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335화 (335/858)

제335화

도성의 명문가들 사이에는 소식이 빨리 도는 법으로, 진씨 가문이 엽씨 가문에 찾아가 혼담을 꺼냈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퍼지게 되었다.

진지항은 걸출한 청년 인재인데 그를 마다하는 가문이 어디 있겠는가? 수많은 명문가 소저들이 그를 신랑감으로 마음에 두고 있었다.

이제 진지항의 혼사가 결정되었으니 매파는 곧장 그를 마음에 두고 있는 각 가문의 저택을 찾아가 진 공자가 정혼을 했으니 더 이상 기다리지 말고 다른 혼처를 찾아보라고 전해 주었다. 그러자 가문마다 진지항이 어느 집 규수와 정혼을 했냐고 물어봤고 매파는 이렇게 답했다.

“엽씨 가문의 엽영교 소저요!”

그러자 사람들은 순간 진씨 가문이 정신이 나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멀쩡한 명문가 규수들을 놔두고 하필이면 몰락한 가문에 평판도 몹시 나쁜 엽씨 가문 소저를 며느리로 들이려고 하니 말이다.

조범수도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오늘은 주운환 대신 그보다 관직이 높은 시독이 상서방에 들어간 참이었다.

“지항아, 정말 축하한다. 네가 어린 장원의 고모부가 될 줄은 몰랐다.”

조범수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진지항은 득의만면한 얼굴로 하하 웃더니 고개를 돌려 주운환을 쳐다보며 말했다.

“조카사위가 자신을 아껴 줄 손윗사람이 한 명 더 생기길 바라니 그 뜻에 따라 줄 수밖에 없죠.”

그 말에 주운환은 입꼬리를 삐죽거렸다. 전에는 자신이 이 어리숙한 사람을 놀렸는데 이젠 이자가 자신의 고모부가 되었다고 희희낙락, 머리 꼭대기에 올라 사람을 골리는 것이었다.

‘영 후회되는데 어쩌지? 아직 늦지 않은 거 아닐까?’

“운환아? 우리 조카사위?”

진지항이 그를 다정하게 부르자 주운환은 하마터면 손에 들고 있던 족제비털 붓을 부러뜨릴 뻔했다.

“운환아, 편애가 너무 심한 것 아니냐? 지항이와는 사이가 좋아 고모마저도 소개해 주었구나.”

조범수는 속으로 질투심을 느꼈고 그의 말투에는 음흉한 느낌이 조금 묻어 있었다. 주운환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그를 힐끗 쳐다보더니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대꾸했다.

“형님도 스무 살만 더 어렸고 장가를 들기 전이었다면 저희 고모를 소개해 드렸을 겁니다.”

조범수는 그 말을 듣더니 표정이 확 굳었다. 자신은 이미 마흔네 살이니 몇 년 후면 쉰 살 가까이 된다. 설령 자신에게 아내를 버리고 새장가를 들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이번 과거 시험 합격자들 중에서 남편감을 고르는 사람들은 이쪽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었다.

게다가 자신에겐 아내만 있는 게 아니라 아들도 둘이나 있었고 그 밑으론 손자와 손녀가 줄줄이 있었다. 가장 큰 손자는 이미 서원에 입학하여 글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 사람들이 과거 시험 합격자들 중에서 남편감을 고른다 해도 자신의 차례는 오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의 기회도 주운환과 진지항만큼 많지 않았다. 황제도 활기 넘치는 젊은이들을 육성하기를 더 선호하리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조범수는 고개를 돌려 빼어나게 잘생긴 주운환의 얼굴과 득의양양한 진지항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속으로 질투심을 불태웠다.

* * *

한편, 두 가문이 혼사를 정했다는 소식은 진씨의 귀에도 빠르게 전해졌다.

“밖에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녹지가 우울한 표정으로 고했다.

“진씨 가문이 엽씨 가문을 찾아가 혼담을 꺼냈는데 그 상대가 엽영교 소저였다고 합니다.”

“다른 가문도 아니고 하필이면 엽씨 가문이라는 말이냐?”

