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4화
“거기 젊은 부인께서는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한쪽에 있던 매파가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왔다.
“그분들은 정식으로 중매를 선 겁니다. 그리 만난 건 선을 본 것이고 진 공자님은 엽 소저를 보고 반한 것이죠!”
“그 말이 맞구먼. 내가 말이 잘못 나왔네.”
진 부인은 하하 웃더니 묘씨를 쳐다보며 의사를 물었다.
“부인, 부인이 보시기에 제 아들이 괜찮은 것 같습니까?”
“물론이죠! 우리 영교에게 과분할 따름인걸요.”
묘씨는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은 기분으로, 마치 꿈속에 있는 듯 현실감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설령 꿈이라고 해도 좋으니 반드시 이 기회를 붙잡아야 했다.
“진 부인, 어째서 아직도 서 계신 겁니까?”
묘씨는 그리 말하며 희색이 만면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진 부인을 자리에 앉혔다.
나씨와 엽승강 부부는 다소 난처하고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진지항과 비교하면 여빈은 열 명을 갖다줘도 성에 차지 않을 것이었다.
게다가 방금 전에 자신들은 엽연채는 돕고 싶어 하지 않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수준 떨어지는 신랑감은 고사하고 사람 자체를 아예 소개해 주지 않았다고 말이다. 그런데 엽연채가 떡하니 탐화를 소개해 올 줄 어디 상상이나 했겠는가.
엽승강 부부는 너무 놀라 가빠진 숨을 내쉬었다. 엽연채는 한번 나서기만 하면 이렇게 놀라운 일을 벌였다.
“그럼 부인께서도 동의하셨으니 셋째 소저의 사주팔자를 건네주시지요. 먼저 궁합을 맞춰 보고 잘 맞으면 혼사를 맺는 걸로 하셔요.”
“그렇게 하시죠.”
묘씨는 얼른 진 부인의 말에 동의했다. 행복이 너무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것이었다.
손씨는 혼사에 대해 의논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쳐다보더니 그런 이야기는 조금도 듣고 싶지 않아 창백해진 얼굴로 돌아서서 자리를 떴다. 엽이채 또한 잠시도 이 자리에 머무를 수가 없어 손씨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손씨의 처소로 돌아온 두 사람은 원탁 옆에 앉았다.
손씨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고, 엽이채는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어찌나 샘이 나고 화가 나는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째서 하나같이 다 저보다 시집을 잘 가는 거예요? 하나는 장원 급제자에게 시집가고 또 하나는 탐화에게 시집을 가게 됐네요.”
손씨도 속이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전에는 장박원이 아주 훌륭한 사윗감이라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었다. 사위의 조부는 권신이었고 본인은 소년 수재였다. 하지만 결국에는 주운환에게 비교당하는 웃음거리로 전락해 버렸다.
손씨는 눈물을 흘리는 엽이채를 보더니 얼른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장원이고 탐화면 뭐 어떻느냐? 이제 막 관계官界에 발을 들인 풋내기에 불과하다. 네 시할아버님을 보거라. 당시에는 그저 평범한 진사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3품 대리시경이시다. 그에 반해 그해 장원과 탐화로 붙었던 자들은 지방 관리로 지내고 있고 진작에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혔다.
그러니 장원이고 탐화라 해 봤자 그저 한순간의 영광에 불과할 뿐이다. 몇 년 지나 관계에서 잘 지내지 못하게 되면 도리어 웃음거리가 되고 말 거다.”
엽이채는 입술을 옥깨물었다. 몇 년이나 더 기다려야 된단 말인가! 그녀는 속으로 주운환과 진지항에게 관계에서 잘 지내지 못하기를, 그래서 외지로 파견되어 말단 관리로 머무르기를 바라면서 쉴 새 없이 저주를 퍼부었다.
* * *
진 부인이 떠난 후, 묘씨는 휑한 방 안을 둘러보며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씨와 엽승강은 민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머님, 축하드립니다. 아가씨에게도 축하드릴 일이네요. 이렇게 좋은 혼처를 구하게 되다니요.”
나씨는 미소를 지으며 먼저 축하 인사를 건넸다.
