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340화 (340/858)

제340화

부부는 함께 일상원으로 향했다. 문 입구에서 백 이낭과 주묘화와 마주쳤는데 엽연채와 주운환을 쳐다보는 백 이낭의 얼굴엔 어색함이 가득했다. 지금 일이 너무 난감한 상황으로 번졌기 때문이었다.

당시 온씨가 혼담을 꺼내러 왔을 때 자신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그런데 거절했던 진씨가 다시 후회하며 진 부인을 찾아갔고, 면전에서 진 부인에게 체면이 깎인 후 억지를 부리며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것도 모자라 이젠 주운환이 탄핵을 당하게 만들어 일이 난감한 상황으로 커진 것이었다. 그런데 자신은 엽연채 부부를 위해 나서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엽연채와 주운환을 본 백 이낭은 뜨끔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진씨는 안주인이고 더욱이 과거엔 상전이었으니 어찌 나설 수 있겠는가? 그런 이유로 백 이낭은 줄곧 방 안에 숨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지금 주운환 부부와 마주치게 되자 백 이낭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올렸다.

“셋째 도련님, 셋째 부인.”

“오라버니, 작은새언니.”

주묘화도 백 이낭의 팔을 감싸 안더니 쭈뼛거리며 그들을 불렀다. 이에 엽연채는 냉담한 목소리로 짧게 대답할 뿐이었다.

“늦었으니 어서 들어가죠.”

그녀는 백 이낭과 주묘화의 입장이 이해는 됐지만, 그래도 좋은 마음을 갖기는 어려웠다.

주묘화는 엽연채의 냉랭한 모습을 보고 눈시울이 붉어졌으나 엽연채와 주운환은 이미 안으로 들어선 후였다.

일상원 서차간.

진씨와 주 백야는 상석에, 주묘서는 진씨 옆에 바짝 붙어 백합 문양이 들어간 수돈에 앉아 있었다. 강심설과 주비양도 이미 도착한 후였다.

진씨의 생일 축하연을 열지 않은 지 어느새 십 년이 되었다. 그 전, 그러니까 정국백부의 가세가 기울기 전엔 진씨는 나이가 어린데도 생일 축하연을 성대하게 치렀었다. 이제 마침내 생일 축하연을 다시 치르게 되었다지만, 주운환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자 진씨는 기분이 또 언짢아졌다.

“셋째 도련님, 셋째 마님, 백 이낭, 둘째 아가씨께서 오셨습니다.”

밖에서 녹엽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씨가 살짝 아랫입술을 짓이겨 물었다. 자신이 억지를 부린 게 있으니 마음이 좀 켕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얼른 다시 차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쨌든 주운환이 그로 인해 벌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자 또다시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주렴이 걷히고 주운환과 엽연채가 함께 들어왔다.

주운환은 집에서 입는 옅은 문양이 들어간 연청색 도포를 입었다. 청수하고 잘생겼지만 서늘함이 느껴지는, 단청수묵화 같은 아름다운 얼굴에는 비웃음이 어려 있었다.

그는 장미처럼 요염한 자태를 뽐내는 절세미인과 함께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여유롭게 걸어오는 두 사람에게선 광채가 나며 우아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아무리 봐도 실의에 빠진 사람들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자 진씨의 가슴속에서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분노가 들끓었다. 그녀는 주운환이 이번 소란으로 인해 골머리를 썩이기를, 또 저를 보고는 분노가 극에 달했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지금 주운환에게서는 그 비슷한 모습도 찾아볼 수가 없으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아버지, 어머니.”

“아버님, 어머님.”

두 사람은 앞으로 다가서더니 진씨와 주 백야에게 예를 올렸다.

“그래. 어서 자리에 앉거라.”

주 백야가 진씨를 쳐다보니 그녀는 굳은 얼굴로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여전히 주운환에게 화가 나 있는 게 분명하니 주 백야는 조금 긴장이 됐다.

주묘서는 기대와 달리 실의에 빠진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없어 역시 기분이 언짢았지만, 먼저 억지를 부린 건 자신인지라 찔리는 바가 있어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아버지, 어머니.”

“나리, 마님.”

주묘화와 백 이낭도 앞으로 다가서서 예를 올렸다.