진씨는 화가 치밀어 올라 손으로 가슴을 움켜잡았다. 그러잖아도 뼈에 사무치도록 진씨 가문을 미워하고 있었는데 감히 이렇게 또 속을 뒤집는 것이었다.

그녀도 진씨 가문은 단념한 상태였고, 그 가문이 과연 어떤 가문의 규수를 며느리로 들일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엽영교를 며느리로 들일 줄이야.

“요즘 엽영교의 평판은 아주 엉망입니다. 가세가 기울었을 뿐만 아니라 맹씨 가문 공자와의 관계도 불투명하죠.”

권의에 앉아 있던 강심설이 조롱 어린 투로 말을 이어갔다.

“다른 가문이었다면 이런 여인을 집안으로 들이려고 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 알겠네요. 분명 동서가 중간에서 다리를 놔 준 겁니다.”

그 말에 진씨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분명 엽씨 그 망할 것이 다리를 놓아 준 것이다! 틀림없이!’

“제가… 갑자기 떠오르는 일이 있습니다.”

녹지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날… 그날 셋째 도련님께서 진 공자를 집으로 불러오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큰아가씨가 그쪽으로 건너가셨는데…….”

녹지는 말을 하다 말고 멈추었다. 진씨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씨는 그 일이 다시 떠오르자 더더욱 치를 떨었다. 자신이 진씨 가문에서 모욕을 당하게 된 계기가 바로 그 일이었다. 주운환이 진지항을 데려오지 않았다면 자신은 결코 진씨 가문과 다시 사돈을 맺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당연히 나중에 진 부인에게 체면을 깎일 일도 없었을 것이다.

“녹지야, 무슨 생각에 빠져 있는 게냐? 어서 말하지 않고.”

강심설이 재촉하자 겁먹은 녹지는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진씨를 쳐다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날… 제가 말을 전하러 갔을 때 엽영교 소저도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 말에 진씨와 강심설은 눈빛이 멍해졌다. 이어 진씨는 두 눈을 부릅뜨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뭐라고 했느냐?”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이냐?”

강심설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주묘서를 찾았다.

“그 소저도 자리에 있었다면 큰아가씨가 왜 말을 하지 않았단 말이냐? 가서 큰아가씨를 모셔오너라.”

녹지는 낯빛이 확 변하더니 돌아서서 밖으로 뛰어나갔다.

잠시 후 녹지는 주묘서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주묘서는 침울한 표정으로 주렴을 확 밀치며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진지항이 정혼했다는 건 저도 알고 있어요. 일부러 저에게 알려 주지 않으셔도 된다고요!”

강심설의 눈빛에 조롱기가 스쳤다.

“큰아가씨, 그럼 그 공자와 정혼한 사람이 누군지는 아세요? 엽영교예요. 엽연채의 고모요!”

“뭐라고요?”

그 말에 주묘서는 넋이 나가 버렸다.

“그날 네가 가서 그 애들과 교자를 빚었을 때 엽영교도 자리에 있었느냐?”

진씨가 물었다.

“없었어요! 그 사람이 거기에 왜 있었겠어요!”

주묘서는 말도 안 되는 걸 묻는다 싶었다.

“정말로 있었습니다.”

녹지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렇게 말을 보탰다.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이 저희 가문에 드나들었으니 당연히 본 사람이 있습니다. 서과원 쪽에는 사람이 적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끔 두 여종이 가 보곤 합니다.

취아가 자기가 봤다고, 이른 아침부터 엽영교 소저가 저희 가문에 왔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소저는 인척이고 셋째 마님을 찾아온 것이니 별로 말할 게 없다고 생각해 보고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그 소저가 일찍이 떠난 게 분명해요.”

“그 사람이 왜 거기에 있었던 건데요?”

“그거야 뻔하지 않습니까. 그날 셋째 도련님이 진지항을 데려온 건 엽영교에게 선 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했던 겁니다.”

강심설은 ‘픽’ 웃더니 연민과 동정이 섞인 눈빛으로 주묘서를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집으로 데려온 사내를 큰아가씨에게 보여 주지 않고 아내의 친정 고모에게 소개해 줬던 거죠. 그런데 큰아가씨는 그것도 모르고 그 틈에 꼈으니… 쯧쯧…….”

