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2화
귀부인과 규수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단 말입니까?”
진 부인은 인간관계가 좋고 평소 시원시원한 성격이라 그녀의 말은 아주 설득력이 있었다. 한데 고개를 돌려 보니 주묘서를 안은 채 억울하지만 죽을힘을 다해 꾹꾹 참고 있는 진씨의 모습이 보였다. 귀부인과 규수들은 또 마음이 흔들렸다.
이때, 강 부인이 홱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인의 아들과 엽씨 가문 소저의 혼사는 주 공자가 주선한 겁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들을 도우려는 거겠죠.”
“맞습니다!”
왕 부인은 새파란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진 부인, 망발하지 마시죠! 황제 폐하마저도 주 공자의 불효를 나무라며 감봉과 『효경』을 필사하라는 벌을 내리셨습니다.”
이 일은 그녀의 부군이 나서서 처리한 일이니 왕 부인은 당연히 진 부인의 말을 반박하며 한사코 진씨와 주묘서 편에 서려고 했다.
“아무리 부인 얼굴에 달려 있는 입이라고 해도 분명한 증거 없이 아무 말이나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안 되죠.”
왕 부인이 냉랭한 목소리로 거듭 힐난했다.
“아무튼 그자는 팔이 바깥으로 굽는 불효자입니다.”
참다못한 진 부인이 성난 목소리로 받아쳤다.
“참나, 분명한 증거가 없다고 하는데 그럼 부인은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까? 여기 주 부인과 주 대소저도 입으로 떠드는 게 전부입니다. 어떻게 눈물 좀 흘렸다고 저들이 말하는 건 진실이 됩니까? 네?”
진씨와 주묘서는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했고 주묘서는 입을 벌리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더는 못 살겠어요! 죽어 버릴 거예요! 하나같이 저를 업신여기고 있다고요! 엉엉……!”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기둥에 머리를 찧으려고 했다. 그러자 자리에 있던 귀부인과 규수들은 깜짝 놀라 주묘서에게 달려가 그녀를 잡아끌며 말렸다.
“왜 이런 어리석은 짓을 하려는 겁니까? 진 부인, 부인은 지금 이 소저의 명예와 절조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이 가련한 소저에게 어떻게 이런 오명을 남기려 하십니까?”
등씨 가문 다섯째 부인이 진 부인을 탓했다. 진 부인이 방금 입에 담은 이야기에는 두 사람이 허영에 들떴고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는 뜻이 담겨 있지 않은가! 사실이 아니라면 정말이지 너무한 이야기였다.
“그럼 주 공자는 가련하지 않단 말입니까? 부인들은 어쩜 그리 모질게 불효라는 큰 죄를 공자에게 뒤집어씌울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진 부인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만들 하세요. 각자 자기주장만 고집하고 증거도 없으니 한 발씩 물러나시죠. 오늘이 지나면 이 일도 지나갈 겁니다.”
나머지 귀부인들이 얼른 상황을 수습하려고 했지만, 사실 이미 진씨와 주묘서에게 마음이 기울어 있었다.
“참나, 분명한 증거가 없다고 하는데 제게 증거가 있습니다!”
진 부인은 그리 말하며 옷소매 안쪽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바닥에 홱 집어 던졌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그 물건을 가리키며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당시엔 제 얼빠진 아들놈이 탐화가 되기 전이었지만 그래도 저희 진씨 가문은 학자 가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랑 좀 보태서 말하자면 저희 진씨 가문에 시집오려는 소저들이 열 명까진 아니어도 여덟 명은 되었습니다. 작년에 주씨 가문은 아직 몰락한 가문이었는데 누가 주씨 가문에 가서 혼담을 꺼냈겠습니까?
그런데 하필이면 제 얼빠진 아들놈이 주 대소저가 마음에 들었던 겁니다. 제 마음엔 안 든다 하더라도 아들을 사랑하니 그저 그 애 뜻에 따라 줄 수밖에 없었죠.
당시 주씨 가문은 아직 재기하기 전이라 저희 가문에서 혼담을 꺼내면 그쪽에선 분명히 응할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매관에게 찾아가 우선 예약해 두었죠. 온 부인과 주씨 가문이 혼사에 관해 이야기를 마치면 두 달 후에 찾아가 정혼할 생각이었습니다.
