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333화 (333/858)

제333화

“이채야, 마침 잘 왔구나.”

묘씨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마침 장흥후부에서 또 사람을 보내 물어봤다는데, 고모께서 다시 생각해 보는 건 어떠세요? 맹씨 가문 사촌 아주버님 쪽에서도 사람을 보내 고모께서 시집오기를 원한다면 적당히 격식을 차려 주겠다고 전했다면서요.”

묘씨는 엽이채의 말을 듣더니 표정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

“네 고모의 혼사 때문에 신경 쓸 필요 없다고 이미 말하지 않았느냐.”

엽이채도 묘씨 쪽에서 이런 혼사에 동의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저 엽영교를 모욕하고 싶을 뿐이었고, 엽영교를 몰아붙여 그녀가 주루의 주인에게 시집을 가 후처와 계모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리되면 엽영교의 앞날은 생각만 해도 고생길이 훤했다. 그럼 앞으로 자기 인생의 즐거움은 이곳에서 찾으면 되는 것이었다.

“어머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손씨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머님은 여기저기 사람들에게 아가씨의 혼처를 구해 달라고 부탁하셨잖아요. 그런데 적극적으로 소개를 해 드려도 어머님은 이것도 마음에 안 들고 저것도 마음에 안 들어 하시니, 소개해 드리는 사람은 어찌하라는 겁니까?”

그 말에 묘씨는 화가 나 쓰러질 지경이었다.

“이것도 마음에 안 들고 저것도 마음에 안 들어 한다고? 하나는 반편이고 다른 하나는 막돼먹은 의붓딸이 달린 후처 자리인데, 이것도 제대로 된 혼처라고 할 수 있느냐?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과 뭐가 다르더냐?”

이에 나씨는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지금 고모의 집안 형편과 평판이 어떤지는 생각도 안 하시나 봐요.”

엽이채는 손에 든 둥근 부채를 흔들며 말을 이어갔다.

“고모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죠. 아니면 큰언니 쪽을 기다려 보시든지요. 큰언니가 고모에게 과연 어떤 사윗감을 소개해 줄지 지켜봐야겠네요.”

손씨가 냉큼 끼어들었다.

“생각이 있었다면 벌써 소개해 줬겠지. 어쩌면 그저 웃으며 알겠다고 대답해 놓고 돌아가서는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머님, 모두가 다 이채처럼 말 잘 듣고 효심이 깊은 건 아니에요. 얘는 어머님께서 분부하자마자 바로 신랑감을 찾아봤잖아요.”

나씨는 손씨와 엽이채의 말이 귀에 대단히 거슬렸지만 가세가 기울고 말았으니 감히 장씨 가문에 밉보일 수는 없었다. 또 손씨가 말을 거칠게 하기는 했으나 내용은 일리가 있는지라 나씨도 이참에 묘씨를 설득했다.

“여씨 집안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에요. 그분이 가진 결점 하나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다가 몇 년 더 늦어지면 영교 아가씨의 혼사는 더욱 어려워질 거예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밖에 있던 여종이 갑자기 묘씨를 불렀다.

“마님, 진 부인께서 오셨습니다.”

“진 부인? 그분이 무슨 일로?”

묘씨는 바깥으로 살짝 몸을 기울이고는 얼른 여종에게 말했다.

“어서 안으로 뫼시거라.”

“매파도 데려오신 것 같습니다.”

밖에 있던 소청이 덧붙였다. 회랑에 서 있던 소청은 저 멀리서 진 부인이 매파를 데리고 뜰 입구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았다. 매파는 보통 머리에 커다란 붉은 꽃을 꽂고 다니기 때문에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엽이채가 비웃으며 말했다.

“진 부인께서 중매를 서러 온 게 분명합니다. 고모에게 혼담을 꺼내러 온 모양이에요. 지금 저희 고모가 시집 못 가는 걸 모르는 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나씨는 잠깐 망설이다가 이렇게 기대를 내비쳤다.