묘씨는 그제야 만면에 미소를 띠며 할 일을 떠올렸다.
“셋째야, 너는 가서 여 공자에게 사과를 전하거라.”
“예, 어머니.”
여 공자는 자신의 오래된 친구였고 또 이번 혼사가 분명 성사될 거라고 그에게 장담을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엽승강이 의기소침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엽승강과 나씨는 자리에 더 머무르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묘씨도 자리에 더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녀는 만면에 희색을 띠며 엽영교의 처소로 향했다.
엽영교는 자기 처소의 포도나무 지지대 아래에서 수본을 그리고 있었다. 묘씨가 걸어 들어오자 옥패가 조금 상기된 얼굴로 얼른 다가갔다.
“마님, 오셨군요.”
“영교야, 네게 전해 줄 좋은 소식이 있단다. 네 혼사가 정해졌는데, 상대는 바로 진씨 가문의 탐화란다.”
묘씨는 엽영교 맞은편에 놓인 등나무 의자에 앉았다.
“네, 저도 들었어요.”
엽영교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들더니 어색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옥패가 말했다.
“소청이가 진작에 와서 저희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고 계집애가 내가 할 말을 가로챘구나.”
묘씨는 장난기 어린 말투로 소청을 나무랐다.
“이런 깜짝 놀랄 만한 호사는 내가 직접 영교에게 전해 주려 했는데 말이다. 여하튼 이번에도 연채에게 큰 도움을 받았구나. 아니었다면 네게 어떻게 이런 좋은 인연이 생겼겠느냐?”
엽영교는 엽연채가 아무 까닭 없이 자신을 집으로 불러 간식거리와 교자를 만들게 했던 일을 떠올렸다.
‘쳇, 고 계집애가 날 속여 선 자리를 만들었던 거구나!’
그러다 보니 또 자신의 머리카락과 진지항의 머리카락이 달라붙었던 일이 떠올랐다. 교자나 밀가루 음식을 만들 때 머리카락이 달라붙는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그렇게 찰싹 달라붙다니. 돌이켜 보니 정말 이상한 일이야……. 설마 연채 부부가 붙인 건 아니겠지?’
“영교야, 멍하니 뭐 하는 게냐? 어째 그다지 기쁘지 않은 것 같구나.”
“아… 아니에요. 여빈의 후처로 시집가지 않아도 되니 한시름 놓았어요.”
엽영교는 미소를 지었다. 진씨 가문으로 시집갈 수 있다면 그녀에겐 정말로 과분한 혼사였다. 그런데 이런 사위가 생기면 아버지가 득의양양해할 테니 그편이 좀 걱정되었다. 그렇다고 또 아버지에게 반항하기 위해 자신의 신세를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연채의 도움이 아주 컸다. 그러니 내일 큰 선물을 준비해 연채를 찾아가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겠구나.”
묘씨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좋아요.”
엽영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조카사위가 어쨌든 서자이니 저희가 그곳에 자주 들락거리면 그쪽 적모가 기분 나빠할 거예요. 밖에 있는 주루에서 만나 밥을 사는 게 좋겠어요.”
“괜찮은 생각이구나. 그럼 그렇게 하자꾸나.”
묘씨는 기뻐하며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고는 전 마마에게 선물을 준비하라 했고 또 소청에게는 엽연채를 찾아가 서찰을 전달하라고 했다. 서찰에는 내일 오시午時(오전 11시~오후 1시)에 약수차관에서 만나 차를 마시자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외출한 소청은 반 시진 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큰아가씨께서 오시에는 옷 가게에 가서 의복을 재단해야 하니 아침 진시에 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럼 아침으로 하자꾸나.”
묘씨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튿날 이른 아침, 묘씨는 선물을 챙긴 후 엽영교를 데리고 함께 외출했다. 약수차관에 도착해 보니 엽연채는 이미 그곳에 와 있었다.
엽연채는 창가에 놓인 나무뿌리로 만든 찻상에 앉아 있었고, 그 옆에는 조그만 화로가 보였다. 화로 위에선 물이 끓었고, 다해茶海 위에 놓인 흑사黑砂로 만든 뚜껑 안에는 찻잎 한 줌이 들어 있었다. 벽라춘이었다.