집에 방문하여 혼담을 꺼내려면 당연히 매관을 찾아가는 편이 더 좋죠.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그때가 곧 있으면 팔월이라 혼담을 꺼내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매관은 몇 명 안 되니 제가 미리 예약을 해 뒀던 거죠. 예약된 날짜는 길일인 팔월 열이레였고 이게 바로 매관이 발급한 증빙 문서입니다.”
손님들은 전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증거가 있었던 것이다.
진 부인의 말을 들은 진씨와 주묘서는 순간 천둥 번개가 내리친 것처럼 정신이 쏙 빠졌다.
“아니에요……! 가짜입니다! 이건 가짜예요!”
주묘서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진 부인 쪽으로 달려들며 말했다.
“다들 아시겠지만 매관은 돈으로 쉽게 매수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얼마 전에 매관주사媒官主事가 잡혀갔었습니다. 엽승덕과 은정랑에게 돈을 받아 혼인 증서를 고쳤기 때문이죠. 혼인 증서도 바꿔 주는 판국인데 돈만 주면 증빙 문서 발급하는 일쯤이야 식은 죽 먹기입니다.”
매관은 이렇게 의문의 일 패를 당하고 말았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얼마 안 되지 않았는가. 격랑이 치는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 누가 감히 또 그런 짓을 저지르려고 하겠는가.
진 부인은 냉소를 지으며 엇섰다.
“아, 증거가 눈앞에 있는데도 아직도 인정을 하지 않는군. 이래도 못 믿겠으면 매파 고씨를 찾아가 물어보시죠! 제 아들이 나이가 있어 당시에 매파 고씨에게 혼처를 구해 달라고 이미 부탁을 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제 얼빠진 아들놈이 주 대소저가 마음에 든다고 했던 그날, 매파 고씨가 마침 저희 가문으로 찾아와 한 소저 이야기를 꺼냈죠. 그때 전 그 소저를 거절하며 매파 고씨에게 고생한 건 알지만, 내 아들놈이 이미 다른 소저를 마음에 들어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매파 고씨가 그 소저가 누구인지 물었고요.
전 그 혼사가 당연히 성사될 거라고 생각했고 매파 고씨도 입이 무거운 사람이니 주 대소저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다들 못 믿겠으면 매파 고씨를 불러와 제가 그런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 물어봐도 됩니다.”
진씨와 주묘서는 순간 얼어붙었고 낯빛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왕 부인과 강 부인도 낯빛이 새파랗게 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매파 고씨는 도성에서 손꼽히는 매파로 오직 귀족들을 대상으로 혼사를 주선했다. 그녀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고 아주 성실하며 일 처리를 확실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함부로 거짓을 입에 담는 자는 절대로 아니었다. 진 부인이 그녀를 거론하니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증인과 물증이 모두 갖춰진 것이다.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진씨와 주묘서에게 향했다.
“어머님……. 어떻게 저희에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엽연채는 눈물을 글썽이더니 돌아서서 그곳을 떠났다.
사람들은 모두 탄식했고, 개중 한 부인이 ‘아유’ 소리를 냈다.
“아유, 가여워라! 저렇게 핍박을 당했다니! 저리 가여운 사람이 또 있을까!”
정자에 있던 귀부인들은 하나같이 난처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방금 전 진씨를 위로하며 그녀를 도와 주 부인을 비난했던 자신들의 행동이 떠올랐다. 이런 엄청난 반전이 있을 줄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부, 부인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저희는 그런 적 없습니다! 그런 적 없어요!”
도저히 이런 시선을 감당할 수 없는 주묘서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진씨는 수치스럽고 또 분노가 치밀어 죽고만 싶은 심정이었고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결국 눈앞이 캄캄해진 그녀는 아예 두 눈을 감고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마님! 마님!”
뒤에 있던 녹지가 황급히 앞으로 나와 뒤에 있는 여종들을 손짓으로 불렀다.
“어서 와서 마님을 들어요.”