“어떤 사람을 소개해 줄까요? 진 부인의 인맥이면 분명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요. 분명 나쁘지 않을 거예요. 어쩌면 그 부인의 아들인 탐화를 소개해 줄지도 모르지요!”

엽이채가 배꽃이 수놓인 둥글부채를 살살 흔들며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을 받았다. 그 말에 손씨와 엽승신, 그리고 엽이채의 아들을 돌보는 유모마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엽이채와 나씨의 중매 그리고 맹흠의 일까지 겪은 묘씨는 이제 누가 중매를 서러 왔다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쿵쿵 뛰었다. 기대가 되기는커녕 이번에는 또 어떤 폭탄을 처리해야 하나 하는 걱정만 들 뿐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발이 휙 걷히더니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먼저 울려 퍼졌다.

“부인, 경사입니다.”

이어 덩굴무늬가 들어간 암홍색 배자를 입고 머리에는 금잠과 커다란 붉은 꽃을 꽂은 아름다운 중년 부인이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 그 뒤로 둥근 얼굴의 귀부인이 따라 들어왔다. 바로 매파와 진 부인이었다.

“엽 부인.”

진 부인은 앞으로 다가서며 묘씨에게 인사를 건넸다.

“부인, 어찌 걸음을 다 하셨습니까. 어서 자리에 앉으세요.”

묘씨도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자리를 청했다.

“진 부인, 저희 아가씨의 중매를 서러 오신 건가요?”

손씨가 얼른 말문을 떼자 진 부인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맞습니다!”

“마침 저희도 아가씨의 혼사에 대해 상의하고 있던 중이었어요. 진 부인께서도 이렇게 때마침 오실 줄은 몰랐네요. 이리되었으니 함께 놓고 꼼꼼히 따져 보면 되겠군요.

하나 제 생각에는 더 논한다 해도 동서가 말한 그 사람보다 좋지는 않을 것 같네요. 그 사람은 인품과 용모도 괜찮고 재산도 많으니까요.”

손씨의 말에 진 부인은 그저 허허 웃었다. 그녀도 엽씨 가문 형제들이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부인이 말한 사람보다 분명 좋은 사람일 겁니다. 제가 중매를 서고자 하는 사람은 제 아들입니다.”

“네?”

그 말에 묘씨와 엽이채 등은 모두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사람들은 정신을 차렸다. 손씨는 ‘그런 거군.’ 하는 표정을 지으며 픽 웃고는 가장 먼저 입을 뗐다.

“아? 진 부인의 아드님이라니요! 어떤 서자를 말씀하시는 건지요?”

그 말에 묘씨는 순간 멍해졌다. 서자? 하지만 진씨 가문은 재산이 많고 엽영교가 가진 혼수도 적지 않으며 진 부인은 너그럽고 인자한 사람이니, 인품만 괜찮다면 서자여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게다가 엽연채가 서자에게 시집을 간 선례도 있으니 엽영교가 서자에게 시집간다 해도 그리 창피할 일은 아니었다.

묘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떤 아드님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엽이채는 여전히 엽영교가 주루 주인의 후처로 들어가길 바랐다. 진씨 가문 서자가 배필이 된다면 엽영교가 나름대로 시집을 잘 가는 셈 아닌가.

엽이채는 입술을 삐죽거리더니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번에 할머니는 장흥후부 서자도 마음에 안 들어 하셨잖아요. 그런데 무슨 서자예요! 아무리 그래도 여 공자는 적자인 걸요!”

진 부인은 냉담한 눈빛으로 엽이채를 쓱 흘기고는 묘씨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부인도 참 깜빡깜빡하시는군요. 저에겐 아들이 하나뿐인데 서자라니요? 제 아들 진지항을 말하는 겁니다.”

“네?”

묘씨는 깜짝 놀랐고 어안이 벙벙했다.

