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341화 (341/858)

제341화

부인들은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어찌 됐든 간에 남에게 이혼해도 싸다고 말하는 건 도가 지나친 언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 부인만은 움츠러들지 않고 도리어 냉소를 흘렸다.

“부인을 말하는 겁니다.”

온씨는 표정이 확 어두워지더니 역시 찬웃음을 지었다.

“명확히 짚고 넘어가죠. 저는 집안에서 쫓겨난 게 아닙니다. 제가 엽승덕을 버린 거죠. 그때 공당에서 엽씨 가문 사람들이 저에게 집으로 돌아가자고 애원했지만 제가 원하지 않은 것뿐입니다.”

온씨가 이리 응수하자 뒤에 있던 묘씨와 나씨는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왕 부인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사의 부인인 그녀는 부군의 영향을 받아 사람들에게 쏘아붙이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소한 일에도 트집 잡기를 좋아하니, 과연 부창부수였다.

“어쨌든 부인은…….”

“제가 뭘요? 제가 이혼한 게 범죄라도 됩니까?”

온씨가 말허리를 댕강 자르며 반박했다.

“인성이 엉망인 건 엽승덕입니다. 그러니 부윤 대인께서 그 사람에게 벌을 내리셨지요.”

엽연채는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정자 안의 사람들을 쳐다봤다. 명성이 자자한 왕 어사의 부인을 알고 있던 그녀는 냉랭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왕 부인께서는 부윤 대인의 판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시나 보죠? 그럼 이 일을 반드시 왕 어사 대인께 알려야겠군요. 어사 대인께서 정 부윤 대인을 탄핵하도록 말이죠.”

엽연채는 온종일 사람들의 잘잘못을 주시하고 있는 어사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왕 부인의 말이 너무 심했다. 이렇게 참고 넘어가면 어머니가 이혼을 해도 싸다는 말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면 어머니가 앞으로 도성에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겠는가.

묘씨도 얼른 온씨 모녀의 편을 들어 주었다.

“그 일이 일어난 건 제 아들이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뒤에 있던 나씨도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엽씨 가문 사람들조차도 엽승덕이 잘못했다고 인정하자 귀부인들은 거들기 대신 침묵을 선택했다. 따지고 보면 온씨의 일과 엽연채 부부의 일은 별개의 일일뿐더러, 그들은 엽연채와 주운환이 적모에게 불효한 일만큼 엽승덕이 외실과 붙어먹어 정실부인을 핍박했던 일도 만만찮게 싫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여기 모인 이들은 모두 적모이자 정실부인이니 말이다.

체면을 구긴 왕 부인은 자신의 실언을 속으로 후회했다. 그녀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내 냉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부윤 대인은 당연히 틀린 판결을 하시지 않았죠. 그런데… 온 부인은 자식을 참 잘도 키우셨습니다. 온 부인이 기른 여식 좀 보세요.”

“제 여식이 어때서요?”

온씨가 어두운 표정으로 반문했다.

진씨는 찔리는 바가 있으니 온씨와 진 부인의 눈치를 보며 미적지근하게 무마했다.

“왕 부인, 됐습니다. 오늘은 제 생일 축하연이니 체면 좀 세워 주시죠. 다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눠야죠.”

어쨌든 불쌍한 척은 이미 다 했으니 이 사람들이 돌아가면 더욱 열과 성을 다해 주운환과 엽연채의 불효를 퍼뜨리고 다닐 것이었다.

귀부인들 중 일부는 이런 구경을 하길 좋아해 일이 더 크게 번지지 않는 것에 불만스러워하는 듯했다. 하지만 또 일부는 분쟁을 싫어하여 진씨와 함께 상황을 원만히 수습하려 했다.

“맞아요. 다 함께 마조馬弔를 하는 게 좋겠어요!”

그러나 왕 부인은 손해를 보고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사람인지라 눈썹을 치켜올리며 진씨에게 말했다.

“주 부인, 부인은 참 너그러운 분이시네요. 그러니 서자 내외가 부인의 머리 꼭대기에 오르는 거겠죠. 오늘 저희가 모두 이 자리에 있으니 두 사람을 제대로 훈계해야 합니다.”

그 말에 온씨의 낯빛이 확 어두워졌다.