“연채야, 빨리 왔구나.”
묘씨는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할머니, 고모.”
엽연채는 헤헤 웃더니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엽영교를 쳐다보며 말했다.
“고모, 축하해요.”
“요 응큼한 계집애.”
엽영교는 괘씸한 마음에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엽연채 옆에 앉아 하얗고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머리를 툭 쳤다. 그러자 엽연채는 ‘아이고’ 소리와 함께 맞은 부분을 문지르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참, 네 부군은 어째 보이지 않는 것이냐?”
묘씨가 본래 오시에 약속을 잡고자 했던 건 주운환이 퇴청할 때까지 기다려 그에게도 인사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 오늘 당직이라서요.”
대제의 조정은 반나절 동안 일하고 오시에 퇴청을 하지만, 부처마다 당직을 서는 사람이 있도록 운영되고 있었다.
당직자는 하루 종일 관아에 머물러야 하고 오후 유시酉時(오후 5시~7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저녁에는 또 다른 관원이 관아에 와서 숙직을 섰다. 황제는 밤에 상주서를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필요할 경우 수시로 관원들을 호출했다.
“그랬구나. 왜 아침에 만나자고 하나 했단다.”
묘씨는 미소를 지으며 본론을 꺼냈다.
“네 고모의 혼사는 정말 네 덕분이다! 들어 보니 이따가 의복을 재단하러 간다고 하던데, 마침 집에 옷감 몇 필이 있어 가져왔으니 의복을 짓는 데 쓰렴.”
소청이 옷감 세 필을 들고 앞으로 걸어왔다.
엽연채가 보니 무늬가 없는 연녹색 항주 비단 한 필과 흐릿한 문양이 들어간 검붉은 빛깔의 견직물 한 필, 복숭아꽃 문양이 들어간 붉은색 운금雲錦(남경南京을 대표하는 고급 비단 종류, 장화 역시 이에 속함) 한 필이 들려 있었다. 세 필 모두 좋은 옷감이었다.
엽연채는 항주 비단과 견직물을 만져 보더니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두 필이 좋겠네요. 안 그래도 이런 옷감은 없었거든요. 이 붉은색 운금은 저도 있으니 남겨 두었다가 고모 옷을 지어 주세요.”
“그래.”
엽영교는 솔직한 사람이라 구태여 사양하지 않았다.
묘씨가 미소를 지으며 다시 혼담 이야기를 꺼냈다.
“진씨 가문 공자를 소개할 거였으면서 어째서 내게 미리 알려 주지 않은 거니? 갑자기 찾아와 혼담을 꺼내는 바람에 깜짝 놀라 죽는 줄 알았다.”
“미리 알려 드릴 수가 없었어요. 저희야 진씨 가문을 혼처로 소개해 드릴 생각이었지만, 그쪽에서 확실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 이상 섣불리 귀띔을 해 드리기는 또 뭐하잖아요. 일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에는 헛물만 켜게 되는 거니까요.”
묘씨는 어리둥절해하더니 이내 옅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역시 연채 너도 네 어미처럼 성실하고 고지식하구나.”
어제만 해도 자신은 속으로 엽연채를 조금 원망했다. 소개해 준다고 해 놓고 얼렁뚱땅 넘어갔다고 넘겨짚으면서 말이다. 엽연채가 이리 착실하게 신랑감을 물색하고 있을 줄 어디 생각이나 했겠는가. 함부로 허튼소리나 지껄이는 그것들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자 또 작년 일이 떠올랐다. 엽이채가 엽연채의 혼사를 가로채 자신에게 과분한 장씨 가문에 시집가는 걸 지켜보면서, 자신은 엽이채와 손씨가 소인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들을 추켜세웠었다. 훗날 엽영교가 어려움에 처하면 엽이채와 손씨가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엽영교가 정말로 곤란에 처하게 됐더니 그들이 어찌했는가. 도와주기는커녕 자신과 엽영교를 마구 짓밟았다.
묘씨는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금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소인은 소인이었다. 그들이 아무리 높은 곳에 올라서도, 자신이 아무리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 애를 써도 결국 자신은 소인들이 베푸는 은혜를 입지 못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