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3화
“왜 잘못이 없습니까?”
진씨는 냉소를 지었다.
“나리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진씨 가문에서 저에게 무안을 줬습니다. 그런데도 셋째가 진씨 가문과 친하게 지내고 그 가문이 우리 사돈과 인척 관계를 맺길 바라는 건 제 체면을 깎는 행동이 아닙니까? 이 적모가 안중에 있긴 한답니까?
그 애가 절 공경하고 존중한다면 진씨 가문과 교류하면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앤 진씨 가문과 인척 관계를 맺으려고 합니다. 그건 절 존중하지 않는 행동입니다!”
“저, 정말이지 말이 안 통하는구먼!”
주 백야는 열불이 나 미칠 지경이었다.
“네, 저희는 말이 안 통하는 사람입니다. 나리 눈엔 이미 저희는 보이지도 않잖아요.”
진씨는 그리 말하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리는 지금껏 제게 단 한 번도 심한 말을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저에게 호통을 치시네요? 셋째가 관리가 되었기 때문이겠죠. 이제 저와 제 자식들은 사람으로도 안 보시는 겁니까?”
주 백야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또 무슨 허튼소리를 하는 게요?”
하지만 되돌아보니 확실히 자신은 그녀에게 얼굴을 붉힌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호통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셋째가 갈수록 잘나가니 그 애를 떠받들고 싶어 안달이 나셨겠죠. 이제 이 집안의 모든 걸 그 애에게 전부 내주실 건가요? 나리의 작위마저 그 애에게 주실 건가요?”
진씨는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주 백야는 속이 터져 뒤로 넘어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방금 전 진씨가 저에게 호통을 쳤다는 말을 꺼낸지라 차마 큰소리를 칠 순 없어 결국 소매를 홱 뿌리치며 이렇게 한마디 했다.
“쯧, 그만하시오! 지긋지긋하구려.”
그러고는 돌아서서 자리를 떴다.
진씨는 탑상 옆 항탁 위에 엎드려 엉엉 울기 시작했다.
주묘서는 부모가 싸우는 모습에 깜짝 놀라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그녀는 진씨가 우는 모습을 보자 자신도 따라 울며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앞으로 제가 어머니 말씀도 잘 듣고 속 깊은 사람이 될게요. 좋은 사람에게 시집가고 오라버니도 잘 보필할 거예요. 그리되면 어머니와 저희 식구들이 업신여김 당하는 일도 없을 거예요.”
“역시 이 어미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우리 묘서밖에 없구나……. 네 오라비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으니 앞으로 내가 기댈 사람은 너뿐이다.”
모녀는 서로 부둥켜안고 한바탕 통곡했다.
* * *
한편, 주 백야는 일상원을 나온 후 곧장 궁명헌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주운환과 엽연채는 정원의 파초나무 아래, 돌 탁자에 앉아 있었다.
엽연채는 몸을 숙인 채 수본을 그리던 중이라 주운환이 주 백야를 먼저 발견했다.
“아버지.”
“셋째야…….”
주 백야는 두 사람 앞으로 걸어가 운을 뗐다.
“네 어머니 일은… 네 어머니가 너무 극단적으로 행동했더구나. 자신이 진씨 가문과 원한 관계를 맺었는데 네가 진씨 가문과 인척 관계를 맺으려 하니 불만을 품고 그런 어리석은 짓을 했던 게다.”
주운환은 냉담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더니 이렇게 대꾸했다.
“저와 진씨 가문이 인척 관계를 맺게 되었는데 어머니께서 그게 불만이라고 하시니, 그럼 저희가 분가를 해도 되겠습니까?”
“뭐라?”
주 백야는 깜짝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우린 한 가족인데 어떻게 분가를 할 수 있단 말이냐! 가족들 사이에 작은 마찰이 일어나는 건 늘 있는 일이다. 어떻게 이런 사소한 일로 분가를 하겠다는 말을 꺼낼 수 있느냐!
그리하면 사람들이 우리 가문을 어떻게 보겠느냐? 또 탄핵을 당하고 싶은 게냐? 게다가 우리 가문은 이제 겨우 고생스러운 나날에서 벗어나게 되었는데 네가 분가를 하면 어떡한단 말이냐.”
주 백야의 눈빛에선 순간 실망과 괴로운 기색이 비쳤다. 그는 울음기가 섞인 목소리를 내며 코를 훌쩍이기도 했다.
“안 된다고 하시니 더 할 말이 없네요. 음, 부인, 여기에 조그만 잎을 그려 넣는 것 어떻겠습니까?”
주운환은 짧게 대꾸하고는 고개를 돌려 수본의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주 백야는 옅은 한숨을 쉬더니 벌게진 눈으로 자리를 떴다.
엽연채는 굽은 허리에 조금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 진 부인의 행동은 공자께서 계획한 거예요?”
“네.”
주운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에 지항 형님이 주묘서에게 혼담을 꺼내겠다고 성화를 부렸지 않습니까? 진 부인은 원래부터 주묘서가 마음에 안 들었으니, 동의를 했다고 해도 빨리 매관을 찾아가 예약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연히 증빙 문서 같은 건 없었고 매관 쪽에서도 이런 사소한 일은 기록하지 않습니다. 증빙 문서는 위조한 것이지요.
매파 고씨는 정말로 그런 말을 했었지만 매파의 말만 가지고는 두 사람을 손봐 줄 수가 없었죠. 그래 증빙 문서를 꺼내 떠보니 역시나 켕기는 게 있었던 두 사람이 겁을 집어먹고 본색을 드러낸 겁니다.”
엽연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이 일이 공자께 도움이 되었나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주운환은 미소를 지었다.
