도 똑 떨어졌고 기름도 다 썼어요!”

엽승덕은 그녀가 자신을 탓하는 듯한 목소리로 매섭게 닦달하자 미간을 찌푸리며 받아쳤다.

“지금 날 탓하는 것이오?”

뜨끔한 은정랑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더니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나리,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제가 언제 나리를 탓했어요? 전 그저 서가 걱정되고 양식이 걱정되는 거예요. 우리 세 식구가 먹을 양식을 걱정하는 것뿐이라고요.”

이런 변명을 들으니 엽승덕은 더욱더 지긋지긋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녀를 위로하며 이렇게 말했다.

“별일 없을 것이오. 내가 해결하겠소.”

그러나 집에 쌀과 기름이 또 떨어지고 돈 잡아먹는 불구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런 생활이 대체 언제 끝이 난단 말인가.

그는 저도 모르게 오늘 묘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직도 그 은정랑과 함께 지내고 있느냐?”

이에 자신은 단호하게, 후회하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렇다. 은정랑과 함께하고 있었다.

그러자 묘씨는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에는 무슨 의미가 담겨 있던 걸까? 은정랑과 함께하지만 않으면 집으로 돌아와 계속 호의호식하는 노야로 지낼 수 있다는 말일까?

그런 생각을 하자 엽승덕은 순간 가슴이 설렜지만,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떻게 돌아갈 수 있겠는가. 은정랑과 함께하는 삶, 이는 자신이 선택한 삶이었다.

지금 또 같은 선택을 한다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평생토록 사랑할 사람이자 진정한 사랑이니 말이다.

요즘 많이 고생스럽기는 하지만 그녀는 저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았다. 이는 그가 최근 겪었던 고통이 가치 있었음을 증명해 준 것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의 마음속에서는 예전처럼 회오리치는 격정은 사라져 버리고 권태감과 무력감이 자리하게 되었다.

“나리, 이제 저를 사랑하지 않는 거예요?”

은정랑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이리 물어 왔다.

엽승덕은 그 말에 순간 뜨끔했다. 알 수 없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얼른 그녀의 말을 부인했다.

“아니요. 내 어찌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소! 당신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나요!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은 영원히 변치 않소.”

“나리!”

은정랑은 그의 품으로 확 달려들었고 눈물을 왈칵 쏟아 냈다.

“저희에게는 나리뿐이에요.”

엽승덕은 미간을 잔뜩 모았다. 전에는 이 말을 들으면 더할 나위 없는 감동을 느꼈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거운 압박감이 느껴져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알겠소. 울지 마오.”

엽승덕은 그녀를 위로하며 등을 토닥였다.

“안 울게요. 그럼 전 서를 좀 보러 갈게요.”

은정랑은 눈물을 닦으며 허서의 방을 향해 걸어갔다. 낭하에 오른 그녀는 몸을 돌려 처량한 모습으로 그에게 말했다.

“방에 음식을 좀 차려 놓았어요. 남은 마지막 양식이니 드세요!”

“당신과 서는 먹었소?”

엽승덕이 물었다.

“먹었어요……. 정말이에요! 이미 먹었어요!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은정랑은 뭔가를 숨기는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엽승덕은 은정랑의 눈빛을 보자마자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남은 양식을 전부 자신에게 남겨 준 것이 틀림없었다.

“전 들어가서 서를 보고 있을게요. 집안은… 나리께 맡길게요.”

은정랑은 그리 말하고는 돌아서서 동쪽 곁채로 걸어갔다.

엽승덕의 마음은 감동으로 가득 찼지만, 눈앞의 상황을 보고 있으려니 다시 현실로 되돌아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름도 없고 양식도 없었다.

엽승덕은 속이 갑갑해졌다. 방으로 들어서 보니 밥상 위에는 먹을 것이 좀 차려져 있었는데 묽은 죽 한 그릇과 작은 접시에 담긴 장아찌가 전부였다. 이 음식들을 보자 그는 속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래도 먹어야만 했다. 먹지 않으면 굶기밖에 더 하겠는가.

저녁에는 좀 괜찮은 것을 먹기 위해 엽승덕은 또 짐을 정리해 밖에 나가서 노점을 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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