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338화 (338/858)

제338화

극장에 모인 사람들은 이렇게 떠들어 댔다.

“이 일 때문에 주씨 가문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대. 그 댁 부인이 얼마나 상심을 했겠어. 그런데 주 백야는 장원 급제한 주 공자가 관리가 되었으니 그 공자의 편을 들며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했대. 그래서 몹시 실망한 그 댁 부인과 첫째 소저가 이튿날 짐을 꾸려 별장으로 가 버렸대.”

“아이고,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고 만 거네. 이렇게 참담한 일이 다 있나!”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운환을 벌하라는 상주서가 빗발쳤고, 결국 황제의 책상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이번 과거 시험의 장원인 주운환은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의 질투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그런 데다 한림원에 들어간 후로 그는 늘 황제의 부름을 받고 상서방에 가서 고문 역할을 하여 그보다 직위가 높은 시독과 시강의 기회를 빼앗았으니, 다른 진사들 사이에서 한껏 두각을 드러내는 그를 많은 사람들이 눈에 거슬려 했다.

그런데 이제 약점을 잡게 되었으니 큰일이든 하찮고 사소한 일이든 간에 죽자 살자 그를 탄핵하는 것이었다.

조정의 어사들 중 가장 과격한 인사인 왕성촌이 먼저 나서서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 주 수찬은 친소도 구분하지 못하는 자로 적모를 몰아붙여 집을 떠나게 만들었사옵니다. 불효부제한 자이니 중벌을 받아야 마땅하옵나이다!”

“맞습니다! 여기에 주 백야도 서자를 두둔하고 있사옵니다. 서자를 총애하고 적자를 박대하는 것이지요. 주 수찬이 장원 급제를 한 건 황제 폐하께서 은혜를 베푸신 덕분이옵니다. 그런데 주 수찬은 적모를 업신여기고 적모와 누이동생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이는 강상綱常(삼강三綱과 오상五常을 아울러 이르는 말.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이름)에 위배되는 것이며 황제 폐하의 은혜를 크게 저버리는 행위이옵니다. 적모에게도 불효하는데, 어찌 충심을 다할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겠사옵나이까?”

말을 하면 할수록 그 내용은 심각해져 불충, 불효, 불의라는 말까지 튀어나오게 되었고 하좌에 자리한 관원들의 어조는 더욱 격양되었다.

수염과 머리카락이 모두 하얗게 센 인자한 얼굴의 한 노인은 한쪽에 서서 입도 뻥끗하지 않고 있었다. 이 사람은 바로 유 재상이었다.

뒤쪽에 서 있던 진무는 초조해서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지금 자기 입장에서는 감히 여러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역풍을 맞아 욕만 더 먹게 될 것이었다.

장찬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는 주운환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고 그뿐만 아니라 지난번에 엽연채에게 큰 도움을 받기도 했다. 장씨 가문을 구했다고 봐도 무방하니 그는 주운환이 된서리를 맞는 걸 원치 않았다.

생각을 하던 장찬은 이렇게 입을 열었다.

“왕 어사, 이 일은 아직 조사하여 밝혀진 것이 없네.”

그러자 왕성촌은 고개를 돌려 냉랭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장 대인과 엽씨 가문은…….”

왕성촌은 그와 엽씨 가문은 사돈이고 주씨 가문과도 혼인으로 이어진 관계이니 당연히 주운환의 편을 드는 것이라고 몰아붙이려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을 해 보니 얼마 전에 장찬은 사돈인 엽학문을 대리시로 끌고 가서 엽씨 가문과 사이가 틀어졌다고 볼 수 있었다. 더욱이 주운환과 장박원은 아내 문제로 여러 번 웃음거리가 됐기에 장씨 가문과 주씨 가문은 감정의 골이 깊었다. 그러니 장찬이 주운환을 돕지 않아야 하는데 그가 나선 것이었다.

상석의 정선제는 이마에 핏줄이 툭툭 불거졌다. 대제는 효도를 가장 중요한 미덕으로 여겼고 그 또한 불충하고 불효한 자를 가장 싫어했다.

하지만 주운환의 얼굴과 그가 가진 재능을 떠올렸다. 정선제는 여전히 주운환을 중요하게 보기에 당연히 그가 다치는 걸 원치 않았다. 소 황후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으니 더욱 그랬다.

정선제는 주운환을 편드는 장찬을 보더니 그편에 의견을 같이했다.

“대리시경의 말이 옳다.”

그러자 장찬은 얼른 공수하며 말했다.

“이 일은 아직 제대로 조사되지 않았으니 그저 몇 마디 말로 불충, 불효, 불의를 언급해서는 아니 되옵니다.”

장찬을 쳐다보는 형부상서 요양성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요양성은 태자비의 부친이며, 그의 아들은 바로 전 호부우시랑戶部右侍郞이었던 요리였는데 얼마 전 장찬에 의해 축출되었다. 그런데 지금 장찬이 주운환을 편드는 모습을 보니 그는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게다가 왜 하필 또 엽씨 가문일까? 태자에게 일이 생긴 후 되돌아보니 작년에 일어난 몇 개의 사건들은 어쩐지 엽씨 가문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를 들면 묘기화는 엽씨 가문 친척인데 엽영교에게 무리하게 장가를 들려고 했고, 그리함으로써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고 했다.

그 후 엽승덕이 외실을 끼고 살던 일에 뜻밖에도 태자가 연루되었고, 결국 자신의 아들도 자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 이 일까지도 엽씨 가문과 관계가 있으니 정말이지 복잡하고 기이한 관계이지 않은가. 이리저리 엉켜 있어도 결국에는 한 가지 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요양성은 엽씨 가문 사위인 주운환이 마음에 안 들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어쨌든 주 부인이 쫓기듯 떠난 건 사실이옵니다.”