“부인께서는 지금… 탐화를 말하는 겁니까?”

말을 꺼낸 묘씨는 하마터면 혓바닥을 깨물 뻔했다. 어떻게 이런 횡재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럴 리가요!”

손씨도 깜짝 놀라기는 마찬가지였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진 부인을 쳐다보며 말했다.

“진 부인, 부인의 아들은 탐화가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게 영교 아가씨를 아들의 배필로 맞는단 말입니까?”

엽이채는 낯빛이 확 변했고 나씨와 엽승강도 놀라서 넋이 나가 버렸다.

“너 그게 무슨 말이냐?”

묘씨는 표정을 싹 굳히더니 눈을 부릅뜨고 손씨를 노려봤다. 지금 딸의 처지와 평판이 안 좋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이 자신의 딸을 깎아내리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둘째 며느님, 우리 아들이 누굴 아내로 맞든 간에 그게 둘째 며느님과 무슨 상관입니까?”

진 부인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되묻자 손씨는 화가 나 입꼬리를 올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각자에겐 자신에게 어울리는 짝이 있는 법입니다. 영교 아가씨에게 어울리는 짝은… 문제가 좀 많을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남에게 말 못 할 사정은 있는 법이지요. 그저 잘 감추고 있는 것에 불과할 뿐이에요.”

은근슬쩍 묘기화를 비꼬는 게 분명했다. 이에 묘씨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목청을 높였다.

“그 더러운 주둥이로 한번만 더 허튼소리를 지껄인다면 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어머님!”

묘씨가 손씨에게 험한 말을 내뱉자 그녀의 낯빛은 새파랗게 변했다.

“제가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진 부인은 옅은 미소를 짓더니 손씨를 쳐다보며 말했다.

“사실 저도 엽 소저가 그렇게 마음에 드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주씨 가문 셋째 공자와 그 내자가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 주었고, 우리 항이도 소저를 너무 좋아하니 아들을 사랑하는 어미로서 이 혼사를 승낙한 겁니다.”

손씨와 엽이채는 말문이 막혔고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이리 말하는 걸 보니 진담이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자 엽이채는 속에서 질투심이 용솟음쳤다.

‘엽연채가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 주었다고?’

또 그 계집애가 벌인 짓이었다. 엽연채는 늘 자신이 하는 일에 훼방을 놓았다. 이쪽 마음속에 아픈 부분이 있으면 엽연채는 그곳을 쿡쿡 찔러댔다. 무슨 일이든 늘 자신과 맞서려고 했다.

엽이채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분노와 원망을 느꼈고, 쌓이고 쌓인 원한 때문에 당장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녀가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 주고 고모를 너무 좋아한다니요? 그건 조방꾸니(오입판에서 남녀 사이의 일을 주선하고 잔심부름 따위를 하는 사람)나 할 짓이 아닙니까?”

진 부인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그녀는 웃음 띤 얼굴로 엽이채를 보며 반문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장씨 가문 부인이 형부를 유혹해 사랑의 도피를 한 것보단 광명정대하지 않은가!”

그 말에 엽이채는 눈앞이 핑 돌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예전이었다면 사람들이 그녀가 형부를 유혹해 사랑의 도피를 했다고 말하면 부끄럽기는 했겠지만, 유혹해서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도 본인의 능력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장박원이 적장녀인 엽연채를 마다하고 기어코 서출인 자신을 원했으니, 이것 또한 자신의 능력이라고 말이다. 자신이 엽연채보다 훨씬 매력적이고 뛰어난 여인이라는 게 증명된 셈 아닌가.

그런데 이제 주운환이 좋은 성적으로 과거 시험에 합격하면서 엽연채도 따라서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니 사람들은 자신과 장박원을 두고 ‘작은 걸 얻고 큰 걸 놓쳐 버린 천박한 여인과 형편없는 사내’라는 말만 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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