“자리에 앉거라.”

주 백야가 인사를 받자 두 사람도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비 이낭과 주종과도 도착했다. 그러자 주 백야는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다들 축하 인사를 올리거라!”

주비양은 주학해를 안은 채 강심설, 주묘서와 함께 한 줄로 섰고, 그 뒤로 주운환 부부와 주종과, 주묘화가 나란히 섰으며, 두 이낭은 가장 뒷줄에 섰다.

그들은 진씨를 향해 무릎을 꿇고 예를 올리며 ‘만수무강하세요, 생신 축하드립니다.’ 등 축원의 말을 건네며 그녀의 생일을 축하했다.

그런 후 다시 자리에 앉아 준비한 선물을 진씨에게 건네기 시작했다. 강심설과 주비양은 비취가 상감된 참새 머리 모양 금잠과 투명한 광택이 도는 비취 팔찌, 수홍색 무늬 비단으로 직접 만든 말액 두 개를 선물했다.

강심설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희가 가진 게 없어 그저 이런 것들로 효도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중에…….”

그녀는 자신이 부유해질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적어도 주학해가 자라서 과거 시험을 치러 공명을 얻어야 가능해질 텐데 그러려면 십여 년은 기다려야 했다.

강심설은 엽연채 부부가 떠오르자 씁쓸한 기분이 들어 그저 허허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중에 저희도 출세하게 되면 어머님께 지극정성으로 효도하겠습니다.”

사실 올해는 그래도 팔찌 하나를 더 선물한 것이었다. 작년에 선물한 건 장신구 하나와 직접 만든 물건이 전부였다.

주종과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옥 부처를 선물했다. 옥의 품질을 보니 고작 은화 열 냥이 좀 넘는 물건에 불과해 보였다. 예전이었다면 진씨는 주종과를 난처하게 했을 테지만 이젠 주운환이 있으니 그에게 트집을 잡는 것조차 귀찮았다.

주종과가 선물을 건네고 나니 주운환과 엽연채의 차례가 되었다.

이번 선물은 주운환이 준비했다. 진씨의 생일을 위해 엽연채의 혼수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선물은 기수장춘백석분경琦壽長春白石盆景과 비취 패옥佩玉이었다. 그다지 비싸지도 않고 투명도도 평범한 물건이었다.

그 밖에는 엽연채가 직접 만든, 구름 문양과 꽃 문양을 수놓은 술 달린 신발 한 켤레도 있었다.

진씨는 이 선물을 보고는 표정이 싹 변하더니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하나같이 그다지 값어치가 있어 보이지 않았고 품질을 봐도 은화 백 냥도 나가지 않을 물건이었다.

“셋째 도련님과 동서는 효심이 참 깊네.”

강심설이 속마음과 반대되는 말로 비꼬았다.

“형님처럼 효심이 깊은 거죠.”

엽연채가 냉담한 미소를 지으며 받아치자 순간 말문이 막힌 강심설은 냉소를 짓더니 이렇게 말했다.

“가난한 우리가 어떻게 서방님과 동서에게 비할 수 있겠어? 서방님은 관리이고 동서는 챙겨 온 혼수가 많잖아.”

“아무리 그렇다 해도 큰아주버님과 형님이 준비한 선물보다 좋은 걸 드릴 수는 없는 법이지요.”

엽연채는 코웃음을 쳤다.

“이…….”

그 말에 강심설의 칙칙한 낯빛이 순간 더 어두워졌다. 그녀가 재차 입을 열려는 찰나, 옆에 앉아 있던 주비양이 냉랭한 목소리로 엽연채 편을 들었다.

“제수씨 말이 일리가 있소.”

말문이 막힌 강심설은 주비양을 쳐다봤다. 여전한 무표정이 눈에 들어오자 그녀는 가슴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9년 전, 군주에게 파혼을 당한 후로 충격을 받아 의기소침해진 그는 하루 종일 멍하니 그 여인을 생각하거나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릴 뿐, 자기 아들조차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그가 지금 엽연채의 편을 들어 주자 강심설의 눈빛에 질투와 원망이 어리었다.

“그렇고말고. 손윗사람보다 좋으면 안 되지.”

주 백야가 말했다.