그러자 장찬이 미간을 찌푸리며 흐름을 틀었다.

“차라리 주 수찬을 불러 물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고 사료되옵니다.”

“물어 봤자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양성은 ‘흥’ 하고 콧바람을 불었다.

“그럼 주 수찬을 불러오너라.”

정선제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명했다.

뒤에 있던 어린 환관이 대답을 하고선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고, 잠시 후 주운환이 대전으로 불려 왔다. 그는 백로 문양이 들어간 진녹색 관복을 입고 있었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하좌에 서서 위를 향해 예를 올렸다.

“황제 폐하를 뵈옵나이다.”

“그래.”

정선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시비를 따졌다.

“어사가 불효를 이유로 너를 탄핵했다. 네가 적모와 누이동생은 안중에도 없고 오늘 적모를 내쫓기까지 했다고 말이다.”

그러자 왕성촌은 또다시 친소도 구분을 못 한다며 거들었고, 주운환은 이에 차분히 반박했다.

“진 편수는 소신의 누이동생과 만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누이동생이 그자를 거절했기에 다른 사람에게 소개한 것이옵니다.”

“발뺌하지 말게나. 무슨 증거라도 있는가?”

왕성촌이 냉큼 쏘아붙였다.

“없습니다.”

주운환의 담담한 대꾸에 정선제는 미간을 문지르며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주 수찬에게 반년 동안 감봉 처분을 내린다. 그리고 앞으로 3개월 동안 매일 『효경』을 필사하거라.”

왕성촌과 요양성 등은 이 처벌에 그런대로 만족했다. 그들도 이런 아녀자들의 일로 중벌을 내리게 한다는 건 불가능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주운환이 상서방에 자주 드나들기란 이제 그른 것이다. 황제가 또 이 ‘불효자’를 불러 고문 역할을 하게 한다면 그가 저지른 불효를 눈감아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백관들 중 여러 관원들이 넌지시 유 재상을 쳐다보니 그는 슬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주운환이 한림원으로 돌아와 보니 한림원 사람들은 전부 그가 벌을 받은 걸 알고 있었다. 다른 집무실 사람들은 그저 속이 시원할 따름이었다.

‘쯧쯧, 그렇게 날뛰더니 결국 큰코다쳤구나!’

주운환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앉자 진지항은 걱정스러운 낯으로 다가갔다.

“운환아…….”

“별일 아닙니다.”

주운환은 선지 한 장을 펼쳤고 조범수는 고소해 죽겠다는 눈빛으로 벌을 받은 주운환을 쳐다보며 말했다.

“주 수찬, 먼저 장서각藏書閣으로 가서 『효경』을 가져와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럴 필요 없습니다. 다 외웠거든요.”

주운환은 그리 말하며 먹을 갈더니 『효경』의 내용을 적기 시작했다.

절반쯤 적으니 장원학사 필 씨가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조회가 끝난 것이었다. 그 역시 고소하다는 눈빛으로 주운환을 쳐다봤다.

이때, 어린 환관 하나가 바깥의 회랑을 지나 을 집무실로 향했고 잠시 후 그 어린 환관이 전여를 데리고 떠나는 모습이 보였다. 상서방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조범수는 시독이나 자기가 아닌 전여가 불려가는 모습을 보니 좀 거북한 기분이 들었다.

‘이번에도 날 부르지 않다니!’

하지만 전여가 재상의 손녀사위라는 사실이 떠오르자 또 이해가 갔다.

오시가 되자 주운환과 진지항은 퇴청하여 궁 밖으로 나왔고, 두 사람이 말과 마차가 세워져 있는 차마방車馬坊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진지항은 주운환을 구석으로 끌어당기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 나 때문이다. 아니면 네가 벌 받을 일도 없었을 거야. 아무튼 이렇게 됐으니 이 일은 분명히 밝혀야 한다.”

“네, 맞습니다.”

주운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하지만 서두를 것도 없겠지요.. 며칠만 더 기다려 봅시다. 이 일은 우리에게 도움이 될 테니.”

“정말?”

진지항은 어리둥절했다.

“형님은 오늘 대전에 가지 않았으니 관리들의 감정이 얼마나 격양되어 있었는지 보지 못했죠. 다들 절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상태였습니다.”

주운환이 말했다.

“그럴 수밖에.”

진지항은 냉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넌 조정에 들어가자마자 황제 폐하의 눈에 들었잖니. 그러니 수년 동안 고생해서 빛을 보게 된 사람들에겐 눈엣가시였던 게지. 그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앞길도 막게 됐고.”

여기까지 말한 진지항은 순간 멍해지더니 이내 웃으며 말했다.

“아, 알겠다. 사람들이 함부로 다른 죄를 만들어 널 처리하려고 하면 일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으니, 그럴 바에야 차라리 불효의 죄를 쓰는 게 낫다고 생각한 거구나! 이 죄는 말로 설명하기 좀 애매하고 처벌도 비교적 가벼울 테니까.”

주운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순 바보는 아니었군요.”

“그게 무슨 말이냐?”

진지항은 입꼬리를 삐죽거리며 반박했다.

“어찌 됐든 간에 나도 탐화다.”

“학식이 뛰어나다고 꼭 머리가 좋은 건 아니죠.”

이 말에 진지항은 하마터면 사레가 들릴 뻔했다. 그는 콧방귀를 뀌며 재차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 죄명 때문에 오점이 생겨 버렸다. 조심하지 않으면 이 오점은 점점 더 커져서 걷잡을 수 없을 게다.”

“그러니 지워야죠.”

주운환은 그리 말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가요.”

“어떻게 지울 건데?”

진지항은 어리둥절해하며 일단 그를 따라갔다. 주운환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때가 되면 형님도 알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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