“제 여식을 부인이 훈계할 필요는 없습니다.”

“온 부인이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으니 당연히 저희가 부인을 도와 제대로 가르쳐야죠. 이대로 내버려 두었다가 나중에 감옥에라도 들어가게 되면 후회막급일 겁니다.”

엽연채가 코웃음을 치며 가르침을 청했다.

“저희의 어느 부분이 부인의 가르침이 필요한 건지 도통 모르겠으니 왕 부인께서 알려 주시지요.”

“어디서 모르는 척 잡아떼는 건가?”

왕 부인의 네모난 얼굴이 확 어두워졌다. 그녀가 가장 두고 보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잘못을 알고도 고치지 않는 사람이었다.

정자의 귀부인들도 엽연채를 쳐다보는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방금 전만 해도 온씨를 조금 동정하고 있었는데 지금 건방지게 구는 엽연채의 모습을 보니 다들 분노가 극에 달했다.

이때, 노란색 옷을 입은 열여덟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부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주 부인, 자식 된 도리로 마땅히 웃어른을 공경하고 적모께 효도를 해야지요.”

“등 부인의 말이 일리가 있소.”

왕 부인이 맞장구를 쳤다.

“등 부인도 서자의 내자입니다. 하지만 적모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죠. 작년에 적모와 함께 거리에 나갔는데 마차 한 대가 달려들자 등 부인이 바로 적모의 앞을 막아섰습니다. 본인은 마차에 부딪혀 다리를 다쳤지만 적모는 털끝 하나도 다치지 않았죠.”

이 말에 등 부인은 부끄러워하며 미소를 지었고, 옆에 있던 뾰족한 얼굴의 귀부인은 호호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제 아들과 며느리들이 모두 효성이 지극하답니다!”

엽연채는 입꼬리를 끌어오렸다. 예로 든 이야기가 어째 『효경』의 내용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고부는 『효경』을 홍보하러 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감히 여쭙겠습니다. 저와 제 부군이 도대체 어떤 잘못을 했단 말입니까?”

“아직도 모르는 척하는 겐가!”

왕 부인이 차가운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이렇게 낯짝이 두꺼울 수가……! 아직도 인정하지 않고 있네요.”

강 부인이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왕 부인이 재차 목청을 드높였다.

“적모와 시누이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입니다! 장원 급제한 주 공자가 엽씨 가문 소저와 탐화를 연결해 준 걸 누가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정작 그 누이동생은 아직도 출가를 하지 못했죠!

주 소저의 혼사 때문에 주 부인이 마음을 졸여 머리가 다 하얗게 셀 지경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주 공자가 훌륭한 신랑감인 탐화를 내자의 친정 고모에게 소개해 주고 누이동생은 제쳐 놓을 거라고 어디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적모와 누이동생을 사람으로도 안 보는 겁니다.

거기다 주 백야를 부추겨 주 부인과 주 소저를 꾸짖게 했죠. 그래서 부인과 소저가 집에서조차 머무를 수가 없어 떠밀리듯 별장으로 쫓겨난 것 아닙니까.”

이에 엽연채는 진씨와 주묘서를 쳐다보더니 눈시울을 붉혔다.

“어머님, 큰아가씨. 이렇게 저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시는 겁니까? 제가 언제 친소 구분을 하지 못했습니까? 그 진 공자님은 큰아가씨에게 소개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큰아가씨가 마음에 안 들어 해서 다시 저희 고모에게 소개한 것 아닙니까!”

진씨와 주묘서는 그 말을 듣더니 속으로 찔리는 바가 있어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그러나 이미 일이 이 지경까지 와 버렸으니 순순히 인정할 수는 없었다.

주묘서는 눈시울을 붉히며 억울한 목소리로 부정했다.

“허… 허튼소리 하지 말아요!”

“이봐요. 주 소저.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그때 내가 와서 중매를 서지 않았는가!”

온씨가 성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부인은 엽씨의 어머니이니 당연히 딸과 사위의 편을 들겠죠.”

강 부인이 또 나서서 한마디 했다.

주묘서는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억울했다. 진지항은 원래 저를 만나려고 했고 저에게 반했었는데, 그땐 자신이 그를 원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지금 자신이 그를 원하고 있는데, 그는 다른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려고 하니 울화가 치밀어 오르고 너무도 분했다.

