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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330화 (330/858)

제330화

한편, 가까운 곳의 칸막이 공간에서 주운환과 진지항도 주렴을 걷어 올리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 사내 괜찮은 것 같군요. 적어도 성격 하나는 아주 쾌활해 보입니다.”

주운환의 평에 진지항은 왠지 모르게 울화가 치밀었다.

“꼭 저런 사람한테 시집갈 필요는 없네. 그 어린 소녀를 보니… 분명 잘 지내지 못할 것 같아.”

“꼭 그렇진 않을 겁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이 혼사는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군요.”

주운환은 이리 말하며 긴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점원들이 묘씨 일행에게 요리를 내오기 시작했다. 여빈은 다시 다가와 미소 띤 얼굴로 그들을 대접하며 당당하고 차분한 태도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지항은 그 모습을 쳐다보며 두 다리를 달달 떨어댔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밖에 있던 묘씨 등이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뜨자 주운환과 진지항도 밖으로 나가 밥값을 계산했다.

묘씨와 엽영교 등은 마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마차 안에서 나씨가 먼저 운을 뗐다.

“어머님께서 생각하시기에는 어떤 것 같습니까?”

“사흘간 더 생각해 보자꾸나!”

“네. 일생이 걸린 대사인데 당연히 심사숙고하셔야죠.”

나씨도 묘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를 표했다.

그런데 그들이 고려해 보기도 전에 저녁 무렵 엽승강이 별안간 붉은 칠을 한 배나무 상자 하나를 품에 안고 안녕당으로 왔다.

“그게 무엇이냐?”

묘씨는 상자를 들고 오는 그를 보더니 이렇게 물었다.

“오늘 본 그 어린 딸아이가 보낸 선물입니다. 영교에게 주는 거라며 직접 열어 보라고 했습니다.”

엽승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이어갔다.

“하하, 겉으로는 가시가 돋아 있지만 사실 속으로는 좋은 어머니를 원하고 있는 거죠.”

“마마는 가서 영교를 불러오게나.”

묘씨의 표정도 그제야 조금 누그러졌다.

전 마마가 밖으로 나갔고 잠시 후 엽영교가 안녕당에 도착했다.

묘씨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보거라. 오늘 본 그 댁 딸아이가 보낸 선물이다. 보아하니 잘 지내기 어려운 아이 같지는 않구나.”

“받으렴.”

엽승강은 상자를 엽영교 손에 건네주었다.

엽영교는 어리둥절해하며 자리에 앉아 상자를 열어 보았다. 이어 그녀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상자는 바닥 위로 떨어졌다. 엽영교는 기함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채였다.

“왜 그러느냐?”

묘씨도 덩달아 소리를 치며 보니 상자 안에서 흩어진 바퀴벌레들이 밖으로 기어 나오고 있었다. 묘씨는 깜짝 놀라 눈앞이 캄캄해졌다.

“꺄악!”

“이런……!”

엽승강도 경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머니……!”

엽영교는 묘씨를 찾으며 그녀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고운 눈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괜찮다. 괜찮아!”

묘씨가 입술을 꽉 깨물고는 엽승강에게 말했다.

“가서 그자에게 전하거라. 여씨 집안이 너무 과분한 집안이라 우리가 감히 넘보지 못하겠다고 말이다!”

“아이가 장난이 좀 지나친 것뿐입니다……. 앞으로 잘 가르치면 고쳐질 겁니다.”

엽승강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시집 안 보낸다! 고치기는 무슨! 그 계집애를 고칠 여력 따윈 없다!”

묘씨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영교의 혼사는…….”

“시집 안 보낸다.”

재차 말하는 묘씨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런 꼴을 보고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안 가는 게 낫다.”

“저… 어머니, 그래도 며칠만 더 생각해 보시지요.”

엽승강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형님은 강직한 분이고 인품이 좋은 건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재산도 많고요. 어린애가 해 봐야 뭘 하겠습니까. 제가 형님에게 알려 잘 단속하라고 전하겠습니다.”

“됐다. 며칠 후에도 내 대답은 같을 것이다.”

묘씨는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 * *

진지항은 마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다급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굴렀다. 그가 수화문에서 내리자 우 마마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섰다.

“도련님, 마님께서 부르십니다.”

“아, 마침 나도 일이 있어서 어머니를 찾아뵐 참이었네.”

진지항은 우 마마를 지나쳐 빠르게 걸어갔다.

상석에 놓인 태사의에 앉아 있던 진 부인은 안으로 들어오는 아들을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디에 다녀왔기에 이렇게 늦게 돌아온 것이냐?”

“어머니… 저…….”

진지항은 그녀 곁으로 걸어가 아치형 다리가 달린 둥근 의자에 앉더니 조금 붉어진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제 혼담을 꺼낼 때인 것 같습니다.”

“아이고. 이제서야 네가 생각이 트인 모양이구나.”

진 부인은 아들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말했다.

“그러잖아도 네게 혼처를 권하려던 참인데 네가 스스로 깨닫다니 잘됐구나. 마마는 어서 가서 화첩을 가져오게나.”

진지항은 마음이 조금 더 초조해졌으나 일단 조용히 있었다.

우 마마가 두꺼운 화첩을 한 권 가지고 돌아왔다.

“오늘 매파 고씨가 보내온 소저들의 초상화가 그려진 화첩입니다. 도련님, 골라 보시지요.”