* * *
이튿날 이른 아침, 누군가가 의도했던 대로 진씨가 거짓으로 일을 꾸몄다는 이야기가 도성에 파다하게 퍼졌다.
주 백야는 주운환의 평판이 걱정되어 바로 사람을 시켜 밖에 나가 모든 것이 오해라며 해명을 하게 했다.
진씨가 진씨 가문에 찾아가 혼담을 꺼냈으나 결국 성사되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주운환이 아내의 친정 식구를 편애해 누이동생과 적모를 존중하지 않은 일은 절대로 없었다고 말했다. 진씨가 때마침 별장에 간 것도 그저 나들이를 갔던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람들도 바보가 아니었다. 진씨가 자신의 딸이 좋은 집안에 시집을 못 가게 되니 엽영교가 시집가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고 서자에게 앙심을 품은 것임을 당연히 알고 있었다.
* * *
궁궐 안 대전.
‘탁’ 하고 큰 소리가 울렸다. 정선제가 겹겹이 쌓인 상주서를 들고 책상을 힘껏 내려쳤기 때문이다.
아래에 있는 관원들은 고개를 숙인 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특히 왕성촌을 비롯한 어사들은 하얗게 질려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너희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보거라! 증거도 없이 허튼소리를 지껄이고 사소한 일을 뭐 대단한 일인 양 부풀렸지 않더냐.”
정선제는 차갑고 어두운 표정으로 호통을 쳤다. 어사들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전부 고개를 숙인 채 감히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
“왕성촌!”
정선제의 부름에 왕성촌은 들들대더니 황제를 향해 공수하고 말했다.
“폐하, 소신이 지은 죄를 알고 있사옵니다. 소신이 경솔하게 대처하여 생긴 일이니 앞으로는 더욱 신중하게…….”
“신중하게? 다음에도 또 이러려는 것이냐?”
정선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다들 배부르고 할 짓이 없으니 온종일 제대로 된 일은 하지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사소한 일만 물고 늘어져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것이 아니냐. 그렇게 한가하느냐?”
힐책에 어사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은 언관이고 자신들의 일이 바로 탄핵하고 탄핵하며 또 탄핵하는 것 아닌가!
조정에서 다뤄지는 일이라곤 고작 몇 가지가 다인데, 자신들이 탄핵할 만한 건수가 그리 많을 리가 있겠는가? 그러니 사건을 찾아 필사적으로 탄핵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번 과거 시험의 장원 급제자가 한껏 두각을 드러내고 있어 태자와 재상 쪽에서 그를 눈에 거슬려 했다. 그러니 그를 손봐 주려고 한 건 자연한 수순이었다.
“채결아, 너는 한림원으로 가서 주 수찬에게 더 이상 벌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전하거라.”
정선제는 그리 분부하고는 아래에 서 있는 어사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전부 감봉 3개월에 처한다.”
“황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어사들은 얼른 머리를 조아리고 황제에게 사죄했다.
정선제는 이처럼 억울한 일을 겪은 주운환에게 보상해 주고 싶었지만, 당장은 적당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요즘 주운환이 너무 두각을 드러내 이런 봉변을 당한 것이 분명하니 그에게 상을 내릴 수는 없었다. 그리했다가는 또 사람들의 시기와 미움을 받게 될 테니 말이다.
정선제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호부 우시랑으로 생각해 둔 자가 있느냐?”
정선제의 하문에 호부상서 전지신은 몸을 떨더니 이렇게 답했다.
“아직 없사옵니다.”
호부 우시랑 요리는 자리에서 쫓겨났지만 다들 요리가 복직할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황제도 이를 알면서 모르는 척했다. 그런데 지금 황제가 이 이야기를 갑자기 꺼낸 것이었다.
“밑으로 낭중이 넷 있지 않느냐? 짐이 생각하기에 진무가 괜찮을 것 같구나. 진무로 하자꾸나!”
정선제의 말에 조정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깜짝 놀랐다. 전지신은 당연히 요리가 돌아오기를 바랐다. 그는 태자의 손위 처남 아닌가. 그러나 황제가 이미 결정했으니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예, 폐하.”
갑자기 승진하게 된 진무는 깜짝 놀랐고, 곧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는 얼른 앞으로 나가 머리를 조아리며 사은을 표했다.
“황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정선제는 아래에 있는 진무를 쳐다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진무는 괜찮은 사람이었고 또 아들을 탐화로 키워 낸 공이 있었다. 더욱이 아들을 잘 가르치려고 직접 아들을 데리고 함께 농사도 지었으니 백성을 위하는 좋은 관리라고 볼 수 있었다.
한쪽에 서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유 재상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주운환은 자신의 손녀사위의 앞길을 막아 버렸다. 그래서 큰 선물을 준비해 그에게 안길 계획이었고, 그를 위한 모든 조치가 끝난 상태였다. 단번에 주운환의 공명을 빼앗고 감옥으로 집어넣을 수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진씨의 일이 일어나 주운환의 기세가 확 꺾여 버렸다. 주운환이 타격을 받은 이 틈을 타 며칠 후에 그가 예전에 다니던 서원과 결탁하여 도성에서 치르는 원시院試(초시初試 중의 상급 단계 시험)의 시험 문제를 암거래했다는 죄명을 뒤집어씌우려고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진씨의 일에서 억울한 누명을 쓴 건 사실 주운환이었다. 이 때문에 황제가 아무런 증거도 없이 주운환을 모함했다고 어사들을 문책할 줄 어디 상상이나 했겠는가?
여기서 원시 일이 터지면 황제는 분명 진노해 주운환을 겨냥한 계략이라고 생각할 것이었다. 이미 한 번 격랑이 일었으니 비슷한 일이 또 벌어져서는 안 되었다.
유 재상은 코끝을 매만지더니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