“아이고… 가여워라. 울지 마요…….”

그녀 옆에 앉아 있던 규수들은 얼른 손수건을 건넸다.

“어떻게 이런 오라버니와 새언니가 있을 수 있죠. 결국 서출이니… 적모와 누이동생을 어디 사람으로 보려고 하겠습니까? 적모와 그 자식들이 무너지기를 바랄 테고 그래야만 기뻐하겠죠.”

“아직 체면이 덜 깎인 모양이죠?”

이때, 분노로 치를 떠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 전지 문양이 들어간 갈색 배자를 입은 둥근 얼굴의 한 귀부인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는 냉소를 지으며 진씨와 주묘서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진씨는 지난번 진씨 가문에서 당했던 일이 떠오르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러나 이 일은 아무런 증거가 없으니 시치미를 뚝 떼고 인정하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진씨는 말을 더듬으며 반박했다.

“무슨… 망발을 하는 겁니까?”

“내가 망발을 했다고요?”

진 부인은 냉소를 짓더니 정자 안의 귀부인과 규수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제가 여러분께 할 말이 있습니다! 확실히 밝히지 않으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을 것 같네요.”

귀부인들은 어리둥절해하며 일제히 진 부인을 쳐다봤다.

“그…….”

주묘서는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가 진 부인을 제지하려고 하자 뜻밖에도 진씨가 그녀를 품 안으로 끌어당기더니 입을 틀어막았다.

주묘서는 어리둥절했지만 말을 하지 말라는 의미라는 걸 이해했다. 그녀는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보니 당혹스러웠고 또 한편으론 겁도 났다. 그래서 고분고분 모친의 말을 들으며 찍소리도 내지 않았다.

진 부인이 말을 이어 갔다.

“작년 유월, 엽 노부인의 생신 축하연에서 제 얼빠진 아들놈이 주 대소저와 함께 탄기를 했었습니다. 그러더니 집으로 돌아와서 혼담을 꺼내 달라고 성화를 부렸죠. 그래 제가 온 부인에게 중매를 서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주씨 가문에 가서 의중을 물어봐 주십사 하고요.

그런데 주 부인은 그 혼사를 원치 않았습니다. 원치 않는다고 정확히 말한 건 아니고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만 사실 원치 않는 것이었죠. 결국 그 생각을 일 년 가까이 했고, 그동안 대소저를 데리고 다니며 이곳저곳에 혼담을 꺼냈습니다.

지난달에 제 얼빠진 아들놈이 탐화가 되고 나서야 여기 주 부인께서 다시 혼사를 원한다고 하더군요. 생각을 마쳤다며 대소저를 우리 아들에게 시집보내겠다고 말이죠.”

말을 하던 진 부인은 기가 차서 실소를 터뜨렸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설마 그럴 리가.

진씨는 순간 켕기는 눈빛과 표독스러운 눈빛을 동시에 번뜩였으나 여전히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녀와 주묘서는 참고 있어야만 했다. 중간에 진 부인의 말을 끊으려고 하면 정말 찔리는 게 있는 사람처럼 보일 테니 말이다.

“이건 저희 가문 사람들을 바보 취급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희 진씨 가문이 그렇게 만만하답니까? 그쪽에서 시집보내기 싫으면 안 보내고 시집보내고 싶다 하면 우린 기뻐하며 그 댁 소저를 맞이해야 한답니까?

그날 저희 가문에 찾아오셨기에 전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서로 속내를 잘 알고 있으니 여기서 그만하자고요. 혼사를 맺을 수 없게 되자 주 부인은 그제야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후 우리 가문은 엽씨 가문 소저와 만남을 가졌고 그 소저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일이 그렇게 되니 주 부인과 주 대소저는 셋째 공자 부부를 난처하게 하려고 일부러 별장으로 갔던 겁니다.

‘효’라는 말로 사람을 핍박하고, 또 셋째 공자가 서자이니 탄핵을 받게 만든 겁니다. 그리고 이젠 또 억지를 부리며 본인이 전에 우리 가문을 탐탁지 않아 했다는 사실을 죽어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네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