그러자 여종 네다섯 명이 우르르 달려들어 진씨를 들고 함께 정자 밖으로 나갔다.
주묘서도 이 자리에 뻔뻔하게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서둘러 진씨 등을 따라 그곳을 떠났다.
진씨 모녀가 도망치듯 떠나자 정자 안의 귀부인과 규수들의 모든 관심은 왕 부인과 강 부인에게 쏟아졌다.
왕 부인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진 부인에게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이… 이……!”
“왜요?”
진 부인은 냉소를 지었다.
등 부인은 그녀를 쳐다보더니 쭈뼛거리며 탓하듯 말했다.
“진 부인, 증거를 갖고 계셨으면서 어째서 빨리 꺼내 놓지 않으신 겁니까? 소문이 퍼졌을 때 바로 꺼내셨어야죠. 주 공자와 부인이 괜히 오해를 받았잖아요.”
그 말을 듣자 왕 부인은 다시 조금 전의 기세를 조금 회복하며 얼른 호응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증거가 있었으면서 왜 빨리 나서서 말을 꺼내지 않으신 겁니까? 그래 놓고 저희가 오해했다고 원망하시면 안 되지요.”
이에 진 부인은 조리 있게 사정을 설명했다.
“그 일이 있은 후 시간이 많이 흘러 그 증빙 문서를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들춰 볼 생각도 하지 않았고요. 최근에 이 일이 이상하게 번지자 그제야 찾아볼 생각을 한 겁니다. 며칠을 찾아봤지만 못 찾아서 포기했는데, 어제 예전에 끼던 옥팔찌가 어디 있나 보다가 패물함에 들어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궁지에 몰린 왕 부인은 새파란 얼굴로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저희는 모두 속은 겁니다.”
그리 말하고는 기가 질렸는지 돌아서서 그곳을 떠났다. 강 부인은 자리에 남아 있을 면목이 없으니 진 부인이 말하는 틈에 이미 꽁무니를 뺀 후였다.
“진 부인, 저쪽에서 물고기나 좀 구경하실까요?”
“좋아요.”
온씨의 제안에 진 부인은 흔쾌히 동의하고 그들 일행과 함께 정자를 떠났다.
* * *
금세 정오가 되어 여종들이 정자 안에 식사를 준비했다. 그러나 진씨와 주묘서는 나타나지 않았고, 강심설만 남아 연회를 주관하고 있었다.
물론 강심설 또한 상황이 반전되었다는 소식을 이미 들었다. 진씨의 며느리인 그녀는 난처하기 짝이 없었으나 그래도 끝까지 남아 손님들을 대접해야 했다.
식사를 마친 후, 손님들은 하나둘 정국백부를 떠났다.
여종을 통해 진씨의 일을 듣게 된 주 백야는 눈앞이 캄캄해지며 곧장 일상원으로 달려갔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서차간 탑상 위에 앉아 있던 진씨와 주묘서는 그가 들어오자 안색이 확 변했다.
“부인! 어, 어 어찌 그럴 수가 있소!”
주 백야는 노하여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진씨는 자신에게 큰소리치는 주 백야를 보는 순간, 눈물을 왈칵 쏟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반문했다.
“제가 뭘요? 네?”
“제가 뭘요라니? 내가 그 일을 한 번 더 이야기해야겠소?”
주 백야는 화가 나 죽을 지경이었다.
“부인 때문에 우리 주씨 가문의 체면은 바닥에 떨어졌소. 게다가 셋째를 곤경에 빠뜨려 탄핵을 받게 만들지 않았소!”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진씨는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봤다.
“정녕 몰라서 묻는 것이오?”
주 백야는 진씨 때문에 미치도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네는 분명 처음부터 그 진지항이라는 자가 그다지 부귀하지 않다고 생각해 퇴짜를 놓았소. 그런데 이제 그자가 탐화가 되니 다시 묘서를 그자에게 시집보내고 싶었던 것이오.
그런데 그자가 어떻게 다시 묘서를 받아들이겠소! 그러니 당신에게 무안을 줬겠지! 그런 상황에서 셋째가 그자와 엽씨 가문 소저의 만남을 주선한 게 무슨 잘못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