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361화 (361/858)

제361화

엽학문은 가까스로 화를 눌렀다.

엽학문은 엽승덕 이 빌어먹을 놈을 목 졸라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엽승덕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관직과 작위를 박탈당했겠는가? 집안이 몰락한 가문이라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겠는가?

게다가 엽승덕은 그 사생아를 데리고 자신을 속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하마터면 엽씨 가문 핏줄을 내칠 뻔했다. 이것이 가장 괘씸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지금 여식이 혼례를 치르고 있었다. 이 혼례는 엽씨 가문을 구해 줄 생명줄이기에 볼썽사납게 소란을 피우게 되면 안 됐다.

“아버지……. 오늘은 누이의 혼삿날입니다. 제가 큰오라버니이니 영교를 업고 문을 나서야죠.”

엽승덕은 그리 말하며 옅은 한숨을 쉬었다.

“네가 업을 필요 없다! 우리 엽씨 가문은 진작에 널 쫓아냈으니 넌 더 이상 우리 가문의 장자가 아니다. 장자는 승신이다.”

그러나 묘씨가 싸늘한 목소리로 딱 잘라 거절했다.

“돌아가거라!”

이에 엽승덕은 고개를 숙이더니 실망한 기색을 내비치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축하 선물이라도 전하게 해 주십시오. 어쨌든 저는 영교의 큰오라버니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절… 인정하지 않으시더라도 저와 영교는 같은 피가 흐르는 혈육입니다.”

그는 그리 말하며 품속에서 소박해 보이는 상자 하나를 꺼냈다. 아주 평범한 대나무 상자였는데 열어 보니 안에 손바닥만 한 크기의 목조품이 들어 있었다. 임산부가 갓난아이를 안고 있고 어린아이들 셋이 그 무릎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는데, 백자천손百子千孫의 의미를 지닌 목조품이었다.

“백자천손의 의미를 지닌 이 목조품은 영교에게 주려고 제가 직접 만든 것입니다. 영교가 3년 안에 아이 둘을 낳고 자손이 번창하기를 기원합니다.”

엽승덕 때문에 기분을 완전히 잡친 엽학문은 있는 힘을 다해 화를 누르며 말했다.

“우리는 네 선물 따윈!”

“크흠!”

묘씨가 헛기침을 하며 엽학문의 말을 끊었고 이어 엽승덕을 매섭게 노려봤다.

말이 가로막힌 엽학문도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엽승덕 이 음흉한 인간이 먼저 백자천손을 입에 담았으니 선물을 거절하게 되면 안 됐다. 3년 안에 아이 둘을 낳고 자손이 번창하는 걸 원치 않는다는 의미가 되고 마는 셈이니까.

하지만 묘씨는 정말로 그의 선물을 받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뻔뻔한 인간의 선물을 받아 주었다가 앞으로 또 들러붙으려 든다면 그때는 어찌한단 말인가?

엽씨 가문은 이미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자신들에게 들러붙는 건 그래도 괜찮았다. 걱정스러운 건 그가 엽영교에게 들러붙는 것이었다. 그리되면 엽영교가 어떻게 진씨 가문에 발붙이고 살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 선물은 거절할 수도 없고 필요 없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묘씨는 정말이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어떤 눈치 없는 인간이 이 파렴치한 놈을 집 안으로 들였단 말인가.

“선물을 준비해 왔는데 받으시지요!”

한 사내가 말했다. 그는 엽씨 가문과 대대로 교분이 있는 자로 이름은 등융인데, 엽승덕의 죽마고우인지라 당연히 엽승덕을 도우려 했다.

“등융 대인의 말씀이 옳습니다. 어쨌든 간에 친남매 아닙니까. 오라버니가 좋은 마음으로 선물을 하는 것이니 받으셔야죠.”

이리 거드는 사람은 장국후부 부인이었다.

주위에 있던 손님들 중 일부도 잇달아 맞장구를 쳤다.

“왔으면 다 손님 아닙니까. 선물 받으시고 한 끼 대접하시면 되죠. 음식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굳이 이리 요란히 소란을 피울 것 있습니까.”