“늦었으니 묘서와 묘화도 어서 선물을 드리거라. 그런 다음 백로원白露園으로 가서 귀빈들을 맞이하자꾸나.”

주묘서와 주묘화가 선물을 건네자 엽연채 등은 밖으로 나갔다.

이런 연회는 보통 백로원에서 치렀다. 여손님들은 호수 위에 일렬로 지어진, 처마가 위로 솟은 커다란 팔각정자 세 곳에서 대접했고, 남손님들은 호수 오른쪽 기슭에 자라난 대나무 숲 아래 낭가에서 대접했다. 둘 다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손님들은 잇달아 저택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원래 진씨가 집안일을 모두 관장했는데 오늘은 그녀의 생일 축하연이니 대신 강심설과 주묘서가 함께 일을 맡았다. 두 사람은 밖으로 나가 손님들을 맞이했다. 엽연채는 주묘화를 데리고 여종들을 부리며 차와 간식거리 등을 준비했다.

사시巳時(오전 9시~11시) 무렵이 되니 손님들은 거의 다 도착했다.

오늘은 여손님들이 유달리 많이 참석했다. 주운환이 이번 과거 시험의 장원 급제자라고 해도 이렇게 많이 올 정도는 아니었다. 다들 며칠 전에 일어난 소동을 궁금해하며 대체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온 것이었다.

주 백야는 아들 셋을 데리고 호수 기슭의 낭가에서 남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며칠 전에 일어난 진씨의 일에 대해 반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주 백야는 아무도 그 일을 꺼내지 않자 기분이 아주 좋았다.

주 백야는 한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하하’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호수 위에 지어진 정자 쪽을 바라봤는데 귀부인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주 백야는 그 떠들썩한 모습을 보고는 그 소문도 다 잊혀졌으리라 생각했다.

정자 쪽은 확실히 떠들썩했다. 그러나 즐거워서 복대기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탄식이 흘러나와 그런 것이었다.

진씨는 울적한 표정으로 기다란 장식용 등받이가 달린 붉은색 걸상 위에 앉아 있었다. 손님들은 거의 다 자리했고, 강심설만 밖에서 분주히 움직일 뿐 주묘서는 이미 정자로 돌아와 진씨 곁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녀 또한 억지 미소를 지은 채였다.

얼마 전에 일어난 그 일을 모르는 귀부인이 어디 있겠는가? 그들은 두 사람을 쳐다보며 걱정스러워했다.

“주 부인, 크게 상심할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에휴.”

제일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왕 부인이었는데 그녀는 바로 왕 어사의 아내였다. 조정에서 주운환을 가장 극렬하게 탄핵했던 왕성촌의 아내 말이다.

“그렇게 불효막심한 사람은 난생처음 봤습니다.”

강심설의 어머니인 강 부인이 거들었다.

“맞습니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둥근 얼굴의 귀부인이 차갑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동조했다.

“전 그런 서자들을 가장 증오합니다. 저희 집 서자가 감히 그리 행동했다면 벌써 내쳤을 겁니다.”

그러자 진씨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다들 그 아이를 능력 있는 인재라고 하는데, 제가 뭘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능력 있으면 효를 다하지 않아도 된다고 누가 그럽니까!”

녹색 옷을 입은 또 다른 귀부인이 목소리를 냈다.

“능력이 있으면 적모의 머리 꼭대기 위에 올라서도 된답니까?”

“전에는 그래도 말을 듣는 편이었는데, 내자를 얻은 후로… 이 지경까지 되었습니다.”

진씨는 그렇게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제가 보기엔 둘 다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특히 그 엽씨는 시집온 후로 적모를 안중에 둔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자녀교육도 제대로 못 한 사람이니 이혼에도 이유가 있을 겁니다. 엽승덕과 은정랑만 탓할 일도 아니죠.”

왕 부인이 말을 받으며 온씨를 거론했다.

“지금 누구 이야기를 하는 겁니까?”

이때, 누군가의 냉소가 울려 퍼졌다. 정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보니 엽연채가 온씨, 묘씨, 엽영교, 나씨를 데리고 다리를 건너오는 모습이 보였다. 진 부인도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방금 전 차게 웃은 사람은 바로 온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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