부릅뜬 주묘서의 두 눈에선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부끄럽고 화가 났다가 또 못마땅하고 노여움이 치밀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온갖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을 수가 있어요! 전 셋째 오라버니의 누이동생이에요! 그런데 그런 좋은 사내를 제게 소개하지 않고 남에게 소개하다니요…….”

주묘서는 입술을 꽉 깨물고 죽을힘을 다해 터지는 울음을 참으려 했지만, 여전히 흐느껴 울고 있었다.

“제가 혼처를 구하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 어떻게…….”

“무슨 일이오?”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펴졌다.

주 백야가 일상원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오늘 하릴없이 빈둥거리다가 주루에 가서 벗과 술을 마신 후 이제 막 집으로 돌아왔는데, 마침 주묘서의 울음소리를 듣게 된 것이었다.

주 백야는 뒷짐을 지고 걸어 들어오다가 자리에 서 있는 주묘서를 보게 되었다. 그녀는 주먹을 힘껏 움켜쥐고 하얗게 질린 조그만 얼굴을 위로 쳐들고 있었다. 또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입술을 꽉 깨물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그런 딸을 보고는 깜짝 놀라 물었다.

“이런……. 묘서야, 무슨 일이냐? 부인, 어찌 된 일이오?”

주 백야는 그리 말하며 진씨를 쳐다봤다. 고개를 돌려 보니 진씨는 극도로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고 강심설조차도 음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주 백야는 놀라서 멈칫하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묘서야…….”

“아버지! 아버지, 전 이제 살고 싶지 않아요!”

주묘서는 날카롭게 비명을 지르더니 한쪽 벽으로 돌진했다.

“아가씨!”

녹지 등은 깜짝 놀라 황급히 그녀를 잡아끌었다. 녹지는 주묘서를 품에 끌어안고 못 움직이게 꽉 조였지만 그녀는 쉬지 않고 발버둥 치며 울부짖었다.

“죽어 버릴 거야! 살기 싫단 말이야!”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 어?”

주 백야는 고함을 지르며 죽겠다고 발버둥 치는 딸자식의 모습에 혼비백산했다.

“죽어 버릴 거예요!”

주묘서는 여전히 갈라진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왜 죽겠다는 것이냐? 무슨 일인 게냐?”

주 백야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무슨 낯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어요!”

“나리께서는 온종일 무위도식하며 어떤 일에도 관여하지 않으시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저희를 위해 나서 주셔야 합니다.”

진씨도 더는 견딜 수가 없었는지 몸을 숙이며 한 손으로 탑상을 잡고 한 손으론 가슴을 움켜잡으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모녀가 ‘엉엉’, ‘흑흑’ 번갈아 가며 울부짖자 일상원 전체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시끄럽고 정신 사나웠다.

그러자 주 백야의 머릿속에서는 윙윙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렸다. 아무리 성격 좋은 그라 할지라도 더는 참을 수가 없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조용히 좀 하거라! 대체 어찌 된 일이냐? 어? 하나같이 아주! 말을 하란 말이다!”

“나리께서도 아시겠지만… 흐흑, 묘서가 벌써 열여섯 살이라 혼담을 꺼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년부터 지금까지 찾아봤는데도 양갓집 자제마저도 찾지 못했습니다…….”

진씨가 울면서 하소연했다.

“그게 뭐 어떻다고 이러는 거요? 에이, 당장 못 찾으면 천천히 찾으면 되지……. 굳이 이렇게까지 울 필요가 뭐가 있소.”

주 백야는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지금껏 여식의 혼사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고 전부 진씨에게 일임했다. 그가 관여했던 유일한 혼사는 주운환의 혼사였다.

“최근에 나리께서도 들으셨을 겁니다. 이번 과거 시험의 탐화가 엽씨 가문 소저와 정혼했다는 소식 말이죠! 그 소저가 바로 셋째 내자의 친고모입니다!”

진씨의 말투에는 원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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