이리되니 되레 엽씨 가문 사람들이 옹졸해 보이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손씨와 엽승신, 엽이채는 이를 지켜보며 고소해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손씨와 엽승신도 물론 엽승덕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건 죽어도 싫었다. 엽학문이 엽균이 가산을 물려받는 것에 동의했다지만, 엽균은 이미 망가져 버렸고 엽연채도 이제 곧 끝장날 테니 가산이 다시 엽영의 손에 떨어질 가능성이 아주 높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술술 풀리는 상황에서 엽승덕이 돌아오게 되면 헤살을 놓을 게 뻔했다.

그러나 지금 분명한 건 엽승덕은 엽학문이 자신을 받아 주지 않으니 엽영교에게 들러붙기 위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자신들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된다.

‘쯧쯧, 탐화에게 시집가서 이채를 앞지르더니 이제 인간쓰레기가 들러붙었구나! 당해도 싸다!’

“맞아요. 어머님. 백자천손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손씨는 미간을 찌푸리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웃음기를 감추지는 못했다.

“받겠다고 하셔야 해요. 안 그러면 나중에…….”

이어지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다들 무슨 말인지 알고 있었다. 그의 선물을 받지 않으면 앞으로 아이를 낳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이건 영교를 축복하는 선물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선물을 받으시겠습니까?”

엽승덕이 진심 어린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묘씨는 표정이 확 굳어졌고 엽학문은 그저 엽승덕을 빨리 쫓아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럼 저쪽에 놔두거라…….”

“참으로 이상한 축복이네요.”

이때, 누군가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묘씨 등이 고개를 돌려 보니 엽연채가 걸어오고 있었다.

엽승덕의 표정이 확 어두워졌다. 이 불효녀가 또 찾아와 자신의 일을 망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엽연채가 뭘 어쩔 수 있겠는가.

“난 그저 좋은 마음으로 준비한 것이다. 그런데 넌 어째서 내 뜻을 곡해하는 것이냐? 나도… 우리 부녀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나와 가족들의 관계가 어떻든 간에 영교는 내 친누이이다. 그러니 진심으로 축하하려는 것이다.”

“아버지의 호의는 참 음흉하네요.”

엽연채는 코웃음을 쳤다.

“연채 너도 참 매몰차구나. 네가 아버지에게 정이 없을 수 있지만 어쨌든 네 아버지다. 그리고 네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가 어떻든 간에 적어도 네 아버지는 누이동생을 아끼는 사람이다. 그것까지 부정해서는 안 되는 게다.”

누군가의 싸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로 엽승덕의 절친한 벗, 등융이었다.

“일리가 있는 말이네요.”

주위에 있던 몇몇 손님들이 그의 말에 동조했다.

“호의라고 하는데, 정말로 고모를 위해서인가요?”

“당연하지.”

엽연채의 물음에 엽승덕이 미간을 찌푸렸다.

“전 그저 이혼한 지 얼마 안 된 아버지가 왜 일부러 남의 혼례식에 찾아온 건지 궁금할 따름이에요. 불운을 고모에게 가져오지는 않을까 걱정도 안 됐나 봐요? 이게 고모를 위하는 건가요?”

엽연채는 검은 눈썹을 추켜세웠다.

주변 사람들은 전부 깜짝 놀랐다. 그랬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엽승덕은 단지 불미스러운 추문만 있었던 게 아니라 이혼한 사람이었다.

대제에는 이혼한 사람은 혼례식에 참석하면 안 된다는 특별한 규정은 없었다. 애초에 이혼하는 사람들이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혼을 했으니 불길한 기운을 지니고 있는 셈이었다. 그런 사람이 남의 혼례식에 찾아왔다는 건 새신부도 이혼하기를 바란다는 말 아닌가?

“그리고 아버지가 선물한 백자천손 목조품을 아버지가 직접 조각했다고요? 정말 각별히 신경 써서 만들었겠네요! 한데 아버지 마음속의 백자천손은 그 싸구려 아들인 거죠?”

손님들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이것… 참…….”

사람들 모두 전에 엽승덕이 첩실과 사생아를 위해 자신의 친자식들을 평처의 소생으로 만들어 버리고, 또 사생아를 적장자라고 말해 그가 가산을 물려받게 하려고 했던 일이 떠올랐다.