진지항이 탐화가 된 후로 혼담을 꺼내고 싶어 하는 규수들이 진씨 가문 저택에서 성문까지 줄을 설 정도로 아주 많았다. 진 부인은 명문가 규수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진지항에게 여러 번 이야기를 꺼냈지만, 그는 자신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고 강조할 뿐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아내로 맞이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진 부인은 뜨거운 가마 속의 개미처럼 마음을 졸였다. 주묘서의 일이 생각나자 아들이 또 돼먹지 못한 여인을 마음에 들어 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그래서 오늘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려던 차였는데 그가 알아서 철든 소리를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들아. 어떤 여인이 마음에 드느냐?”

진 부인이 물었다.

“딱히 어떤 여인을 원하는 건 아니에요……. 전 요구하는 바가 없습니다.”

“그래. 그럼 화첩을 천천히 살펴보거라.”

진 부인은 빙그레 웃으며 손에 쥔 화첩을 그에게 건넸다.

진지항은 화첩을 건네받아 첫 장을 펼쳐보더니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초상화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사람은… 입이 너무 큽니다.”

진 부인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이리 대꾸했다.

“그렇게 크진 않은데. 그럼 다음 장을 펼쳐 보거라.”

“이 사람은 눈이 좀 작네요.”

“눈이 그렇게 클 필요는 없단다. 볼 수 있기만 하면 되지. 이 정도 얼굴이면 못생긴 건 아니다. 딱 좋은데 뭘.”

진 부인은 성을 내더니 다른 화첩을 가리켰다.

“어어, 잠깐. 여기 좀 보거라! 입도 작고 눈도 크고 코도 오뚝한 게 딱 미인상이구나!”

“음…….”

진지항은 멍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다음 장으로 넘겼다.

“아니!”

아들이 눈길도 주지 않자 진 부인이 화난 투로 그를 다그쳤다.

“얼마나 완벽하니! 적어도 용모는 훌륭하잖니!”

“그런데… 머릿결이 별로 좋지 않네요.”

“머릿결?”

진 부인은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그녀는 두 장을 더 넘기더니 이렇게 말했다.

“보거라.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갖고 있구나.”

“음… 밥을 잘할 것 같지는 않아 보이네요.”

진 부인은 입꼬리를 삐죽거리며 반문했다.

“밥까지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냐? 요구하는 바가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됐다. 네가 요구하는 바를 전부 말해 보거라!”

“머릿결이 좋아야 합니다. 새까맣고 탐스러우며 만져 보면 매끄러운 느낌이 드는 머리카락 말이죠. 교자도 만들 줄 알아야 합니다. 손목은 가늘고 얼굴도…….”

“대체 어떤 소저를 말하는 것이냐?”

진 부인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또 그 주묘서는 아니겠지?”

진 부인은 긴장되고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번 진씨가 와서 혼담을 꺼내며 진지항이 주씨 가문에 찾아가 주묘서와 만났다고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 어리석은 녀석이 또 주묘서에게 넘어간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그 사람은 아니에요.”

주묘서 이야기에 진지항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는 묘씨의 생일 축하연에서 주묘서와 함께 탄기를 했었고 그때는 그녀를 솔직하고 귀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중에 찾아가 그 앞을 가로막고 이야기를 나눠 보니, 그녀는 허영심이 심하고 위선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주씨 가문에 가서 함께 시간을 보냈을 땐 인품이 몹시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더욱더 강하게 들었다. 얼간이가 아닌 이상 누가 그런 사람을 아내로 원하겠는가?

“그럼 안심이구나.”

진 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상대를 물었다.

“그럼… 이번에는 누구냐?”

그러자 진지항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어머니도 아시는 사람일 겁니다. 엽씨 가문 셋째 소저인 엽영교입니다.”

“엽영교?”

진 부인은 낯빛이 확 변하더니 바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안 된다!”

그녀가 승낙하지 않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던 진지항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 이유는 그도 알고 있었다.

“예전이었다면 당연히 가능했겠지만 지금은 평판이… 너무 안 좋지 않느냐.”

“좋은 사람입니다.”

“안 된다고 했다.”

진 부인은 딱 잘라 거절했다.

“주묘서 때는 그저 몰락한 가문이고 사람들에게 출신이 낮다는 소리만 들을 뿐이었다. 하지만 엽영교는… 그 애 아버지는 대리시에서 풀려난 지 얼마 안 되었고 큰오라비도 사람들이 다 아는 추접한 일을 벌였다. 그리고 그 애 본인도 맹흠이라는 사람과 안 좋은 소문이 돌았었다.

그러니 그 애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면 너마저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를 것이다. 벼슬길에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

진지항은 더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어머니를 설득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역시 다른 이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 * *

이튿날 이른 아침, 진지항이 등청하니 주운환과 조범수는 이미 근무 중이었다.

진지항은 주운환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운환아.”

그러고는 부용고가 들어 있는 상자를 꺼내 내밀었다.

“이거 좋아하잖아. 천미루千味樓에서 산 거다.”

“무슨 일입니까?”

주운환이 검은 눈썹을 치켜올리자 진지항이 조금 붉어진 얼굴로 물었다.

“네 내자의 고모 혼사는… 어찌 되었니?”

“듣기론 그 사람이 그런대로 마음에 든 모양입니다. 하지만 일생이 걸린 대사이니 집으로 돌아가 사흘 동안 의논한 후에 다시 답을 주기로 했다고 합니다.”

주운환의 말에 진지항은 더욱 조급해졌다.

“그게… 네가 엽씨 가문 사위잖니. 내게도 중매를 서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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