첩실과 사생아를 위해 자신의 친자식들을 해친 사람이 직접 백자천손을 조각했다는 건, 나중에 새신부의 자녀들에게도 혈육을 혼동하는 일이 벌어지길 바란다는 걸까?

엽승신 부부와 엽이채의 표정이 굳었다. 한창 재미있는 판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엽연채가 훼방을 놓는 바람에 끝까지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장국후부 부인은 낯빛이 하얘지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방금 전 그녀가 엽승덕 편을 들어 줬으니 면목이 없었다.

“큰아주버님, 영교 아가씨는 내버려 두세요!”

나씨가 버들잎 모양의 고운 눈썹을 치켜올리며 한마디 했다.

엽승덕이 손에 들고 있는 백자천손 목조품은 한순간에 뜨거운 감자가 되어 버렸다.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더듬거리며 항변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니면 무슨 뜻이냐?”

묘씨는 바로 말꼬리를 붙잡아 이리 되묻고는 고맙다는 눈빛으로 엽연채를 한 번 쳐다봤다.

“제가 세심하지 못해 이혼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전 그저 좋은 마음으로 축하하러 온 겁니다.”

엽승덕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네. 좋은 마음으로 오셨다고 하니 그럼 돌아가세요!”

엽연채는 코웃음을 쳤다.

“돌아가거라!”

묘씨도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등융은 고개를 숙였다. 도와주고 싶었지만 더는 도와줄 방도가 없었다.

손님들은 경멸이 가득한 눈빛으로 엽승덕을 쳐다봤다.

‘축하하러 왔다고? 일부러 불운을 가져온 거겠지!’

전 마마가 냉랭한 목소리로 엽승덕에게 떠나기를 독촉했다.

“뭐 하세요? 아직도 안 가시는 거예요? 이혼했으니 오면 안 된다는 걸 정말로 잊어버렸다고 해도 이젠 알게 되셨으니 가셔야죠.”

엽승덕은 무척이나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수치스럽기 이를 데 없고 화가 치밀어 올라 돌아서서 자리를 뜨려는 찰나, 묘씨가 갑자기 그를 불러 세웠다.

“잠깐.”

엽승덕은 어리둥절해하며 묘씨를 쳐다봤다.

“어머니…….”

묘씨는 두 눈을 살짝 깜빡이더니 심드렁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도 그 은정랑과 함께 지내고 있느냐?”

그러자 엽승덕은 표정이 확 굳었다.

“그렇다면요?”

“아니다.”

묘씨는 옅은 한숨을 쉬며 그를 내보냈다.

“어서 가거라!”

엽승덕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저 한숨의 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주변 시선 때문에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라 더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엽승덕은 독기 어린 눈빛으로 엽연채를 쓱 쳐다보고는 백자천손 목조품을 품에 안고 자리를 떴다.

엽연채는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입가에 냉소를 띠었다. 그녀는 엽승덕의 현재 상황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녀는 생각을 하다가 저도 모르게 묘씨를 쳐다봤다. 방금 전 할머니의 물음은 정말 절묘했다. 이제 엽승덕은 돌아가면 된통 혼쭐이 날 것이다.

“신부를 맞이하러 왔습니다!”

이때, 밖에서 한 어멈이 안으로 뛰어 들어오더니 미소를 지으며 재차 외쳤다.

“신랑께서 신부를 맞이하러 오셨습니다!”

“그래. 어멈에게 상을 주게나!”

묘씨는 크게 기뻐했고 전 마마는 얼른 동전을 한 움큼 꺼내 어멈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러자 어멈은 얼른 감사하다고 답례하며 덕담을 한가득 건넸다.

잠시 후, 밖에서 음악 소리와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엽연채는 얼른 엽영교의 처소로 달려가 엽미채와 몇몇 집안 자매들과 함께 신랑이 문밖에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들어가려면 홍포紅包(경사스러운 날에 빨간 봉투에 넣어 전달하는 돈)를 줘야 한다고 외치며 한참 실랑이를 한 후에야 그를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진홍색 혼례복을 입은 진지항은 바보처럼 웃으며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안으로 들어갔고, 이내 신부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